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크로마뇽 시리즈 1
정준호 지음 / 후마니타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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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 온에서 그가 연재한 글을 읽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제국주의의 도구학문인 열대의학, 그것도 영국 런던대학에서 기생충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학위 논문 주제도 수면병을 일으키는 파동편모충이 어떻게 단백질 외피를 갈아입으며 숙주의 면역계를 회피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전을 유전자 단계에서 알아보는 연구였다. (어떤가, 태아가 모체의 면역체계를 무력화하고 강제적으로 자궁 내벽에 착상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를 나이브하게 '면역적 관용'이라 하지만, 반은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태아를 모체의 면역체계는 비자기로 인식할 수밖에 없고 그럴때는 유산되기 마련이다.)

 

"근대서양의학의 본질은 열대의학이요, 그것의 이념적 성격은 제국주의적 군진의학이다. 서구중심적 과학사와 의학사는 이런 진실을 오랫동안 은폐해왔다." - 이종찬 http://blog.daum.net/tropics_cosmos/144

 

젊은 학자인 저자 역시 이점을 누누히 강조한다. 그가 연구실을 떠나 건너간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의 소외 열대질환에서 제3 세계의 빈곤을 목도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만났기에. 그는 이제 황혼기에 접어든 기생충학을 거론하며 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진화를 주도하고 성을 탄생시켰으며, 사회를 형성했고, 행동을 변화시켰으며 궁극적으로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준 것이 기생충이라는 주장은 놀랍기 짝이 없다. 그는 숙주와 기생충의 결합을 복잡한 생물로의 진화를 촉진시킨 주요 원동력의 하나로 보고 있다.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 그리고 진핵생물의 출현이 그 좋은 예다. 본래 외부에 살던 이들이 다른 세포 안으로 들어가 서로 공생관계를 이루면서 세포 내 소기관이 된 것이다.

 

나아가 그는 기생충을 생태계 내부에서 에너지의 흐름을 조절하고 생태계의 각 단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생태계를 유지하고 순환시키며 진화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생태계의 다양성과 건강을 유지하는 엔진이라고까지 본다.

 

이것이 그가 기생충을 대하는 근본 입장이지만,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수많은 사례와 역사적 현장을 들여다 보노라면 어느 순간 그의 주장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기왕의 인식이 뒤바뀜과 동시에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맛볼 수 있다. 읽어보시라!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들 중의 하나가 기생충의 면역조절기능을 얘기하는 '위생가설'이다. 알레르기나 천식, 아토피성 피부염 같은 자가면역질환들은 우리 몸의 면역계가 주변의 무해한 물질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면서 염증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 질환들이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이 장내기생충 박멸이 완료된 시점과 겹친다는 것이다. 장내기생충은 염증 반응과 관련된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는데 인간이 지나치게 위생적인 환경에 살게 되면서 면역계를 조절해 주던 장내 기생충을 잃어버리고 면역계가 모든 것에 과민 반응을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난치병으로 알려진 크론병 같은 경우 환자를 기생충에 노출시켜 증상을 완화시켜보려는 시도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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