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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쓰는 첫 글이 신간추천페이퍼라는 것이 기분좋다

새로 나온 책들을 살펴본다는 건 언제나 기분좋은 일이다 ^^

눈길이 가는 책들이 많아 다섯권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

 


 

 

1. 적지지련 / 장아이링

 

  장애령을 처음 접한 건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색,계 덕분이었다.

  루쉰 외에 크게 관심가진 중국작가가 없었는데, 색, 계 이후 장애령에 대해 궁금증이 일면서 작품을 찾아읽고  작가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었다.

 이번 신간을 살펴보면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하고 무척이나 반가웠다.

적지지련.  이번엔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그녀의 이야기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연애 이야기.

 이번에도 보통 사람들의 연애 이야기라는데, 배경은 범상치 않아보인다.

 출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금서로 남아 있다는데, 그래서  더 궁금하다.

 중국과 그 외 나라에서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적지지련.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 작품. 얼른 읽어보아야겠다.

 

 

 

 


 

 

2. 10개월, 종말이 오다 / 종말문학 공모전 신체 강탈자 문학공모전 수상작품집

 

 

 

SF, 추리소설  

다른나라에서는 서점 판매 순위 1,2위를 차지하는장르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장르문학에서 아직 이렇다 할 작품이 나와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장르문학이 신간으로 나오면 먼저 눈이 간다.

 

10개월, 종말이 오다 라는 제목이다.

종말, 참으로 신선하다.

종말문학과 신체 강탈자 문학이란다.

이런 다양한 시도들이야말로 우리문학을 발전케 하는 원동력이지 않은가.

 

우리 작가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종말.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3. 헬로, 미스터 디킨스/  김경욱 외

 

 

제목이 재미있다.

영국작가 찰스 디킨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우리 작가 아홉명의 디킨스의 아이디어를 얻어 쓴 글들을 모은 작품집.

두 가지 테마로 나눠서 글을 썼다는데, 하나는 두 도시, 하나는 디킨스란다.

개인적으로 하성란과 백가흠의 작품이 기대된다.

요즘은 재미있는 프로젝트 서적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 즐겁다.

 

 

 

 

 

 

 


 

 

4. 코카브 / 김소윤

 

출판사 자음과 모음 작가 발굴 프로젝트 나는 작가다 의 첫 번째 당선작.

그 프로젝트가 처음 나왔을 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었는데, 중간에 개인적인 일로 인해

끝까지 지켜보지 못했다.

첫 당선작이 출간되었다니 괜히 반가웠다.

내용을 대충 살펴보니 결혼생활 도중 갑자기 아내가 사라지고,아내의 행방을 쫓으며 남자는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는 것 같다.

어쩌면 뻔한 내용일 수도 있는데,

어떤 문장과 어떤 구성으로 독자를 사로잡았을지 궁금하다.

 

 

 


 

5. 홈즈가 보낸 편지 / 윤해환

 

 

한국 최초 추리소설작가 김내성과 셜록 홈즈가 조선에서 만났다면?

이 물음표로부터 시작하는 이 소설은 발상이 기발하다.

김내성과 홈즈 두 인물만으로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디지털작가상을 수상했다는데, 요즘은 참 다양한 상들이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이런 다양한 시도로 우리 문학이 더욱 풍요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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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여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
엘프리데 옐리네크 지음, 이병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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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하고 고상한 제목과는 다른 내용의 소설이기에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작가는 시종일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문장은 독자를 더욱 낯선 세계로 이끌고, 알듯 모를듯한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유는 더욱 더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이 소설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한 성적 묘사는 그로테스크함과 예술성의 접점에 아슬아슬하게 위치한다.

 

- 어머니라는 이름의 면죄부, 그 아래 드리워진 폭력의 그림자

 

