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
권영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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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철학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물을 때, 질문이 빈정거리며 쏘아붙이길 원하기 때문에, 대답은 공격적이어야만 한다. (중략) 그것은 모든 형태 하의 사유의 저속함을 고발하는 것 이외의 어떤 다른 용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의 원천과 목적이 무엇이든, 철학 이외에 모든 신비화에 대한 비판을 의도하는 어떤 학과가 존재하는가? "  -질 들뢰즈-

 

이상의 들뢰즈의 말처럼 철학이 모든 신비화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고 그것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이라면 권영민의 책 "철학자 아빠의 인문육아"는 육아서라기보다는 철학서이다.

유아, 그리고 이 유아를 기르는 육아는 이미 신비이자 신화이다.

특히나 첫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유아, 육아는 아마 일종의 신비 사건일 것이다.

(조금 부정적으로 보자면 한달에 수십만원하는 영어 유치원를 비롯한 일련의 증상(?)들을 볼 때 지금의 한국 사회는 심지어 일종의 육아병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저자는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를 불가피 몇 해에 걸쳐 혼자 양육하게 되는 초보 철학자이다.

아이라는 "절대적 대상"(절대적 약자이자 절대적 돌봄의 대상)과 만나는 철학자 아빠는 본인의 도구이자 무기인 철학으로 "육아-사태"를 헤쳐나가고 성찰해간다.

물론 이러한 육아에 대한 철학적 모색이 학위 논문을 위해서라든지, 지적 욕심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는 오히려 완전한 미지의 세계에 뛰어든 불안에 휩싸인 어느 한 인간의 몸부림에 가까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대상(자식)을 홀로 지키고 양육해야 한다는 아버지로서의 불안과 절박함이 "육아-사태"의 실체를 밝히는 철학적 여정으로 저자를 인도한다.

 

아이의 폭력성, 말 배우기, 층간 소음,  스트레스로 인한 틱장애 등등...  저자는 말 그대로 육아를 온몸으로 경험한다. 이 뜨겁고 압도적인 사건들을 헤쳐나가며 저자는 반성한다 그리고 철학한다.

 

예를 들어 아이의 장난감에 대한 생각이 그러하다.

레디메이드(ready-made) 장난감 이전에 레디메이드 규칙이 있다. 레디메이드 규칙에 따라 아이들은 자본주의 기업의 키즈(kids)로 자라게 되며, 자본가라는 꿈을 갖게된다.(중략)

예를 들어 '이 장남감을 갖는다면, 나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처럼 멋있게 될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 기업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인과 규칙이다.(중략)

내가 어떤 것을 소유해야 하는 까닭(규칙)이 사회나 타인의 요구에 의한 것인가, 혹은 자기 자신의 진정한 필요와 독자적 리듬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에 대해서 아이가 판단할 수 있도록 성장해야 자본주의 사회와 기업의 노예가 아닌 자유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 비로소 자유로운 사람이다.(중략)

아이야. 누군가가 정해 놓은 규칙의 노예가 되지 말고 창제자가 되어라.

규범을 깨고 권위를 비웃어라. 아빠가 아직은 좁지만 기꺼이 그 공간이 되어 주마.

 p58-61

또한 아이의 시간 의식의 확장을 목격하며 느낀 점도 흥미롭다.

나는 내 아이가 보다 넓은 지금을 살아가는 아이로 자라났으면 한다. 이것은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순간의 유혹을 참고 이겨 더 큰 보상을 받으라는 식의 바람이 아니다. 매우 잘 준비된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처음과 끝이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며 모든 순간의 음들이 시작과 끝을 향하고 의식한 것이듯, 아이가 자기 삶의 시작과 끝을 두고 자신을 검토하고 반성할 중 알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p209-210

 

이처럼 육아를 통해 저자는 언어, 놀이, 시간, 상처 등등 인간 일반의 문제를 그 "근본"부터 되짚어본다. 

(아이란 백지의 존재이므로 말 그대로 근본부터 고민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점 아마 향후 저자의 다음 철학 작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아이를 가진 부모에게 최우선의 관심사는 아이일 것이고, 그들에게 가장 절박한 사태는 육아일 것이다.

이 절박하고 절대적 사태 앞에서의 고민은 어떤 고민보다 깊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좋은 철학 작품의 기본 전제는 고민의 절박성과 깊이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철학자 아빠의 육아-철학은 결코 어느 프로 철학자의 고민과 사색의 결과물들과 비교해도 아쉽지가 않다.

 

p.s.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다시 "육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봤다. 나의 언어, 나의 시간, 나의 놀이, 나의 상처, 나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며, 나를 잘 키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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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4-03-25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한 미지의 세계에 뛰어든 불안에 휩싸인 어느 한 인간의 몸부림"이라니... 절박하게 와닿는다 권선생님이 고생이 참 많으셨구나 하하

숭군 2014-03-25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고생이 많았더랬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