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한마리가 방에 들어왔다. 아까 잠깐 쓰레기 봉투를 버리느라 문을 연 사이에 들어온 것 같다.

파리가 인간적으루다가.. 너무나 컸다. 형광등 사이를 윙윙 날아다니는 그 덩치가 보통이 아니다.

파리가 나가게끔 베란다 문을 열고 팔을 휘휘 저어보았지만, 여전히 파리는 나갈 생각이 없는지 불빛 주위를 맴돌았다. 지가 나방인줄 아는 모양이다. 방안의 불을 끄고 베란다 문을 열며 나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귀찮아졌다. 그리고 저기 모기약이 눈에 보였다.

칙~ 모기약을 벽에 붙어 있는 파리에게 뿌렸다.
그리고... 내 방엔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그 큰 덩치의 파리는 온 몸에 모기약을 묻힌 채 발광을 하며 좁은 방 안을 날아다녔다. 성난 투우처럼 맹렬한 기세로, 보란듯이. 에잇, 한번 더 뿌려주마. 칙~

아, 나의 패착이여. 그쯤에서 다시 한번 베란다 문을 열고 파리를 내보냈어야 했다. 퍽~ 퍽~ 모기약 범벅을 한 떡대 파리는 전광석화처럼 빠린 속도로 동서남북, 천장과 방바닥까지 제 몸으로 찍고, 내 머리를 스치고 침대에도 앉을 뻔 하다가 (T.T) 결국 냉장고 뒤에 쓰러져 마지막 발버둥을 쳤다. 난 그야말로 뭉크의 그림에 나오는 절규하는 사람처럼 머리를 감싸쥐고 소리를 질렸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파리는 마지막 붙은 숨을 온통 몸부침 치는 데에 소모했다. 날개를 방바닥에 대고, 멈출 듯 하다가 파르르 떨었으며 긴 여섯개의 다리는 오무라들며 생을 마감하는 듯 하다가도 다시 한번 하늘을 향해 허우적대었다. 아... 모진 목숨이여. 도대체 '파리 목숨'이란 말을 만든 자, 누구인가?

냉장고 뒤의 파리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내 손이 닿지 않는 그곳에서 모진 생을 연장하며 공포의 소음을 냈다. 내 파리 목숨의 끝이 이렇게 처절한 줄 알았더라면 그와 함께 밤을 지낼 망정 모기약을 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 밤 꿈자리가 두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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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4-06-01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ly였군요. Paris인 줄 알았습니다. 파리의 매너. -_-;;;;;;;;;;;;

비로그인 2004-06-01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라~ 모기약으로도 파리가 목숨을 잃을수도 있군요. 종종 애용해야 겠습니다.

sunnyside 2004-06-0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님, 그게 다 매너님을 제 서재로 모시기 위한 네이밍이었습죠. ㅎㅎ;
폭스바겐님, 절대비추입니다. 파리한테 모기약 뿌리지 마세요.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파리도, 저도요.. 흑.

마태우스 2004-06-01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길 조심하세요
-파리 대변인-

진/우맘 2004-06-01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서니님의 필력, 장난이 아닙니다.(아닌데요, 라고 썼다가...방금 김지님 서재에서 충격을 먹고 와서...데요인지 대요인지 잠시 고민하다가...에라 모르겠다.TT)
근사한 단편 소설을 하나 읽은 기분입니다.^^

파란여우 2004-06-0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인은 파리까지 조심하셔야 한다니까요...아이 구찮어라. >.<
-동병상련의 파란여우-(오마나~ 왜들 째려보시죠?)ㅎㅎㅎ

sunnyside 2004-06-0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마태우스님도... 파리채 조심하세요. ^^;
진/우맘님, 왜 이러세요~ 아.. 몸둘바를 몰러, 몰러...
파란여우님, 아... 그랬구나. 어쩐지 그 파리넘이 나를 막 덮치려고 하더라구요. ㅋㅋ

sooninara 2004-06-01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빛모임에서 곤충박사님의 말씀...모기도 죽이지 않고 모기장을 치고 자면서 상생을 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자고....파리도 죽이지 않으려면 모기장을 사세요..
그리고 밤새 고통스러웠던 파리를 생각하면..파리에겐 파리약을 뿌려~~주세요...

책읽는나무 2004-06-01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유럽의 그파리인줄 알았습니다...ㅎㅎㅎ
앗!! 첫코멘트 남기네요...^^
여러서재에서 익히 님의 이름을 보아왔었는데....알라딘 관계자라는것이 영~~ 거리감이 들더군요!!.....전 왜 이리 낯가람이 심한지........ㅡ.ㅡ;;
하지만....단골서재에서 종종 이름을 뵈오니....금방 친해진듯한 기분에....그냥 안면몰수!!
글남깁니다....ㅎㅎㅎ

sunnyside 2004-06-01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말씀지당! 올 여름엔 모기 파리랑 한번 공생을 해볼까요...(하고 한번 생각을 해보지만, 영... 설레설레. -.- ^^; )
책읽는 나무님, 반갑습니다~ 저도 님의 이름 많이 뵈었어요. 볼 것 없는 서재에 들러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서재에선 그냥 알라딘 마을 주민이고만 싶은 알라딘 관계자랍니다. ^^ )

mannerist 2004-06-03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핫. 멋지게 걸려들었군요. 냐하하하~~~-_-;;;;

아... 파리나 모기 생포하는 법입니다. 비누나 중성세제로 비눗물을 만들어서 그걸 스프레이에 넣구 파리나 모기에게 발사하면 날개가 젖어서 날지 못합니다. 그냥 물엔 안되도 비눗물엔 되더군요. 어린 시절 몇 번 해 봤는데, 하고 난 다음 꼭 스프레이의 물 갈아넣으세요. 그거 잊어먹었다 아버지 옷 다리시는 어머니께 뒤지게 맞은 적 있습니다. (비눗물로 흰 와이셔츠 대려 보시면 왜 매너가 죽도록 맞았는지 아실 겝니다. ㅎㅎㅎㅎ)

sunnyside 2004-06-0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비눗물에 젖으면 못난다... 그런 파리가 어쩜 모기약에는 그렇게 펄펄 잘 날아다녔는지. -.-;
다음번에 또 날아오면 한번 시도해봐야겠어요. 그리고 물은 꼭 갈아준다! 저는 죽도록 때려줄 엄니, 아부지랑 같이 안 살아서 다행입니다. 다만 제 발등을 찍겠죠. 내가 우째 그랬을까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