에리카의 어머니는 훈육이라는 명목 아래 폭력을 행사했다. 어머니는 에리카의 삶에 있어 선택의 몫을 자기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그녀의 외면에서 성적 호감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제지한다. 어머니는 ‘예술가란 성을 멀리 해야 하는 것’이라며 에리카가 예쁜 옷을 입고 치장하는 것을 천박한 일이라 인식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리카는 옷을 사들인다. 그러나 사들인 옷을 입고 나간 적은 없다. 언제나 옷은 그녀의 옷장에 방치되어 있다. 이처럼 그녀의 여성성은 어머니의 눈에 띄지 않게 옷장 안에 방치된다. 그러나 방치된 자신의 여성성이 어머니의 손아귀에서 찢겨나갈 때, 그녀는 그녀의 절대 권력자 어머니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할만큼 거칠게 대항한다. 그러나 이는 오래갈 수 없다. 그녀에게 있어 어머니란 존재는 절대적인 권력자이자, 자신의 예술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연주자로서 성공하지 못한 에리카를 아티스트로서 독보적이라며 그녀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말한다. 타인은 그녀의 예술세계를 이해할 수 없고 오직 자신만이 에리카의 예술세계를 인정하고 평가하며 공유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시킨다. 에리카는 자신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이름도 어머니로 인해 인정받고 완성된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에리카의 인간관계에서 거의 전부라 해도 될 만큼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정신병자인 남편의 부재로 인해 정상적인 여성의 삶을 살지 못한 에리카의 어머니는 딸을 자신의 남편의 위치에 자리하게 했고, 자연스럽게 에리카는 어머니로 인해 여성이 거세되고 어머니의 남편이 된다. 어머니는 에리카에게 남성은 삶에 있어 절대적 필요존재가 아니라고 끊임없이 인식시킨다.

그런 어머니의 바람을 벗어나, 자신의 ‘귀여운 회오리바람’ 에리카에게 클레머라는 남성이 다가왔을 때 에리카가 동요하자 어머니는 문을 두드리고 술을 마시며 절망한다. 그러나 에리카 역시 어머니의 틀안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한다. 심지어 클레머와의 성관계 역시 어머니와 그녀의 공간인 아파트 안에서 행해지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인다. 에리카가 자신의 방 안에 들어가 가구로 문을 막음으로써 어머니와 자신의 사이에 한 겹의 문을 쌓으려 하지만, 자신의 방 역시 완전히 독립된 공간이 아닌, 어머니와 그녀의 공간인 아파트 안에 속해 있는 공간일 뿐이다.

 

 

- 에리카의 이중성과 사도마조히즘적 성향

 

에리카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갇혀 있는 틀 안에서만 행해졌다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도, 성적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타인의 몸을 볼 때도 언제나 숨어서 몰래 행동을 취했다. 그것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해가 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권력자에게 들킬 용의가 없는 한도 내에서였다.

그녀는 삶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신의 몸을 칼로 베기에 이른다. 동시에 그녀의 몸은 그녀에게 순전히 복종함으로서 쾌락을 느낀다.그녀의 사도마조히즘적 성향은 클레머와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에리카는 편지를 통해 클레머에게 상세하게 자신의 욕망 해소법을 지시한다. 클레머의 남성은 에리카의 여성을 회복하게 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클레머는 남성으로서 자존심을 다친다. 클레머는 자신의 남성이 에리카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서지 못하게 되자, 결국 에리카에게 성적학대를 가하고 만다. 굴욕감과 절망감에 그녀는 한 손에 칼을 쥐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클레머에게 복수하러 나선다. 결국 자신의 어깨를 내리치는 것으로 내면의 소리를 가둬두고 만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로 발걸음을 돌리는 것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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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처음.

모든 일의 처음은 낯설지만 두근거리는 설레임이 있다.

소복하게 쌓인 눈길에 첫 발을 내딛는 심정으로 첫 페이퍼를 작성해 본다.

 

 

 

 

황석영 저, 자음과 모음 출판

 

작품의 배경은 19세기.쏟아져 들어오는 외세문물과 기존의 정서가 충돌하던 혼란의 시대.

그 시대를 살았던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란다.  

소재 자체로만 보아도 신선하다.

우리 역사 속에서 현재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하는 작가가 믿음직스러워 언제나 작가의 작품을 챙겨서 읽는다.

 

여울물 소리처럼 작품 속에서 "울고 흐느끼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나직하게 노래하며 흘러"가 보자. 어떤 물음표와 느낌표가 만들어질 것인지 궁금하다.

 

 


 

 

 방현석 저, 이야기 공작소 출판 

 

영화 남영동 1985를 보지 않았다.

화면이 보여주는 이미지 이전에 글로 먼저 느껴보고 싶었다.

극적인 면만 부각시키는 것 말고, 그냥 그 사람에 대해 순순하게 알아나가고 싶었다.

 

"논픽션의 반대편에 소설이라는 픽션이 서 있는 게 아니다. 논픽션 너머에 있는 게 픽션이라고 생각한다. 픽션은 논픽션의 불완전한 감동을, 완전한 감동으로 만든다. 이 소설에서도 논픽션이 가지고 있는 것을, 사실이 가지고 있는 진실을 좀 더 잘 보여주기 위해 픽션이 동원됐을 뿐이다. 나는 이 소설이 백 퍼센트 진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말이 인상깊다. 지금 바로 '김근태'라는 인물을 만나보고 싶다.

