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혐오 - 탈진실 시대에 공통진실 찾기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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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신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역자 후기에 언급된,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윤지오에 대한 마녀사냥 - 당시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 에 대해 알아보고자 읽었다.

세월호 참사 때 허언을 했다고 몰려 구속까지 당했던 홍가혜 씨의 소식을 이 책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마녀사냥이었다. 나름 유명한 (지금은 탈퇴했지만) 참여연대의 양홍석 변호사가 소송을 맡아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나만 사회에 관심이 없어서 몰랐기를,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기를, 그만큼 알려졌기를 바란다. 일단 저질러놓고 아니면 말고- 가 그렇게까지 통하는 사회가 아니기를.. (이라고 썼지만 요즘이 내가 살아온 중에 가장 암울한 상황인 것 같다)


인터넷에 뜨는 기사 몇 개만 읽어서는 무엇이 진실이고 아닌지 판단하기가 너무 어려운 요즘. 이 책을 읽는다고 내가 판단할 수 있을까 했는데.. 읽고 나니 판단할 수 있겠다. 내가 받아들이기 더 쉬운 관점이라서도 그렇지만 그만큼 저자가 쉽고 자세하게 근거를 들어서 썼기 때문. 저자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의 노력이 들어갔을 거라 생각되지만.. <우리는 ~ 후손들이다>의 역자들도 포함되었을 것 같고. (저자 윤정환은 도서출판 갈무리의 대표이며 연구 공동체(?)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이기도 하다)


여기서 더 쓸 게 있을까 싶지만 저자가 더 썼으니, 그리고 언젠가부터 계속되는 인터넷을 이용한 여론 몰이에서 나 스스로 판단하고 싶은 마음에 <까판의 문법> 도 읽어보고 싶다. 책 몇 권 읽는다고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사건에서 진위를 판단하기란 요원한 일이겠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순수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이 음모와 술수를 통해 착취와 수탈을 수행한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그에 적합하고 효과적인 대응행동을 해야 한다. 승리하는 혁명을 위해서는 진실(당당함)을 기술(영리함)과 결합해야 한다. 승리하는 혁명을 위해서는 강령(진실성)만으로는 부족하고 전략과 전술(영리함)이 필요하다. - P134

국민을 개돼지나 종으로 아는 반국민적 권력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제 막 시작인 셈이다. 전쟁이나 혁명도 그렇지만, 정의의 싸움도 조직이나 집단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전위나 투사만이 투쟁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시대에는 평범한 개개인들이 삶 속에서 겪는 작은 경험들에서, 그경험들에 대한 자신 나름의 고유하고 특이한 느낌에서, 자신만의 그 특이한 느낌을 평균 속에 묻어버리지 않고 살려 나가는 집요함에서, 작은 불의에 대한 관용이 아니라 선처 없는 처벌을 바라는 노력에서 투쟁이 시작된다. 그래서 작은 물의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큰 불의를 꺾게 된다. 조직이나 집단은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조직과 집단은 기존의 조직들을 승계하여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개개인의 그 고유하고 특이한 느낌• 생각• 판단을 유통하여 이끌어낸 공감을 기초로 해서 늘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 장자연의 절규와 항의를 이어받은 윤지오의 증언 투쟁과 방어 투쟁, 그리고 다양한 유형의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투쟁은 하나의 투쟁의 다른 장들이다. 이 투쟁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려운 만큼 드물겠지만, 드문 만큼 고귀한 것이다. - P180

요컨대 우리는 모두 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신매매나 인신 상납의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을 구조적으로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들 각자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서로 유리되어 있고 그 개개인들이 삶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공동의 수단들에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이 구조적 강요의 조건이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해, 토지, 화폐, 자본, 기계, 기술, 통신망, 통치기구, 법체계, 학교, 미디어 등등이 우리의 삶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수단인데 그 대부분이 국가권력을 장악한 소수나 국제자본가들에게 장악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대의체계는 생명 개체들의 자기조직화와 직접민주주의를 무력화하고 생명의 실존을 타자에게 위임하는 태도, 관습, 문화, 사고법, 정당화 체계를 대규모로 재생산한다. 그것이 낳는 결과는 뿔뿔이 흩어진 신자유주의적 개인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이 구조적 강요를 강요로서 느끼지 못하며 우리 스스로가 계약에 따라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행동한다고 믿게 된다. - P223

성폭력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최초 대응에는 "아내들‘이 앞장선다. 아내는 ‘안 것‘을 의미하는 ‘안 해‘에서 나온 말이다. 경상 도 말 ‘니 해라가 ‘너의 것으로 하라‘를 의미하듯이, 해‘는 ‘물건, 소유물을 의미한다. 그것은 남성 가부장의 시선에서 파악된 여성, 남성의 소유물로서의 여성이다. 여성이 이 ‘아내‘ 관념을 내면화할 때, 이 여성은 가부장주의의 파수꾼으로 기능하게 된다.
아내 의식이 페미니즘의 옷을 걸칠 때도 있다. 그러한 유사 페미니즘은 다른 모든 여성을 위험한 여자, 이상한 여자로 보는 보편적 의심증과 결합된다. 아내-페미니즘은 여성의 권익을 지키 고자 하지만 그 노력은 꽃뱀으로 의심되는 모든 여자로부터 자신의 아내 지위를 지키고자 하는 방어적 투쟁으로 된다. 그 결 과 남성 권력자들이 자행하는 성폭력은 위험한 여자들의 꼬임 (사기)으로 인해 자신의 남편이 겪는 피해로 인식된다. 아내-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사회를 내전의 무대로 만들면서, 자신들이 이상한 여자들이라고 보는 사람들을 상대로 벌이는 시민사회 내 투쟁을 지켜보면서 성폭력 체제와 가부장주의는 아마도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서술하고 실비아 페데리치가 <캘리번과 마녀>에서 서술한 마녀사냥은 결코 과거사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여기에서 국가기구와 남성 권력자만이 아니라 아내주의-여성, 아내-페미니스트들에 의해서도 생생하게 되풀이되는 잔혹사이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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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8-14 09: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들 윤지오 마녀로 몰아가고 세상 죽일 여자로 만들어가는데 조정환이 이 책을 써주어 아주 반가웠어요.
그리고 수하 님이 이 책을 읽으셨다니 너무 반갑고 좋아요. ㅠㅠ

건수하 2023-08-15 01:12   좋아요 1 | URL
전 당시에 잘 모르겠다- 하고 판단을 보류했는데 이제 와서 그게 참 후회되더군요. 조정환 님 책은 처음 읽었는데.. 본인의 경험 덕분에 더 사건의 이해도가 높았던 것 같고, 그 부분까지 책에 포함시켜서 더 신뢰가 갔어요. 두꺼워서 함부로 권하긴 그렇지만, 끈기있게 읽으면 되는 책이라 이번달 책 읽은 분들께 권하고 싶네요. <까판의 문법>도 읽고 싶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