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글샘 > 초등의 눈물ㅜㅠ... 우리는 시험 기계가 아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은 세 달 전부터 보습학원에 다닙니다. 나는 아들의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아들의 일기장을 볼 수 있도록 미리 아들과 약속을 해 두었습니다. 아들의 일기장 아래에는 선생님의 따스한 흔적이 적혀 있어서 사제 간의 끈끈한 정을 느끼게 해주므로, 일기장을 넘기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런데 최근, 아들의 일기장이 이상합니다.

▲ 아들의 일기-아버지, 쉬고 싶어요!
ⓒ 한성수
2006. 3. 19. 월요일. 제목 : 학원
학원 다니는 것이 힘들다. 내가 힘든 이유는 공부 때문이 아니다. 내가 숙제 같은 것은 잘 까먹기 때문에 숙제를 했는데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내 가슴을 죈다. 그리고 항상 적응!!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

나는 원래 10시에 자서 충분히 수면을 취하는데, 숙제가 많다보니 밤 12시쯤에 자서 이제 몸에 이상이 온다. 그래도 어쩌랴! 적응해야지. 적응만 하면 잘 될 것인데!! 파이팅!!

-빨리 적응이 되어서 네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선생님의 댓글입니다.)-

2006. 4. 27. 목요일. 제목: 아버지! 좀 쉬게 해주세요.
나의 일과는 아침 8시부터 시작된다. 8시에 일어나지만 피곤해서 계속 누워 있다가 어머니가 고함을 지를 때쯤이 되어야 후다닥 일어나 세수하고 이 닦고 옷을 입고 밥을 먹는다.

- 학교생활 중략 -

집에 발을 들여놓자 말자 어머니는 “숙제 없나?”라고 물어보신다. 그때부터 나는 학원의 밀려있는 숙제를 하나씩 해나간다. 그리고 허겁지겁 밥을 먹고 버스를 타려고 뛰어간다. 종이 울리면 5시 15분이 되었다는 것이다. 학원에서는 내가 제일 부담스러워하는 수학이 나를 꽉 조이는 것 같다.

간신히 학원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뛰어와도 나를 기다리는 것은 학교숙제와 학원숙제이다. 나는 지금의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너무 피곤해서 눈도 붓고 혀에도 염증이 생겨 음식을 먹는 것이 힘들다. 그러나 우리 반 아이들 중 3/4정도가 학원을 다닌다. 나는 '힘들지 않다'고 하는데, 내 몸이 힘들다고 반항하는지 감기와 몸살까지 겹쳤다.

성적지상주의가 초등학교 6학년인 우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 같다. 제발, 초등학교 마지막 어린이 날인 5월 5일에라도 쉬고 싶다.

▲ 아들의 일기-학원
ⓒ 한성수
일기장을 덮으며 나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와서 한숨을 크게 쉽니다. 아들의 글처럼 나는 그동안 아들에게 ‘공부만 잘하라’고 다그쳤지 아들의 힘든 모습은 애써 외면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보습학원에 다니는 실정을 감안하면 그냥 예전처럼 집에서 공부하게 하는 것은 아들의 성적을 뒤처지게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듭니다.

아들은 오늘도 저녁 9시가 가까워서야 집에 들어섭니다. 아들이 저녁밥을 먹은 후, 밤 11시에 우리는 자리를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와 대화를 나눕니다.

“우선 아버지가 네 힘든 사정을 몰라서 미안해요! 너희 반 친구들 중에서 학원에 다니지 않는 친구가 얼마나 되니?
“저희 반 학생이 36명인데, 30명 정도가 학원에 다니는 것 같아요. 나머지도 집에서 학습지를 받아 보거나 과외수업을 받고요. 특히 종합학원에 다니면서 영어, 수학 등을 단과학원에서 듣고 태권도나 피아노 등 예체능학원에 다니는 아이도 10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 애들은 학교를 마치면 바로 단과학원에 갔다가 예체능학원에 가고 다시 종합학원에서 집으로 가는데, 저보다는 그 애들이 훨씬 힘든 것 같아요. 그 애들은 공휴일에는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서 실컷 잠이나 자고 싶대요.”

“그 친구들이 학교 수업은 제대로 하니?”
“아뇨. 그 친구들은 학원숙제를 할 시간이 없어서 학교에서 학원숙제를 하는데, 같은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은 서로 배끼기도 해요. 학원숙제를 해가지 않으면 결국 남아서 해야 하고, 학원 선생님에게 맞아야 되거든요. 학교 청소당번인데도 '학원에 가야한다'면서 청소도 하지 않고 그냥 가는 아이들도 있어요.”

