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87년 민주항쟁과 고등학생운동, 청소년인권운동의 뿌리

[기획 - 청소년인권운동, 길을 묻다 ②] 민주화의 불꽃, 학교를 삼키다
87년 민주항쟁과 고등학생운동, 청소년인권운동의 뿌리
기사인쇄
전누리 
청소년인권운동의 맹아는 87년을 정점으로 타오른 민주항쟁의 불꽃과 이른바 ‘참교육 1세대’들의 참교육운동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전자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편집인 주>



1987년 12월, 150여명의 고등학생이 명동성당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그들은 “노태우를 당선시킨 기성세대 각성하라!”, “군부독재 타도하여 민주교육 쟁취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19일부터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때는 바야흐로 13대 대통령선거에서 군부독재 정권과 한 몸통이나 다름없었던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12월 16일)된 직후. 당시 농성에 참여했던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회’(서고련) 학생들은 13대 대통령선거는 부정선거인 만큼, 비록 민정당이 승리했더라도 부정선거에 항의하기 위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겨울 칼바람 속에서도 87년 민주항쟁의 상징이었던 명동성당으로 찾아들었다.

민주화 세력이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일어설 것이라는 이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5박 6일간의 투쟁은 쓸쓸히 막을 내렸고 농성 참가자들은 제각각 흩어졌다. 그러나 이 농성은 80년대 중반부터 전사회적으로 확산됐던 민주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매우 주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87년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던 민주화의 불꽃이 미완의 불꽃으로 사그라질 위기에 처했을 무렵, 기성세대의 각성을 촉구했던 고등학생들의 외침은 그만큼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이처럼 당시 고등학생들의 운동이 좀더 조직화된 방식으로 학교의 변화를 넘어 정치의 중심으로까지 파고들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민주화라는 대격변이 열어젖힌 ‘인식과 실천의 해방구’가 그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전두환 신군부정권 하에서 강요됐던 억압적 입시체제 아래서 바로 옆 친구들과의 치열한 경쟁만을 강요했던 학교에 대한 저항의지는 그렇게 민주화의 열기와 맞물리면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학내 민주화와 인간다움을 찾아

80년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삼청교육대 설치 등 이른바 ‘사회정화’ 조치를 통해 정권의 기반을 다진 전두환 군사정권의 폭압은 교육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7.30 교육개혁조치’ 이후로 강화된 입시경쟁, 학도호국단을 통한 군대식 통제도 고등학생들의 열망과 외침을 막지는 못했다. 특히 8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는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학내 민주화와 인간다움, 비리 척결에 대한 열망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청구상업학교 교사, 학생들이 서울시교위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중등 우리교육 90년 11월호>


85년 3월 의정부시 복지중고에서는 잡부금 징수 금지, 학교장 퇴진 등을 요구하며 수업거부와 인근 야산에서의 농성이 시작됐고, 같은 해 목포여상에서는 여고생들이 학교측의 교사 탄압에 항거해 수업 거부, 등교 거부, 시험거부 등으로 맞섰다. 85년 ‘민중교육지’에 대한 정권의 대대적 탄압 이후 오히려 걷잡을 수 없는 불길로 타오른 교육민주화 운동은 고등학생운동의 성장에도 불을 댕겼다. 이듬해인 86년 5월에는 원주고를 시작으로 원주시 몇 개 고등학교에서 자율학습을 거부하고 학생들이 집단 귀가하는 일이 잇따라 일어났고, 7월 서울의 중대부고에서는 2학년 학생 5백여 명이 두발자유화, 자율학습 폐지, 강제 보충수업 금지 등의 요구를 내걸고 운동장에서 연좌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비록 이들의 투쟁이 연속적으로 전개되지는 못했지만, 엄혹한 군사정권 하에서도 민주화와 인간다움에 대한 열망은 그렇게 전국 곳곳에서 학교의 빙벽을 허물어뜨리기 시작했다.


반장에서 대통령까지 직선제로

87년에 접어들면서부터 학생들의 요구는 점차 학도호국단의 자리를 대신한 학생회의 직선제 쟁취 쪽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다. 학생 자신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조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공감대를 넓혀나갔고, 대통령 직선제 쟁취의 경험은 학생회 직선제 쟁취 운동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87년 3월 진주 대아고에서, 4월에는 서초고에서 직선제 학생회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6월항쟁 이후에는 그 움직임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경기도 파주여종고, 광주 대동고, 서울 석관고, 구로고 등 전국 학교에서 폭발적인 시위가 이루어졌는데, 민주적 학생회 쟁취라는 요구를 좀더 분명히 내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백일이 넘게 장기적인 투쟁을 벌였던 파주여종고, 2천여명이 수업거부에 들어간 이래 명동 가두시위와 시교위 농성 등으로 확대됐던 정화여상 등의 사례는 당시 고등학생 운동의 역량이 비약적으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는 좋은 보기이다. 그 결과 88년 말 서울 1백 여교, 전국 400 여교에서 직선제를 얻어낸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 출처: 중등 우리교육 90년 11월호


학생회 직선제 요구는 고등학교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88년 서울 석관중학교에서는 ‘민주 돌곶이회’라는 소모임이 결성되어 간선제 학생회장 당선을 한동안 저지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또 교외에서 진행된 4.19 기념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모임을 이끌었던 권혜진 씨(88년 당시 중3)에 따르면 처음에 8명으로 시작했던 모임이 2학기에 들어서면서 60명으로까지 확대됐다고 한다. 혜진 씨는 “87년 6월 항쟁에서 대통령을 직선제로 뽑자는 사회적 외침이 중학생이었던 당시에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던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시기였다.”라고 회상한다. 그는 “옆 학교인 석관고등학교에서 학생회장 직선제운동을 했기 때문에 ‘종이비행기 날리기’, ‘아침이슬 부르기’ 같은 시위도 볼 수 있었고, ‘우리도 한번 해보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고, 후배들도 만나 직선제하자고 설득하고 다녔다.”라고 설명한다.


