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 / 길(도서출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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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고전 그리스 문명이 지닌 도덕적 세계관의 정점을 보여 주는 저작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인 선과 행복의 문제를 궁구하며, 나아가 인간사회의 핵심문제인 정의, 평등, 덕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의 아들 니코마코스에게 주는 윤리학으로 전해지고 있는 이 책은 소피스트들의 등장이 가져온 도덕적 혼란을 넘어서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에서 윤리학의 기본 관심사가 인간 삶의 행복이라고 지적함으로써 윤리학적 사유의 한 전통을 명확히 그려놓았다. 이 전통에 따르면 윤리학적 사유의 기본 관심사는 “어떤 삶이 좋은 삶, 즉 행복한 삶인가”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부터 10권까지의 전 텍스트에 개진되고 있는 숱한 세부적 문제들과 관련 논변들은 모두 이 기본 관심사로 모아지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의도된 행위는 어떤 목적을 지향하며, 더 이상 다른 것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다. 이것이 다름 아닌 인생의 가장 좋은 것 최고선이자 궁극적인 목적인 행복(eudaimonia)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대답을 ‘탁월성(아레테arete, 덕)’에서 찾는다.

 

탁월성은 지적 탁월성과 성격적 탁월성으로 구분된다. 성격적 탁월성은 습관의 결과로 생겨난다. 우리가 탁월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여러 기예들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먼저 발휘함으로써 얻게 된다. 탁월성은 감정이나 능력이 아니라, 영혼의 상태이다. 그것은 즐거움과 고통과 관련하여 최상의 것을 행하는 상태 즉,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즐거움이 따르든 고통이 따르든 관계없이 가장 바람직한 것을 선택하는 칭찬받을 만한 영혼의 상태이다. 이처럼 탁월성은 선택과 관련되는 상태로서, 우리로 하여금 상대적인 중용을 선택하도록 돕는다. 탁월성은 교육으로 습득되고 스스로 노력함으로써 완전해지며, 중용을 겨냥해 나간다. 중용(mesotes)은 단순한 산술적인 중간이 아니라 최적의 상황을 찾아나가는 ‘탁월한’ 행위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복합적 균형이기 때문에 가치의 최절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성을 보여주는 중용의 예시들을 하나하나 검토해 나가며, 이러한 탁월성의 덕목들을 습관을 통해 가다듬고 그것을 이성적 실천을 통해 발휘할 때 가장 좋은 삶을 살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말한다. 결국 행복의 획득은 오랜 세월에 걸친 일관된 도덕적 훈련과 습관에서 비롯된다. 한 사람의 행위가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그가 생활의 질곡 속에서 습관적으로 중용을 모색해 나가는 훈련을 쌓지 않는 한, 그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다. 그가 말하는 성격적 탁월함은 실천적 지혜, 실제적 행위와 연결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하던 시대의 그리스는 사회질서가 붕괴하고 가치관의 혼란을 경험하던 시기이다. 그는 인간존재의 질문을 사회적 차원과 연계해 논의하고, 아울러 인간 본성의 문제, 도덕의 문제와 같은 형이상학적 차원의 질문을 구체적인 실천적 지혜와 연결해 설명함으로써 사회적 혼란기를 극복할 윤리적 틀을 제공하고자 했다.

 

좋은 삶은 행복한 삶이다. 행복과 좋은 삶은 우리가 덕성과 윤리를 실천할 때 얻어질 수 있다. 정치는 우리가 덕성을 갖출 수 있게끔 교육과 제도를 가꾸어 나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를 통하여 윤리적인 사람이 되며 나아가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요컨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최고선, 행복이란 가장 인간다운 것 즉 이성에 따라 실천하는 삶인 것이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의 시민에 의한 정치와 윤리의 결합으로까지 나아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철학은 크게 윤리학과 정치철학으로 구분되며 이런 학문들의 근본 목표는 ‘인간적인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의 실천철학은 도덕이 아닌 윤리의 형태를 띤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도덕이 마땅히 따라야 할 초월적인 규준을 상정하는 사유라면, 윤리는 현실적인 인간들의 좋은 관계 맺음을 추구하는 사유이다).

