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리라이팅 클래식 15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과일 껍질을 버리고 돌아서는데 더부룩하게 자란 자운영에 된서리가 내려 어둠속에서도 반짝인다. 밤공기가 제법 차가워 쫒기듯 방으로 들어왔다.

 

그린비 리라이팅 클래식의 하나로 나온 고미숙의 신간을 읽었다. 술술 잘 읽힌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책을 펼치자 저자의 친필사인이 눈에 띄여 반가웠지만! 자신의 병에 대한 공부가 수유+ 너머에서 고전에 대한 그룹 스터디로 발전하고, 오랜기간 읽어온 결과물을 책으로 엮어낸 것으로 짐작된다.

 

동의보감이 어떤 책이던가. 중국의학에 대해 東醫라는 명확한 정체성을 가지고 기존의 의학적 전통을 집대성하고 양생술을 바탕으로 널리 백성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씌여진 책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내경-외형-잡병-탕액-침구로 이어지는 저 편제는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명쾌한 분류를 보여주고 있으며, 병과 처방이 아닌 몸과 생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다시말해 몸을 정(精), 기(氣), 신(神)이 접속하고 변이하는, 자연의 하나로 보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타 학문과의 접속과 횡단을 주장해온 저자는 단언한다. 인간은 앎을 통해 세상을 구성하지만 더 이상 앎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병을 탐색하는 것도 몸을 바꾸는 일도 가능하지 않다고. 이것이 저자가 병과 몸을 대하는 태도이다. 그래서 생명과 우주가 하나의 매트릭스를 구성한다는 인식은 질병을 고통과 결여의 상태가 아닌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 반드시 수반해야 할 필연적 조건으로 보기에 이르고, '질병이 곧 존재의 표현형식'이라고 선언한다.

 

이런 인식은, 未病이라는 개념을 통해 건강과 질병에 대해 절대적이지 않은 연속적인 관점을 상정하면서 '미병'이 건강과 질병 사이에서 양자를 단절이 아닌 연속성으로 만들고 조화롭게 한다는, 저 황제내경의 관점에서 비롯한다.

 

비전공자가 가질 수 있는 자유로운 인문학적 시각에 저자 특유의 경쾌한 문장이 흥미를 더해 재미있게 읽었지만, 사상사 내지는 문화사적 시각에서 동의보감을 자리매김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해 못내 아쉽다.

 

나 역시 우리 선조들이 전개한 몸에 대한 사유가 궁금해 여기 저기를 기웃거렸다. 동의과학연구소 박석준 선생의 학위논문《동아시아 전근대의학과 동의보감의 역사적 성격》을 읽고 무척 고무되었고, 질병을 통해 의학과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 아주대 이종찬 교수의《동아시아 의학의 전통과 근대》의 의사학적 접근에 눈이 번쩍 띄였더랬다. 그리고 동의보감의 인식론을 통해 조선사회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고 있는 역사학자 김호 교수의《허준의 동의보감 연구》도 접할 수 있었다.

 

이들에 비하면 고미숙의 신간은 동의보감이라는 고전을 소개하는 대중적인 해설서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분야를 넘나들며 텍스트를 재해석하고 있는 공력은 저자만의 것으로 읽힌다. 고전을 대하는 다양한 시각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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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출간!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3-01-29 17:09 
    『동의보감』의 시선으로 분석해낸 우리 사회의 현상과 욕망! ―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인문의역학 사회비평 에세이! 이 책의 키워드는 '몸과 우주'다. 몸과 우주, 우리는 이 단어들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몸은 병원에 맡기고, 우주는 '천문학적 쇼'의 배경으로나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숱한 질병과 번뇌들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인문학의 화두는 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몸이야말로 삶의 구체적 현장이자 유일한 리얼리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