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읽은 <내 짐은 내 날개다> 출간에 얽힌 가슴뛰는 기사를 봤다.
작가의 그림을 우연히 보고 한눈에 반해서 자기 돈을 털어 자서전을
내주었다니... 이렇게 가슴뛰는 일이...
반한다는 것, 어떤 것에 대해 아무런 의심없이 자신을 여는 그 순간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온존재로 느끼는 순간, 아!
작품에 반해 작가 자서전 다시 내줘
한솔문화재단 대리인 권준성(34·(右))씨는 3년 전 강원도 문막 오크밸리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고 무릎을 쳤다. 마치 유치원생의 그림 같은 글라스의 문양이 탁 트인 자유로움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그 작품의 작가는 재독(在獨) 여성화가인 노은님(58·(左)) 함부르크국립예술대 교수였다. 첫눈에 그의 작품세계에 반한 권씨는 함부르크 출장 길에 일면식도 없는 노씨의 화실을 찾는 용기를 냈다.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7년 전 출간된 노씨의 자전 에세이 『내 고향은 예술이다』(동연)를 읽은 그는 '음모'를 꿈꾸기 시작했다. "이렇게 좋은 메시지라면 내 돈으로라도 다시 출간해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해서 '노은님 서울전(16일까지, 갤러리현대)'에 맞춰 신간 『내 짐은 내 날개다』(샨티)가 나왔다. 전시 개막 때 뜻밖의 책을 증정받은 노씨는 황공한 표정이었다. 어눌한 표정과 말씨 때문에 '보살'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그는 "권선생님, 할 말이 없습니다"라는 서명으로 자기의 마음을 전했다.미술평론가 유경희씨는 "기업 차원에서 작가를 후원하는 것도 흔치 않은 세상이다. 그런데 권씨의 경우는 개인의 '쌈짓돈 패트론십'이라는 새 차원을 열었다"고 말했다. 권씨가 책 출간에 들인 돈은 1500만원. 연봉 3000만원의 회사원에겐 큰 돈이다. 그럼에도 그는 "장가 밑천을 날렸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마음을 얻었으니 너무 좋다"고 싱글벙글이다. 권씨는 조연호 건국대 교수, 사진작가 정규호씨 등을 끌어들여 '노사모(노은님의 그림을 사랑하는 모임)'를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미술애호가를 자처하는 그는 사진가 황규태와 화가 임옥상을 좋아하며, 주말마다 화랑 나들이를 즐긴다고 한다.노씨는 유럽 화단에서 '동양의 명상과 독일의 표현주의가 만나는 다리'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거물이다. 비디오예술가 백남준씨도 "독일에 훌륭한 작가가 있다"며 그를 칭찬한 바 있다. 노씨는 1970년 간호사로 독일에 건너가 화가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기도 하다.조우석 기자 wowow@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