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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뉴미디어 시대의 청소년 문학



특별히 부연설명을 달지 않는다면 위의 말을 누가, 언제 한 것인지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기원전 5세기 경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이 말은 세대갈등이 존재하는 한 수없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갈등이 사회의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세대 갈등이 표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절차적 민주화가 일정한 궤도에 오른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었다. 세대갈등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그간 이런 문제에 눈 돌릴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갈등들 - 냉전체제와 분단, 군사독재와 민주화, 사회적 부의 평등한 재분배 - 이 우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태지로 상징되는 신세대담론은 소크라테스 이래 반복되어 온 지금까지의 세대갈등론과 질적으로 전혀 다른 요소들을 품고 있다. 전통사회에서 소년이 성인식이란 짤막한 의식을 통해 청년이 되었던 것과 달리 산업사회 이후 소년 ․ 소녀들은 청소년이란 예비기간을 거쳐 성인이 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의 청소년들은 과거 전통사회 혹은 산업사회의 부모 세대가 보냈던 청소년기와 완전히 다른 환경, 뉴미디어 시대의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 밀란 쿤데라 식으로 말하면 부모 세대가 문자와 텍스트라는 아날로그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사고와 논리체계가 형성된 반면, 자식 세대인 청소년들은 이와 전혀 다른 이미지(image)와 하이퍼텍스트에 의한 디지털 이마골로기(imagologie)1)에 의한다는 것이다.

현재 부모세대의 주류를 이루는 이른바 386세대들 역시 나름대로는 대중매체를 접하며 성장해온 미디어(media) 세대이다. 그러나 이들이 성장하며 주로 접한 대중 매체는 TV와 라디오, 신문과 잡지 같은 올드미디어로, 오늘날 청소년들이 즐기는 주류 미디어인 뉴미디어와는 성격이 다르다. 신문, 방송, 영화, 음반, 책과 같은 올드미디어는 매체별로 정해진 영역에서, 정해진 형태와 내용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올드미디어는 매체를 장악한 생산자(자본 또는 창작자)에 의해 주도되는 수직적 체계다. 그에 비해 뉴미디어 혹은 멀티미디어는 디지털 혁명에 의해 출현한 새로운 개념으로 콘텐트는 매체와 분리되어 수용자에 의해 수평적으로 수용된다. 과거 하나의 매체는 하나의 콘텐트를 가졌으나 뉴미디어는 수없이 분할되고 통합되는 다중의 콘텐트를 가진다. 이와 같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산업적인 차원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사고방식 자체를 변화시킨다. 오늘날 뉴미디어는 급속도로 성장해 올드미디어를 앞지르기 시작2)했다.

정전 해체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청소년 문학

뉴미디어의 출현으로 가장 오래된 미디어의 형태인 책의 종말을 예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책이라는 고정된 형태를 고수해온 문학이 위기를 맞이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이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고민은 청소년문학의 새로운 출구를 열고, 소통을 희망하는 잡지를 표방하며 창간한 『청소년문학』 편집위원회의 창간호 머리말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책이 많지 않았던 시대, 책 한 권을 읽더라도 되풀이해 읽으며 안목을 길렀던 부모 세대는 누구보다 청소년들과 소통하길 희망한다. 그들은 <선데이서울>을 읽었던 기억도 있고, 나름대로 판단 기준이 있었기에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아마도 부모세대에 속할 편집위원회의 이와 같은 고백에는 수용자의 선택을 존중하려는 열린 자세와 더불어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존경이 담겨 있을 것이다. 청소년의 선택에 대해 열린 자세를 보인다는 것은 이전 세대들이 청소년문화 혹은 청소년문학에 대해 지니고 있었던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그래서 억압적이고, 권위적이었던 태도와 비교된다.