 

흔히 그리스 철학의 출발점을 자연철학으로 보거니와, 허무의 시대를 배경으로 탄생한 그리스 철학은 퓌지스(physis; 자연의 근원, 이법)의 탐구를 통하여 정치적 고통과 심리적 고뇌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세계 전체를 사유하게 되고, 마침내 서구철학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그 근저에 물리학과 생명과학 양자에 걸쳐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한 아리스텔레스의 학문이 자리 잡고 있음은 물론이겠다.

 

다시 한 번 묻거니와, 이 가을에 나는 안녕하며 여러분들 모두 행복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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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크로마뇽 시리즈 1
정준호 지음 / 후마니타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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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 온에서 그가 연재한 글을 읽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제국주의의 도구학문인 열대의학, 그것도 영국 런던대학에서 기생충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학위 논문 주제도 수면병을 일으키는 파동편모충이 어떻게 단백질 외피를 갈아입으며 숙주의 면역계를 회피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전을 유전자 단계에서 알아보는 연구였다. (어떤가, 태아가 모체의 면역체계를 무력화하고 강제적으로 자궁 내벽에 착상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를 나이브하게 '면역적 관용'이라 하지만, 반은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태아를 모체의 면역체계는 비자기로 인식할 수밖에 없고 그럴때는 유산되기 마련이다.)

 

"근대서양의학의 본질은 열대의학이요, 그것의 이념적 성격은 제국주의적 군진의학이다. 서구중심적 과학사와 의학사는 이런 진실을 오랫동안 은폐해왔다." - 이종찬 http://blog.daum.net/tropics_cosmos/144

 

젊은 학자인 저자 역시 이점을 누누히 강조한다. 그가 연구실을 떠나 건너간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의 소외 열대질환에서 제3 세계의 빈곤을 목도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만났기에. 그는 이제 황혼기에 접어든 기생충학을 거론하며 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진화를 주도하고 성을 탄생시켰으며, 사회를 형성했고, 행동을 변화시켰으며 궁극적으로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준 것이 기생충이라는 주장은 놀랍기 짝이 없다. 그는 숙주와 기생충의 결합을 복잡한 생물로의 진화를 촉진시킨 주요 원동력의 하나로 보고 있다.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 그리고 진핵생물의 출현이 그 좋은 예다. 본래 외부에 살던 이들이 다른 세포 안으로 들어가 서로 공생관계를 이루면서 세포 내 소기관이 된 것이다.

 

나아가 그는 기생충을 생태계 내부에서 에너지의 흐름을 조절하고 생태계의 각 단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생태계를 유지하고 순환시키며 진화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생태계의 다양성과 건강을 유지하는 엔진이라고까지 본다.

 

이것이 그가 기생충을 대하는 근본 입장이지만,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수많은 사례와 역사적 현장을 들여다 보노라면 어느 순간 그의 주장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기왕의 인식이 뒤바뀜과 동시에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맛볼 수 있다. 읽어보시라!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들 중의 하나가 기생충의 면역조절기능을 얘기하는 '위생가설'이다. 알레르기나 천식, 아토피성 피부염 같은 자가면역질환들은 우리 몸의 면역계가 주변의 무해한 물질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면서 염증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 질환들이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이 장내기생충 박멸이 완료된 시점과 겹친다는 것이다. 장내기생충은 염증 반응과 관련된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는데 인간이 지나치게 위생적인 환경에 살게 되면서 면역계를 조절해 주던 장내 기생충을 잃어버리고 면역계가 모든 것에 과민 반응을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난치병으로 알려진 크론병 같은 경우 환자를 기생충에 노출시켜 증상을 완화시켜보려는 시도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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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만리 - 항일중국망명기, 김사량선집 1
김사량 지음, 김재용 편주 / 실천문학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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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렉산드라 평전, 정철훈, 필담, 1996 

노마만리, 김사량, 실천문학사, 2002

이재유 연구, 김경일, 창작과 비평사, 1993

 

책장 구석에 오래전부터 꽂혀있던 이들의 삶을 다시 불러냈다. 소설처럼 읽을 수도 있었지만, 읽는 내내 몹시 힘들었고 물음이 가시지 않았다. 저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갔던가. 저들이 살았던 그 시대,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라는 소용돌이 속 시베리아와 중국혁명의 근거지였던 연안, 그리고 이 땅 경성에서의 삶은 그렇게 지리멸렬한 것이었다. 일제치하에서 사회주의자로 불화살처럼 살아간 저들의 삶을 몇 줄로 줄인다는 건 무망한 짓이다. 또 그래서도 안되고.