민주항쟁의 경험, 조직화에 불 댕겨

이러한 학내 운동에 기반이 된 것은 각종 소모임들이었다. 87년의 사회적 격랑을 전후하여 사회모순과 교육모순을 함께 고민했던 학생들은 학교별, 지역별로 다양한 비밀 소모임을 꾸리게 된다. 용산고의 ‘용민민투’, 석관고의 ‘석민연’, 대원고의 ‘목마름’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소모임에서는 학교문제를 고민하면서 교내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벌이는 한편, 사회 문제에 대한 토론과 학습도 이뤄졌다. 고등학생 소모임은 87년 민주항쟁의 영향을 받은 고등학생들의 자발적 참여와 함께 고등학생운동을 고민해온 기존 활동가들의 결합으로 더욱 확산되었다. 당시 KSCM(한국고등학생기독교운동총연맹) 활동가였던 강주성 씨는 “그때는 지역별로, 학교별로 소모임이 많았다. KSCM이나 푸른나무 이야기모임 같은 공개단체에서 활동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언더에서 소모임으로 활동하던 학생들도 많았는데, 그런 모임을 지원하는 성인활동가도 있었다”라고 말한다.

당시 개별 학교 차원을 넘어 고등학생들이 참여했던 대표적 공개단체는 흥사단과 KSCM이 있다. 흥사단 서울지부가 개최한 87년 11월 학생의 날 행사에는 1천5백여 명의 중고생이 참석하여 공식적인 대중집회의 물꼬를 텄다. 흥사단은 그 후 고등학생아카데미(고아)를 통해 고등학생들의 사회참여 활동을 지원했고, 특히 KSCM과 함께 4.19 기념행사나 학생의날 행사를 대규모로 열어 당시 학생들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KSCM은 88년 2월 ‘자율적 학생회를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는데, 이 공청회에만 4~5백 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이들 공개단체들은 ‘학생회비 운영’, ‘소모임 운영’에 대한 공청회를 계속 이어가면서 고등학생 운동의 의제를 던지는 역할을 담당했다. 한편, 푸른나무 출판사에서 만든 <푸른나무> 무크지를 통해 모인 ‘푸른나무 이야기모임’도 있다. <푸른나무>는 당시 진보적 교사와 학생들에게 알려진 청소년 잡지로 학생회 직선제와 자율적 학생회 운영에 대한 토론, 교과서를 비판적으로 읽자는 주장 등이 담겨 있었다. 이러한 내용의 공개단체 활동은 90년대 초까지 지속되었다.

푸른나무 이야기 모임과 KSCM을 지도했던 강주성 씨는 87년을 기준으로 전후 고등학생 운동의 차이를 ‘대중성’에서 찾는다. 주성 씨는 “고등학생 운동을 했던 사람들 중에도 학생회 직선제 구호나 공개활동에 대해 ‘정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중운동이 되려면 대중들의 요구와 정서에 맞게 내용과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당시 고등학생 운동으로 활발히 전개된 학생회 직선제 운동은 대중성에 기초한 활동이었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고등학교에서 흥사단 활동을 한 권혜진 씨는 ‘조직화’에서 특징을 찾았다. “87년 이전은 자발적 운동의 태동기라고 생각된다. 그러던 것이 87년 6월 이후 조직적 흐름을 가지게 됐다.” 87년 이전의 고등학생운동이 산발적이고 고립적으로 이뤄졌다면, 87년 이후의 도드라진 점은 바로 대중성에 바탕을 둔 조직화가 이루어진 데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 인권운동의 맹아이자 뿌리

당시 고등학생 운동은 민주화의 열기가 들불처럼 번져나갈 때 고등학생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고 독재정부에 대한 저항을 이어나갔다는 데 의의가 있다. 나아가 모순으로 얼룩진 사회에 파열음을 내며 조금씩 열려지고 있던 변혁의 공간에서 고등학생들은 자신들만의 운동 의제도 찾아나갔다. 민주화와 자신들의 삶 사이에 가교를 놓으면서 독자적인 운동의 세력화를 꿈꿨던 것. ‘학생자치권 보장’, ‘두발자유화’, ‘보충.자율학습 철폐’ 등의 구호는 학교의 민주화, 학생 삶의 민주화를 요구했던 것이었다. 당시 터져 나온 구호들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학생 청소년 인권운동에서 핵심적인 과제로 남아 있는 것으로서, 당시 고등학생운동이 지금의 청소년인권운동의 맹아이자 뿌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급작스런 성장만큼 한계도 존재했다. 개별 학교를 잇는 조직적 연계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추어 상대적으로 운동의 경험이 적은 고등학생들에게도 너무 많은 짐을 지우면서 부담을 주었던 점도 힘겨움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용산고에서 ‘용민민투’ 활동을 한 서준섭 씨는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하면서 현재 인권운동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전한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 고등학생 운동이 제 삶의 뿌리에요. 정신적으로 성장했던 고향이라고 생각해요. 그 어린 나이에 사회랑 부딪치면서 고생도 많이 했고 시행착오도 겪었고. 지금 친구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했던 친구들도 지금 와서 약간 회한 같은 게 있으니…. 그 나이에 움직이고 뭔가를 시작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고, 그렇게 하려면 강해야죠. 무척 강해야지 그것이 바탕이 되어 인생에 밑거름이 되고 계속 발전할 수 있고…. 청소년들이 많이 강해졌으면 좋겠어요.”