“선생님한테 혼이 나지는 않니?”
“학원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바로 집으로 연락을 하니, 우리는 어쩔 수가 없이 학원이 우선이지요. 그런데 저희 담임선생님은 ‘학원은 학교교육을 보충하는데 불과하므로 학교 일이 우선’이라고 하시면서 사정을 봐 주시지 않아요. 또 진도도 빼먹지 않고 처음부터 차근차근히 가르쳐 주세요. 우리는 학원에서 미리 배웠지만 복습이 되니까 좋아요.”

“힘이 들면 학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공부하는 것이 어떻겠니?”
“지금까지 집에서 자유롭게 공부하다가 학원에 다니니까 적응하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지 곧 적응을 할 거예요. 또 친구들 중 대부분이 종합학원이나 단과학원, 과외나 학습지를 받아서 공부하는데 저만 안할 수는 없지요. 학원선생님은 ‘부모님이 돈이 많아서 너희들 학원 보내는 것이 아니다’고 했는데, 저도 내년에는 중학생이 되니 열심히 해 볼게요.”

▲ 방과후 아들의 학원시간표
ⓒ 한성수

지금 아내는 아들을 무릎에 뉘고 입안 염증에 연고를 바르고 있습니다. 가난한 말단 공무원의 빠듯한 살림살이에 아이들 학원비가 참으로 버겁기도 하거니와 '어린이날'에라도 쉬고 싶다는 아들을 계속 학원에 보내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가슴이 아리고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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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국에서 교사로 존재한다는 것은 큰 고민을 떠안고 가슴 답답해 하는 것이다.
끝없는 경쟁 체제로 돌입한 시대에, 이젠 초등학생마저 공부에 시달리고 있다.

놀이터엔 아이들이 없다.
도로엔 승합차에 오르는 아이들이 빵쪼가리 하나를 물고 있다. 과자를 우물거리거나...

초, 중, 고 생이 모두 이 지경이다.

고3은 고생해도 되고, 아니, 고등학생 정도는 입시에 몰두해 보는 것이 좋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초 중학생마저 제대로 된 교육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온갖 사교육에 휘둘리는 현실은,
정말 암담하기만 하다.

일부는 <교사>가 제대로 못가르쳐서 <학원>으로 가지 않는가? 하는 논리를 편다.
일부는 <교육부>가 교육 정책을 개판으로 짜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입 가진 사람은 교육에 대해서 모두들 성토하고 침을 튀길 수 있다.

현 사태를 과연 누구의 책임으로 몰 수 있을 것인지...
교육<인적 자원>부의 말씀대로, 교사를 평가하면 아이들이 행복해 질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교사 평가 아니라 뭐라도 좋다.
사람을 목적으로 보지 못하고, 고작 <인적 자원>의 수단으로 보는 자들에게서 철학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은 <학부모>의 철학의 문제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말인즉 옳다. 학부모가 학원 안 보내면 된다. 학부모가 아이들을 자유롭게 놀라고 하면 된다.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스스로 공부하도록 시키면 된다.
엄마가 아이를 99% 만든다고 한다. 말로는 다 옳다. 너도 옳고, 너도 옳고, 개도 옳다.

자기 자식만을 사랑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럼 자기 자식 사랑하지 말랴?
인격을 기르고 독서를 시키면 과외 안 시켜도 된다고도 한다. 당신이 초딩이라면 학원 안 가고 노는 동안에 독서 할 성 싶은가? 카트라이드가 얼마나 재미난 것인지... 초록 장갑을 향한 집녑이 어떤 것인지... 모르면서...

한국이란 땅덩이는 너무도 좁다. 50년대 원조 지원국가에서 21세기 오이씨디 가입국으로 발돋움했다.
그 원동력은 뭐니뭐니해도 <인력 자원> 이었다.
그 인적 자원은 <고급 인력>이 아닌, 공업 입국의 <기술 인력>, <노동 인력>이었다.
이제 부가 가치의 시대, 고급 인력의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도 한국의 교육은 공업 입국 시대의 <조국 근대화의 기수>를 양산하고 있다.
토익 시험을 초딩부터 만점 받고, 한자급수를 1급을 따고, 컴활 1급을 딴다.

아이들이 <시험 기계>로 전락하고 말았다.
문제를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그러지 않고는 토익을 만점 받긴 어렵다.
컴퓨터 필기 문제가 바로 그렇다.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답이 나오는 메커니즘이다.
한자 능력 시험이 그렇다.

90년대 중반까지 학교에서 담당하던 <시험 기계> 양성이 이젠 <사교육>으로 넘어간 느낌이다.
당연히 사교육 열풍을 잠재울 수 있는 방안은 없다.
박정희 아들이 공부를 못해서, 고등학교 평준화가 이루어졌고,
전두환 아들이 공부를 못해서, 온갖 과외를 철폐했는데,
이젠 독재 시대가 아니라서 사교육에 철퇴를 가할 수는 더이상 없다.

