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작은숲> 8월호 이달의 이야기_화, 그 뜨겁고도 시원한 이야기

술에 울고 웃는 날


나는 서울에 있고 애인은 지방에서 일하느라 떨어져 지낸다. 얼마 전 애인이 일 때문에 인천에 온다기에 잠깐 만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일 끝나고 곧바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애인이 인천에 오던 날, 전화해서는 가는 중이니 점심때 다시 하겠다며 바로 끊었다. 그런데 저녁때가 되도록 연락이 없었다. 혹시 깜짝 놀래주려고 일부러 연락 안 하고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 앞에서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혼자 상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깜찍한 생각을 할 리가 절대 없는 사람이다.

밤 9시가 넘도록 전화가 없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빗길에 사고가 난 건 아닌지 며칠 전에 핸드폰을 잃어버린 터라 이쪽에서 연락도 할 수 없고 발만 동동 굴렀다. 밤 11시에 드디어 전화가 왔다. 인천이란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하도 붙잡는 통에 일 끝나고부터 계속 술을 마시고 있단다. 게다가 부글부글 화가 폭발 직전인 내 기분은 전혀 파악 못하고, 내일이 무슨 날인줄 아느냐며 딴소리를 해대더니 “내 맘 알지?” 하며 히죽 웃는다. 

그래, 내일은 우리가 만난 지 꼭 2년째 되는 날이지. 그래서 어떻게든 만나려고 떠본 나한테는 일 때문에 안 된다더니, 술 마시느라 전화 한 통을 안 했단 말인가. 오후 내내 걱정하며 기다린 내게 돌아온 답이 고작 술 취한 목소리라니, 너무너무 섭섭했다.

예전에도 이렇게 걱정한 적이 있다. 그때도 술 먹느라, 핸드폰을 술집에 흘리고 와서 연락을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또 술에 당했다. 내 걱정을 우습게 만든 것도 화나고,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도 분했다. 눈물까지 나려는 걸 겨우 다독이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예전이라면 밤새 잠 못 자고 씩씩거리면서 어쩔 줄 몰랐을텐데 이번에는 용케 잘 넘겼다. 시간이 지나면 ‘그럴 수도 있지’ 하게 되는가 보다.
다음날 점심 때 애인이 회사 앞으로 찾아왔다. 그의 가슴에 기습 펀치를 한 방 날려줬다. 속이 시원했다. 그나저나 술 때문에 잡힌 덕분에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됐으니 술에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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