농성 시작일에 대한 기억의 혼재
* 신문 등 공식 기록상으로 농성 시작일이 19일로 되어 있지만, 농성 참가자의 증언 중에는 16일 대통령 선거 당일부터 명동성당에 모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준섭이 지금은 민주노동당에서 정책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작년에 창진이 장례식장에서 우리는 18년만에 다시 만났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바람구두 > [퍼온글] 4일(일) 저녁 8시, KBS스페셜에 주목!

 

4일(일) 저녁 8시, KBS스페셜에 주목!
 
[한미FTA저지특별기획](25) - 이강택,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

 

유영주 기자 yyjoo.net
31일 오후 KBS에 들러 이강택 피디를 만났다. 이번 주말 KBS스페셜에 방영할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을 편집하고 있었다. 이강택 피디는 한미FTA 이슈가 불거진 2-3월 경 한미FTA와 관련한 기획에 들어갔다. 최초 기획은 3부작 정도로 생각했으나, 여건상 멕시코 현지 취재 한 편에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담았다고 밝혔다.

알려진 대로 멕시코는 1994년 NAFTA 발효 이후 지금까지 자유무역협정이 가져다준 결과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강택 피디는 멕시코 전역을 누비며 NAFTA 이후 멕시코 인민들의 삶의 현장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한다.

KBS스페셜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은 4일(일) 저녁 8시 KBS 1TV를 통해 방영된다. 멕시코 현장을 어떻게 담아왔는지 무척 궁금하다. 한미FTA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모두 시청하길 바란다. 한미FTA 추진에 혈안이 된 '묻지마' 자유무역주의자들도 이날은 정신 차리고 이 방송을 꼭 볼 것을 권한다.


제작 배경과 문제의식

지난 번 남미에서 한 차베스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당시 남미에서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퇴조하고 있는가를 취재한 적 있었다. 작년 말부터 FTAA(전미자유무역협정)가 어떻게 브레이크 걸렸는지를 국내에서 취재하던 중이었는데, 그러다 올 2-3월 경 한미FTA를 추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지 당황스러웠다.

당시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한미FTA 두 가지 중 하나를 집중해서 다룰 생각이었다. 둘 다 제대로 다뤄서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여건상 한미FTA 문제를 택했다. 남미에 가서 보면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현실이 명확하게 보인다. 멕시코도 그럴 거라 해서 FTA쪽을 뚫었다. 평택은 다른 동료들에게 맡겼다. 당시에는 한 3부작 정도로 생각했다. 하나는 멕시코의 사례, 하나는 한미FTA가 우리 사회 각 부문에 미칠 영향, 하나는 한미FTA 문제 종합 등으로 구성하려 했다. 그런데 한미FTA의 심각성과 중요성에 비해 당시 방송사 내부 분위기가 너무나 조용했고 관심 밖이었다. 제작기간과 제작여건 탓에 기획을 규모있게 가져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4월 중순쯤 멕시코를 통해 명확히 보여주자는 것으로 정리했다.

제작 초점

두 가지였다. 도대체 FTA가 뭐냐 라는 거다. 우리가 다 짐작하듯이 FTA는 초국적자본에게 무한한 자유와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개도국의 국민경제가 미국 초국적자본에 의해 부문별로 포섭되거나, 포섭 안되면 배제되는 걸 의미한다. 내국인 대우 문제나 이행의무 금지 문제나 하나하나 놓고 보면... FTA의 결과로서 국민경제 해체 현상을 가장 잘 보이는 곳이 멕시코다. 멕시코의 조건이 한국과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미국과의 FTA가 간다고 했을 때 본질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미국과 FTA를 추진하려는 한국 사회에 엄중한 경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취지를 담았다. 민중의 생존권에 얼마나 심대한 위협을 가져오게 될 것인지... 대다수 민중들이 영원히 배제되는 것인데, 잊혀지는 것인데...

생각만큼 충분히 담았는지

프로그램에서 충분하다거나 완벽하다는 건 없는 것이고, 다만 애초 목적한 바를 보여주는 정도로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 않았나 싶다. 사실 남미 취재는 여러 가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약속을 안 지킨다거나, 국가나 정부가 워낙 권위주의적이라 접근이 어려운 점 등이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짚어야 할 요소는 확실히 짚었다고 본다.

멕시코의 현실은 이미 여러 기고나 자료 등을 통해 상당히 잘 알려져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멕시코 현실을 보는 시각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리 취재팀이 현지에 취재차 머무른 기간이 18일, 국경을 비롯해서 거의 전역을 돌아다녔다. 일단은 전체적인 취재가 되었고, 특정한 부분만 보고 뻥튀기를 하지는 않았다. 현장을 돌면서 멕시코의 모습을 직접 확인했으므로 현장의 생생함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노점상

예를 들어 멕시코 하면 노점상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거의 모든 지하철 역과 가로에 노점상이 있다. 길 양쪽 모두 노점상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걸어다니기조차 어렵다. 말 그대로 노점상 천지다. 왜 이렇게 되었겠나. 노점상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시점이 FTA 시작하는 시점과 비슷하다. 노동자, 농민, 화이트 출신들 다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멕시코에는 실업수당이 없다. 정리해고 당하면 구직활동을 하기 마련이지만 멕시코에는 구직활동을 할 여유가 없다. 자기 있는 것이라도 내다 팔지 않으면 굶어죽을 형편이다.

