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마리아 미즈의 관심사는 페미니즘, 환경과 세계 개발문제에 대해 방법론과 경제학 부분에서 대안적 접근 방식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1998년에 쓴 이 책의 개정판 서문에서 저자는


가사노동, 비공식 영역의 노동, 식민지에서의 노동과 자연이 만들어 낸 생산이

자본주의 경제의 수면 아래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23쪽


이라고 하였다. 바로 이 전에 읽은 <캘리번과 마녀>에서도 나왔던 이야기다.


이번주에는 “2장, 성별노동분업의 사회적 기원”을 읽었다.



요약)


다양한 형태의 불균형하고 서열이 있는 노동분업은 오늘날 전 세계가 자본축적의 엄명 아래 불평등한 하나의 노동분업시스템으로 구조화된 단계까지 와 있다. 이 불평등한 노동분업은 약탈적인 사냥꾼/전사의 사회적 패러다임에 기초한 것이다. 자신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무기를 이용해 다른 생산자의 생산력과 생산품을 전유하고 종속시키는 관계는 남성과 여성, 남성과 자연 사이에서 수립되었고, 자본주의를 포함한 다른 모든 가부장적 생산양식의 모델로 남았다. (171-172쪽)



맑스와 엥겔스가 '인류의 생산 혹은 출산'과 관련된 것을 '자연적'인 과정으로, 생산수단과 노동의 발전과 관련된 것을 '역사적' 과정으로 구분한 것은 생물학적 결정론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여성성과 남성성은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자연'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불평등이나 착취적 관계들을 타고난 것 혹은 사회적 변화의 영역을 벗어난 것, 즉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며, 여성의 경우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이 여성에게 자궁과 가슴이 있다는 사실과 연결지어 생리활동의 연장선으로, 노동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자본주의에서 노동 개념은 일반적으로 남성의 생산적 노동,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남성의 일은 진실로 인간적인 것(생각하고, 합리적이며, 계획되고, 생산적인 것 등)으로 여겨지는 반면에, 여성의 일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맑스에 따르면 노동 과정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자연적 물질을 전유 (exclusively possess)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자연을 전유하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 왔다. 여성은 몸 전체를 통해 생산성을 경험한다. 아이를 생산하고, 아이의 첫 번째 음식도 생산한다. 어린 아이들과 자신의 생산물을 나눠야 하므로 여성의 생산은 처음부터 사회적 생산이다. 어머니-자녀 집단은 최초의 사회적 단위이고, 그래서 이것은 인간적인, 즉 의식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이다. 어머니는 자신과 자녀를 위해 채집을 하였고 나아가 농부가 되었다. 여성은 처음으로 자연과 진정한 생산적 관계를 발전시켰다.


이에 비해 남성은 몸을 통해 생산을 경험하지 못하므로 외부적 수단, 즉 도구의 중재가 필요하다. 역사 속에서 남성 생산성의 상징으로 부각되는 첫번째 신체기관은 남근이다. 남근을 통한 남성의 생산에 여성은 물리적 조건으로 전제된다. 남성은 주로 자신을 위해 채집과 산발적인 사냥을 하였고, 사냥의 도구 즉 무기를 발전시켰다.



여성 생산성은 집단의 구성원(남성 포함)에게 양식을 제공하면서 생존을 보장했다. 사냥은 ‘위험도가 높은 경제 활동’ 이기 때문에 빈손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남성 사냥꾼’ 보다 ‘여성 채집자’ 덕분이다. 그러나 남성-사냥꾼 모델을 인류 진화의 패러다임으로 상정하는 것은 인간사에 대한 수많은 과학적 연구의 기초가 되었고 매체를 통해 대중화되었다 (초기 호모 속의 출현을 도구의 사용과 관련하여 정의하는 것, 문명(계급이 있고 가부장적 사회가 전제되는)의 발달과 함께 역사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이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발제자 의견).


