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아테나 1 - 날조된 고대 그리스 1785~1985, 서양 고전 문명의 아프리카.아시아적 뿌리 블랙 아테나 1
마틴 버낼 지음, 오흥식 옮김 / 소나무 / 200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급작스럽게 신분상승을 했거나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자신의 새 신분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자신이 ‘원래부터’ 고귀한 신분이었음을 드러내 주는 것, 즉 족보 조작이야말로 그러한 우월성을 굳게 확립해 주는 것이라고 믿을 법 하다. 이 책, <블랙 아테나>에서 저자 마틴 버넬은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유럽이 해 온 것이 바로 그러한 작업이라고 말한다. 유럽이 이 시기에 세계의 주도권을 잡고 이른바 제3세계를 식민화하면서 자신들의 문화가 '원래부터 위대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스 문명의 독자성을 주장했단느 것이다. 이 1권의 제목이 노골적이게도 ‘날조된 고대 그리스’인 것은 그래서이다.
서양인이 아니며 고전 학자도 아닌 나 같은 사람마저도 ‘고대 그리스’를 말 할 때는 일말의 존경심 같은 것을 품고 언급하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어쨌든 현재 지구 전체를 뒤덮고 있는 서구 문명의 뿌리이며 민주주의(비록 여자와 노예가 제외된, 좀 이상한 민주주의이기는 해도)를 처음 시도한 민족이 아닌가.
버넬은 우리가 너무나 자명하게 받아들이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의문을 던진다. 과연 그리스인들(‘아리안 모델’의 그리스인들은 북쪽으로부터 내려온 아리안계의 그리스인들을 말한다)은 스스로 그러한 문명을 이룩했는가? 그리스보다 앞서 존재했던 문명, 게다가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이집트와 페니키아를 비롯한 근동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결론 아니겠는가 하고 말이다.
고대사에 대해서는 책 몇 권 읽은 것이 전부인 내가 이 책에서 논의되고 있는 문제들을 모두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고 저자의 주장이 어느 만큼이나 받아들여질 만 한가를 판단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만 저자가 자주 말하듯이 비전문가라고 해서 반드시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는 법이 없다는 사실에 기대어 볼 때 상식적으로 이 책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물론 내가 비유럽인이라는 사실이 이 책의 주장에 호의를 갖게 한다는 것도 부정 할 수는 없다.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 ‘지식사회학’이라고 말하는데 말하자면 시대 정신이 그 시대에 통용되는 지식의 내용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19세기에 이전까지 믿어져 왔던 이집트와 페니키아의 그리스에 대한 영향력을 부정하게 만든 요인에는 유럽의 식민지 제국주의와 그를 정당화하기 위한 인종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저자는 보여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지배 하에 두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유럽인이 아닌 인종을 열등한 존재로 만드는 인종주의가 필요했고 그것이 사실로 굳어지게 되자 무엇보다도 우월하다고 떠받들어 온 고대 그리스가 이집트나 페니키아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이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이상의 존재로 떠받들어 온 고대 그리스인들 스스로가 증언하는 이집트의 영향은 부정되고 그리스 문명은 아리안 인종인 그리스인들이 발전시키고 만들어낸 것이라는 ‘아리안 모델’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 그것이 과연 믿을 만한 모델인가를 따지기 전에 이러한 생각의 배후에 있는 이데올로기적 기반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는 역겨움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안 인종주의의 광기가 히틀러와 나치에 이르러 끔찍한 폭발을 일으키고 인종주의자라는 말이 욕설이 되어 버린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이러한 모델이 힘을 잃지 않았으며 버넬의 주장이 주류 학계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지금은 누구도 자신이 인종주의자라고 말 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러한 인식이 우리들에게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백인들 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보다 어두운 피부색의 외국인들을 대하는 태도를 볼 때도 그러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나 책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이 책 제목과 저자 소개 정도만 읽고 덥석 집어 든 책이다. 이스라엘 출신이라는, 저자의 흔치 않은(우리나라에서 덜 소개되었으니) 배경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던 거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에 특별히 ‘이스라엘적인’ 것은 별로 없다. 인생의 보편성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