정전(正典, canon)이란 한 문화권이 위대하다고 동의하거나 간주하고 있는 작품들의 총합을 의미한다. 이와 흡사한 의미에서 고전(classics)이란 말이 있지만 고전이 다소 주관적인 의미라면 정전이란 좀더 객관적인 용어로 쓰인다는 차이가 있다. 그런 점에서 교과서에 수록되는 문학작품은 공식화된 정전에 속하는 셈이다. 연령적으로 386세대에 속하는 부모세대가 최근 자녀세대의 문학교과서를 들춰보면 여러모로 깜짝 놀랄 만한 작품들이 수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서라면 읽는 것조차 금지되었던 작품들3)이 버젓이 수록4)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변화의 조짐 속에 새 문학교과서에는 학생이나 비전문가들의 작품이 수록되기 시작했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 문학교육의 정전 역할을 해온 교과서의 이런 변화는 물론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해체 못지않게 중요한 변화의 핵심에 정보소통 매체의 변화가 있다. 문자언어가 전문 지식인 중심의 문화를 유발했다면 영상매체와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한 시청각언어는 기존문화의 분류를 지배하던 ‘고급’과 ‘대중’의 이분법을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동안 문학이 누려온 권위는 인쇄된 문학작품은 수정할 수 없는 것이라는 속성에 기인한다. 텍스트의 불변이라는 속성은 작가를 독자와 구분되는 존재로 만들었다. 인쇄기술이 등장하기 전, 모두가 손으로 글을 쓸 때는 작가와 독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독자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다가 자신도 글을 씀으로써 손쉽게 저자가 될 수 있었다5) . 네트워킹 할 수 있는 컴퓨터의 출현, 인터넷 공간의 글쓰기는 새로운 글쓰기 공간을 만들어냈고, 뉴미디어에 익숙한 청소년들은 더 이상 독자의 위치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작가가 되었다.

새로운 작가들의 선택 : 판타지 문학과 인터넷로맨스소설

『청소년문학』 창간호에 수록된 서미선의 「교육현장에서 보는 청소년 문학의 위치」에도 잘 드러나고 있지만 요사이 청소년들이 주로 읽는 문학작품들은 입시를 위한 것이 아니면 대개 판타지, 인터넷로맨스로 분류되는 것들이다. 이 글을 위해 학교도서관에서 독서 지도교사를 맡고 있는 현직 교사 두 분과 지역 도서관의 사서 한 분에게 요사이 청소년들이 즐겨 읽는 도서목록을 문의해보았다. 결과는 교육현장에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듯 판타지와 로맨스소설, 그리고 만화로 압축되었다. 학교와 지역 도서관에서 중․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대출한 문학작품들을 유형별로 분류해보면 국내작가들이 PC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발표하고, 이후 출판의 형식을 거친 판타지소설과 인터넷로맨스소설이었다. 본격문학에 속한다 할 수 있는 외국작가들의 작품 역시 주종은 판타지이거나 추리적인 요소를 도입한 소설들이다.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국내작가들의 작품으로는 1993년 여름, 하이텔에 연재되면서 통신문학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 된 이우혁의 『퇴마록』이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역시 PC 통신과 밀접한 관련 속에 출간된 이경영의 『가즈나이트』, 『이노센트』는 PC통신과 출판 시장 양쪽에서 화제에 오르며 45만부를 판매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상혁의 『데로드 & 데블랑』, 퓨전 판타지를 표방한 전동조의 『묵향』, 탁목조의 『내가족 정령들』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요사이 청소년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작가는 이른바 ‘네크로맨서(대마법사)'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의 인기를 얻은 이영도이다. 이영도는 PC통신에 6개월간 인기리에 연재된 그의 첫 번째 판타지소설 『드래곤 라자』6)를 통해 한국형 판타지의 바람을 불어왔다.

출판시장에서 하이틴 로맨스의 대명사였던 “할리퀸문고”를 대체하는 인터넷로맨스소설이 등장한 것은 판타지물의 출현보다 다소 늦은 2000년대 초엽의 일이었다. 인터넷로맨스소설의 대명사는 ‘귀여니’란 필명으로 잘 알려진 이윤세다. 이윤세는 2002년 『늑대의 유혹』을 시작으로, 2003년 자신의 대표작이기도 한 『그놈은 멋있었다』를 인터넷에 연재하면서 조회수 800만을 기록했다. 이 소설은 판매부수 50만을 기록하며, 2004년 영화화되었고, 중국어로 번역된 작품은 5개월간 판매부수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귀여니를 비롯해 통신어체와 이모티콘을 그대로 살린 소설 『나는 그놈이 전부였다』의 작가 역시 본명보다 ‘러브리걸’이라는 인터넷 닉네임이 더 유명하다. 이외에도 ‘앙마천사’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난 꼬맹이가 아니야』를 발표한 최승지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작가군에 속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문자보다 영상에 익숙한 신세대적 감수성을 소설에 반영하고, 청소년들이 지닌 소망과 환상을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이것이 10대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관심에 힘입어 출판시장에 진입한다는 도식을 만들어냈다. 출판사들 역시 처음 기획 단계부터 청소년들의 감성에 부합하는 일러스트들을 삽입하며 팬시화된 상품으로 만들어냈다.

