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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퍼슨웹 기획 / 이가서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초고가 논문이었다는 이 책의 내용을 엄밀히 분석할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사회 속에서 인간의 삶이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를 역동적으로 탐구한 내용도 굉장합니다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그것'이 내게는 너무나 강렬하여 리뷰를 씁니다. 이 글은 책에게 받은 충격과 감동, 질투심 등을 쓴 글입니다. 사회학 책에 충격이라...그것이 내 삶을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3시간 꼬박 내달려 책을 다 읽고서 뒤표지에 적힌 '가족사와 노동자 생활 연구에 독보적인 책!'이라는 카피를 보니 뭉클하다. 정말 굉장한 책이다. 물론 내가 이 책에 나오는 현대가족을 조금이라도 체험한 사람이라 이렇게 흥분한다는 걸 알지만,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저자가 고민하고, 그 고민을 따라 삶을 도마 위에 놓고 해부해본 그 과정이 너무나... 말 그대로 자신의 '삶을 해부'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삶을 나는 얼마나 직시하고 있는가, 그냥 하루 하루 적당히 즐겁게 지내고 있지 않은가, 문득 문득 내 삶이 왜 이렇지? 라고 의문을 갖더라도 '사는 게 다 그렇지 뭐...'하는 한마디로 묻어버리지 않는가. 나에게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초반, 저자가 '문제'를 발견하고 연구하기로 결심한 그 순간이 참으로 강렬하다. 자신의 삶을 통해 앓아온 그 문제가 무엇인지 직시하고 그것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열정을 쏟은 저자가 부러워 질투가 날 정도였다. 내 삶을 통해 앓아온 문제를 요렇게 당차게 풀어가지 못해 안달나서 말이다.
또 하나 강렬한 점. 이 책은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뤘다. 대한민국 울산이라는 땅에서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이 힘든지 무엇을 꿈꾸며 살아가는지 그 일상을 다루고 있는 너무나 생생한 책이다. 그 일상을 움직이고 있는 오랜 관습과 관념과 음모가 무엇인지를 파헤친다. 책을 읽으며 얼핏 얼핏 아빠의 모습도 생각나고, 그리고 특히 '엄마'가 생각나서 숨을 가빠왔다. 나의 아버지는 울산의 [현대중공업]에서 현장직으로 28년을 근무하시고 작년 연말 정년퇴직하셨다, 그리고 그 세월동안 엄마는 전업주부로 우리 3남매를 키우셨다. 엄마는 무엇을 생각하고 바라고 한숨지으며 그 세월을 사셨을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랬다.
이십대에 든 이래로 쭉 엄마는 나에게 고민의 대상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엄마는 나에게, 입시공부에 바쁜 딸을 위해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주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시험 잘 보라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대학을 서울로 온 뒤로 그 역할을 빼고 엄마를 보니 엄마의 인생은 뭔가 싶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사실까, 좀 다르게 살 뭐가 없나? 집에 갈 때마다 엄마를 대할 때마다 고민이었다. 결론은 늘 엄마 개인을 탓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원래' 그랬었다라고.... 물론 엄마 나름의 문제도 있겠지만 '울산이라는 지역에서 몇십년을 살아오며 이뤄진 그 엄마를 봐야겠구나, 거기서 문제를 풀 열쇠가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못난 탓만 하던 지난 시간들이 부끄러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설연휴에 울산 집에 다녀왔다. 책을 읽은 당시엔 당장 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이 쿵쾅거렸지만, 엄마에게 뭐라 얘기했다든지 삶을 어떻게 바꾸고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러나 답답하게만 보던 엄마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는 나를 느꼈다. 짜증난다고까지 했었던 엄마였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엄마를 보던 불편한 마음이 좀 편해졌구나...! 처음엔 책을 읽고 충격때문에 머릿속이 난리였는데 난리를 넘어서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차분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