아이들을 살리는 길은 무엇일까?
내 생각은 이렇다.
아이의 싹수를 보아야 한다.
글쓰기를 잘 하는지... 외국어를 흥미있어 하는지... 운동을 엄청 좋아 하는지...
독서를 좋아하는지... 과학에 귀재든지... 인간 관계에 탁월하든지...
게임에 미친 놈이든지...

Everyone can do something well.
모든 사람은 뭔가 하나는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걸 찾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고,
나머지는 그 길로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지 못하면서, 그저 나중에 뭐가 되더라도, 공부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은, 이제 오산이다.
그리고 학급당 30명 중에 1등 해봤자, 잘 하는 공부도 아니다.

초등학생들을 과외에서 풀어주어야 한다.
중학생들의 교과서를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

수학, 사회나 과학 교사들은 안다. 정말 교과서가 어렵다는 사실을...
그 모든 지식은 99% 사람들에게 쓸모 없는 것임을...

아버지는 말하셨죠. 인생을 즐겨라~~~

요즘 애들에게 말하면, 눈을 흘기면서 "즐~~" 할거다.

그리고, 교사로서...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 넣지 않도록 정부와 싸우는 길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한다.
아이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나는 <교사>도 <선생>도 더욱이 <스승>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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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펌/ 우리 말글살이 8] '-데’와 ‘-대’ 제대로 알고 확실하게 구별하여 씁시다

공길이 참 '예쁘데?' 아니면 '예쁘대?'  
[
 - 리울 김형태 통신원 

인터넷에서 검색한 '-데'의 사용 예

많은 사람이 혼동하고 있는 말 가운데 하나가 어미 '-데'와 '-대'의 쓰임입니다. '표준 발음법'에 따르면 'ㅔ' 발음과 'ㅐ' 발음을 구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 토박이 중에서도 'ㅔ' 발음과 'ㅐ' 발음을 구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굳이 설명하자면 'ㅔ'는 입을 적게 벌리고 혀를 낮추지 않고, 'ㅐ'는 입을 많이 벌리고 혀를 낮추어 발음함) 특히 'ㅔ'와 'ㅐ'가 단어의 첫 음절이 아닐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발음상의 어려움 때문인지 요즘 들어 '-데'와 '-대'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데'와 '-대'의 의미와 용법을 분명히 인식하면 발음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둘을 훌륭히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공길이 참 예쁘데."
(2) "공길이 참 예쁘대."

어느 것이 맞는 표현일까요? 둘 다 맞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그 쓰임새는 다르므로 구별해서 써야 합니다.

 (1) (내가 어제 영화를 보았는데 소문대로) 공길이 참 예쁘데.
(2) (친구가 영화를 보고 와서 하는 말이) 공길이 참 예쁘대.

(1)은 '-데'가 쓰인 예이고 (2)는 '-대'가 쓰인 예인데 그 뜻이 무척 다릅니다. '-데'는 화자가 직접 경험한 사실을 나중에 보고하듯이 말할 때 쓰이는 어미로서 '…더라'와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데 비해(공길이 참 예쁘더라), '-대'는 화자가 직접 경험한 사실이 아니라 남이 말한 내용을 간접적으로 전달할 때 쓰입니다.(공길이 참 예쁘다고 해)

 따라서 '-데'가 쓰인 예에는 (1)에서 보듯이 '어제 보니까'처럼 화자의 경험임을 나타내는 말이 붙을 수 있고, '-대'가 쓰인 예에는 (2)에서 보듯이 '사람들이 그러는데'처럼 남의 말임을 나타내는 말이 붙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본 '-대'의 사용 예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더 들면, '철수가 합격했데'라고 하면, '철수가 합격했더라'는 회상의 내용을 전하는 것이고, '철수가 합격했대'라고 하면 다른 사람한테 철수의 합격 소식을 듣고 다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의미를 가려 보는 것이 '-데'와 '-대'를 구분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어제 보니까 영희가 참 예쁘데'(형용사), '그 사람 보기보다 일을 아주 잘하데'(동사), '쭉 지켜보았는데 참 훌륭한 사윗감이데'(서술격조사 '이다') 처럼, '-데'는 과거 어느 때에 직접 경험하여 알게 된 사실을 현재의 말하는 장면에 그대로 옮겨 와서 보고하듯이 말할 때 쓰는 종결 어미입니다.

 이 밖에도 '-데'는 '그 사람 얼굴은 기억하는데, 이름은 잊어버렸다'의 경우처럼, '-ㄴ(은)데-' 형태로 연결어미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너, 오늘 정말 멋있는데!'(감탄)와 '하지도 못하면서 무엇 때문에 하는데?'(의문)처럼 '-데'는 감탄과 의문형을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데'는 의문문에서 '던가'의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고향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데?', '신부가 그렇게 예쁘데?', '밖에 누가 왔데?'에서 '-데'는 '던가'의 뜻으로 쓰인 예입니다.