이외에도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외국작가 목록은 성인들의 베스트셀러 기호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추리적인 기법을 소설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상․하), 『나무』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2004년 한 해 최고의 인기작이었던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그것이다. 이 작품들이 추리적인 요소로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끌었다면, 우리 시대의 스테디셀러인 미하엘 엔데의 『모모』,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너무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 없는 조앤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는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에게도 사랑받는 외국 판타지 소설이다. 이와 같이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국내 ․ 외 작품들의 공통점은 첫째, 판타지, 추리적인 재미가 이야기 구조와 적절하게 배합되었다. 둘째, 이들 작품의 상당수가 영화나 게임 등의 콘텐트가 된 것에서 알 수 있듯 뉴미디어세대의 감성코드를 가지고 있다. 셋째. 독자를 압도하는 상상력 혹은 이미 친숙해진 이야기 구조를 통해 이해하기 쉽게 와 닿는다는 것이다.

맺음말을 대신하여 - 청소년, 창조와 수용의 변화를 이끄는 세력

오늘날 문학의 위기는 처음 문학이 탄생하던 시대의 변화가 그러했듯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일어나고 있다. 위기의 한 가운데 전통적 미디어의 해체와 뉴미디어의 출현이라는 변화된 조건이 자리하고 있다. 뉴미디어가 생산하는 디지털 텍스트들은 책은 물론 책을 주요 매개로 하는 문학의 위상을 크게 바꾸어 놓고 있으며 그와 같은 위상 변화의 한 가운데 창조자이자 수용자로서 청소년이 자리한다. 뉴미디어는 작가와 독자의 체계를 흔들어놓았고, 반위계적이고 유동적인 텍스트의 적극적 독자이자 작가인 청소년들은 더 이상 작가의 권위를 인정하거나 굴복하지 않는다. 이들은 ‘팬픽’의 형태를 빌어 작가와 작품의 적극적인 옹호자로서, 인터랙티브(interactive)한 형태로 창작(과 동시에 수용)활동에 참여(개입)한다. 그렇다고 청소년들이 무비판적인 일방적인 수용자는 아니다. 지난 2005년 12월 귀여니의 첫 시집 『아프리카』는 작품의 수준부터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다가 급기야는 표절 논란으로 이어졌고 청소년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비판7)을 가했다. 이와 같이 청소년들은 그들 자신이 사랑하는 문화와 문학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자이자 동시에 저항적 즐거움의 해석자이다.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면 뉴미디어시대의 청소년문학이 인터넷 로맨스와 판타지물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를 초월해 청소년들에게 사랑받는 청소년문학의 고전인 『모모』, J.D.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로버트 코마이어의 『초콜릿 전쟁』 등이 있고,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작품들도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야마나카 히사시의 『내가 나인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가족의 일원으로 여전히 사랑과 동시에 억압의 대상이 되는 청소년들이 가족 사이에서 겪게 되는 치열한 갈등을 담고 있다. 한국 작가로 이금이의 『유진과 유진』은 어린 시절 성추행의 경험을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청소년 특유의 낙천적인 감성으로 풀어가며 치유하는 과정을 담아 청소년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자아냈다. 이경혜의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 역시 이제 막 삶과 죽음의 교차점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청소년의 의식을 작품 속에 심도 있게 반영하여 호응을 얻었다. 이와 같이 현재 청소년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품들은 창작 주체의 전문성이나 수준을 떠나 때로는 반면교사로, 때로는 그 자체로 우리 시대의 청소년문학이 나갈 방향을 제시해준다. 지난 2005년 제4회 청소년문학상 수상자였던 장은희(안양예고 2), 염윤아(대원여고 3) 두 학생은 “인터넷문학에는 문학의 육체인 언어 즉 문장에 대한 고민이 없으며, 문장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것은 삶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어 동의할 수 없다”8)고 말한다.

