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빛
강운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강운구 님의 사진은 예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을 삼부작'이라는 작품을 보고 알게 되었다. 정부의 정책에 의해서 또는 도시로 떠나버린 사람들에 의해서 사라져가는 마을을 기록으로 남긴 사진들이 인상적이기도 했지만, 사진집 앞에 쓴 머리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강운구의 사진집을 또 만나고 싶었다.

이번 사진집에는 '빛'을 담은 사진들이 인상적이었다. 햇빛을 받은 연두빛 찻잎이나 황금빛 보리 등등, 맛보기로 보여진 사진들에 반해서 덜컥 사진집을 주문해버렸다. 나도 사진을 가끔 찍곤 하는데 어떻게 같은 사물을 두고도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하는 질투심과 부러움이 마구 솟구쳤다^^

책을 받아 더 많은 사진들을 보니, 어쩜 이리도 빛을 요리조리 잘 다뤄서 마치 그림 그리듯 사물을 담아낼까 신기했다. 사진으로는 감정을 표현하기 힘들다고 하나, 강운구의 사진에는 자신이 느낀 감정이 잘 담겨 있는 듯 하다. 나는 사진을 찍고 나서 찍을 때의 감정은 사라져버리고 구도에만 신경쓴 빤한 사진이 된 듯하여 실망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구도를 잘 맞춘 풍경사진, 그 이전에 멋진 풍경, 유명한 풍경이 사실 나에게 별다른 감상을 주지 못할 때가 많다. 어느 순간 우연히 마주친 어떤 풍경에 마음을 뺏길 때가 있는데, 바로 내 심정을 나타내 주는 풍경일 때 그렇다. 그런 심정이 잘 나타나 있는 사진들이다. 이번 책에서는 그림자를 과감히 이용하여 화사함을 더욱 강조한 사진이 특별했다. 시커먼 나무 가지 사이사이로 봄날 화사한 매화꽃 무더기를 찍은 사진이 참 새로웠다. 사진 찍을 때 그림자가 안 지게 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림자를 이용하여 밝은 것을 더욱 밝게 강조하는 사진이라니!! 사진에 대한 새로운 시각 하나를 얻었다.  

봄 햇살 아래 몽롱한 매화꽃길, 여름 소나기 사이의 햇빛, 비 온 뒤의 안개 속 숲, 가을걷이을 한 들판, 또롱한 감과 감잎 하나, 사나흘 눈 내리는 설경, 솜털 보송보송한 버들 강아지 등등 우리 산천을 바라본 사진가의 시선을 오롯이 담아낸 사진들과 함께 조금은 냉소적이면서도 특유의 맛이 있는 글을 읽으며 재밌게 책을 읽었다.

그런데 두 페이지에 걸친 전면 사진들 때문에 글이 끊기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그게 좀 거슬렸다. 글을 읽어 가다가 뒷장을 넘겨 전면 사진이 나오면 그걸 감상하다 보면 무슨 글을 읽던 중이었는지 앞쪽을 다시 돌아가 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 작은 불편 외에는 다시 봐도 훌륭한 산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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