 그리고 '던' 뒤에는 '-데'만 올 수 있고 '-대'는 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던데'란 말은 가능해도 '-던대'란 말을 불가능합니다. '결혼식장에는 영희 신랑도 왔던데', '사람들은 좋던데', '내일 출발 한다던데' 등이 그 용례입니다.

 한 가지 더 알려드리면, '-ㄴ데'는 스스로 감탄하는 투로 넌지시 상대방의 반응을 묻는데 쓰이기도 합니다. '오늘 날씨 참 청명한데', '오늘은 기분이 참 좋은데'(형용사) 등이나 '두 사람이 아주 잘 어울리는데'(동사) 등이 그 용례입니다.

 반대로 '-대'의 쓰임을 보면, '사람들이 그러는데 영희가 참 예쁘대'(형용사), '듣자니, 그 사람 보기보다 일을 잘한대'(동사), '김과장 말로는 그 사람 아주 훌륭한 사윗감이대'(서술격조사 '이다')처럼 남의 말을 전할 때 사용합니다. 서술격조사 '이다' 뒤에서는 '-대'가 '-래'로 바뀌기도 합니다. '철수가 그 대학교 학생회장이래'에서 '래'가 그 용례입니다.

 의문문에서 '-대'는 어떤 사실을 주어진 것으로 치고 그 사실에 대한 의문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로 쓰이는데 놀라거나 못마땅하게 여기는 뜻이 섞여 있습니다. '왜 이렇게 일이 많대?', '입춘이 지났는데 왜 이렇게 춥대?' 등이 그 용례입니다.

 

우리말글 공부가 어렵다고요?

요즘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손쉽게 우리말글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랬대'와 '그랬데'를 예를 들어 한 번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대'는 직접 경험한 사실이 아니라 남이 말한 내용을 간접적으로 전달할 때 쓰이고, '-데'는 화자가 직접 경험한 사실을 나중에 보고하듯이 말할 때 쓰인다고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들은 말을 전하는 상황이라면 '그랬대'를 쓰면 되고,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을 전하는 상황이라면 '그랬데'를 쓰면 됩니다. 흔히 '-했대'와 같은 경우는 전해들은 말은 전달하는 상황에 많이 쓰이며 아마도 '영희가 그렇게 했다는 것을 듣고 전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듯하므로 '영희가 그랬대'로 쓰면 됩니다. 

 ※ '-데'와 '-대' 제대로 알고 확실하게 구별하여 씁시다.   

 1) ~대 : 남의 말이나 객관적인 사실을 끌어다 쓸 때 . ~ 다고 해
 그런대 : '그러하다'고 해,'그렇다'고 해. (남의 말을 인용함)
 애인이 없대 : '애인이 없다'고 해. (남의 말을 인용함)
 어제 영화 구경 갔대 : '어제 영화 구경 갔다'고 해. (남의 말을 인용함)
 그런대요 : '그런다'고 해요. (남의 말을 인용함)


 2) ~데 :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을 회상하며 말할 때
 그 영화가 참 잘 됐데 : (직접 영화를 본 후 남에게 소감을 말함 )
 가게가 참 크데 : (직접 가게를 구경한 후 남에게 경험을 말함)
 그 아가씨 정말 맹랑하데 : (아가씨를 직접 보고 난 후 남에게 소감을 말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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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펌/ 우리 말글살이 7] '되'와 '돼' 제대로 알고 바르게 씁시다

이러시면 '안 되요'가 아니라 '안 돼요'입니다~


되다’와 ‘돼다’ 중 어느 것이 올바른 표기일까요? ‘되’와 ‘돼’의 발음이 비슷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이를 혼동하여 쓰고 있습니다.

“이러시면 안 되요!” / “이러시면 안 돼요!”
“여보, 밥이 언제 되지?” / “여보, 밥이 언제 돼지?”


어느 것이 맞는 표현일까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와 ‘밥이 언제 되지’가 맞는 표현입니다. 더러 ‘돼다’라고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말에서 ‘돼다’라고 쓰는 경우는 없습니다. ‘돼’는 ‘되어’가 줄어서 된 것입니다. 따라서 ‘공부가 잘 돼다(x)’는 ‘공부가 잘 되다.(o)’로 고쳐 써야 바른 표기입니다.





▲ '돼'는 '되어'의 준말입니다.


그럼, ‘아저씨, 그렇게 하면 안 되요!’라고 쓰면 맞는 표기일까요? 아니요, 틀렸습니다. 이 경우에는 ‘아저씨, 그렇게 하면 안 되어요(o) / 안 돼요(o)’ 라고 해야 올바른 표기입니다.

우리말에 ‘되다’와 ‘돼다’의 두 가지 형태의 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되다’에 ‘-어, -어라, -었-’ 등의 어미가 결합하여 ‘되어, 되어라, 되었-’과 같은 꼴바꿈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다시 줄어 ‘돼, 돼라, 됐-’의 ‘돼-’ 형태가 나오는 것입니다.

