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깨어나면 늘 아침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7
이철수 지음 / 삼인 / 2006년 12월
구판절판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밖에서 일이 있어 밥을 먹다가 아내 생각 나길래, 도시락에 담아달라고 했습니다.
식어버린 저녁이지만
아내가 달게 먹는 건,
도시락 들고 들어온 남편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투리 천 끊어다, 동네 세탁소
아저씨의 '왕년의 솜씨'에 맡겨
옷을 지어다 주면
저는 그 옷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옷인 줄 알고 입습니다.
아내의 마음을 제가 아는 때문이지요. -52쪽

오시는 비에 마음 맡기고

여러 날 쌓인 피로 때문인지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깨어보니 저녁 어스름. 모처럼 휴일에 낮잠 자고 일어난 저녁이 아침 같아서 책가방 메고 학교 간다고 나서던 어린 시절 생각이 납니다. 비는 종일 내리고. 눅눅해진 집에 습기 가시게 한다고 조금 덥혀놓은 방 안에서 내다보는 저녁 풍광이 고즈넉합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저녁. 비는 저물도록 내리고. 뭐 좀 먹고 싶다고 아내에게 말해두었습니다. 뭐가 먹고 싶으냐고 되묻는 걸,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처럼...... 하면서 건너가네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비 젖은 하루가 지나가는데...... 종일 내리시는 비에 마음 맡겨 두었습니다. 내려, 흘러가는 빗물에.-188쪽

배추가 배가 고팠구먼

잘 익어 떨어진 은행 노란 열매를 주워 담다가, 마침 지나가다 인사 나누게 된 어르신께 올해 저희 배추 농사 이렇게 작파하였으니 어디서 배추 몇 포기 사야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번 알아보마시고 나서 볼품없는 저희 밭을 보시고 한마디 하십니다. "배추밭이 배가 고팠구먼, 뭘 배가 고프니까 안 컸지?" 거름이 많은 것 같아 웃거름 안 했더니 그렇다고 이실직고했지요. 배추가 배가 고파 그렇다는 표현에 무릎을 쳤습니다. 살아 있는 말은 이렇습니다.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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