 


 

 

모옌 저, 문학동네 출판

 

단연 우선순위다.

추천소설 페이퍼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이 소설을 꼽았었다.

열세 걸음이라는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러시아 민담을 바탕으로 한 제목이란다.

작가는 2012년 노벨상 수상자 모옌.

글로만 뜻을 표할 뿐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뚝심이 반갑다. 

 

길게 말하지 않고 바로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볼 작정이다.

 

 

 


 

스티븐 킹 저, 황금가지 출판

 

1963년 11월 22일

아픈 과거의 날이다.

과거로 돌아가 이 날 만약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이런 가정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란다.

 

시간여행자는 암살범의 뒤를 쫓으며 긴박하게 소설은 진행된다고 하는데

스티븐 킹의 묘사가 압권이란다.

그의 묘사를  읽는 맛이 제법일 것 같다.

 

 

 


 

 

 

도진기 외, 황금가지 출판

 

장르문학이 열세라는 말은 옛말이다.

연구자도 작가도 장르문학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 움직임들이 보여지고 있다.

실현의 한 성과로 한국추리스릴러 단편선이 출간되었다.

한국추리스릴러 단편선이 엮어진 것은 벌써 네 번째이다.

그간 출간되었던 작품들이 꽤나 흥미로웠다.

이번에도 기대를 가지고 한국추리스릴러를 읽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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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물레 - 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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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기술과 산업문명의 발달로 편안한 삶을 영위하고, 추구하고 있는 우리에게 저자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가장 평범하고도 중요한 진리를 담고, 독자에게 이러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점점 다가오는 죽음은 곧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의 소멸을 의미한다. 지구상의 전 생물의 존재유무를 결정짓게 하는 환경오염문제는 그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학 기술은 만병통치의 역할을 하고 있기에 점점 극심해져 가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의 위기를 알고, 느끼고 있으면서도 과학적인 기술의 방법으로 극복될 것이라 믿고 있다. 당장 코앞에 다가온 위기를 인지하면서도 대처하지 못하는 만물의 영장인 인류의 우매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간디의 물레』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 그에 대한 책임감을 표현하고, 거의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결코 적지 않을 동시대인들과의 정신적 교류를 희망하면서, 민감한 마음을 지닌 영혼들과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나가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은 저자의 욕망의 산물이다. 또한, 저자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개인의 자기자신에 대한 관계의 문제와 근본적으로 일치하는 문제라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정치 경제의 문제이자 동시에 철학과 도덕과 종교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하고 있다. 저자의 메시지에 대해 동의하면서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생각을 간단히 표명해 보고자 한다.

「간디의 물레」에서는 간디가 인도사람들에게 서양의 산업문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직접 물레질을 할 것을 권유했던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여기서 간디의 ‘물레’는 간디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상징적 단서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의 ‘물레’란 무엇보다 인간의 노역에 도움을 주면서 결코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 인간적 규모의 기계의 전형이다. 간디는 기계 자체에 대해 반대한 적은 없지만, 거대기계에는 필연적으로 복잡하고 위계적인 사회조직,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 도시화, 낭비적 소비가 수반된다는 것을 주목했다. 생산수단이 민중 자신의 손에 있을 때 비로소 착취구조가 종식된다고 할 때,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는 그 자체 비인간화와 억압의 구조를 강화하기 쉬운 것이다. 간디가 구상했던 이상적 사회는 국가체제가 아닌 마을민주주의에 의한 자치가 실현되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폭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비폭력주의자였다. 이윤추구와 물건과 권력에 대한 맹목적 탐욕은 폭력을 존재하게 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난무하고 있는 사건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아버지를 살해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이익을 좀 더 창출해 내기 위해 오늘도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고, 그러한 시위로 인해 수많은 목숨이 희생당하기도 한다. 산업문명은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은 그에 의한 부작용을 동반한다. 우리는 남을 짓밟고 서야지만 남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어쩌면 간디는 이런 사회를 두려워한 것일지도 모른다.