‘되다’(동사원형)의 ‘되’는 어간(語幹)이라서 ‘되’ 단독으로는 쓰일 수 없고, 뒤에 -고, -니, -어 -다 등의 어미가 붙어 ‘되고, 되니, 되어, 되다’ 등으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돼’는 ‘되어’의 준말이니, ‘됐고, 됐지, 됐니, 됐어, 됐다’ 등은 ‘되었고, 되었지, 되었니, 되었어, 되었다’로 다시 풀어쓸 수 있는 것입니다.





▲ 인터넷 검색 자료 :제목을 ' 사람이 나무가 됐나(되었나)?'로 고쳐야 맞는 표기입니다.

다시 말해, ‘안 됀다(되언다)(X)---안 된다(O)’처럼 풀어쓸 수 없으면 ‘되’로 보고, ‘안 돼요(되어요)(O)---안 되요(X)’처럼 풀어쓸 수 있으면 ‘돼’로 봐도 좋을 것입니다. 마치 ‘안’과 ‘않’의 원리와 같다고나 할까요. ‘안’은 ‘아니’의 준말이고, ‘않’은 ‘아니하~’의 준말입니다. 따라서 ‘안했다’는 ‘아니했다’로 풀어 쓸 수 있으므로 ‘안’이 맞고, ‘않았다’는 ‘아니하였다’로 풀어쓸 수 있으니 ‘않’이 맞습니다. ‘아니’로 풀리는 말은 ‘안’, ‘아니하였다’로 풀리는 말은 ‘않’으로 보면 된다는 말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안돼’를 ‘안되’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분명 ‘아니 되어’로 풀어쓸 수 있으니 맞춤법상 ‘안돼’로 써야 맞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되’는 어간이라 독립적으로 쓰일 수 없으므로 ‘안되’는 잘못된 표기입니다.

앞에서 ‘안’과 ‘않’, ‘되’와 ‘돼’는 말을 풀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되’와 ‘돼’의 구별이 어려운 사람은 ‘하’와 ‘해’를 적용하면 보다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되/돼’는 발음상 구분이 어려워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하/해’는 발음이 확실하게 구분되기 때문에 누구도 혼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되’ -> ‘하’ / ‘돼’ -> ‘해’로 바꿔보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안되/안돼’의 경우 -> ‘안하/안해’로 바꿔보면 ‘안해’ 가 된다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안돼’가 맞는 표기입니다.


‘안 되나요/안 돼나요’의 경우는 -> ‘안 하나요/안 해나요’로 바꿔볼 수 있으므로 ‘안 되나요’가 맞는 표기입니다.


같은 원리로 ‘됬습니다/됐습니다’의 경우는 -> ‘핬습니다/했습니다’ 가 되므로 ‘됐습니다’가 맞는 표기이고, ‘~될 수밖에/됄 수밖에’의 경우는 -> ‘할 수밖에/핼 수밖에’가 되므로 ‘할 수밖에’가 맞는 표기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제는 쉽고도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겠지요?


▲ 어떤 경우라도 '돼다'라는 표현은 틀린 것입니다. ~'돼', '되어', '되다'로 써야 합니다.

그러나 ‘되다’와 ‘돼다’와는 달리 ‘되라’와 ‘돼라’의 경우에는 조금 복잡하고 어렵기까지 합니다. ‘되라’인지 ‘돼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에는 보통 그 말을 ‘되어라’로 대치할 수 있는가 살펴보면 됩니다. 만약 ‘되어라’로 대치될 수 있으면 ‘돼라’고 쓰면 됩니다.



‘되라’와 ‘돼라’는 구어체 명령형이냐, 아니면 문어체 명령형이냐에 따라 구분해서 써야 합니다. 먼저 듣는 사람이 앞에 있는 상황에서 직접 명령할 경우(구어체 명령문)에는 ‘되라’가 아니고 ‘돼라’가 맞습니다. 이를테면 “철수야, 이제는 제발 착한 사람이 되라(X)/돼라(O)”처럼, 일상적인 구어에서는 ‘-라’ 혼자서 어간에 결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되라’는 어간 ‘되-’에 어미 ‘-라’가 직접 결합한 형태이므로 잘못입니다. ‘되-에-어라’를 결합시켜 ‘되어라’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구어체와 달리 문어체 명령형에서는 ‘돼라’와 ‘되라’가 함께 쓰일 수 있습니다. ‘투명 정부 되라/돼라’, ‘학생을 위한 학교 되라/돼라’처럼 문어체에서는 ‘되-’라는 어간 뒤에 명령형 어미 ‘-어라’와 ‘-(으)라’가 모두 결합할 수 있습니다. 단 이 경우 ‘돼라’보다는 ‘되라’가 좀더 알맞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됬다'도 틀린 표기입니다. '되었다', '됐다' 등으로 바로 써야 합니다.