멕시코 시티 가로에 꽉들어 찬 노점상들. 인도는 노정상들이 점유하고 차도에 사람과 차가 얽힐 정도다.
 홍보 동영상

대통령 궁 옆 골목의 노점상. 4000만 경제활동 인구 중 정규직은 1300만에 불과하다.
 미키

온갖 종류의 돈벌이가 있지만 안정된 직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주차 대행 하고 몇 푼 받거나, 신호등에 차가 서면 광대짓을 해서 팁을 받기도 하고, 유리창 닦기를 해서 돈을 버는데 떼거지로 몰려든다. 아침에 신문 팔고 껌 팔고, 이 사람들이 로타리에 가면 그룹으로 몰려있다. 가족들이 다 나와있다. 멕시코는 초등학교까지만 의무교육이 되어 있는데, 아이들이 학교에 갈 생각을 포기한다. 애들이 길거리에 널려 있다. 일부는 저임노동 현장으로 인입되고... 그러니까 교육이라는 게 학교에서 돈만 안 받는 걸로 되는 게 아니고 가정과 사회 학교 차원의 인프라가 있어야 가능한데 그게 없는 것이다.

장벽과 이민

멕시코 이민 문제는 영화에도 많이 등장하고 워낙 국제적인 이슈이기도 하다. 실제로 장벽에는 수백 개의 희생자 추모 십자가가 있고 십자가마다 이름이 다 써 있다. NAFTA 이후 해마다 숨진 사람들의 숫자가 관에 쓰여 있다. 국경이 장벽을 두고 불과 20미터인 데도 있다. 전자감응장치 등 경비가 삼엄하지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가깝다. 티후아나 시에서는 밤에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경비대와 숨바꼭질을 하고 있더라. 이렇게 국경을 넘은 멕시코 이민 인구가 무려 13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멕시코 국경. 멕시코쪽의 벽은 낮으나 미국 쪽의 벽은 훨씬 높다.
 미키

미국-멕시코 국경(일명 또르띠야 장벽)에 결려있는 십자가. 월경하다 사망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의미. 그 옆의 관에는 연도별 희생자 수가 기록돼 있다.
 미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이 3200킬로미터로 휴전선의 10배에 가까운데, 도시 지역에는 멕시코 쪽 장벽과 미국 쪽 장벽 두 개가 있고 미국 쪽이 높게 되어 있다. 사막 지대에는 철조망만 있다. 접근이 힘드니까. 강 있는 데는 대충 표시만 해놨고. 옛날에는 도시 쪽 장벽을 많이 넘었는데 워낙 통제가 심해지니까 최근에는 사막으로, 물로 향한다. 사막으로 가다 탈수로 많이 죽는다. 낮 기온이 50도를 넘어가니까. 물에서 헤엄치다 죽고, 미국 국경 넘어가다 총에 맞아 죽기도 하고... 이래저래 국경에서 죽는다.

미국 국경의 장벽 근처에서 넘어갈 기회를 엿보는 불법 월경자들
 홍보 동영상

왜 죽음을 무릅쓰고 넘어가겠나. 농촌을 떠나 먹고살려고 마킬라도라로 향한다. 일자리 찾으려고 국경도시로 온다. 일단은 일자리가 있으니까. 그런데 와봤자 노동조건이란 게 사람 살 데가 아니다. 산에다 무허가 판자촌을 지어 산다. 물가는 하늘을 찌른다. 일자리는 없고 인구는 많으니 저임 압박이 생기고... 물론 다른 지역보다 조금 더 받기는 한다. 멕시코 최저임금이 4달러가 조금 넘는데 여기 사람들은 보통 6-8달러 정도 받는다. 그런데 이걸로 생활이 안 되니 당연히 잔업을 하고, 보통 12시간 이상 일 한다. 그렇게 해서 겨우 먹고산다.

티후아나 시에 있는 어느 집을 방문했다. 방 하나에 11명이 모여 살고 있었다. 침대에 애들 셋, 소파 양쪽 두 개 합쳐서 세 명이 자고, 나머지 5명은 한쪽에 세워놓은 메트리스를 깔고 잔다. 물도 안 나온다. 이 사람들 취재하려 했더니 자기 신원은 밝히지 말아달라고 하더라. 그나마 회사에서 짤릴까 봐. 이게 마지막 생존 현장인데 거기서 안 되면 국경을 향하는 거다.

멕시코의 FTA 협상

한마디로 NAFTA는 함정이고 사기극이다. 정부 관료들이 NAFTA가 되면 좋은 일자리가 많아질 것이고 멕시코는 선진국이 된다고 떠들었다. 장벽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거라 했다. 살리나스가 전국을 순회하면서 그렇게 떠들고 다녔던 거다. 88년부터 93년 말까지가 살리나스 재임기간인데, 그때 로드맵 다 추진되었다. 처음부터 농업보조금 없애고 가격지원제도라 해서 비료나 종자나 정부보조 통해 사전정비작업 했다. 멕시코 농민들은 공유지 중 일부를 불하받는 권리를 갖고 있었는데 90년대 초반에 이 법도 다 바꿔버렸다.