남성이 사냥에 이용한 도구는 생산이 아닌 파괴를 위한 수단이었으며, 동료 인간을 강제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사냥꾼은 살아있는 존재에 대해 지배력을 갖게 된다. 무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상-관계는 기본적으로 약탈적이며 착취적이다. 이런 지배관계는 남성이 세운 모든 생산관계의 일부가 되어 왔고, 이것이 그들 생산성의 주된 패러다임이다. 첫 번째 형태의 사유재산은 가축이나 식량이 아니라 납치된 여성 노예로 추정된다.

목축민은 사육 과정에서 황소 한 마리가 여러 암소를 임신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 경제적 논리는 여성에도 적용되었다. 여성은 움직이는 재산의 일부, 가축이 되었다. 사냥꾼과 달리, 목축유목민에게 여성은 식량의 채집자나 생산자로서 더 이상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고, 자녀 특히 아들을 출산하는 의미에서 필요했다. 여성의 생산성은 이제 '출산'으로 축소되었고, 이는 남성에 의해 전유되고 조정되었다.

농업 사회에서도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착취적 관계가 존재한다. 농사를 주로 짓는 이는 여성이었으며 전사-사냥꾼은 활과 화살을 통해 식량과 여성 등 모든 다른 생산물을 취할 수 있었다. 사냥꾼은 원정을 통해 다른 마을의 여성이나 어린이를 납치하여 개인 노예로 전유하거나 팔아넘겼다. 여성은 농업노동자이기도 했고, 더 많은 노예도 생산할 수 있었으므로 납치된 여성은 사유재산 축적의 직접적인 원천이 되었다.



무기 독점에 기초한 남성의 약탈적인 생산 양식은 주로 여성으로 이루어진 다른 생산경제들이 존재하고, 이들을 공격할 수 있을 때에만 '생산적'이 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불균형한 성별노동분업은 무기를 독점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약탈적 생산양식 혹은 자연과 여성에 대한 전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유양식은 인간 사이의 모든 착취관계의 역사에서 패러다임이 되었다: 자율적인 인간 생산자를 타인을 위한 생산의 조건으로 변형시키는 것, 혹은 그들을 타인을 위한 '자연 자원'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가부장제는 지구 전체에서 보편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독특하게 가부장적이었던 사회 (유대인, 인도-유럽인, 아랍인, 중국인 - 이 지역들은 모두 초기 문명의 발상지이다) 에서 거대 종교들과 더불어 발전했다.

모든 가부장적 문명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계속 강압적이고 착취적이었다. 불균형한 성별노동분업이 일단 폭력수단을 통해 수립되면, 이는 가부장적 가족, 국가와 같은 제도 그리고 강력한 이데올로기 체제 등을 통해 유지되었다. 특히 가부장적 종교, 법, 의학 등은 여성을 자연의 일부로 규정하여 남성이 통제하고 지배해야 한다고 했다.



유럽 봉건제 시대는 새로운 토지에 대한 약탈적 취득과 무장한 봉건계급 (기사)에 의한 대대적인 노략질과 강탈에 기초했다. 토지와 함께 생산의 수단이자 조건인 농민 역시 봉건영주에게 특수한 생산관계 내에서 전유되고 구속되었다. 봉건제에서는 농민을 토지의 일부로 보았기에 남성 농민 역시 여성과 비슷한 위상에 있었다 (이것이 중세 시대 여성의 인권이 이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지 않았던 이유이다).


자본주의 역시 경제적 강제의 메커니즘에 기초하고 있었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생산물과 생산자에 대한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취득이 초기 자본주의에서 가장 생산적인 활동이었다. 자연은 원료의 매장지였고, 아프리카 여성은 인간 에너지의 결코 마르지 않는 공급처였다. 자본가가 노동자와 임금을 매개로 하는 새로운 노동 통제를 수립하고 경제적인 강제를 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인 양보가 필요했다. 유럽 중심부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경제적인 양보는 주변부, 즉 동유럽과 식민지의 노동자 남성과 여성을 '자연'으로 취급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자원을 약탈함으로써), 정치적인 양보는 가정에서 지배계급의 사회적 패러다임인 사냥꾼/전사 모델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함으로써 주어졌다. 노동자의 '식민지' 혹은 '자연'은 자기 계급의 여성이었다. 결혼과 가족법에 따라 규정된 범위 내에서 그는 강압수단과 직접적인 폭력을 독점했다.

