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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의 말 - 자유로운 삶을 꿈꾼 자주적인 여성의 목소리 ㅣ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시몬 드 보부아르.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이정순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10월
평점 :
슈바르처: 제가 보기에 당신은 자기 자신에 대해 대체로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는 분인 것 같아요.
보부아르: 맞아요. 제가 하는 분석을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적용하지 않아요. 저에겐 낯선 방식이에요.
(페이지를 적어두지 않음)
<제2의 성>을 읽고는 똑똑하다고 생각했고, <보부아르, 여성의 탄생>을 읽고는 (복잡한 애정 관계가 좀 맘에 걸리지만)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책을 보내주신 한 알라디너는 내가 이과형(이라기보다는 이과 출신?인데 어쨌든)이라서 자기애 넘치는 보부아르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다른 페미니스트보다 보부아르를 특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아직 잘 아는 페미니스트가 별로 없을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사실이다) 나를 좀 꿰뚫어보시는 건가 해서 좀 찔렸다. 집사2가 배워보고 싶지 않냐고 했을 땐 단호하게 거절했던 불어를 잠시, 아주 잠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보부아르뿐 아니라 프랑스 작가들의 소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같은 잡지를 읽을 때 영미권과는 다른 생각과 말하기 방식이 매력적이고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기에.
<보부아르의 말>을 읽고 보부아르가 더 좋아졌고 가장 큰 이유는 위에 인용한 대화에 있다. 보부아르는 자기 자신보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를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고, 페미니즘이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했다. 심지어 그 비전이 지금도 유효하다. 나도 현실에서 해야 할 일에 관심이 있고, 나 자신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자기애가 강하면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그건 아닐 것 같은데)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지만 두루두루 좋은 사람이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소수자 약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한동안 좋은 길이 저렇게 많은데 어디로 나아가야 할 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여성은 이미 많고 많이 가진 것 같은데 여성만 신경써도 되는 걸까 하고. 길을 간다고 해봤자 어떤 책을 읽을까 하는 정도이지만…
슈바르처: 생태주의와 페미니즘의 등가가 저를 화나게 해요. 하지만 둘은 자동적으로 동일한 게 아니에요.
보부아르: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자연에 더 가까울 거라는 성차별적 규정의 효과예요...
슈바르처: 그렇죠. 이런 유의 것들로 여성들을 해방 투쟁에서 단념하게 하고 그녀들의 에너지를 부차적인 행동의 장으로 유도하려 애쓰는 겁니다.
(120-121)
<좌파의 길>을 읽다가 보부아르로 가지를 뻗어나가면서 나는 좌파보단 여성에게 기우는가보다 라고 썼었는데, 그렇다. (좌파가 여성보다 힘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어쨌든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로 했다. 어떤 감정을 느낄 때 내가 어머니라서, 여성이라서 그럴 지도 모른다는 말을 붙이곤 하는데, 이제 가능하면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내가 그 말에 갇히는 것 같아서.
평화주의자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젊은 세대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는 그녀들이 개인적으로 여성이나 어머니여서가 아니에요. 요컨대 여성들은 그런 쓸데없는 것들을 단호하게 버려야만 할 거예요. 사람들이 비록 여성성이나 모성의 이름으로,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여성들을 평화 운동에 합류하도록 장려한다고 할 지라도요. 그건 그저 여자들을 한 번 더 애 낳는 역할로 불러들이려는 남자들의 책략일 따름이에요. (141)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고 합당한 이유를 댈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은 물론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초월’ 말인데… 역시 보부아르의 초월이란 내가 가볍게 생각한 것과는 다르다.
저는 아니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들에게도요.
‘아니요, 안 됩니다! 다른 것을 쓰세요. 개선하도록 노력하세요! 당신 자신에게 더 엄격해지세요!˝
라고 말입니다. 여자라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아요. ... 저는 여성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매우 엄격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139)
(그래서 그 책 보내준 건가요 😂)
이래서 보부아르가 좋다. 이 시절 ‘알리바이 여성’ 으로 보부아르와 함께 한나 아렌트, 메리 매카시를 예로 들었는데… 아렌트는 보부아르보다도 더 자기를 생각하지 않던 사람 아닌가? 아마 아렌트도 분명 좋아하게 될 것 같다. 메리 매카시는.. 저번부터 궁금했는데 왜 국내에 번역된 책이 없는 걸까, 아쉽다.
이정순 번역가님이 보부아르의 다른 책도 계속 번역해주시면 좋겠다. 가장 궁금한 건 <상황의 힘>.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사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