신문, 방송 등 언론에서 정부나 일반인 등 불특정 다수에게 간접적으로 쓰는 문어체형 명령문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구어체에서는 ‘-해라’만 쓸 수 있지만 문어체에서는 ‘-하라’와 ‘-해라’를 모두 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또 “선생님께서는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다”에서처럼 간접인용문에서도 명령의 의미를 가지는 ‘-(으)라’가 어간에 직접 결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때의 ‘라’는 구어에서 청자를 앞에 두고 말할 때는 쓰지 못하고, 문어체나 간접인용문(남의 말을 간접적으로 인용하는 문장으로 인용했음을 나타내는 어미 ‘고’와 인용동사 ‘하다’, ‘말하다’ 등을 가지고 있을 때)에서만 사용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되어라'로 대치될 수 없기에 '돼라'라고 쓸 수 없고 '되라'고 쓰는 것입니다.


심화학습 차원에서 ‘되라’와 ‘돼라’를 덧붙였는데 생각보다 어렵다고요? 맞습니다. 우리말글도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까다로운 예외 규정 등이 있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말글을 제대로 구사하려면 공부해야 합니다.

보통 우리말글이 쉽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생활하면서 우리말글이 조금이라도 어렵게 느껴졌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말글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국어사전을 가까이하면서 올바른 우리말글을 구사할수 있도록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국어 사랑이 나라 사랑의 지름길이라는 것은 다들 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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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펌/ 우리 말글살이 6] '주책이다'와 '주책없다' 알아보기

'주책이다'가 아니고 '주책없다'입니다~

 

▲ 많은 사람들이 '주책이다'와 '주책없다'라는 말은 같은 뜻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흔히 '주책없다'라고도 하고 '주책이다'라고도 하는데, 어느 게 맞나요? 그리고 '주책'을 '주착(主着)'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맞는 말인가요?"

이 질문처럼 '일정한 줏대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여 몹시 실없다'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책없다'와 '주책이다'라는 말을 함께 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과연 '주책이다'와 '주책없다'라는 말은 같이 써도 되는 것일까요?

(가) "아이고, 정말 주책이야!"  /  "그 양반 왜 그렇게 주책이니?"

(나) "저런 주책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  "그 양반 왜 그렇게 주책없니?"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바른 표현일까요? 여기서 '주책이다'는 '주책없다'의 잘못으로 비표준어입니다. 따라서 (나)가 맞는 표현입니다. 여기에서 '주책'은 '일정하게 자리 잡힌 주장이나 생각, 판단력, 혹은 주관이 뚜렷해서 흔들림이 없음'을 뜻합니다.

▲ 인터넷 검색 자료 1 ('주책이다'가 아니고 '주책없다'로 고쳐야 바른 표현입니다~)
ⓒ 김형태

▲ 인터넷 검색 자료 2 (역시 '주책이다'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 김형태

따라서 '주책이 없다'고 하면 일정한 주장이 없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지만, '주책이다'라고 표현을 하면 '주책이 있다'의 뜻과 비슷하게 되어 우리가 흔히 쓰는 실없는 사람의 의미와는 멀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주책없다'가 표준어이며 바른 표현입니다. 또한 '主着'이라는 한자어에서 온 말이라 하여 '주책'을 '주착'으로 잘못 쓰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현행 맞춤법상 '주책'이 맞는 표현입니다.



 

▲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 사전을 찾아 보았습니다.

ⓒ 김형태

 

여기서 '주책'의 뜻을 알아보는 것도 그 쓰임새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주책'은 크게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서로 다른 의미입니다.

우선 '주책'(1)은 '일정하게 자리 잡힌 주장이나 판단력'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나이가 들면서 주책이 없어져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생각할수록 운명의 장난이란 주책이 없는 것 같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주책'(2)은 '일정한 줏대가 없이 되는대로 하는 짓'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로 사용된 예로 '주책을 떨다', '주책을 부리다', '주책이 심하다', '주책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등이 있습니다.

따라서 (1)번의 의미로 쓰인 '주책없다'와 (2)번의 의미로 쓰인 '주책'은 서로 그 의미가 다르며 각각 사용 가능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흔히들 사용하듯 '주책없다'의 의미로 '주책이다'라고 한다면 이는 잘못입니다.