빼앗긴 공유지를 돌려달라고 한달이 넘게 멕시코시티 레포르마 대로에서 나체 시위를 벌이고 있는 베라크루스 주의 농민들. 그들의 절박함을 상징한다.
 홍보 동영상

NAFTA 홍보 팜플렛 만들어서 살포하고, 티비 공익광고 때리고, 학자들 시켜서 각종 통계 왜곡하고 온갖 짓거리 다 했다. 미국이 옥수수는 요구안에 포함을 안 시켰는데 멕시코 정부는 협상하면서 알아서 다 챙겨주었다. 미국과 멕시코가 협상한 게 아니라 미국끼리 협상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미국 가서 공부하고 온 애들이 그렇게 헌납 짓거리를 한 거다. 미국은 보조금 문제 나오면 일체 말도 못 꺼내게 했다. 미국은 민간품목 등 14개를 모두 관철시켰지만 멕시코가 인정받은 건 불과 3개에 불과했다.

협상은 일체 비공개로 진행됐다. 기업가 중 일부가 협상 보좌 비슷하게 해서 같이 결합시키고, 내용이 확정될 때까지 아무한테도 오픈하지 않았다. 그러다 국회 비준 일주일 전에 산더미 같은 협상서류들을 갖다주더라는 거다. 그때가 92년인데 국회는 검토할 시간도 없었고 집권당인 제도혁명당이 다수여서 거수기로 통과시켜버렸다.

협상 후에도 엉망이었다. 이건 뭐 나라도 아니더라. 미국이 옥수수를 15년 동안 물량을 일정하게 늘리고 관세도 단계적으로 줄이는 것으로 협상했다. 양을 넘어서면 할당관세를 물리기로 한 거다. 그런데 카길이 물량을 쏟아 붇는데 멕시코는 할당관세를 안 물렸다. 멕시코 식품가공업자들에게 이득이 되니까 그냥 다 받아준 거다. 나라꼴이 어떻게 되었겠나.

농촌

마초아칸 주의 파닌디쿠아로 라는 농촌을 들렀다. 마을 입구부터 농토가 버려져있다. 마을이 휑하다. 유령 마을이 따로 없다. 농촌 마을 대부분이 그렇다. 한 집에 가봤더니 노인네가 손주 데리고 살고 있더라. 아들 셋이 다 미국에 가있다고 했다. 불법이민 한 거다. 아예 경작해서 못 먹고사니까. 미국 가서 남부농장지대나 건설 현장에서 허드렛일 하면서 돈을 보내주면 그걸로 먹고산다.

파닌디꾸아로 농촌마을의 폐가. 미국 옥수수의 대량 유입으로 NAFTA 이후 멕시코 농민의 1/3이 떠났다.
 미키

농촌 현장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입구부터 빈집이고, 떠난 지 오래된 집도 있고, 어떤 집은 멀쩡한데 문마다 자물쇠 잡초 무성하고... 자동차는 대부분 바퀴가 빠져있다. 못 가져가니까 훔쳐가지 못하게 해놓은 거다.

영화

까를로스 까레라 라고 골든글로브, 아카데미, 칸 황금종려상 받은 천재감독이 있는데, 90년에 데뷔작 발표한 후 지금까지 17년동안 영화 겨우 4편 만드는 데 그쳤다. 영화 만드는 족족 상을 받았던 감독이다. 그런데 멕시코는 지금 이 감독에게 영화 만들 기회를 안 준다. 영화산업의 인프라가 다 무너졌기 때문에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까를로스 감독은 먹고살기 위해 광고제작을 택하고 만다. 1년에 자기 영화 두 편만 만들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다고 한다. 지금도 미국 헐리우드에서 연출 제의가 숱하게 들어오지만 거부한다고 한다. 영화가 나라의 정체성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감독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정말 버틸 수 있을까...

문닫은 멕시코인 소유극장. 헐리웃 영화를 직배하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밀려 폐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홍보 동영상

멕시코 전역에 공공기금의 보조를 받아 운영되는 극장이 조금씩 있었는데 이것도 최근 없어졌다. 예산부족으로 폐쇄하라는 건데 배경에 미국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가 있었다. 잭 발렌틴 회장이 횡포를 부린 거다. 멕시코에는 영화감독 해서 먹고사는 사람이 없다. 대부분 대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광고, 티비 방송 등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겨우 먹고산다. 이 사람들이 영화관람료 중 1페소씩 걷어 국산영화기금으로 쓰자고 영화인과 정치인들과 법제화를 추진했는데 이게 한 방에 정리되어 버렸다. 2003년 쯤 잭 발렌틴이 국산영화기금 운동 하지말라고 주장하자 맥시코 정부가 나서서 이 운동을 탄압한 거다.

수출, 외자

FTA 추진론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그렇다. 수출이 3배 이상 늘었다고 말한다. 맞다. 그런데 수출 1위부터 4위까지 모두 미국의 빅3가 다 챙겼다. 5위가 멕시코 석유회사, 6위가 휴렛팩커드... 마킬라도라가 멕시코 수출의 절반을 차지한다. 대부분 조립가공인데 들여다보면 멕시코 국내 부품 소재 사용은 3%에 불과하다. 수출이 는다는 건 미국 회사의 수출이 는다는 이야기다. 본국 본사와 현지 법인 사이의 거래일 뿐인데 이걸 수출 통계로 잡으니 수출 증가라는 말이 되는 거다. 멕시코 부품 소재가 3%밖에 안되므로 따지자면 멕시코 경제에 남는 건 3%와 노동자들이 받는 노임뿐인 셈이다. 더군다나 국내 제조업 부문을 보면 마킬라도라를 포함해서 일자리가 15% 이상 줄었다. 농업을 빼고 제조업 분야만 봐도 그렇다. 수출 증대 숫자가 가지는 외형적 수치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멕시코 금융은 95% 정도가 외국계에 장악되어 있다. 멕시코 기업에는 대출을 아예 안 해준다. 한 회사가 망하면 연계된 회사가 망하니 연쇄 도산하는 일이 숱하게 벌어진다. 그러니까 마킬라도라 이야기하고 수출 늘었다고 떠드는 게 국민경제 차원에서 보면 얼마나 허구적이겠는가.