누구나 꿈을 꾸는 것 같지만, 꿈을 키우는 데에도 일정한 능력이 요구된다. 전통사회에서 그런 능력은 대개 일상의 경험 속에서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현실과 사회적 조건들은 청소년들에게 꿈꿀 능력과 문화실천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오늘날 청소년들이 인터넷 판타지나 로맨스소설에 몰입하는 까닭을 반드시 뉴미디어의 출현이라는 외부적 환경 변화로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인터넷 인구 2,627만 명 가운데 13세 이상 십대들의 인터넷 사용 비율이 전체 74.1퍼센트에 이르고 있는 현실은 이들이 기성세대가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와 문화를 경험하고,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려준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실의 고독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판타지와 로맨스가 제공하는 잠시의 일탈은 달콤한 유혹이자 위안이다. 청소년들은 어째서 교과서에 수록된 정전이나 여러 단체들이 엄선한 추천도서목록을 거부하는 것일까? 그것은 기존의 작가들이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청소년들을 ‘청소년’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으로만 호명하는 안이한 창작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성별, 지역별, 계층별로 다양하게 분화된 청소년들의 정체성과 삶과 죽음, 영혼과 육체를 초월하는 변화무쌍한 상상력과 삶의 조건들을 이해하기보다 “자신도 한때는 청소년이었다.”9)는 복고적이고, 자기위안적인 작품을 생산하는 동안 청소년들이 청소년문학에서 자신의 꿈과 현실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오류는 오로지 방황을 통해서만 치유된다.”고 말한다. 오늘의 청소년문학은 그들이 처한 ‘새로운 현실’과 ‘오래된 고통’ 사이의 오류를 이해하고, 방황에 공감해주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에게 사랑받는 문학은 그것이 고전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오늘의, 그리고 미래의 문학이다.

글: 전성원(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출처 : 계간 <청소년문학>, 200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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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밀란 쿤데라, 김병욱 옮김(1995), 『불멸』, 청년사, 148~153쪽.- 이마골로기는 이미지가 곧 이데올로기인 시대를 상징하는 말로, 밀란 쿤데라는 소설에서 마르크스의 유산 전체가 논리적 사상체계를 형성하기는커녕 단지 일련의 이미지와 암시적인 도상들로 남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2)  지난 2006년 세계야구클래식(WBC) 경기는 TV 시청자수보다 인터넷 중계를 통해 경기를 관전한 시청자수가 많았던 최초의 스포츠 중계였다. 미국전의 경우 인터넷 중계 시청자수는 160만 명으로 같은 시간 TV중계 시청자수 140만 명을 크게 앞질렀다. 이승훈, 「WBC 열풍, '야후'와 '위성DMB' 룰루랄라~」, 오마이뉴스, 2006년 3월 18일자- < target=_blank>http://economy.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17483&ar_seq=>

3) 1 7차 교육과정에 의한 문학교과서에는 과거 이념적으로 금기시되던 월(납)북문인들 오장환, 이용악, 임화, 이기영을 비롯해 권위주의 정권 아래 탄압의 대상이었던 양성우, 김남주, 박노해, 고은 등의 작품이 새롭게 수록되었고, 조정래, 황석영, 임철우, 강석경, 최일남, 현기영, 신영복 등 현대 작품들이 수록되는 변화가 있었다. - 박기범(2002), 「제7차 교육과정에 따른 문학교과서의 내용분석연구」, 한국문학교육학회, 제29회 학술대회 자료집. 105쪽

4) 문학 교과서를 전범(典範)처럼 생각하던 과거에는 문학적으로 미숙한 비전문인들의 작품을 교과서에 수록할 수 없었지만, 학생 중심의 활동과 과정을 중시하는 새로운 경향에 따라 교과서에도 학생들이 직접 창작한 작품이나 인터넷 문학 동호회에 올라온 비전문인들의 작품이 실리게 되었다. 또한 오늘날 학생들이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인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나 소위 인터넷 작가라는 신주영과 임영수의 ‘소설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작품도 다뤄진다. 앞의 책. 105쪽

5) 배식한(2004), 『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 종말』, 책세상, 138~139쪽.