 

이들을 제대로 읽기 위해선 독립운동사 내지는 민족해방운동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줄곳 대여섯 권의 책을 펼쳐놓고 이 책 저 책을 오가며, 때로는 관련 논문도 찾아 읽으며 이들의 삶을 복기했다. 단순한 바이오그래피가 아닌 운동사라는 흐름에서 그들을 읽어내기 위해. 그렇지 않은가, 그 시대 그 사회의 모순구조가 분명히 밝혀진 다음에야 비로소 정확하게 기술될 수 있는 게 운동사요, 그래서 그것은 역사기술에 있어서 최상층 최고의 것에 속하기에.

 

일제의 침략은 한반도에 그치지 않고, 만주침략으로 중일전쟁으로 나아갔고, 급기야 진주만 기습에 이은 태평양전쟁으로 발전했기에 우리 민족의 해방운동은 그토록 처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남북분단으로 축소되고 왜곡되어 왔던 우리의 민족해방운동사는 이제 좀더 넓은 시각과 관점에서, 보다 주체적 입장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봉건제를 청산하고 근대국민국가 수립의 기초를 확립했지 않은가. 모든 근대는 '식민지 근대'라는 저 명제는 식민지 근대의 패러독스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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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과 대한제국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리딩 재팬 Reading Japan 3
와다 하루키 지음, 이경희 옮김 / 제이앤씨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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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러일전쟁은 19세기말부터 본격화된 러시아의 동아시아정책에 대해 일본이 도발한 전쟁으로, 세계사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대한제국은 해산 군인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독립전쟁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비록 만한 접경지에서 경의철도부설권과 압록강삼림채벌권을 둘러싼 '압록강 위기'가 개전의 계기가 되어 한반도와 만주를 중심으로 전개된 전쟁이지만, 이후 동아시아 및 세계체제에 일대 변혁을 초래한 이 세계사적 사건은 과연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가.

 

지난 2010년 서울대 일본연구소에서 열린 와다 하루키 선생의 강연을 기록한 <러일전쟁과 대한제국>을 읽고 몇몇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일본은 1904년 2월 4일 어전회의에서 개전을 결정하고 2월 6일 저녁에 외교관계 단절을 러시아측에 통보한다. 그러나 이미 군사행동은 2월 6일 새벽에 시작되어 사세보항에서 연합함대가 출동한다. 제1, 2 전대는 여순으로 향하고, 제3 전대는 인천을 향해 육군 병사를 태운 수송선과 함께 출동한다. 그리고 제3함대와 7함대는 쓰시마를 출발하여 2월 6일 저녁 진해만을 점령하고 육전대가 상륙하여 마산 전신국을 점령한다.

 

선생의 강연은 당신의 새 저서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을 토대로 행해졌으며, 당시 일본군이 전시중립을 선언한 대한제국의 진해만과 마산 전신국을 점령한 것은 선생이 처음 밝혀낸 사실이다. 위의 강연에서 선생은 줄곳 일본에서의 일반적 역사 인식과 달리 러일전쟁은 조선전쟁에서 시작되었으며, 결코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궁금해서 관련된 연구동향을 살펴보니 러시아측의 사실기록과 연구가 본격화되지 않고 있어 일본측의 연구 또한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 연구자들 역시 러시아측의 기록을 토대로 새로운 저작들이 나오고 있는 단계인 듯하다. 일각에서는 러일전쟁을 '제0차 세계대전'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지역적 차원에 머물렀던 전쟁의 시공간적 범주를 확대하였고, 기존의 러일 및 서구중심의 역사담론을 넘어서는 학제간 연구가 시도되고 있기도 하다.