 

▲ 인터넷 검색 자료 3
ⓒ 김형태

▲ 인터넷 검색 자료 4
ⓒ 김형태

▲ 인터넷 검색 자료 5
ⓒ 김형태

'주책없다'에서 나온 말들

주책-바가지
[--빠--]
「명」주책없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입이 헤퍼서 그저 주책바가지인 줄만 알았는데 친일해서 누리는 부귀를 제법 신랄하게 업신여기고 있었다.≪박완서, 미망≫/용하는 저 주책바가지 나잇값 하지 못한다, 그런 눈초리로 쳐다본다.≪박경리, 토지≫§


주책-망나니
[-챙---]
「명」주책없는 사람을 욕하여 이르는 말. ¶이 주책망나니는 벌써 닷새째 집에도 안 들어오고 회사엘 가 봐도 모른다고 하고….≪염상섭, 대목 동티≫§

 

다시 말해, '주책없다' '주책이 없다' '주책을 떨다'는 다 맞지만 '주책이다'라는 표현은 그릇된 것입니다. 《표준어》제25항에서는 '주책없다'가 표준어이고 '주책이다'는 표준어가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안절부절못하다'와 '안절부절하다'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바른 표현일까요? '안절부절못하다'가 맞는 말이고 '안절부절하다'는 잘못된 말입니다.

"너 왜 그렇게 안절부절해?" "무엇 때문에 안절부절이야" "그렇게 안절부절하는 모습은 처음이야"라는 표현은 모두 잘못된 표현입니다. '안절부절못하다'가 바른 표현이므로 "너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해?" "무엇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처음이야"로 고쳐야 맞는 표현입니다.

'안절부절'의 사전적 의미

안절부절: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여 어찌 할 바를 모르는 모양.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다/흥선은 정침으로 들어왔지만 마음이 내려앉지 않는 듯이 안절부절 윗목 아랫목으로 거닐고 있었다.<<김동인, 운현궁의 봄≫/전차에 올라타자 조바심은 더욱 심해지고 안전부절 견딜 수가 없었다.<<이호철, 소시민>>


안절부절못하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
거짓말이 들통 날까 봐 안절부절못하다/마치 그것이 뭔가 단단히 잘못된 일이기나 한 듯이 익삼 씨는 얼른 대답을 가로채면서 안절부절못하는 태도였다.<<김흥길, 완장>>

 

'안절부절'은 원래 '이러지도 저러지도'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려면 '안절부절못하다'로 써야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못하다'를 생략한 '안절부절'만으로 '안절부절못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인정하여 '안절부절못하다'의 의미를 띤 '안절부절'을 표준어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안절부절'의 이런 쓰임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다'라는 말을 '안절부절하다'로 쓰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절부절하다'는 '안절부절못하다'의 잘못된 쓰임입니다. 참고로 '안절부절'을 한자어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자어가 아니고 우리 고유어임을 알려드립니다.

다소 힘들고 귀찮아도 우리 모국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글맞춤법'을 지켜나가고 표준어를 구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국어 사랑'이 곧 '나라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안절부절하다'는 틀린 표현이고 ‘안절부절못하다’가 맞는 표현입니다.
ⓒ 김형태



* 이 기사 작성에 '국립국어원' 질의 응답을 참고하였습니다.

* 이 글을 '오마이뉴스'와 '서울방송(SBS)' 등의 매체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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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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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펌/ 우리 말글살이 5] '틀리다와 '다르다'의 차이

난 너와 생각이 '틀려'가 아니고 '달라'입니다.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 혹은 "보통의 것보다 두드러진 데가 있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러나 '틀리다'는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 "바라거나 하려는 일이 순조롭게 되지 못하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다르다'는 '같다'의 반대말로 영어의 'Different'의 뜻이고, '틀리다'는 '맞다'의 반대말로 영어의 'Wrong'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방송을 보다보면 연예인 출신 진행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나운서 출신의 진행자들까지 "역시 신세대는 기성세대와 사고방식이 틀리군요"와 같은 표현을 서슴지 않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세태에 대해 한 누리꾼(BIG-RED-SUN)은 목소리를 높여 탄식합니다.

"요즘 '다르다' 와 '틀리다'라는 표현을 구분할 줄 몰라서 엉터리로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해가 갈수록 그런 분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학창시절 문법시간에 다 배운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모릅니까? 기본으로 알아야 할 건 알아야죠. 우리가 쓰는 언어이고, 모국어인데……. 제 주위 사람들의 무려 90%가 엉터리로 쓸 정도입니다. 이 표현법을 정확히 알고 제대로 쓰는 대한민국 사람은 아마 열 사람 중에 한두 사람뿐일 겁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분위기에 흘러 그냥 따라 말한 경우도 더러 있어요. 그렇지만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 '다르다'와 '틀리다'는 어떤 차이가 있는 말인지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다르다'와 '틀리다'를 찾아보았습니다.


국어사전에서 보듯 '다르다'는 '같지 않다, 차이가 있다'를 뜻하는 형용사로, '같다'의 반대말이며, 문장에서 '명사+와'성분이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틀리다'와 차이가 있습니다. '다르다'는 우선 비교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않을 때 쓰입니다. '그들은 형제지만 생김새나 마음씨나 행동이 전혀 다르다'가 그 용례입니다. 또 '다르다'는 보통의 것과는 다르거나 특출할 때 쓰이기도 합니다. '역시 예술가라 다르군 / 생각하는 게 다른데' 등이 그 예입니다.

