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스물이었을 때 
아버지 사십대 후반이었으니
나는 참 젊은 아비를 가졌었다.

많이 미워했고 싸웠고 늘 패배했었다. 
강했다. 
모든 것이 나보다 더 강했다.

내 나이 서른이 훌쩍 넘었지만 그때의 내 아비만한 강적을 만나지 못한다. 

나와 닮은 얼굴을 가졌던 그 사내의 위엄과 권위와 힘을 가진 적수를 아직 만나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강적은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어른이니까. 

그래서  고맙다.

내 어린 날 결코 이길 수 없었던 강적이 되어주어서 고맙다. 

그러니 부디 건강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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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인터뷰

지 _ 〈인문정신을 다시 생각하며〉(《기획회의》 313호, 2012. 2. 5)라는 글에서 “인문정신은 자신만의 제스처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요, 지금의 인문정신의 핵심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강 _ 김수영의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시가 있어요. 팽이를 보면서 김수영이 깨달은 게 있어요. 돌고 있는 팽이는 모두 자기만의 중심을 가지고 돌잖아요. 그런데 팽이 하나가 다른 팽이의 회전 스타일을 따라서 돌다 보면 서로 부딪치게 돼요. 팽이 두 개가 돌다가 부딪치면 어떻게 되겠어요? 둘 중 하나가 넘어지거나 둘 다 넘어지잖아요. 독재나 자본주의란 것은 거대한 팽이 놈이 자기를 중심으로 똑같이 돌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똑같이 돌다 보면 결국 다 넘어지죠. 자본주의라는 것이 왜 나쁘냐 하면 자본이란 힘으로 모든 사람을 다 똑같이 돌게 하거든요.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 제스처로 못 살죠. 자기 스타일대로 ...살아가려면 싸우기도 해야 하고 고통도 많이 생길 텐데, 그걸 감당해야겠죠.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돌면 독재자가 안 생겨요. 민주주의라는 것은 제도의 문제 이전에 개개인이 어떻게 주인으로 서느냐의 문제예요. 나 스스로가 주인이 안 되면 노예가 되어 주인을 찾게 된다고요. 그래서 제가 ‘멘토’를 비판하는 거예요. 좌우지간 스스로 돌아야 해요.
강 _ 인문정신이라는 것은 고유명사예요. 사람마다 자기 이름에 걸맞은 스스로의 스타일이 있다는 거죠. 강의할 때 이 얘기를 많이 해요. 올해 핀 벚꽃이 작년에 핀 벚꽃이 아니고 내년에 필 벚꽃이 아니라고요. 사람도 ‘사람은 다 똑같아’ 이렇게 생각하면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죠. 나는 나다, 나는 십 년 전에도 없었고, 천 년 전에도 없었고, 천 년 뒤에도 없을 거라는 걸 알면 자기 삶을 살아야 하거든요. 그게 인문정신이에요. 고유명사를 되찾는 것,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안 하려고 하는 것. 사람은 다 달라요. 예술가나 영화감독, 자기 작품 만드는 사람은 생각이 다 다르잖아요. 무조건 자기 스타일대로 살면 다 새로워요. 그래서 새로운 작품이 나오는 거예요. 앞사람을 표절하면 안 된다는 덕목도 그래서 나오는 거예요. 흉내 내면 안 돼요. 그게 글이든 영화든 삶의 스타일이든. 형이 결혼했다고 자기도 결혼해? 촌스러운 거죠.(웃음)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당당한 애정, 하나밖에 없다는 소중함을 가지면 자본이든 권력이든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아요. 자긍심이 있어야 해요. 자유정신만이 자긍심을 가져요. 누가 나를 죽인다 해도 ‘땡큐’인 거죠. ‘내가 무서운가 보다. 내가 당당하게 사는데 내가 죽는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야’ 이런 정신이죠.
김어준 같은 경우 사인해줄 때 이름 쓰고 “쫄지 마 씨바”라고 쓰잖아요. 그 말이 실은 자유정신이에요. 그것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김어준을 높이 평가해요. 처음 딱 만났을 때 이런 사람 참 드문데 싶었어요. 자기만의 얘기를 하는 사람이 드물거든요. 김어준이 사람들한테 쫄지 말라고 하는 얘기는 김어준을 따르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따라 하는 것도 김어준에 대한 배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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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인사(人事)라는 
말이 "사람인/일사"라는데

어제
집 앞 편의점 청년의 그것은 
참 바르렀다.

계산을 마치며 나오는 
등 뒤로 들리는 인사는 
언제나 "또 오세요"였다.

아마 알바 교육 메뉴얼에 쓰여 있을게다. 

번역하면, "또 팔아주세요."

그런데 이십대 초중반 되었을듯한
그 친구가 어제 새벽에는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며 인사를 했다.

처음이다.

혼자 마신 소주 냄새가 독해서였는지
살짝 비틀거렸을지 모를 
내 걸음 때문인지

나는 모른다. 

건방진 자식.
어디 함부로 누구한테.

이렇게 툴툴거리며
집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집에 가기 전
그 친구에게 담배 한 갑 사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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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우리는 앞 페이지의 내용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지탱해야만 뒤에 나오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을 읽을 때 사람은 정신의 팽팽한 탄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정신의 팽팽한 탄력을 밀고 가는 힘. 이 지탱력이야말로 사람이 오직 책읽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것의 다른 이름이 바로 '지성(知性)'이 아닐까요."

예전에 옮겨적었던 글이다.

몇해 전, 꽤 오랜시간 병원생활을 했었는데
많이 답답하긴 했어도 오랜만에 맘껏 책읽는 시간이
주어졌던 것이 참 좋았다.
밥벌이의 신성한 의무도 허락되지 않는
그런 시간이었으니까.
그때엔 정말 끙끙거리며
어려운 책들과 씨름했었는데
이후로 내 지력을 넘어서는 책을 쉽게 못 잡게 된다.

정신의 "팽팽한 탄력"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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