‘나의 미카엘’ 이라는, 사랑이 듬뿍 느껴지는 제목처럼 소설의 시작은 사뭇 달콤하다. 우연적이고 운명적인 첫 만남, 서툴지만 서로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는 연인들, 급속도로 발전하는 관계, 그리고 결혼. 하지만 달콤함은 거기까지이고 이후에는 건조하고 피곤한 현실이 펼쳐진다. 이 사랑이 행복할 리 없다는 것을 예감한 것은 여주인공 한나의 하숙집 주인이 말했듯이 결혼을 앞둔 한나가 악몽에 시달리는 장면에서였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자신의 책(정신분석 입문)에서 든 하나의 예, 즉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신부가 길 건너편에서 신랑을 보고는 자신의 동생에게 “저기 B씨가 있어!”라고 소리쳤다는 이야기처럼 불행의 냄새를 강하게 풍겼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이어지는 문학도였던 한나와 지질학자 미카엘의 10년에 걸친 결혼 생활은 채워 지지 않는 욕구로 괴로워하는 한나와 그녀를 지켜보면서 겉으로는 초연해 보이지만 내부에서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는 미카엘의 괴로운 소모전 같은 것이 된다. 저자는 한나의 독백을 통해 이 남루한 일상과 그녀의 내면-주로 꿈으로 표현되는데-에서 들끓는 욕망을 건조한 문체로 묘사하는데 이러한 일상은 우리에게도 낯선 것이 아니어서 넌더리가 나는 동시에 기묘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들이 사랑해서 결혼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결혼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들, 즉 경제적인 문제, 결혼으로 얻은 새로운 가족들과의 관계, 임신과 육아의 문제들은 한나에게 한없이 무거운 짐이 되어 점점 더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어 간다. 반면 ‘실제적인’ 것들과 씨름해야 하는 과학도이자 아버지와 고모들로부터 지적 성취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면서 자라 자신의 의무에 언제나 충실하고자 하는 미카엘은 한나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다른 것들을 참아 넘기듯이 그녀 역시 ‘참아 넘기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혼 생활이 주는 충격은 무감각해 보이는 미카엘에게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쳐 결국은 그녀를 배신하도록 만들고 만다.
그리하여 소설은 현실과 이상이라는, 우리가 언제나 타협해야만 하는 우리 인생의 두 요소가 충돌하는 현장을 결혼 생활을 통해 그려 낸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이 날카로운 대립은 존재하고 있을 터이므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착잡함은 바로 우리 인생의 착잡함에 다름 아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한나를 비난하기만 할 수도, 그렇다고 미카엘을 두둔하기만 할 수도 없다. 아마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일 뿐일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은 한나가 미카엘의 논문을 읽고서 그 ‘건조한’ 문체를 칭찬하자 미카엘이 자신은 과학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쓸 수 밖에 없다고 변명하는 부분이다. 아름다운 글은 무언가 기름지고 미사여구로 흘러 넘쳐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말했으리라. 그리하여 칭찬은 오해되고 비난의 말이 된다. 언어의 한계와 서로에 대한 몰이해의 비극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책의 문체는 건조하며 아름답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artier Tortue 2012-02-16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마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들에게,
http://www.buywatchshop.net/Breitling_Watches.html
http://www.buywatchshop.net/Hublot_Watches.html
http://www.watchofcartier.com/Cartier_Tortue_watches.html
http://www.watchofcartier.com/Cartier_Mens_Watches_watches.html
http://www.watchofcartier.com/Cartier_Womens_Watches_watches.html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일 뿐일지도 모른다.
 
