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인간들이 사라져 간다. 얼마 남지 않았다. 아침 태양에 증발하는 풀잎 위의 이슬들 마냥 그렇게 다들 어디론지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새벽 시절에는 모두 촉촉하고 재미있었다.

함께 술을 진탕 마시고 그 가운데 한 녀석 학교로 달려들어가 교정에 서 있는 티코를 들어보리라 몇 놈이어서 낑낑거리다 포기하고 그도 안되니 학교 나무라도 뽑아야겠다고 객기부리다 지쳐 나동그라졌던 그 시간.

지방으로 대학 간 여자친구가 바람이 났다고 당장 달려가 상대편 남자 놈을 때려죽이겠다며 씩씩대던 놈의 허리띠 붙잡고 뜯어말렸던 그 시간.

송년회 날 함께 둘러앉아 각자가 뽑은 시 한 편씩 읽으며 한 해를 마무리했던 그 시간.

밴드 한답시고 어깨에 커다란 베이스 기타를 둘러업고 막걸리 몇 통을 사 들고 노래방으로 진입하다 술은 못 들고 들어온다는 사장님께 "동종업계인데 한 번만 부탁해요"라며 허락받고 목청 터져라 노래불렀던 그 시간.

뭐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밤새 암실에 처박혀 있다가 해 뜨고 집 가는 길에 치킨에 맥주 한잔 하며 사진이 뭐니 하며 미술이 뭐니 하며 예술가가 된 양 함께 떠들었던 그 시간.

이제 그처럼 재미있던 시간들이 성층권의 공기만큼이나 희박해져 버렸다.

새벽녘 풀잎 위에서 빛나던 그 많던 이슬들은 자기만의 태양이 떠오르고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너무 밝지 않았던 그 시간, 어스름히 그저 막연한 빛 떠오르던 그 시간.

그때는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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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6-01-05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다! ^^

숭군 2016-01-05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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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읽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

얼마 전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불쑥 현대예술에 대한 친구 나름의 정의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늘 그렇듯 친구는 명료한 방식으로 현대 예술의 범주와 특징들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서는 "그러나 그런 제도화된 공식에 맞춰서 예술을 하는 것은 일류가 아니다. 결국 최고의 예술은 작가 고유의 문제에 대한 치열한 천착에서 나온다"는 말도 잊지 않고 해주었다.

<읽는 인간>은 오에 겐자부로 자신의 글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은 내가 그의 문학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 짧은 강연록을 통해 그가 왜 글을 읽고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자세로 읽기와 쓰기를 해왔는지에 대한 어렴풋한 윤곽을 그려보는 시도는 가능했다.

“괴로울 때는 주로 책을 읽습니다. 우선은 생활을 해나가야 하기에 소설을 씁니다. 어떻게 쓸 것인가? 읽고 있는 책을 실마리 삼아 내 생활을 쓴다, 아이를 중심으로 쓴다, 라는 식으로 써왔어요. p95”

오에 겐자부로에게는 뇌에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다. 눈물샘에 이상이 있어 눈물도 흘리지 못하며 한밤중에 소리 내어 우는 아이 옆에서 그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어 가운데 슬픔을 나타내는 단어들을 읊조리며 그 고통을 견뎌낸다.

“윌리엄 블레이크라는 시인의 시를 쭉 읽어오면서, 제 인생의 문제, 그것도 몇 년 동안이나 이어져 온 중요한 문제를 소설로 쓰고 마무리 지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소설을 쓰면서 문제점을 해결해왔습니다. p110”

또한 그가 고교시절 만난 이후 자신의 반쪽이었다 추억하며 생애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운 사람이었다 고백했던 친구, 동시에 아내의 오빠였던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의 자살로 인한 상실과 아픔 역시 그는 글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통해 버티고 삼키어낸다.

그는 문학과 시를 진통제 삼아 삶의 고통을 견뎌냈고, 그렇게 삶 속으로 겹겹이 접혀진 아픔과 견딤은 작품이라는 방식으로 다시 펼쳐졌다.

그렇게 오에 겐자부로에게는 읽기와 쓰기는 구원이었을 것이다.

로맹가리의 역시 자신의 삶과 문학의 의미는 어머니의 헌신적 사랑에서 찾은 여성성의 구현이라 밝힌 바 있다.

자기 문제를 향한 정직한 대면과 치열한 투쟁, 그리고 이를 통한 자아와 세계 이해의 확장. 이것이 좋은 작업의 전부라 할 수는 없겠느나 본질적 조건 중에 하나임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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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의미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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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여성입니다. 주의하세요, 여자들이 아니라 여성, 여성성 말입니다. 여성들, 여성을 향한 사랑이야말로 내 삶의 큰 동기이자 큰 기쁨이었습니다.” …… 


“나의 모든 책, 내가 어머니의 이미지에서 출발해 쓴 그 모든 것에 영감을 준 것은 여성성, 여성성에 대한 나의 열정입니다. 그래서 간혹 페미니스트들과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내가 세상 최초의 여성적 목소리, 여성의 목소리로 말한 최초의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였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다정함, 연민, 사랑 등은 여성적 가치들이지요. 이런 가치들을 최초로 얘기한 사람은 예수라는 남성입니다.” …… 


“사실 사람들은 나 같은 불가지론자가 예수라는 인물에 그토록 집착한다는 사실에 항상 놀라곤 했지요. 내가 예수에게서, 그리스도에게서, 기독교에서 보는 것은 여성의 목소리입니다.” …… 


“만약 내 책들이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 거의 언제나 여성성을 향한 사랑을 얘기하는 책이라는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 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살면서 내가 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나의 모든 책 속에, 내가 쓴 모든 글 속에 이 여성성을 향한 열정을 끌어들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언제나 나는-예술적인 목적이 아니고는 교회에 발을 들여본 적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치고는 참으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은 예수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이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 말이 여성성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내게는 여성성의 구현 그 자체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


“나는 그저 훗날 사람들이 로맹 가리에 대해 말할 때 여성성의 가치가 아닌 다른 가치를 말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로맹 가리가 죽기 몇 달 전 남긴 유언과 같은 고백이다. 그의 삶 전반의 궤적을 회고하며 마지막 장에서는 자신이 한 평생 문학을 통해 이루려 했던 것,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힌다. 그가 말하는 여성성의 문학적 구현에의 열정은 젊은 나이에 홀로 된 채로 아들을 위해 한 평생 헌신했던, 심지어 전장에 있는 아들을 위해 자신의 죽음마저 숨기고 200여 통의 편지를 지인에게 부탁해 죽음 이후에도 3년이 넘도록 아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어 “탯줄이 계속 작동하게 해두었던” 그의 어머니가 보여준 사랑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왜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가 로자 아줌마의 곁을 끝내 떠날 수 없었는지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로맹 가리는 어린 모모를 통해라도 자신의 못다 했던 몫을 끝내 이루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신선한 형식과 내용으로 이목을 끄는 문학이나 예술 작품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들은 언제나 그 속에 인간에 대한 뜨거운 그 무엇을 담고 있다. 그것이 결여된 작품은 울림이 없다. 
 
모모의 마지막 말이다.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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