외자도 그렇다. 외자가 네 배 정도 늘었다. 그런데 외자 들어오면 포트폴리오 투자에 집중하지 회사를 만들거나 공장을 짓거나 하지 않는다. 기존 회사 중에 수익성 날 만한 것은 선별해서 인수합병해 버린다. 경제 외형은 소유주가 바뀔 뿐 그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 노동자들은 대폭 정리해고 시킨다. 기존 생산 거래선은 외자 소유의 계열사로 돌려버린다.

예를 들어 월마트는 멕시코 현지 유통 1위인데, 지금까지 있으면서 단 하나라도 월마트 매장을 새로 만든 게 없다. 다 멕시코 유통회사 지점들을 인수한 것이다. 그것도 쓸만한 것만. 외국인투자가 늘었다는 말이 웃기는 게, 98년인가 멕시코 최대은행인 바나맥스 은행을 시티그룹이 인수하는데 인수대금이 125억불인가 그랬다. 이걸 놓고 외국인투자가 엄청 늘었다고 홍보했다. 은행이 외국인에게 넘어간 건데 외자 투자로 잡는다.

민영화

멕시코의 공기업 민영화는 80년대부터 추진되어왔다. 그러니까 NAFTA 체결되면서 민영화가 현저하게 늘거나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이런 흐름을 강화한 건 분명히 있다. 예를 들면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통신회사인 뗄멕스라든지 도로 등이 민영화되어 있다.

웬만큼 버는 사람은 휴대전화 한다는 생각을 못한다. 서민은 없고 중산층도 요금 부담 땜에 수신 전용으로만 쓰거나 한다. 배겨날 수 없으니까. 휴대전화 가지고 있고 전화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신분을 표현하는 데 이르렀다.

멕시코의 길은 생각보다 잘 뚫려 있다. 그런데 그 길을 따라 지방으로 이동하다 문득 의문이 들곤 했다. 취재 차량 외에 도로에 차가 잘 안 보이는 거였다. 이유인즉 도로가 민영화된 지라 통행요금이 엄청나게 비싸 서민들은 전혀 이용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 도로는 기업과 부자를 위한 인프라일 뿐 공공성 성격은 하나도 없다. 서민들은 대부분 좁은 국도로 다닌다.

신흥상업지구 산타페의 전경. 1700여 개 다국적 기업 현지법인이 입주해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도시를 연상케 한다.
 니키

공공성을 갖는 공공재는 찾아보기조차 어려웠다. 빈민 지역에 가면 전기 가스 등 기본적인 것조차 안 들어온다. 그러니 전기를 불법적으로 몰래 끌어와 쓰는 일이 다반사다. 국민소득 5-6천불 수준인데도 구매력 수준은 세계 80위에 머물러 있다. 카를로스 슬림은 세계 3-4위 정도 규모다. 그러면서도 세계 100대 부자에 12명이나 들어있다. 80년대 민영화 과정에서 특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멕시코 최대 제빵기업 빔보, 코로나 맥주회사, 유리회사 비트로, 시멘트회사 세멕스 같은 기업들, 이들 기업들만이 FTA로 막대한 이득을 본 거다.

메탈클레드

충격이었다. 현장은 산 루이스 포토시 주에 속한 과달까사르라는 마을인데 미국하고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다. 도로망이 비교적 잘 연결되어 있는 산지다. 멕시코의 동북지방 국경에서 가까운 산 안에 있는 분지 같은 마을이다.

메탈클래드사가 산루이스포토시 주에 설치한 폐기물 처리장. 현재 폭발 및 오염확산을 막기 위해 멕시코 정부 예산으로 안정화 작업 진행 중이다.
 홍보 동영상

멕시코의 코테린이라는 업체가 여기에서 워낙 폐기물 처리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메탈클레드가 이를 인수했다. 메탈클레드는 미국에서 석면 처리를 하던 크지 않은 회사였다. 그러다 메탈클레드가 미국의 각종 산업폐기물을 멕시코에서 처리하는 사업기회를 얻었다. 입지 선정에서 그 지역을 고르고, 금융시장 투자자로부터 펀딩을 받아 이곳으로 들어왔다.

멕시코는 건축허가 때 연방정부 허가, 주정부 허가, 그리고 최종 지방정부가 건축허가를 내게 되어 있다. 메탈클레드는 연방정부, 주정부 허가는 받았지만 지방정부 허가를 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코테린 사로부터 사업권을 사서 합작을 했다. 여기에 학교도 짓고, 병원도 짓고, 건물은 창고로만 이용한다고 사기를 쳤다. 현지 고용 창출 효과 선전까지 곁들이며 주민들을 속이고서 대규모 산업폐기물 매립을 시작했다.

이 지역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데 산 너머 인접 마을에서 암환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갔던 마을에는 과달까사르에는 1200명 정도가 모여 사는데 여기서 1993년 이후 암환자 23명이 발생했고 사망했다. 기형아가 태어나기 시작하고, 척추가 갈라지거나 무뇌아가 태어나기도 했다. 그린피스가 현지조사를 한 결과 지하수맥이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산 너머 반대 마을과 지하수가 통해있었던 거다.

