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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갈래 길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2월
평점 :
이 책 <세 갈래 길>은 세 명의 각기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나이도 다르고 사는 지역도 다른 세 여성 '인도의 스미타 / 시칠리아의 줄리아 / 캐나다의 사라'가 주인공이다. ( 스미타 30살 즈음, 줄리아 20살, 사라 40살 )
이 책이 궁금했던 이유는, 누군가가 2017년 추천하는 책으로 이 책 <세 갈래 길>을 선정했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했다. 인도의 스미타 이야기가 어찌 될지 궁금했던 것도 있었고.
책의 앞 쪽에는 목차가 없다. 심지어 1, 2, 3이라는 숫자 목차조차도 없는, 시간도 없는, 조금은 불편한 책이다. ( 책을 읽고 나서야 시간적 배경을 유추할 수 있었다. 2012년 이후의 이야기이다. 줄리아 편 참고. )
이야기는 '인도의 스미타'이야기부터 시작하면서, 줄리아, 사라, 그리고 다시 스미타, 줄리아, 사라 이야기가 번갈아간다.
나로서는 (형식 면에서) 읽기 조금 불편했는데, 그냥 스미타의 이야기만 쭉~~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다 보니 저자가 왜 이런 형식을 취했는지 나름 이해가 간다. ( 아마도 작가가 영화감독이어서 영화의 장면 같은 효과를 넣은 듯싶기도 하다. 또한 이들 3명의 여성이 씨줄, 날줄로 연결되어 있다. )
이들 세 여성은 3명이지만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인도는 카스트 제도라는 철저한 신분제도가 있는 사회이다. 이제껏 '수드라'가 가장 천민인 줄 알았는데, '스미타'는 그보다도 낮은 '달리트'라고 한다.
ㅡ 스미타는 달리트다. 카스트의 최하위인 수드라보다도 못한 존재, 노예 취급도 받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이다. 달리트는 너무 부정해서 사람들과 섞일 수 없다고 했다. 더러운 오물이어서, 낱알에서 독보리를 솎아 내듯 철저히 분리해야 하다고 했다. 간디도 불가촉천민을 하리잔, 즉 신의 자식들이라고 불렀다. 신의 뜻대로 카스트의 바깥, 사회 바깥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1955년 불가촉천민 차별 금지법이 제정되었지만 수억 명의 달리트는 여전히 모든 것의 바깥으로 밀려나 인간의 변두리에서 살아간다. ( 10~11쪽, 인도의 스미타 )
책을 읽다가 '카스트 제도'에 대해 궁금해 잠시 알아보았다.
'수드라'는 카스트 제도안에 속한 계급(?)이지만, 불가촉천민은 '만져서는 안되는 untouchable 더러운 오물'로 인식되며, 카스트 제도 바깥에 존재한다고 한다.
ㅡ 스미타가 종일 하는 일은 타인이 싼 똥을 맨손으로 긁어모으는 것이다. 여섯 살, 그가 지금 랄리타의 나이일 때 어머니는 당신의 일터에 처음으로 딸을 데려갔다.
"잘 봐둬. 이게 나중에 네가 할 일이야."
( 12쪽 )
스미타가 6살일 때 처음으로 그녀는 '어머니의 일터'에 가서 그 '끔찍한 냄새, 타인의 똥 냄새'를 맡았던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이다. 그 일이 앞으로 자신이 평생 해야 할 일임을.
'달리트 여자들'이 매일 하는 '일'은 바로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 자기 집 마당이나 집안 한쪽 구석에 만든 "건식 화장실"'의 똥을 맨손으로 치우는 것이다. 세상에. 맙소사.
사실상, 똥이라는 것은 내 속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치우기 쉽지 않다. 코를 막고, 고무장갑을 낀다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달리트 여자들에게는 '타인의 똥을 맨손으로 매일 치워야'하는 것이 '자신들의 일'인 것이다. (보수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로)
화장실이, "안전한 화장실의 보급"이 복지임을 이 책을 읽고서야 깨닫게 된다.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집안의 화장실. 깨끗한 지하철의 화장실. 공중화장실 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인도의 여성들이 배변을 위해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ㅡ 마을마다 여자들은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려야만 한다. 어두워져야 밭으로 가서 용변을 보는데, 완력으로 덮치는 자들을 포함하여 매번 갖가지 위험에 노출된다. (14쪽)
책 속에는 여러 가지 불평등한 고난을 일상적으로 겪는 달리트의 이야기가 나온다. '신발을 신어서는 안되고 / 몸에 까마귀 깃털을 붙여서 표시해야 하고 / 사람들과 접촉해서도 안되고 / 쳐다보아서도 안되고'. 안되는 것만 한가득이다.
스미타는 자신의 딸 '랄리타'를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남편 나가라잔을 설득한다. 천만 다행히도 남편 나가라잔은 스미타의 부친 같은 남자가 아니었다. ( 단순히 때리지 않고 욕설하지 않는 남편을 가졌다고 해서, '스미타는 운이 좋은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의 의식수준이다. )
ㅡ 아버지는 걸핏하면 화를 내고 폭력을 쓰는 사람이었다. 이 마을 남자들 모두가 그렇듯이 화를 내고 폭력을 쓰는 사람이었다.