 

러일전쟁은 결국 제국주의 전쟁으로, 일본자본주의 발달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자리매김하는가 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 러일전쟁은 청일전쟁과 함께 '천황제의 침략전쟁'이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 일본에서는 "러일전쟁은 갓 태어난 국민국가인 메이지 일본이 사력을 다해 세계최대의 군사대국인 러시아와 싸워 무찌른 위대한 조국방위전쟁이었다"고 평가하고 이를 역사교육의 장에 끌어들이고 있음을 볼 때, 결코 잊혀진 전쟁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연일까. 오늘 아침 재일 사학자 강덕상 선생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일본의 對韓 내셔널리즘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어 덧붙인다. "일본의 근대에는 기본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배외의식에 의해 일본이 늘 변해왔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움직임이 현실적으로 있습니다. 그 근저에는 천황제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만, 역사적으로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잘 정리해서 그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일본이 알게되길 바랍니다. 기본적으로는 일본사회가 좋아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천황제에 대한 짧지만 아주 유익한 대담
http://blog.naver.com/correctasia/5010922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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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리라이팅 클래식 15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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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껍질을 버리고 돌아서는데 더부룩하게 자란 자운영에 된서리가 내려 어둠속에서도 반짝인다. 밤공기가 제법 차가워 쫒기듯 방으로 들어왔다.

 

그린비 리라이팅 클래식의 하나로 나온 고미숙의 신간을 읽었다. 술술 잘 읽힌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책을 펼치자 저자의 친필사인이 눈에 띄여 반가웠지만! 자신의 병에 대한 공부가 수유+ 너머에서 고전에 대한 그룹 스터디로 발전하고, 오랜기간 읽어온 결과물을 책으로 엮어낸 것으로 짐작된다.

 

동의보감이 어떤 책이던가. 중국의학에 대해 東醫라는 명확한 정체성을 가지고 기존의 의학적 전통을 집대성하고 양생술을 바탕으로 널리 백성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씌여진 책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내경-외형-잡병-탕액-침구로 이어지는 저 편제는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명쾌한 분류를 보여주고 있으며, 병과 처방이 아닌 몸과 생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다시말해 몸을 정(精), 기(氣), 신(神)이 접속하고 변이하는, 자연의 하나로 보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타 학문과의 접속과 횡단을 주장해온 저자는 단언한다. 인간은 앎을 통해 세상을 구성하지만 더 이상 앎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병을 탐색하는 것도 몸을 바꾸는 일도 가능하지 않다고. 이것이 저자가 병과 몸을 대하는 태도이다. 그래서 생명과 우주가 하나의 매트릭스를 구성한다는 인식은 질병을 고통과 결여의 상태가 아닌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 반드시 수반해야 할 필연적 조건으로 보기에 이르고, '질병이 곧 존재의 표현형식'이라고 선언한다.

 

이런 인식은, 未病이라는 개념을 통해 건강과 질병에 대해 절대적이지 않은 연속적인 관점을 상정하면서 '미병'이 건강과 질병 사이에서 양자를 단절이 아닌 연속성으로 만들고 조화롭게 한다는, 저 황제내경의 관점에서 비롯한다.

 

비전공자가 가질 수 있는 자유로운 인문학적 시각에 저자 특유의 경쾌한 문장이 흥미를 더해 재미있게 읽었지만, 사상사 내지는 문화사적 시각에서 동의보감을 자리매김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해 못내 아쉽다.

 

나 역시 우리 선조들이 전개한 몸에 대한 사유가 궁금해 여기 저기를 기웃거렸다. 동의과학연구소 박석준 선생의 학위논문《동아시아 전근대의학과 동의보감의 역사적 성격》을 읽고 무척 고무되었고, 질병을 통해 의학과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 아주대 이종찬 교수의《동아시아 의학의 전통과 근대》의 의사학적 접근에 눈이 번쩍 띄였더랬다. 그리고 동의보감의 인식론을 통해 조선사회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고 있는 역사학자 김호 교수의《허준의 동의보감 연구》도 접할 수 있었다.

 

이들에 비하면 고미숙의 신간은 동의보감이라는 고전을 소개하는 대중적인 해설서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분야를 넘나들며 텍스트를 재해석하고 있는 공력은 저자만의 것으로 읽힌다. 고전을 대하는 다양한 시각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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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출간!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3-01-29 17:09 
    『동의보감』의 시선으로 분석해낸 우리 사회의 현상과 욕망! ―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인문의역학 사회비평 에세이! 이 책의 키워드는 '몸과 우주'다. 몸과 우주, 우리는 이 단어들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몸은 병원에 맡기고, 우주는 '천문학적 쇼'의 배경으로나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숱한 질병과 번뇌들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인문학의 화두는 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몸이야말로 삶의 구체적 현장이자 유일한 리얼리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