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서'라는 것은 용서를 안 해도 되는 강자가 할 수 있는 자기 선택이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약자가 자청해서 할 수 있는 미덕이 아니다. 용서란 승자가 베풀 때에는 도덕적 위대성을 과시하는 미덕일 수 있지만 패자가 부르짖으면 꼴불견이 된다. 비굴의 자기기만일 수가 있다. 작금의 대일관계에서 마치 국민적 성숙의 표시처럼 고창되고 있는 '잊지는 말되 용서하자'는 캐치프레이즈는 40여 년 전 진주만 기습 공격서건을 놓고서 미국 국민이 일본인에 대해 화해의 정신으로 한때 유행했던 슬로건에서 착상된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가려서 생각할 일이 있다. 피해자이면서 승전국인 미국인들은 패전자이자 과거의 가해자인 일본에 대해서 과거를 잊지 많아도 되고, 용서를 안 해도 됐지만 그렇게 한 것이다. 열등한 자의 강요당한 망각과 관용이 아니라 우월한 위치에서의 자발적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 정신에는 도덕적 우월함이 있다. 식민지시대는 접어두고라도, 행방 후 지난 40년간에 형성된 한일 두 나라의 현실적 지위 관계에서 우리가 어설프게 과거를 '잊자'니 '용서하자'고 말할 수 있게 되었는가? '용서하지 말자'는 주장이 아니다. 용서의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리영희, [분단을 넘어서], 한길사, 1984. 49쪽.
강준만 편저,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개마고원 2004. 153쪽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