식민지와 노동계급 여성 외에, 부르주아 여성 또한 자연으로, 자본가 계급의 후계자를 낳고 키우는 이로 규정되었다. 부르주아 여성이 길들여지고 남편의 소득에 의존하는 가정주부로 변모하는 것은 자본주의 아래 성별분업의 모델이 되었다. 이는 모든 여성의 재생산능력을 통제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력이 재생산되는 영역인 가정과 가족은 '자연, 사적이고 길들여진 자연'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공장은 공적이고 사회적('인간적')인 생산의 공간이 되었다.




여성은 자신의 생산성, 섹슈얼리티, 생식 능력에 대한 통제권을 자발적으로 남편과 유력자(교회, 국가)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마녀사냥 이전의 유럽 여성은 자신들의 몸과 피임법에 대해 오늘날(책이 처음 쓰여진 1980년대)의 우리보다 훨씬 나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수세기에 걸쳐 수백만의 여성이 성적 생산적 자율성에 대한 잔혹한 공격(마녀 사냥)을 당한 끝에 유럽 여성은 의존적이고 길들여진 가정주부가 되었다. 마녀사냥은 여성의 성과 재생산 행위를 통제하는 직접적인 훈련 효과 외에, 여성의 생산성보다 남성의 생산성이 우월함을 수립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마녀사냥의 이데올로기는 여성적 자연의 사악함-성적으로 통제되지 않고, 만족할 줄 모르며, 언제나 정숙한 남성을 유혹하려고 함 - 을 끊임없이 강조하여, 딸과 아내의 정숙을 남성이 지켜야 하는 것으로,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여성은 한 남성을 위한 가정주부이거나 자본가를 위한 임금노동자로, 혹은 둘 다로 훈련되었다. 이들은 수세기 동안 자신에게 사용된 실제적 폭력을 자신에게로 돌리면서 내면화했다. 그들은 이를 자진해서 한 것으로, (낭만적) 사랑으로 규정했다.




Q. 여성 몸의 생산성을 동물의 번식과 동일시하는 관점은 가부장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노동분업의 결과이다. 여성 몸의 생산성과 동물의 번식은 본질적으로 다른가? 생산물을 나누고 어머니-자녀의 관계를 맺는 것은 일부 동물에서도 나타나는 행동 양식이다. '자연'을 지배 대상 혹은 열등한 것 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인간의 경우와 구분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후 다른 결과 (성별 분업 등)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다른건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건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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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기 시작했다.

서문과 1장만 읽었지만, 1986년에 처음 나온 책이라는 걸 믿기 어렵다.. 믿고싶지 않다.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또 내 생활에서 생긴 고민이 가지를 뻗어 만들어지던 생각이 과거 페미니즘의 첫번째와 두번째 wave에서 이미 시도하였고 오류를 발견한 생각들이라는 사실에 조금 부끄럽기도 하면서, 내가 그동안 갖고있던 물음에 대한 답을 (무려 15년 전에 제시된 답을) 찾을 수 있겠구나, 어쨌든 길을 잘못 찾지는 않았구나 하고 안도한다.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 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1장은 그 동안 (1986년까지) 페미니즘이 걸어온 길을 요약하고 있다.


여성해방운동은 가장 친밀한 인간관계,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직접 민중에게 호소하고 있기 때문에 민감한 이슈이다.


우리 사회들 속에 있는 남녀 관계의 진정한 본질을 스스로 인식해가는 것은,

돈벌이와 권력놀음과 욕망이 난무하는 냉정하고 잔혹한 세계에서

평화롭고 조화로운 지대로 남아있는 마지막 섬을 파괴하는 것이 될 수 있다.

47쪽


그리고 이 이슈를 자신의 의식 속에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이 남성과 여성을 모두 속박하고 있는 착취와 억압의 체제에서 자신이 피해자일 뿐 아니라 공범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관계로 가고 싶다면 이제껏 해온 공모 행위를 포기해야만 한다.