6)『드래곤 라자』는 머그 게임인 드래곤 라자 온라인, KBS 판타지특급을 통해 라디오극으로 만들어졌고, 머그 게임과 소설은 대만, 일본에 수출되었다. 태성출판사가 2004년 발간한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는 드래곤 라자의 끝부분이 수록되었다. 인터넷사전-위키백과 < target=_blank>http://ko.wikipedia.org> 중에서

7) 귀여니의 시집에 대해 청소년 네티즌들은 「‘우와’―‘에이’ 귀여니 첫시집 함량 논란」 기사가 실린 네이버 URL(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143&article_id=0000008466§ion_id=103&menu_id=103)에 대해 이른바 ‘성지순례(聖地巡禮)’라 해서 네티즌들이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덧글을 남기는 비판적 형태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기사에는 5만여 개의 리플이 달렸었으나 최근 네이버가 댓글을 정리했다.

8) 문예진흥원 온라인뉴스레터 56호 / 2005년 4월 18일 ~ 4월 24일
http://www.kcaf.or.kr/bodo/online_news/2005/news_0419_1.htm

9) 작중 화자들은 작가가 살았음 직한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여러 시대를 다양한 시선으로 되살려낸다. 자신도 한때는 청소년이었음을 새삼 자각한 듯한 작가들의 향수가 서려 있는 그 시선은 대부분 아련하고 애틋하다. 가난과 궁핍 속에도 따뜻한 정과 희망이 있고,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도 믿음이 있고, 극도로 혼란스러운 주위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은 올곧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 김서정(2005), 「아동문학 : 창작이 위축된 아동문학」, 『문예연감 2005』,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http://artsonline.arko.or.kr/yearbook/2005/munhak/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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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
이종태 | 한국교육연구소 소장
올봄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교육 관련 쟁점은 단연 대입정책을 둘러싼 이른바 3불정책 논란이다. 대입본고사와 고교등급제 그리고 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3불정책은 비록 정부가 명명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대입 선발과정에서 움직일 수 없는 원칙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그런데도 일부 대학의 입시관계자와 사립대 총장들이 불을 붙이고 여기에 일부 언론들이 기름 붓고 부채질을 하면서 급기야 대통령과 부총리까지 나서서 불을 끄는, 볼썽사나운 소모전이 전개되고 있다.

3불정책의 정당성과 한계, 그리고 그 대안 등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제시했기에 군더더기 의견을 덧붙이는 일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대신 3불논란의 그늘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 사실상 소모적 논란의 연료를 제공하고 있는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 문제를 거론하려고 한다.

특목고, 대학-언론-중산층의 교육카르텔

본고사 실시나 고교등급제 도입 주장의 저변에는 특목고나 비평준화 지역 명문고 출신 학생들에게 더 유리한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대학과 언론, 우리 사회 중산층 간의 무언의 카르텔이 작용하고 있다. 그들의 생각은 비교적 단순해 보인다. 특목고 학생들은 이미 치열한 경쟁의 과정을 거쳐 우수한 자질을 지니고 있음이 입증되었으므로 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대학과 사회 모두에게 유용하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차마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특목고 출신 학생들의 가정배경이 탁월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고려된다고들 한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단순 논법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타당한 논거를 가지고 있을까?

우선, 특목고란 무엇인가부터 따져보자. 특목고는 1973년 고교 평준화정책의 시행과정에서 일부 학교의 설립목적상 특수성을 인정하여 신입생의 추첨배정 대신 자체 선발권을 인정받은 학교를 가리키는 말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 특목고 제도는 해당 학교들에 대한 특혜시비로 얼마 가지 않아 폐지되고 실업계열에만 한정해 유지되었다.

일반계열 특목고의 제도화는 1980년 7․30 교육개혁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과외 금지와 대입본고사 폐지를 골자로 하는 이 조치 속에는 영재교육의 활성화가 포함되어 있었고, 이를 근거로 과학과 어학 분야의 영재를 기르기 위한 특목고 설립이 계획되었다. 이에 따라 1984년 과학고등학교가 설립되었고 이어 노골적인 중산층 선호 정책을 펼쳤던 6공화국 정부에 의해 1992년 외국어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국제고등학교는 5․31 교육개혁의 결과로 1998년에 처음 개교했다.