사이버리아드 (양장, 한정판)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송경아 옮김 / 오멜라스(웅진)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스타니스와프 렘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작품을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예전에 ‘솔라리스’ 라는 책을 언뜻 본 것 같긴 하지만 제대로 읽지는 않았더랬다.
‘사이버리아드’라는 책의 제목은 주석에 나와 있는 대로 ‘사이버’와 ‘일리아드’의 합성어이다. 제목에서부터 등장하는 이 낯선 단어들은 책 곳곳에서 출몰하면서 때때로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이 신조어들의 유희는 이 책의 재미 중 하나이기도 하다(아쉬운 점은 유럽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유희가 더욱 자연스러웠을 테지만 아무래도 우리에겐 다소간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단편 모음집인 이 책의 주인공들은 트루를과 클라포시우스라는 이름의 로봇들이고 이들의 직업은 ‘창조자’이다. 창조자로서 이들은 자신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를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주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이 두 로봇이 우주를 떠돌며 겪는 모험 이야기들이 ‘사이버리아드’인 것이다.
두 로봇들이 만들어내는 물건들은 매우 황당하고 기발하며 그 많은 지식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때로 매우 불합리한 행동을 해대는 로봇들의 행동 때문에 이 책은 우주적 코미디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 두 창조자와 대개 그들의 의뢰자인 다른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웃다 보면 깨닫게 된다. 이 모든 불합리함과 어리석음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들의 것이라는 것을.
트루를과 클라포시우스는 때로는 서로에 대한 질투심에, 때로는 단순한 탐욕에 의해, 또 다른 곳에서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어리석은 일들을 저지르는데 어리석고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는 그들에게 이러저러한 물건을 만들라고 지시하는 ‘왕’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리하여 렘은 이 우주의 우화를 통해 인간성의 어리석음과 인간 사회의 부조리함을 풍자하는데, 괴물을 퇴치하는 데 끝없는 서류와 절차를 들이대는 관료제(대문자 ‘B’로 시작하는 기계)를 쓴다는 ‘트루를의 처방’은 그 중 압권이다. 끊임없는 지식욕에 시달리는 지식 해적 퍼그를 위해 지금까지 존재했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지식을 출력해 낼 수 있는 2종 악마를 창조해 주는 이야기에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라고 부르지만 때때로 ‘쓰레기의 바다’처럼 느껴지지 않던가). ‘알트뤼진느’ 의 이야기에서는 선한 의도로 시작된 일이 어떻게 걷잡을 수 없이 세계를 망치게 되는가, 그리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느껴 본다는 것이 반드시 인류애의 길로 나아가도록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렘은 이 겉으로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모험담들을 통하여 인간 세계를 비꼬고 있는데 그 뒤에 감춰진 생각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가능한 한 가장 발전한 단계’의 생물들이 무언가 가치 있는 일들을 해보려다가 끔찍한 결과들만 초래하고는 무위에 깊숙이 묻혀 있는 장면은 그런 비관적 전망이 다다른 세계의 풍경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이 세계의 불완전함에 대한 생각과 맞닿아 있다. 그리하여 ‘예언자’ 클로리안 테오레티쿠스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귀납적 신성이란 발전한 문명이 나중에 우주에 덧입힌 게 분명한 신성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언제나 최초에는 물질만이 있고 따라서 태초에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의 새벽에는 생각 없음이 일자一者로 군림했고, 그것은 사실 우리의 이런, 이런 우주를 보면 명백할 뿐이야!” (275~276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 P. 러브크래프트
(Howard Philips Lovecraft, 1890~1937))
정진영(옮긴이)   