얼마전 지인을 방문했다가 책상에서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을 발견하고 반가워서 물었다. 그 분이 쓰는 논문 주제에 페미니즘과 관계된 내용이 있는지. 그 분은 조금 조심스럽게 래디컬 페미니즘의 입장은 아니지만 페미니즘적인 요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대답했고, 내가 요즘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 가부장제 내부의 여성 (기혼자 여성) 은 페미니즘의 입장을 취하는데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는 본인의 의견을 말했다. 그 분은 나를 가부장제로부터 취하고 싶은 것 (남편이 벌어오는 돈 혹은 남편의 소유물)은 취하면서 뭔가를 더 원하는 욕심많은 여성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 분과 나의 인간관계가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지도 이 시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 분은 혼인 관계에 있지 않지만 가부장제에서 자유롭지도 않다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후 며칠간 나는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위축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가정의 일원이면 가부장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는건가? 내부자는 조직의 부조리함을 이야기하면 안되나 또는 그것을 논하는데 한계가 있나? (있겠지) 한계가 있는 채로 이야기하면 안되나?



마리아 미즈가 제시하는 답은 위에 굵은 글씨로 나와있네... 이제껏 해온 공모 행위를 포기해야 한다고. 그동안 내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현 체제 안에서 뭔가를 조금씩 바꾸는 것 - 남성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임금 노동에 참여하거나 가사 노동의 대가를 인정받는 것, 일자리와 관련하여 성별에 관계없이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 의회 등에 페미니스트 여성을 많이 진출시켜 정책 결정이나 법 입안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여성 혹은 육아와 관계된 복지를 늘리는 것, .... - 은 소용이 없고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다 뒤엎어야 한다고.



여성이 억압을 받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여성의 가사 노동 (남성 노동자를 서포트하는) 혹은 값싼 노동력을 전제하여 굴러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가부장제를 통해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생식능력을 통제한다는, <캘리번과 마녀>에 나와서 약간 친숙해진 이야기가 나온다.



1세대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이 공적이고 정치적인 영역 (자유주의) 이나 임금 노동 (사회주의), 부르주아 남성이 독점하던 영역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동등하게 갖는 것 - 남성과 같은 권리를 갖는 것 - 이 목표였고 그것을 국가에게 요구했다. 그러기 위해서 여성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세대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의 몸' 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적 영역으로 국가가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해방에 있어 국가에게 요구하기를 멈추고 현 체제에 회의를 품게 된다. 대의정치가 아니라 직접적인 정치활동이나 캠페인을 통해 의견을 피력했다.



1세대 페미니즘 그리고 정통 좌파는 재생산 노동 / 공공의 생산노동 혹은 임금 노동 의 자본주의적 구분을 수용한다. 그리고 여성도 임금 노동에 참여해야 여성이 해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세대 페미니즘에서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기에 사적 영역에서 수행되는 가사노동을 재평가하고 재규정하기 시작했다.



1972년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이탈리아 파도바), 셀마 제임스 (런던), 실비아 페데리치 (뉴욕), 브리지트 갈띠에 (파리)는 <국제 페미니스트 연합>을 결성하였고 이후 <가사노동 임금 조직 및 위원회>라는 캠페인을 만들었다. 달라 코스타는 가정주부의 노동이 남성 임금노동자를 노동시장에서 기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라고 이야기한다. 핵가족은 '노동력' 이라는 상품이 생산되는 공장인 것이고, 가정주부의 노동은 자본축적 과정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고. 이들의 주장은 가사노동이 생산적이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던 고전적 맑스주의, 여성이 해방을 원한다면 임금 노동자로서 '사회적 노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좌파의 인식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이후 폰 벨호프는 가사노동과 식민지 (엄밀한 의미에서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이외에도 저개발국가, 제3세계, 남부세계 등으로 표현되는 국가들을 포함한다) 에서의 자급적 노동이 '특권적인' 남성 임금노동관계의 전제 조건이라고 밝혔다. 로자 룩셈부르크 (1923)이 이야기한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비자본주의적 환경과 조건'이 농민과 장인, 식민지였다면 '가정'이 더 추가된 것이다. 노동력과 자원을 확충할, 그리고 생산한 물건을 팔 시장으로서의 대상으로.