반대운동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지방정부도 눈치를 보게 되었다. 결국 주민 압력에 밀려 생태보호구역으로 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메탈클레드가 온갖 공작을 폈다. 미 대사관 직접 전화하고 압력 넣어서 이런 식으로 하면 미국투자 다 끊는다고 압박했다. 뇌물 작전 펴고 주정부 주지사 선거에 개입하고. 그러다 주정부 관료들의 뇌물 사건이 폭로되기도 하고. 결국 최종적으로 택한 수단이 NAFTA 협정 11조였다. 멕시코 정부가 안 해줘서 수익을 못 냈다며, 미국 기업이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버린 것이다. 11조에 따라 불법적인 사업을 펼치다가 주민의 반발로 사업을 못하게 되자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멕시코 정부는 1650만 달러를 배상하는 일이 벌어졌다.

기업과 멕시코 정부가 결국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멕시코 사람들의 생존의 권리이자 공적 규제조차 완전히 무력화되어버린 것이다. 처음 NAFTA 협상에서 이 조항 넣을 때 누구도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원칙적이고 추상적인 조항인 줄만 알았지, 막상 구체적인 사건으로 현실화되고 보니 협상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지 실감하게 된 것이다.

멕시코의 명과 암, 그리고 한미FTA는

멕시코가 시사하는 것은 미국과 중진국 내지 개도국과의 최초의 비대칭적 FTA라는 건데, 핵심이 뭐냐면 비교열위에 있는 나라는 미국자본에 다 포섭된다는 거다. 멕시코 국민경제는 해체되었고, 민중의 생활은 파탄 났다. 멕시코에는 한마디로 국면경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FTA가 개도국의 국민경제를 해체하는 프로젝트란 걸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재주 있으면 이야기해도 좋다. 한미FTA가 추진될 시 멕시코 사례와 어떤 점이 다를 게 있다는 건지.

방영을 앞둔 소감

지난 5.1일 소칼로 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연설하는 마르꼬스 사파티스타 부사령관
 홍보 동영상

프로그램 후반부에서 강조하는 것도 그런데 FTA에서 영향권 밖에 있는 것이란 없다. 모든 개인의 삶을 규정하고 바꿀 것이다. 논리적으로 FTA가 어떤 파탄을 초래할 것인지 국민적 공감을 크게 형성하기 어렵고, 또 한미FTA 반대 진영이 이를 실천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지 않나 싶다. 이번 프로그램이 FTA를 실체를 돌아보는데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론인으로서 소명감을 갖고 만들었다. FTA의 진실을 가리는데 작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지난 번 차베스 인터뷰 이후 공격을 좀 받은 적 있는데 이번에 또 소동이 일어날 지도 모르겠다. 물론 휘둘리지 않을 테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평교사 ‘교장 공모제’ 내년 364개 학교서 시행
교육혁신위 합의안…근평제도 다면평가로
한겨레 허미경 기자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 교원특위(교원정책개선 특별위원회)가 교장 자격증이 없는 평교사도 응모할 수 있는 ‘보직형 교장 공모제’를 추진한다.

교육혁신위 교원특위는 지난 27~28일 열린 워크숍에서 근무평정제(근평제)를 대폭 개선한 교원 승진제와 함께 보직형 교장공모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교원 승진제도 개선 합의안’(시안)을 마련하고 2일 회의를 거쳐 최종 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교원특위 합의안(시안)을 보면, 교장 공모에는 교장(교감) 자격증이 없어도 일정 경력 요건을 갖춘 평교사가 응모할 수 있다. 이는 공모제 학교에서 기존 교장 자격증제가 폐지되고 사실상 교장 보직제가 시행되는 것을 뜻한다. 시행 첫해에는 전국 182곳 지역 교육청별로 두 학교 이상씩 364곳에서 2년 동안 운영되며, 2년 뒤에는 점차 확대된다. 공모제 시행 학교 364곳은 매년 새 교장 임용 규모(1500명)의 26%에 이르는 규모다.

교장 공모제 시행 학교의 경우 현행 교장(교감) 자격증제에 따른 교감직을 두지 않고 부교장을 ‘보직’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했다. 교장 공모제 학교에는 ‘대교사제’도 도입된다. 대교사의 권한과 직위 등 대교사의 소임은 그동안 교총이 요구해온 수석교사제와 전교조 한편에서 제기해온 전문교사제 방안을 고려해 별도로 논의할 예정이다.

교장 공모제 도입은 교장이 아닌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가 학부모 총회를 통해 동의를 얻은 뒤 시·도교육감에게 신청하도록 했다. 공모교장 임용 심사도 학운위가 담당한다.

시안은 특히 현행 교원 승진제와 교장 자격증제의 뼈대인 근평제를 대폭 개선해 현행 교장·교감의 근무성적 평정 배점 비율을 낮추고 동료 교사들이 참여하는 다면 평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혁신위는 이달 중순께 혁신위 본회의에서 교원특위의 합의안을 검토한 뒤 이달 말까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교장 공모제가 시행에 이르기까지는 혁신위 본회의와 대통령 보고 외에도, 국회 입법 과정 등이 남아 있어 이 과정에서 교장 자격증제 폐지, 근평제 개선 등을 둘러싸고 교육계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혁신위 한 관계자는 “국회 입법에 이르기까지는 올 연말까지 많은 부침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안에 입법이 이뤄진다면 이르면 내년 3월부터, 늦어도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위는 교육부가 지난해 말 마련한 ‘교원승진 및 교장 임용 제도와 교원양성·연수체계 개선안’을 토대로 지난 1월부터 부산 등 6대 도시 토론회를 여는 등 교장제·승진제 개선 공론화 과정을 거쳐왔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e Blue Hearts リンダ.リンダ(린다린다)