황금가지

다른 책들을 통해 그 명성을 듣기는 하지만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작품들이 있다. 러브크래프트도 그런 작가 중 하나였다. 공포소설 혹은 SF소설의 계보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작가이지만 정작 그의 작품을 읽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전집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읽어보았다.

사실 1920~30년대에 씌어진 소설들은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다. 이미 웬만한 공포 소설을 읽어서는 ‘공포’가 느껴지지 않으니 그것은 예상한 바였다. 하지만 왜 지금까지 이 작가의 명성이 높은가에 대한 해답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를, 그것도 매우 이물스럽게 그리고 있어서 그 특이한-어쩌면 병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상상력에 경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악스러움은 인간이 선한 신에 의해 창조되고 아직까지도 그 신은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한층 클지도 모르겠다. 러브크래프트의 단편들은 각각으로 독립된 이야기이면서도 그 이야기들 전체를 관통하는 독특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데 간략히 말하자면 지구의 생물들을 만든 것은 외계로부터(지구 바깥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우주 바깥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온 존재들이며 그들은 선한 의도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나 행복, 도덕성,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는 이 존재들은 그 자신의-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목적에 따라 재앙을 불러 온다.


H.R. 기거Giger
크툴루Chtulhu


러브크래프트가 만들어낸 이 독특한 세계관은 보통 ‘크툴루Chtulhu 신화’라고 불린다. 내가 이 이상한 단어를 처음 들은 것은 Metallica의 연주곡 ‘The Call of Ktulu(1984)’를 통해서였는데(물론 보다시피 철자는 다르다) 이 단어에서 처음 연상된 것은 마야나 잉카의 신 이름 같다는 것이었다. 결국 공포스런 존재이긴 하지만 일종의 신적 존재임에는 틀림 없으므로 내 느낌이 그다지 많이 틀리지는 않은 셈이다. 이 전집의 표지에 그려진 문어처럼 생긴 존재가 바로 크툴루이다. 심연에 가라앉아 지금은 잠들어 있지만 언젠가 다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이 존재의 문학적 근원은 성서에 등장하는 레비아탄이나 전설 속의 바다괴물인 크라켄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러브크래프트는 이처럼 인간의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심연(‘크툴루의 부름’)이나 극지의 고산(‘광기의 산맥’), 지구 바깥의 광활한 공간(‘우주에서 온 색채’), 혹은 선사시대를 거슬러올라가는 까마득한 과거(‘시간의 그림자’)로부터의 공포를 길어 올리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 이 미지의 공포는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아찔함을 선사하며 끝까지 그 확실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공포의 깊이를 배가시킨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창조물들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일인칭 화자의 시점을 택함으로써 주인공들이 진상을 깨달아가는 과정에 독자들을 참여시키지만 그 ‘앎’은 결코 완전해질 수 없기 때문에 모호함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정체를 낱낱이 드러낸 괴물보다는 안개에 싸여 반쯤 보이는 괴물이 열 배는 더 무섭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호성과 때때로 상호 모순되는 듯 보이는 사실들은 그의 작품들에 신화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니콜라스 로어리치Nicolas Roerich(1874~1947)
티벳, 히말라야 Tibet. Himalayas. 1933
캔버스에 템페라 Tempera on canvas. 74 x 117 cm.
니콜라스 로어리치 박물관, 뉴욕Nicholas Roerich Museum, New York
러브크래프트는 ‘광기의 산맥’에서 남극의 산맥에서 발견한 문명의 독특한 구조물의 형태를 설명하기 위해 로어리치의 그림들을 언급한다. 로어리치는 러시아 출신의 화가이자 작가, 과학자, 여행가로서 7000점 가량의 많은 그림들을 남겼는데 러브크래프트는 그의 환상적인 풍경화들에 감명받은 것으로 보인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이 일반적인 유령 이야기나 초자연 현상들을 다룬 공포 소설들과는 다른, 매우 이질적이고 ‘건조한’ 공포를 다루지만(이세계로부터의 공포를 탁월하게 그려낸 ‘우주에서 온 색채’ 같은 작품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모두에 말했듯이 그 공포가 온갖 자극에 노출되어 살아 온 현재의 우리들에게 크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책을 읽어가면서 나를 기묘한 느낌에 빠지게 만든 이유는 이 작품들에 묘사된 세계, 외계의 영향을 받은 선사시대의 지구라는 가정이 낯설지 않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키는 역사의 미스터리들을 설명하고자 노력하는 여러 저술가들의 주장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극대륙의 얼음 밑에 묻혀 있다는 초고대 문명의 자취(‘광기의 산맥’), 그리고 사라진 대륙-아틀란티스, 레무리아 등-에 대한 설명은 그레이엄 핸콕(‘신의 지문’의 저자) 류의 설명과 매우 비슷한 데가 있다. 많은 문명의 전설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문명 전수자들(외계에서 온 존재가 여러 지식을 전수해 준다는 이야기)’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특히 바빌로니아의 ‘오안네스’라는 물고기 형상의 존재, 그리고 원시 부족으로서는 특이하게도 천문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 서양 세계를 놀라게 한 말리의 도곤족이 그 지식을 시리우스자리로부터 온 물고기 형상의 방문객으로부터 배웠다고 주장한다는 이야기(‘옛 문명의 풀리지 않는 의문들’)는 러브크래프트의 ‘데이곤’이라는 존재(‘데이곤’, ‘인스머스의 그림자’)를 강하게 연상시키면서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물론 가설은 가설일 뿐이고 소설 역시 그러하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세계와 생명의 기원, 삶의 의미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이토록 매몰찬 해답(이해 불가의 존재들이 만들어낸 세계의 부산물에 불과하다는)을 들이민다는 것이야말로 러브크래프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충격의 근원인 듯 하다.   



H.R. 기거Giger
네크로노미콘Necronomicon

'네크로노미콘'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공의 책으로 아랍의 광인 압둘 알하즈레드가 썼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어쨌든 이 특이한 작가의 컬트적인 소설들은 그의 사후에 문화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내가 읽은 작품으로는 스티븐 킹의 단편 ‘예루살렘스 롯(1978)’,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는 뱀파이어 스토리인 ‘세일럼스 롯(1975)’이 있다. 이들 작품 중 ‘예루살렘스 롯’은 특히 러브크래프트의 분위기가 강한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공의 책 중 하나인 ‘벌레의 신비’가 등장한다. 킹은 또한 러브크래프트가 그의 고향 메사추세츠에 가공의 지역들(아컴, 인스머스, 더니치 등)을 마련해 작품의 배경으로 삼은 것처럼, 자신의 고향 메인에 예루살렘스 롯, 캐슬록, 데리 같은 가공의 지역들을 작품의 주 무대로 삼고 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도 ‘더 많은 것들이 있다(1975)’라는 제목의 단편에서 러브크래프트의 ‘금단의 저택’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를 특유의 분위기로 풀어 나간다.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알 수 없는 존재가 깃들인 집, 위험을 알면서도 이상한 힘에 의해 그 위험 속으로 뛰어들고야 마는 주인공, 끝끝내 확실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한 존재 등 러브크래프트의 요소들을 모두 갖추면서도 역시 보르헤스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Metallica의 곡 중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인스머스의 그림자’로부터 영향 받아 쓴 곡, “The Thing that Should Not Be”의 가사를 소개한다. 1986년 앨범인 [Master of Puppets]의 수록곡인데 내가 아주 좋아하는 앨범이지만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는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모를 곡이었다.