「환경위기의 내면구조」에서 저자는 특별히 주의할 필요가 없었던 깨끗한 공기, 물, 흙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되살리느냐 하는 것이 지금은 사활의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은 물을 사고 파는 시대이다. 불과 십년 전만 해도 물을 사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기도 하다. 깨끗한 공기 역시 산업문명의 발달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봄철이 되면 우리는 황사에 유의해야 하기에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황사는 점점 심각해지고 황사로 인해 몸이 약한 사람들은 목숨을 위협받는, 그래서 외출을 금해야 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더욱 무서운 것은 황사가 봄철에만 오는 것이 아닌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과학의 날 행사에 ‘과학발달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한 측면’ 이란 주제에 대한 그림으로 뿌연 공기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의 모습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이것은 불과 십여년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과학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우리의 목숨 또한 날로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으로부터 십여년 후에는 산소공급기를 부착하고 다니는 그런 일이 발생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2035년에 소행성과 지구가 충돌하면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사람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이 그것을 막아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경 오염으로 인한 지구의 멸망은 지금부터 우리가 하나가 되어 매일 매일을 의식하며 고쳐나가지 않으면 막을 도리가 없다. 어쩌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지구의 멸망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를 제외한 모든 생물이 소멸되어 있는 지구의 멸망에 대해 국한되어 있다.

『간디의 물레』에서는 끊임없이 우리가 직면해 있는 환경오염의 문제에 대해 낱낱이 폭로하고 이에 대한 대책방안을 강구하고자 하고 있다. 또한, 대책방안으로서 생명운동, 노동운동, 녹색운동과 한살림 공동체운동을 예로 들며 이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고 있다. 생명운동, 노동운동, 녹색운동과 한살림 공동체운동이라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도 나는 무지했다. 이번 기회로 이러한 운동들에 대해 알 수 있게 된 점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고 녹색소비자 운동에 대해 알게 되면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부분부터 고쳐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회용품 반환운동도 일종의 녹색소비자 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장 평범한 말 ‘나부터 실천하자’라는 말이 순간 떠올랐다.

『간디의 물레』에서는 비단 환경의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와 교육적인 면에까지 저자는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다. 경제, 환경, 교육 이 모든 부분은 서두에 밝혔던 저자의 포괄적 질문 - 사람이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영위해야 하는가 - 에 대한 여러 측면에서의 답변으로, 질문에 대해 일맥상통한다.

감명깊게 읽었던 부분중 하나로 「광우병과 폭력의 논리」를 꼽을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광우병의 발생과정이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광우병이 십년 전부터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어디서 난데없이 튀어나온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어떤 과학자들이 ‘프리온’이라고 이름붙인 동물성 단백질의 작용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료문제로 인한 쓰레기 처리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고안된 것인데 도살된 소나 양의 내장 따위를 가공하여 이것을 사료의 일부로 이용하는 것으로, 바로 이것이 ‘단백질 보충제’라는 것이다. 결국 광우병 또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대가인 것이다. 초식동물에게 짐승고기를 먹인 것은 명백한 동물학대이다. 또 다른 책『슬로푸드, 슬로라이프』에서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유전자 조작식품(GMO)인 양상추와 동물의 발톱과 털, 심지어 뼈까지 갈아만드는 햄버거 안의 고기에 대해 나와 있었는데 그것은 실로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이는 처절한 동물학대이자,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순간, 자사의 이득만을 위해 전세계에 그런 햄버거를 파는 맥도날드사에 대해 굉장한 분노가 치밀었다. 이것이야말로 인류를 상대로, 아니 인류와 동물을 상대로 한 폭력인 것이다. 생명에 대한 공경까지는 고사하고라도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우매함에 대한 대가로 우리는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고, 유전자 조작식품인 양상추를 먹고, 동물의 잔해가 섞인 고기를 먹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부분에서 저자는 현 시대의 경쟁의 원리가 상호배타적이라는 것을 교육을 통해 피력하고자 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정규 학교교육과정을 통해 이성적 마음과 착한 성품이 북돋아지기는 커녕, 타고난 본래의 모습대로도 보존되기 어렵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단편적 지식과 정보이다. 학생들은 그것을 주입하도록 강요받고 있고 윤리적 교육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오직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학교를 다니는 목표이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윤리적인 교육은 배울 틈이 없다. 참다운 교육이란 지식과 정보의 일방적인 전달을 위한 강제적 과정이 아니라 인격상호간의 자유로운 교류이다. 교육에 필수적인 것은 철저한 상호존중과 신뢰에 기초한 자유와 관용의 분위기이다. 이 세상 만가지 악의 근본인 권위주의가 끼어들면 생명의 자연스러운 성장은 꺾이고, 억압과 눈치와 파괴적 심성이 조장되기 마련인 것이다. 권력은 학교에서 존재하지 않아야 할,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교사는 권력을 가진 자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교사는 마음으로서 학생을 대하고, 학생들 또한 마음으로서 교사를 따라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교육을 가져오게 하는 가장 기본적 요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것이 누구의 탓인지 지금 우리가 처한 교육적 현실은 불행하게도 그것이 아니다. 우리는 학생과 학부모가 교실에서 교사를 구타했다는 식의 기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서로가 마음으로서 대해야 할 관계가 폭력으로 인해 얼룩져 가고 그러한 관계가 점차 소원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인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이기심의 발로라고 보고 있다.

