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20 15:16
투덜양, <브로큰 플라워>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태도를 배우다

2006년의 태양이 저만치 중천에 올랐고 개띠해를 맞이해 개같이 살자(좋은 말이다, 충직, 정직 이런 거)는 구호가 여기저기서 메아리치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브로큰 플라워>가 좋다. 비문임에도 이렇게 쓴 이유는 <브로큰 플라워>가 새해가 돼도 여전히 게으른 나의 태도와 무계획에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영화 같아서다.

내가 이 영화를 내 인생의 알리바이라고 보는 이유는 <브로큰 플라워>가 ‘엎어치나 메치나 흐르는 게 시간’이라고 이야기하는 영화로 보였기 때문이다. 뭐 새삼스런 진리도 아니지만 이 영화처럼 너저분한 부연설명없이 이 만고의 진실을 말해주는 영화는 못 본 것 같다.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가진 것은 현재뿐이다.” 자주 인용되는 영화의 이 대사는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식의 계도성 코멘트가 아니다. 사실 현재란 건 없다. 돈 존스턴이 ‘어쩌면 아들’에게 이 말을 하고 나면 이 말은 과거가 되고 그에 대해 아직 나오지 않은 응답은 오지 않은 미래일 뿐이다. 돈 존스턴식으로 인생을 말하면 산다는 건 미래를 과거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인생은 나그네길식의 허무주의 해석조차도 필요없는 게 인생이다.

돈은 왜 여행을 떠났을까. 처음에 나는 그게 궁금했다. 애인이 떠나도 소파를 뜨지 않던 그가 갑작스런 아들 타령에 직접 확인하지도 않은 아들의 엄마를 찾아 떠난다는 게 웃기지 않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찾아와도 “나 그때 콘돔 썼다”고 한마디하면, 아니 빌 머레이의 그 무표정으로 한 10분만 현관 앞에 버티고 서도 자연히 해결될 일 아닌가.

미스터리한 편지뿐 아니라 친구 윈스턴의 독려도 핑계일 뿐이다. 그런데 그 핑계가 중요하다. 그는 핑곗거리를 찾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의 신발끈을 조이게 하는 건 거창한 명분이나 이상이나 호기심이 아니라 그저 사소한 핑곗거리가 아닐까. 돈이 아무리 카우치 포테이토지만 소파에 누워 있다 죽는 인생은 너무 지루하지 않나. 그렇다면 핑곗거리를 찾을 수밖에.

돈의 여행은 예측대로 진행된다. 옛날 여자들은 돈을 기억하고 때로는 섹스로 환대받기도 했지만 그래봤자 지금 그녀들은 돈 존스턴을 돈 존슨이라고 알아듣는 꽃집 아가씨와 별 다를 게 없다(그가 만나는 여자 중에 가장 따뜻한 목소리를 건넸던 건 바로 꽃집 아가씨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추억의 단서’들은 시든 꽃처럼 후줄근할 뿐이고 자신의 이름을 되뇌면서 찌질한 배우 돈 존슨을 떠올리는 사람들 사이를 헤엄쳐가야 하는 게 그의 여행이고 현재다.

새해계획 따위 웅대하게 세워도 네 이름을 김은형이라고 기억하는 사람보다는 김은영이나 심지어 김음형이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며 네 인생에 필요한 건 작은 핑곗거리라고 <브로큰 플라워>는 내게 속삭여준다. 그래서 나는 올해도 내 이름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살고자 한다. 너무 원대한가?

 
글: 김은형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오랫만에 재밌게 본 영화였다. 요즘 영화들은 너무 잘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딱 정해진 감동을 준다는 느낌이다. 감정도 배경음악으로 몰아가고 누구나 똑같은 느낌을 안고 나오는 영화. 다 보고 나면 잘 만들고 감동적이긴 한데 뭔가 허한 느낌? 너무 잘 차려진 밥 먹고 나면 맛있긴 한데 뭔가 아쉬운 것처럼.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좀 남달랐다.

 

사실 처음엔 잔뜩 긴장했다. 한 턱 쏠 일이 있어서 아는 언니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기로 했는데 그들이 고른 영화가 <브로큰 플라워>였다. 오랫만에 씨네큐브에서 예술영화 좀 보지 뭐 하고 갔는데 막상 감독 이름을 보니 오~ 짐 자무쉬. 이 영화 보다가 조는 거 아냐, 할인도 안 돼는 비싼 영화비!!! 하며 극장을 들어갔다. 영화는 쓸쓸한 듯 하면서 경쾌한 음악으로 시작했다. 음... 시작은 괜찮은데.. 아냐 이러다 관객들을 잡아먹을 거야--; 그러나 영화가 10분쯤 지났을 때 옆에 언니가 '이거 졸 거 같지는 않은데?'라고 말했고 나도 안심하며 동의했다. 그리고 영화는 끝까지, 인생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듯 하다가도, 우리나라 뽕짝 같은 이디오피아 음악을 깔며 코믹한 장면을 보여주기를 반복하며, 제법 괜찮은 영화로 막을 내렸다. 물론 설마 하는 순간에 엔딩을 알리고 출연진 자막을 올림으로써 관객을 어이없게 하는 예술영화 감독의 센스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이없음도 즐거웠다. ㅎㅎ 뻔한 결말을 보여주는 것보다 원래 인생이 그런 거 아니겠어 하는 식으로 결말 같지 않은 결말을 던져주는 게  말이다.

 

영화 끝나고 같이 본 언니는 "야, 이 감독이 나이 들더니 코미디 영화를 만드네~"라며 즐거워했다.  나 역시 공감. 그리고 내가 즐거웠던 거 두 가지를 더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단순한 거짓말 하나로 이렇게 영화 하나를 만들 수 있는 그 이야기의 힘. 함께 살던 여자가 떠나는 날 남자에게 배달된 편지 한 통, 그 안에 당신에게 20년 전 태어난 아들이 있소 하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 있었다. 그러나 보낸 사람 이름도 없다. 옛날에 사궜던 그 많은 여자들 중에 애 엄마가 누군지, 사실은 그 편지 내용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른다. 연인이 떠나며 복수심에 장난친 걸 수도 있다! 이런 설정 하나로 영화 하나가 만들어지다니 대단하다^^

 

그리고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가 즐거웠다. 빨리 반응하고 빨리 행동하는 게 아니라 그저 덤덤하게 느끼고 덤덤하게 반응하는 것이 좋았다. 관객에게 너무 빨리 감정이입을 요구하지 않고 현실에서 느끼고 반응하듯 그렇게 덤덤하게. 같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나는 이렇게 너는 저렇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여백을 담고 있는 영화였다. 그래서 맘에 든다. 시간이 흘러 한 번 더 보면 그때는 또다른 감흥으로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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