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여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
엘프리데 옐리네크 지음, 이병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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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하고 고상한 제목과는 다른 내용의 소설이기에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작가는 시종일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문장은 독자를 더욱 낯선 세계로 이끌고, 알듯 모를듯한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유는 더욱 더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이 소설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한 성적 묘사는 그로테스크함과 예술성의 접점에 아슬아슬하게 위치한다.

 

- 어머니라는 이름의 면죄부, 그 아래 드리워진 폭력의 그림자

 

에리카의 어머니는 훈육이라는 명목 아래 폭력을 행사했다. 어머니는 에리카의 삶에 있어 선택의 몫을 자기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그녀의 외면에서 성적 호감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제지한다. 어머니는 ‘예술가란 성을 멀리 해야 하는 것’이라며 에리카가 예쁜 옷을 입고 치장하는 것을 천박한 일이라 인식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리카는 옷을 사들인다. 그러나 사들인 옷을 입고 나간 적은 없다. 언제나 옷은 그녀의 옷장에 방치되어 있다. 이처럼 그녀의 여성성은 어머니의 눈에 띄지 않게 옷장 안에 방치된다. 그러나 방치된 자신의 여성성이 어머니의 손아귀에서 찢겨나갈 때, 그녀는 그녀의 절대 권력자 어머니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할만큼 거칠게 대항한다. 그러나 이는 오래갈 수 없다. 그녀에게 있어 어머니란 존재는 절대적인 권력자이자, 자신의 예술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연주자로서 성공하지 못한 에리카를 아티스트로서 독보적이라며 그녀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말한다. 타인은 그녀의 예술세계를 이해할 수 없고 오직 자신만이 에리카의 예술세계를 인정하고 평가하며 공유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시킨다. 에리카는 자신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이름도 어머니로 인해 인정받고 완성된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에리카의 인간관계에서 거의 전부라 해도 될 만큼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정신병자인 남편의 부재로 인해 정상적인 여성의 삶을 살지 못한 에리카의 어머니는 딸을 자신의 남편의 위치에 자리하게 했고, 자연스럽게 에리카는 어머니로 인해 여성이 거세되고 어머니의 남편이 된다. 어머니는 에리카에게 남성은 삶에 있어 절대적 필요존재가 아니라고 끊임없이 인식시킨다.

그런 어머니의 바람을 벗어나, 자신의 ‘귀여운 회오리바람’ 에리카에게 클레머라는 남성이 다가왔을 때 에리카가 동요하자 어머니는 문을 두드리고 술을 마시며 절망한다. 그러나 에리카 역시 어머니의 틀안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한다. 심지어 클레머와의 성관계 역시 어머니와 그녀의 공간인 아파트 안에서 행해지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인다. 에리카가 자신의 방 안에 들어가 가구로 문을 막음으로써 어머니와 자신의 사이에 한 겹의 문을 쌓으려 하지만, 자신의 방 역시 완전히 독립된 공간이 아닌, 어머니와 그녀의 공간인 아파트 안에 속해 있는 공간일 뿐이다.

 

 

- 에리카의 이중성과 사도마조히즘적 성향

 

에리카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갇혀 있는 틀 안에서만 행해졌다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도, 성적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타인의 몸을 볼 때도 언제나 숨어서 몰래 행동을 취했다. 그것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해가 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권력자에게 들킬 용의가 없는 한도 내에서였다.

그녀는 삶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신의 몸을 칼로 베기에 이른다. 동시에 그녀의 몸은 그녀에게 순전히 복종함으로서 쾌락을 느낀다.그녀의 사도마조히즘적 성향은 클레머와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에리카는 편지를 통해 클레머에게 상세하게 자신의 욕망 해소법을 지시한다. 클레머의 남성은 에리카의 여성을 회복하게 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클레머는 남성으로서 자존심을 다친다. 클레머는 자신의 남성이 에리카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서지 못하게 되자, 결국 에리카에게 성적학대를 가하고 만다. 굴욕감과 절망감에 그녀는 한 손에 칼을 쥐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클레머에게 복수하러 나선다. 결국 자신의 어깨를 내리치는 것으로 내면의 소리를 가둬두고 만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로 발걸음을 돌리는 것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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