허울뿐인 특목고 영재교육의 실체

특목고의 형성과 팽창 과정은 두가지 요소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졌다. 우선 평준화 도입 초기부터 예외적 조치를 통해서라도 차별적인 교육기회를 만들어내려는 욕구가 강하게 있었다. 이것이 특목고 도입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동력에 형태를 부여해주는 동시에 평준화 기조를 우회할 수 있게 해준 것이 ‘영재교육’ 담론이었다.

따라서 특목고가 처음부터 가면이나 다름없던 법령상의 목적인 영재교육을 무시하고 그것의 진짜 목적인 성적 우수자 선발과 명문대학 진학에 몰두한 것은 예정된 행로였다. 당연히 특목고 학생 선발의 핵심 기준은 영재성 여부보다는 일반 교과성적이 된다. 외고의 경우 이런 문제는 특히 심한데, 왜냐하면 외고의 설립근거가 되는 ‘어학 영재’는 학문적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전형에서 중시되는 것은 경시대회와 올림피아드 입상 실적이나 토플 등의 성적이며, 이런 성적을 보증하는 것은 치열한 선행학습 아니면 조기 유학이 될 뿐이다.

교육과정 운영은 더 가관이다. 국가교육과정으로 고시된 특목고의 교육과정부터 기본구조 자체가 영재교육과는 거리가 있을뿐더러, 가르치는 교사들도 대개는 영재교육에 필요한 소양과는 무관하게 임용되거나 충원된다. 입시 위주의 편법 운영도 만연되어 있다. 외고의 경우 보통 서너가지의 외국어과를 설치하고 있지만 대체로 학생수를 확보하기 위한 방편일 뿐 주로 영어에만 목을 매고 있으며, 공식적 교육과정에 없는 국제반이나 자연계열 과목을 편성, 운영하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일반고와 같은 규모의 학급을 유지하는 외고와 달리 모두 공립인 과학고는 학급당 인원이 15명 안팎이어서 양호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현재 70% 정도의 학생들은 2학년만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고 있어 1학년의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을 빼면 정작 과학고 교육과정의 핵심인 전문과정은 절반도 이수하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는 셈이고 따라서 막대한 국민세금만 낭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편협한 교육과정 운영으로 대학에서는 과학고 출신 학생들의 인문적 소양이 너무 부족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3불 폐지? 특목고 폐지!

결국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대상이며 교육적 논란의 원인이 되고 있는 특목고의 실체는 그 법적 존재기반인 영재교육과는 사실상 무관하고, 단지 부모의 경제력과 문화적 역량을 바탕으로 교과성적에서 경쟁력을 지닌 학생들을 위한 특권적 놀이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3불정책 폐지 논란은 이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거나 한 배를 탄 사람들이 벌이는 한판 굿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우리 사회가 ‘3불 폐지’가 아니라 ‘특목고 폐지’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세가지이다. 첫째, 특목고의 존재는 교육과정에 노골적인 거짓말을 도입하고 있다. 특목고는 법령에 규정된 설립목적을 공공연하게 부정할 뿐 아니라 최근 일부 특목고에서 저질러진 내신 조작이나 SAT 부정시비에서 보듯이 비교육적인 파행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곳이 되었다. 둘째, 특목고의 존재는 입시경쟁을 고등학교 단계에서 초등학교 단계로 끌어내림으로써 사회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망국적인 사교육비 경쟁을 끝없이 부추긴다.

우물 안에서 벗어나 교육의 새판을 짜야

셋째, 특목고의 존재는 성적 경쟁에만 몰두하는 퇴행적인 교육방식을 강화시켜 지식기반사회 등 새로운 사회에 대비한 교육의 발전에 심대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 이런 교육의 결과가 어떤지는 특목고를 나와 국내외 명문대학 진학에는 성공했지만 중도하차하거나 아무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많은 학생들의 사례가 이미 웅변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세칭 명문학교 입학이라는 우물 안의 성공을 위한 소모적 경쟁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의 도전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이다. 이를 위해 교육의 새판 짜기가 필요하며, 이런 새판을 짜기 위한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가 병리적인 현행 특목고의 폐지라고 할 수 있다.

필자 소개 이종태
사단법인 한국교육연구소 소장.
weekly@chang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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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04-25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만들어놓고 없애기가 또 쉽지 않겠죠...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