ドブネズミみたいに美しくなりたい
도부네즈미미타이니 우츠쿠시쿠나리타이
생쥐처럼 멋져지고 싶어

写真には写らない美しさがあるから
샤신니와 우츠라나이 우츠쿠시사가 아루카라
사진에는 없는 멋이 있으니까

リンダリンダ リンダリンダリンダ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リンダリンダ リンダリンダリンダ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もしも僕がいつか君と出会い話し合うなら
모시모 보쿠가 이츠카 키미토 데아이 하나시아우나라
만약 내가 언젠가 너와 만나서 이야기하게 되면

そんな時はどうか愛の 意味を 知って下さい
손나 토키와 도우카 아이노 이미오싯테쿠다사이
그럴 때는 부디 사랑의 의미를 알아줬으면 해

リンダリンダ リンダリンダリンダ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リンダリンダ リンダリンダリンダ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ドブネズミ みたいに 誰よりも やさしい
도부네즈미 미타이니 다레요리모 야사시이
생쥐처럼 누구보다도 상냥하게

ドブネズミ みたいに 何よりもあたたかく
도부네즈미 미타이니 나니요리모 아타타카쿠
생쥐처럼 무엇보다도 따뜻하게

 リンダリンダ リンダリンダリンダ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リンダリンダ リンダリンダリンダ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もしも 僕がいつか 君と 出会い 話し 合うなら
모시모 보쿠가 이츠카 키미토 데아이 하나시 아우나라
만약 내가 언젠가 너와 만나 이야기하게 되면

そんな 時はどうか 愛の 意味を 知って下さい
손나토키와 도우카 아이노 이미오 싯테쿠다사이
그럴 때는 부디 사랑의 의미를 알아줬으면 해


愛じゃなくても恋じゃなくても君を離しはしない
아이쟈나쿠테모 코이쟈나쿠테모 키미오하나시와시나이
애정이 아니더라도 연애가 아니더라도 너와  헤어지지 않아

決して負けない強い力を僕は一つだけ持つ
켓시테마케나이 츠요이치카라오 보쿠와 히토츠 다케모츠
절대 지지않는 강한 힘을 나는 유일하게 가지고 있어

リンダリンダ リンダリンダリンダ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リンダリンダ リンダリンダリンダ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リンダリンダ リンダリンダリンダ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リンダリンダ リンダリンダリンダ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リンダリンダ リンダリンダリンダ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リンダリンダ リンダリンダリンダ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린다린다 린다린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e Blue Hearts 終わらない歌(끝나지 않은 노래)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クソッタレの世界のため
오와라나이우타오우타오- 쿠솟타레노세카이노타메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빌어먹을 세상을 위해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全てのクズ共のために
오와라나이우타오우타오- 스베떼노쿠즈도모노타메니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모든 쓰레기들을 위해서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僕や君や彼等のため
오와라나이우타오우타오- 보쿠야키미야카레라노타메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나, 그대, 그리고 그들을 위해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明日には笑えるように
오와라나이우타오우타오- 아시타니와와라에루요-니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내일은 웃을 수 있도록

世の中に冷たくされて 一人ボッチで泣いた夜
요노나카니츠메타쿠사레테 히토리봇치데나이타요루
세상에 차갑게 대해져서 외톨이인 채로 울었던 밤

もうだめだと思うことは 今まで何度でもあった
모-다메다토오모-코토와 이마마데난도데모앗따
이제 틀렸다고 생각한 적도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지

眞實の瞬間はいつも 死ぬ程こわいものだから
신지츠노슝캉와이츠모 시누호도코와이모노다까라
진실한 순간은 언제나 죽을 만큼 무서운 법이니까

逃げだしたくなったことは 今まで何度もあった
니게다시타쿠낫따코토와 이마마데난도모앗따
도망치고 싶어진 적도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어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クソッタレの世界のため
오와라나이우타오우타오- 쿠솟타레노세카이노타메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빌어먹을 세상을 위해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全てのクズ共のために
오와라나이우타오우타오- 스베떼노쿠즈도모노타메니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모든 쓰레기들을 위해서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僕や君や彼等のため
오와라나이우타오우타오- 보쿠야키미야카레라노타메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나와 그대와 그들을 위해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明日には笑えるように
오와라나이우타오우타오- 아시타니와와라에루요-니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내일은 웃을 수 있도록

なれあいは好きじゃないから 誤解されてもしょうがない
나레아이와스키쟈나이까라 고카이사레떼모쇼-가나이
한통속이 되는 건 싫으니까 오해받아도 어쩔 수 없어

それでも僕は君のことを いつだって思い出すだろう
소레데모보쿠와키미노코토오 이츠닷떼오모이다스다로-
그래도 당신만큼은 언제라도 생각나겠지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クソッタレの世界のため
오와라나이우타오우타오- 쿠솟타레노세카이노타메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빌어먹을 세계를 위해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全てのクズ共のために
오와라나이우타오우타오- 스베떼노쿠즈도모노타메니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모든 쓰레기들을 위해서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僕や君や彼等のため
오와라나이우타오우타오- 보쿠야키미야카레라노타메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나, 그대, 그리고 그들을 위해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明日には笑えるように
오와라나이우타오우타오- 아시타니와와라에루요-니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내일은 웃을 수 있도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