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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을 기다리며 - 개정판
마사 베크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제목은 여러 번 들었다. 그런데 제목에서 아무런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안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녹색평론>에서 실린 서평을 읽고 책이 읽고 싶어져, 서평에 한번 속는 셈치고 책을 구입했다. 솔직히 서평은 참 주관적인 것으로 서평 읽고 감동 받아서 책 봤다가 이게 아닌데 하는 경험도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받고 보니, 빡빡한 본문에 글 양이 엄청나다. 나는 얘기가 긴 것, 말이 많은 것에 약한데... 속았다.
앞부분을 읽어보다가 손들고 얌전히 책을 놓아두었다. 그러다 읽을 책이 없어 다시 읽다가 뒀다가 하다가 어느 부분을 넘어서고 공감하는 내용이 하나 둘 나타나자 이 사람의 얘기가 궁금해졌다. 마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져서 계속 읽게 됐고, 하여 읽지 못할 것 같은 책을 결국은 다 읽게 됐다. 야호 내가 다 읽었다!! 그리고 감동 먹었다.
마사가 겪은 신기한 일들, 그 순간의 어리둥절함 그러나 점차 평온해진 마음, 어느 순간 온 세상이 달라 보이는 느낌, 이 세상을 사는 일이 어렵거나 두렵지 않고 편안하게 세상에 존재하게 되기까지 나는 그녀와 함께 걱정하고 놀라고 두려움에 떨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사가 뱉어내는 길고 많은 문장들 속에서 문득 문득,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 마음 한 구석에 따뜻해지는 느낌을 여러 번 가졌다.
이 책에 대한 소개글에는 ‘완벽하고 이성적인 하버드생이 모호하고 애매한 영혼을 믿게 되면서~’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하버드생뿐만 아니라 우리 대부분은 ‘이성적으로’ 살도록 키워졌다. 똑똑한 아이로, 논리적이고 틀림이 없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교육받고 커왔다. 그래서 감정을 토로하고 누군가에게 기대는 일이 쉽지 않다. 자기도 모르게 언제나 ‘유능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산다.
나의 경우, 실수를 두려워하는 일이 그 예다. 나는 남들 앞에서 실수를 하면 갑자기 내 주위가 빙 도는 듯한 느낌이 들고 쩔쩔맨다. 남들이 ‘그냥’ 실수라고 여기는데도 나는 큰 잘못을 한 것으로 여겨지고 그 순간의 긴장이 내 속에 불편하게 남아 있다. 또 하나, 나는 남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잘 못한다. 왜? 글쎄 왜 그럴까? 내가 무능하다는 느낌이 들어 싫은 걸까? 하여간 그 말을 하는 게 참 어렵다. 요즘은 좀 나와져서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만 영 자연스럽지가 않다. 실수를 두려워하고 도와달라는 말을 잘 못하고 그러다보면 사는 일이 참 힘들다. 산다는 게 뭘까? 왜 이리 힘들까?
“우리의 짧고 덧없는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고립된 자신을 벗어나 손을 뻗쳐 서로에게서,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 힘과 위안과 온기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이것이 인간이 하는 일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사는 것이다. 말이 달리기 위해 사는 것처럼.”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렇다. 마사는 임신한 아이가 다운증후군임을 알게 된 뒤 아이를 중절시켜야 하느냐를 놓고 남편과 말다툼을 한다. 남편은-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듯이- 만일 아기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태어난다면, 아기의 고통을 연장시키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마사는 격한 감정이 지나가고 잠시 눈을 감고는 “그런데, 사람이 하는 일이 뭐지?” 하고 묻는다. 질문을 하고도 마사는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고 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서로 너무 지쳤다. 지친 마사는 남편에게 기대어서 그의 품이 포근하고 따뜻하다고 느끼다가 그 순간 위의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사람이 왜, 무엇 때문에 살까?’ 하는 의문은 삶이 힘들 때마다 내가 늘 묻는 질문이다. 이런 저런 답을 대보지만,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 구절을 읽고 나는 참 기뻤다.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마사는 아담을 임신한 동안 많은 ‘기적’이라 부를 만한 일들을 경험하며 생각이 바뀌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그리고 삶이 달라진다. 주위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함께 사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럴 때 세상은 어제와 똑같은 모습이라도 다르게 보인다. 마사의 표현대로, 낯익은 건물들과 낯익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걸어도 온 우주가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 때 '아, 내가 살아있구나, 사는 게 이런 맛이구나!'싶었던 경험들이 있을 거다. 이 책을 읽다가 그런 맛을 느낄 수 있다. 오랜만에 감동을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