저자는 『간디의 물레』를 통해 인류의 고통은 이기심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 경제의 문제, 국제관계의 문제, 먹거리에 대한 문제, 생명에 대한 문제, 교육에 대한 문제 이 모든 문제의 원천은 이기심에 있는 것이다.

또한, 모든 것을 물질주의의 기준에 따라 측정하고 인간영혼의 가장 내밀한 가치조차도 상품으로서밖에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산업사회, 사람의 에너지의 거의 전부를 야비한 소득과 소비의 경쟁속에 쏟아붓도록 강요하는 이 가공할 만한 체제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창궐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욕망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모든 사물은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고 노력하며, 이러한 노력은 유한한 시간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지지 않는 시간까지도 포함한다. 즉, 모든 인간은 삶의 지속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죽고 만다. 이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의 대가이다. 우주의 힘은 우리보다 무한하게 위대하고, 죽음은 각각의 유한한 개체와 무한한 실체의 관계 속에서 냉엄하게 기록되어져 있다. 무한한 실체란 한계가 없는 자연이며, 유한한 개체는 이 한계가 없는 자연의 지극히 작은 한 개의 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에서는 이 한 개의 조각에 불과한 인류가 터전인 거대한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아이러니를 발생케하고 있다. 이러한 우를 더 이상 범하지 않게 되길 바라며 아주 작은 것부터 실천해 나가려 한다. 『간디의 물레』는 나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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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학교 이야기 살아있는 교육 11
윤구병 지음, 변정연 그림 / 보리 / 19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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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선생을 그만 두고 농사를 짓겠다고 하니 미쳤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 뜻을 안다. 고생길이 훤하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 고생으로 마을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꽃피어난다면 한 번쯤 미쳐 볼 만도 하지 않은가>

   이 책의 머리말에 나와있는 한 부분이다. 이 글로써 이 책을 쓴 동기와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윤구병의 『실험 학교 이야기』는 실제 건립될 학교의 밑그림이다. 저자는 충북대 철학과 교수로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북 변산으로 들어가 이 책에 나와 있는 학교를 건립할 예정이다. 그 점에서부터 이 책은 매우 흥미롭다. 교수를 그만두고 산 속으로 들어가 한 학교에만 매달리려고 하는 저자와 저자의 머릿속에 있는 학교가 어떠한 학교인지 궁금하기가 그지없다. 이 책에 나와있는 학교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고, 또 다니고 있는 학교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다. 사람이 가르치는 것이 아닌 자연이 가르치는, 자연이라는 훌륭한 교사를 둔 학교이며, 스스로 몸으로 느껴보고 부딪히면서 배우는 공동체학교이다.

 이 책은 이야기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에서는 저자가 생각하는 공동체란 무엇이고 현실의 도시 아이들의 문제점, 아이들을 키우는 데 해서는 안될 점 등을 제시하고 있으며, 2장에서는 아이들의 죽어 있는 감각을 되살리는 교육에 대해, 3장에서는 직접 몸으로 부딪혀 보는 흥미로운 예들을 실었다. 4장은 소리와 빛 등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얘기하고 있고, 마지막 5장은 실험 학교 선생님들에 대해 실었다.  저자는 5장에 걸쳐 자연과 인간다운 삶, 공동체를 강조하는 교육방식으로 새로운 어린이 교육 - 아니 차라리 새로운 사회라 함이 옳겠다 -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은 교사와 교사를 향해 꿈을 키워가고 있는 자들이 우선적으로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떠한 교육이 참된 교육인지, 도시의 교육에서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어떤 방향으로 개선해야 할 것인지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저자 윤구병은 기존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의 일관성 있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 역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닌 그의 생각의 한 줄기라고 생각한다. 이 외 작품으로는 『잡초는 없다』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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