결국 세계적 자본주의-가부장제 체제하에서 과개발국가와 저개발국가의 여성 문제는 연결이 되어 있고, 한 국가 내에서 혹은 한 가정 안에서 약간의 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렵다, 결국은 전체의 큰 그림을 살피고,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페미니즘은 남녀 관계 이외에도 인간-자연의 관계, 중심부-식민지의 관계 등 모든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관계들에 대해 투쟁해야 한다고. 저자는 페미니스트 운동을 이렇게 정의한다.




페미니스트 운동은

(남성) 권력 엘리트를 다른 (여성) 권력 엘리트로 대체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엘리트도 다른 이들을 착취하고 지배하며 살아가지 않는,

서열이 없고, 중앙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하는,

기본적으로 무정부주의운동이다.


108쪽



(페미니스트 전반이 동의하는 생각은 아닐 것 같고 저자의 생각, 저자의 바램인 것 같지만...)




저런 사회가 실현 가능하기만 하다면 나름 바람직한 사회가 될 것 같기는 한데, 너무 이상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인간의 이기심, 애덤 스미스가 이야기한 '각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포기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모두가 문제의식을 크게 느껴야 그걸 포기할텐데, 가진 자들은 가진 걸 포기 못하고 안 가진 자들은 가지고 싶어하니...그래서 25년 지난 지금도 별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아닌지.



결국 마리아 미즈가 어떻게 에코페미니즘으로 가게 되었는지 이해는 된다. 90년대말-2000년대 초에 운동권의 영향이 축소되면서 대학가에서 환경 운동이 싹트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 환경 운동이 얼마나 반향을 일으켰나?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는, 아니 이미 심각한 지금 이 상황에도 불편한 마음을 뒤로 하고 각국은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데. 결국은 이런 생각이 실용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꾸준히 알려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 더더 나빠지는 것은 막는게 좋겠지만. <에코페미니즘> 역시 비현실적일 것 같지만 읽어보고 싶다.



그래서 가부장제에 속해있는 나같은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책의 7장 - 새로운 사회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전망에 대하여 를 얼른 읽고 싶다. 2장-3장은 <캘리번과 마녀>와 내용이 좀 중복될 것 같은데, <캘리번과 마녀>처럼 재미있지는 않겠지만 논리가 잘 정리되어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캘리번과 마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지만, 구체적인 사례를 보고 일반론을 보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순서를 이렇게 정했는데, 읽어보면 나의 결정이 어땠는지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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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2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2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3 0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3 12: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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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잘 팔리는 책들의 비밀
한승혜 지음 / 바틀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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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전반적인 태도인 것 같아 옮겨본다. 이렇게 조목조목 자세히 애정을 갖고 까기 (x) 지적하기 (o) 도 쉽지 않다. ㅋㅋㅋ

그렇다보니, 책이라고도 할 수 없는 형편없는 책이라는 세간의 혹독한 평가에 어느 정도 동의가 되는 한편 부족한 것 많아 보이는 이 책에 나름의 점수를 주고 싶은 양가적인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저자 식으로 말하자면 "욕하고 싶지만 칭찬도 하고 싶어" 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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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여성, 자연, 식민지와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아우또노미아총서 45
마리아 미즈 지음, 최재인 옮김 / 갈무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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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은 자본주의적 경제에서 따로 분리되어 은폐되어 있다. 여성은 일을 그만둔 적이 없으며 출산과 육아를 해왔지만, 이 노동은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을 자본주의적으로 구분하는 것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남성이 여성 노동에 의존하는 것이 여성이 ‘부양자’ 남성에게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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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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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기능을 처음 써보았다. 좋네.

"넌 조금 더 행복해졌고 또 조금 더 슬퍼졌어."
"서로 더하고 빼면 정확히 똑같다는 얘기네."
"전혀 그렇지 않지. 오늘 네가 조금 더 행복해졌다는 사실이 조금 더 슬퍼졌다는 사실을 바꿀 순 없어. 날마다 너는 조금씩 행복해지고 조금씩 슬퍼지는데, 그래서 너는 지금, 바로 이 순간, 네 평생 가장 행복하고 또 가장 슬픈 거야."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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