그리고 형용사 '다르다'에 관형사형 어미를 결합하여 만든 관형형 '다른', 그리고 관형사 '다른'은 서로 구별됩니다. 국어사전에서 보듯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는 의미를 가지며 '아들이 아버지와 얼굴이 다르다 / 나는 너와 다르다'와 같이 쓰입니다.

'다른'은 '당장 문제되거나 해당되는 것 이외의'의 뜻을 갖는 관형사로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지? / 다른 생각 말고 공부나 해라'와 같이 쓰입니다. '다르다'는 문장에서 서술어의 역할을 하며 '다르다'의 관형사형인 '다른'도 관형절 안에서 서술어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거기에 다른 사람도 있었니?"라는 문장에서 '다른'은 올바른 말일까요? '딴 사람'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고 바른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딴'은 타인의 뜻이고, '다른'은 '성질이 다른'이라든가 '얼굴이 다른'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로 한자로 표시하면 '異'에 해당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딴'은 관형사이고 '他'의 뜻이며 '다른'은 형용사이고 '異'의 뜻입니다.

국어사전에서 보듯 '틀리다'는 '그르다'와 의미가 비슷하고 '옳다'와 반대되는 의미를 가집니다. '합계가 틀렸는데요(계산) / 틀린 답만 골라내시오(사실) / 하는 짓이 틀렸는 걸(기준) / 틀린 까닭을 말하시오(이치)'처럼, '사실이나 이치, 계산 따위에 어긋나거나 맞지 않다. 마음이나 행동이 올바르지 못하고 비뚤어지다.' 등의 뜻을 지난 동사입니다.

그리고 '틀리다'는 '일정한 기대(기준)에 맞지 않거나 일이 순조롭지 않고 어그러졌을 때, 감정이나 사이가 나빠졌을 때' 쓰이기도 합니다. '네가 성공하기는 틀렸어 / 사소한 일로 친구와 틀렸어 / 심보가 틀렸어' 등이 그것입니다.

또한 '맞다'는 일부 의미에 한정해서 '틀리다'와 반대말 관계에 있습니다. '1번 답은 맞았고, 2번 답은 틀렸어'라는 문장처럼 '답이 맞다'의 부정이 '답이 틀리다'가 되는 경우가 바로 그 예입니다. 하지만 '음식 맛이 내 입(맛)에 맞다'의 부정을 '내 입(맛)에 틀리다'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음식 맛이 내 입(맛)과 다르다'로 쓰는 것이 맞는 표현입니다.

'강우석 발언 다르다'라고 고쳐야 합니다. 기사 내용에는 '다르다'라고 잘 써놓고 제목에서는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요? 이제는 확실히 아시겠지요? '너와 나는 틀려'라고 말하는 것은 '틀린' 표현이고 '너와 나는 달라'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의 그림 중 다른 하나를 골라내는 '틀린 그림 찾기'는 '다른 그림 찾기'로 고쳐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틀리다'와 '다르다'의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구분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다르다'를 써야 할 자리에 별생각 없이 '틀리다'를 쓰는 경우는 잦아도 '틀리다'를 써야 할 자리에 '다르다'를 쓰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점을 보아도 이 둘의 구분이 그리 모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틀리다'와 '다르다'를 구분하지 못하고 '틀리다'만으로 사용할까요? '다르다'보다는 '틀리다'가 'ㅌ' 때문에 훨씬 격하게 들리기에 자신의 의사를 강하게 표현할 목적으로 '틀리다'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말글사랑'의 김형배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말과 정신과의 관계로 볼 때, 우리의 정신이 언어에 반영된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자신을 기준으로 놓고 생각이나 모양이 다른 것을 단지 다른 것으로 여기지 않고 '틀린 것'으로 여기는 우리의 생각이, 언어로 표현될 때도 '다르다'고 하지 않고 '틀리다'고 표현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나와 다른 것은 무조건 틀리다고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이고 획일적인 사고가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 봅니다. '틀리다'와 '다르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언어습관은 또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고를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는,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틀리다'라는 말에는 '다르다'라는 뜻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고, 언어는 변화하는 것이므로 '틀리다'라고 잘못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 언젠가는 '틀리다'라는 말이 '다르다'라는 말을 대신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와 '틀리다'는 분명히 다르므로 구분해서 써야 하겠습니다. '틀리다'와 '다르다'는 분명히 다른 말이기 때문에 '다르다'를 '틀리다'라고 말하는 것은 틀리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올바른 말글살이를 했으면 합니다."


그렇습니다. 언어의 사회적 변화 과정을 정확하게 추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확실한 답을 내리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오해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독선(獨善)이라는 심각한 국면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그 의미가 정말 다른 말이니 이제부터라도 틀리게 써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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