Hybrid children watch the sea 혼혈의 아이들*은 바다를 바라본다
Pray for father, roaming free 자유롭게 배회하는 아버지에게 기도하며

Fearless wretch /Insanity 겁 없는 미친 부랑자
He watches / Lurking beneath the sea / Great old one 그는 그레이트 올드원**이 바다밑에 숨어있는 것을 본다
Forbidden site / He searches 그는 금지된 지역을 탐색한다
Hunter of the shadows is rising / Immortal / In madness you dwell

그림자 사냥꾼이 떠오른다, 네가 살고 있는 광기 속에서 그는 불멸이다

---Metallica, "The Thing that Should Not Be" 중에서

* 인스머스의 ‘물고기 눈을 한’ 주민들로 내용에서 차차 밝혀 지듯이 인간과 물고기 모양을 한 바다의 존재간의 혼혈이다.

** 러브크래프트가 외계의 신적 존재들을 부르는 이름 중 하나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사의 게임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전작 <바람의 그림자>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주저 없이 집어 든 책이다. 전작과 비교하자면 <바람의 그림자> 쪽이 좀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 작품은 심각한 가운데도 따뜻함과 유머러스함이 적절히 스며 있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그런 면이 줄어들었기 때문인 듯도 하다. 게다가 작가가 주인공이라는 것,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비밀의 과거를 간직한 저택이 등장하는 것까지 같아서 신선함이 좀 덜해진 듯도 하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재미 없다거나(책장을 빨리 넘기게 하는 흡인력은 여전하다) 형편 없는 작품이라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악마와의 거래를 다룬 파우스트적인 소설인 듯 보였지만 대미에 가서 꿈과 현실, 현재와 과거가 기묘하게 뒤섞이면서 이제껏 읽어 온 내용을 복기하게 하는 것은 역시 범상치 않은 솜씨다.
또한 저자는 여기서 작가와 편집인, 독자의 관계를 매우 신랄하게 그려 보인다. 어쩌면 글 쓰는 사람의 숙명이랄 수도 있는 관계들 말이다. 혼자 간직할 것이 아니라면 글은 어차피 독자를 가정하고 쓰일 수밖에 없고(우리는 심지어 일기를 쓸 때조차 누군가 그것을 읽게 되는 상황을 생각하게 된다!) 더욱 많은 독자를 원한다면 더욱 많이 타협하게 된다. 쓰고자 하는 것과 쓸 수 있는 것 사이의 이러한 긴장 관계는 작가의 커다란 두통거리이고 그런 긴장이 한계까지 다다른 상황에서 작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 즉 인간의 삶 자체를 바꿀 수 있을 만한 작품을 쓴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유혹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을 밑바닥부터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종교라고 부를 만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종교에 대한 코렐리의 차가운-거의 경멸적인-논평을 듣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재미 중 하나이다. 만일 종교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논평들만으로도 코렐리를 악마라고 선언하고 싶어질 것이다.
<바람의 그림자>에서도 그랬지만 이 책에서도 바르셀로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내가 본 봄의 바르셀로나에는 음침한 구석이라곤 없어 보였지만 여기서는 음울하고 비밀에 가득 찬 바르셀로나를 만나게 된다. 채색 타일로 예쁘게 단장된 가우디의 구엘 공원 조차도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주거 단지라는 원래의 운명과 맞물려 황량하고 쓸쓸한 곳으로 묘사된다. <바람의 그림자>의 독자들은 그 책보다 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잊혀진 책들의 묘지’를 다시 만나고 주인공 다니엘 셈페레의 부모와 할아버지를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셈페레와 아들’ 서점은 어둡고 비밀스러운 이 책의 바르셀로나에서 유일하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번역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매우 어색하고 이해가 어려운 문장들이 섞여 있어서 읽기에 짜증스러웠다. 베스트셀러를 얼른 내고 싶은 마음에 서두른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역자의 무성의라고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issot T-Wave 2012-02-1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게 아니라면 역자의 new tissot
tissot watches uk
tissot touch watch
Tissot T-Wave
tissot automatic chronograph
tissot quartz
무성의라고밖에는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