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과 대한제국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리딩 재팬 Reading Japan 3
와다 하루키 지음, 이경희 옮김 / 제이앤씨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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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러일전쟁은 19세기말부터 본격화된 러시아의 동아시아정책에 대해 일본이 도발한 전쟁으로, 세계사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대한제국은 해산 군인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독립전쟁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비록 만한 접경지에서 경의철도부설권과 압록강삼림채벌권을 둘러싼 '압록강 위기'가 개전의 계기가 되어 한반도와 만주를 중심으로 전개된 전쟁이지만, 이후 동아시아 및 세계체제에 일대 변혁을 초래한 이 세계사적 사건은 과연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가.

 

지난 2010년 서울대 일본연구소에서 열린 와다 하루키 선생의 강연을 기록한 <러일전쟁과 대한제국>을 읽고 몇몇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일본은 1904년 2월 4일 어전회의에서 개전을 결정하고 2월 6일 저녁에 외교관계 단절을 러시아측에 통보한다. 그러나 이미 군사행동은 2월 6일 새벽에 시작되어 사세보항에서 연합함대가 출동한다. 제1, 2 전대는 여순으로 향하고, 제3 전대는 인천을 향해 육군 병사를 태운 수송선과 함께 출동한다. 그리고 제3함대와 7함대는 쓰시마를 출발하여 2월 6일 저녁 진해만을 점령하고 육전대가 상륙하여 마산 전신국을 점령한다.

 

선생의 강연은 당신의 새 저서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을 토대로 행해졌으며, 당시 일본군이 전시중립을 선언한 대한제국의 진해만과 마산 전신국을 점령한 것은 선생이 처음 밝혀낸 사실이다. 위의 강연에서 선생은 줄곳 일본에서의 일반적 역사 인식과 달리 러일전쟁은 조선전쟁에서 시작되었으며, 결코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궁금해서 관련된 연구동향을 살펴보니 러시아측의 사실기록과 연구가 본격화되지 않고 있어 일본측의 연구 또한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 연구자들 역시 러시아측의 기록을 토대로 새로운 저작들이 나오고 있는 단계인 듯하다. 일각에서는 러일전쟁을 '제0차 세계대전'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지역적 차원에 머물렀던 전쟁의 시공간적 범주를 확대하였고, 기존의 러일 및 서구중심의 역사담론을 넘어서는 학제간 연구가 시도되고 있기도 하다.

 

러일전쟁은 결국 제국주의 전쟁으로, 일본자본주의 발달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자리매김하는가 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 러일전쟁은 청일전쟁과 함께 '천황제의 침략전쟁'이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 일본에서는 "러일전쟁은 갓 태어난 국민국가인 메이지 일본이 사력을 다해 세계최대의 군사대국인 러시아와 싸워 무찌른 위대한 조국방위전쟁이었다"고 평가하고 이를 역사교육의 장에 끌어들이고 있음을 볼 때, 결코 잊혀진 전쟁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연일까. 오늘 아침 재일 사학자 강덕상 선생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일본의 對韓 내셔널리즘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어 덧붙인다. "일본의 근대에는 기본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배외의식에 의해 일본이 늘 변해왔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움직임이 현실적으로 있습니다. 그 근저에는 천황제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만, 역사적으로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잘 정리해서 그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일본이 알게되길 바랍니다. 기본적으로는 일본사회가 좋아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천황제에 대한 짧지만 아주 유익한 대담
http://blog.naver.com/correctasia/5010922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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