.... 그는 어머니를 자기의 소유물, 노예로 취급했다. 어머니와 암소가 동시에 물에 빠졌다면 그는 암소를 구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스미타는 운이 좋은 여자다. 나가라잔은 그를 때린 적이 없으니까. 욕설을 한 적도 없으니까. 랄리타가 태어났을 때도 나가라잔은 랄리타를 계속 키우자는데 반대하지 않았다. 근방 어느 마을에서는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죽이기도 한다. ( 17~18쪽, 인도 스미타 )
스미타는 6살부터 '똥을 맨손으로 치우는 일'을 했고, 그녀의 남편 나가라잔은 8살 때부터 '맨손으로 쥐를 잡는 일'을 했다. 스미타가 어머니에게서 '일을 물려받았듯이', 나가라잔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일을 배웠고 물려받았던' 것이다.
카스트 제도. "직업과 신분의 대물림".
스미타와 나가라잔의 딸 랄리타는 어머니 스미타의 직업(?!)을 물려받을 것이고, 그들 사이에 아들이 태어난다면 아마도 아버지 나가라잔의 직업(?!)을 물려받을 것이다.
ㅡ '떠나자.'
....
랄리타는 학교로 돌아가선 안 된다. 내 딸은 교실 바닥을 쓸라는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브라만) 선생에게 매를 맞았다. 이를 본 아이들은 대를 이어 내 딸에게 매질을 할 것이다. 대부분의 달리트가 주어진 운명을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내 딸은 안된다. 그런 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
이곳을 떠나 도시로 가야 한다고 다시 남편을 재촉했다. 도시에 가면 학교마다 달리트 몫의 자리가 있다고 했다. ( 109 ~112 쪽 )
스미타가 '뱃속의 나비의 팔랑거림'을 느끼고, 자신의 딸 랄리타가 글을 배우기를 바라며, 위험한 시골마을을 탈출하여 도시로 가고 싶어 한다. 도시에는 '달리트의 몫이 있을 거다'라는 희망을 가지고.
남편 나가라잔에게 함께 가자고 권하지만, 나가라잔은 현생이 아닌 후생, 환생을 기대할 뿐이다. 신전의 '신성한 쥐'로 환생하고 싶은 나가라잔과, 후생이 아닌 현재의 삶이 더 중요해진 스미타.
시골마을을 탈출하는 것은 무척이나,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ㅡ 이웃 달리트 가족의 딸이 마을에서 도망쳤다. 공부를 하기 위해 도시로 가려고 했다. 자트들이 들판을 가로질러 추적한 끝에 여자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밭고랑으로 끌고 가서 이틀 동안 여덟 명이 돌아가며 강간했다.
...
달리트의 아내와 아이들은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집까지 빼앗겼다.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쫓겨나와 길가 도랑에서 죽었다. (113~114쪽)
세상에. 맙소사. 결국 쫓아낼 것을 왜 굳이 '들판을 가로질러 추적'했다는 말인가.
자트 계급이 수드라 계급 바로 위 단계라고 한다. 카스트제도로 보면 하위계층에 속하는데, 시골마을에서는 굉장한 세력을 가지나 보다. 불가촉천민에 속하는 달리트들을 향한 자트의 횡포는 어마 무시할 정도다.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공부하기 위해 도시로 떠나는 달리트의 딸"을 추적해서 괴롭힐 정도라니, 그야말로 강도가 아닌가.
그 위험한 여정을 스미타는 6살 된 딸 랄리타와 함께 나선다. 2000 km를 가야 하는 길. 언제 목숨을 험악한 방식으로 빼앗길지 모르는 위험한 길.
스미타의 이야기는 슬프고 기쁘고 두렵고 희망차다. 그리고 열려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스미타가 딸 랄리타와 무사히 도시에 도착할지, 도착해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지 모른다. 스미타의 이야기는 도시 도착과 정착이 아니라, 중간 하차역인 '티루파티 사원'에서 끝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스미타 / 줄리아 / 사라의 연관성을, 연결을, 하나로 이어짐을 맨 마지막 편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지방에서 공방을 가업으로 하던 줄리아. 이제는 시칠리아 지방에서 구하기 어려워진 머리카락. 카밀의 도움으로 인도에서 머리카락을 수입하여 1차 재료로 사용하고, 근사한 가발이 완성된다.
캐나다에서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던 사라. 암에 걸려 사회적 자아를 매몰당할뻔한 사라.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카락이 점차 사라지고, 자존감이 사라지던 사라. 그러나 사라는 자신에게 꼭 맞는 멋진 가발을 만나게 된다.
'뱃속 나비'로 세 명의 여성이 연결되고, '머리카락'을 통해 세 명의 여성이 연결된다. 이 책은 세 명의 여성이 주인공이지만, 단순히 여성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카슈미르 지역의 분쟁으로 인해 이탈리아로 온 '시크교도, 터번을 쓴 남자, 카밀'이 '인도 힌두교 사원의 머리카락'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으며, '힌디어'를 할 줄 알기 때문이다. 카밀은 세력이 약한(?) 시크교도이며, 이민자이며, 이방인이다.
이 책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이며, 편견과 따돌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쟁취하는 이야기이다.
무척이나 매혹적인 이야기였으며, 정말로 영화 속의 하나의 씬을 본듯하다.
아쉬움이 있다면, 스미타의 열린 결말 부분이다. 스미타가 랄리타와 행복한 결말을 '현재의 삶에서도' 쟁취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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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한 서평은 블로그 참고 : http://xena03.blog.me/221182461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