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P. 러브크래프트
(Howard Philips Lovecraft, 1890~1937))
정진영(옮긴이)   

황금가지

다른 책들을 통해 그 명성을 듣기는 하지만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작품들이 있다. 러브크래프트도 그런 작가 중 하나였다. 공포소설 혹은 SF소설의 계보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작가이지만 정작 그의 작품을 읽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전집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읽어보았다.

사실 1920~30년대에 씌어진 소설들은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다. 이미 웬만한 공포 소설을 읽어서는 ‘공포’가 느껴지지 않으니 그것은 예상한 바였다. 하지만 왜 지금까지 이 작가의 명성이 높은가에 대한 해답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를, 그것도 매우 이물스럽게 그리고 있어서 그 특이한-어쩌면 병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상상력에 경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악스러움은 인간이 선한 신에 의해 창조되고 아직까지도 그 신은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한층 클지도 모르겠다. 러브크래프트의 단편들은 각각으로 독립된 이야기이면서도 그 이야기들 전체를 관통하는 독특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데 간략히 말하자면 지구의 생물들을 만든 것은 외계로부터(지구 바깥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우주 바깥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온 존재들이며 그들은 선한 의도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나 행복, 도덕성,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는 이 존재들은 그 자신의-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목적에 따라 재앙을 불러 온다.


H.R. 기거Giger
크툴루Chtulhu


러브크래프트가 만들어낸 이 독특한 세계관은 보통 ‘크툴루Chtulhu 신화’라고 불린다. 내가 이 이상한 단어를 처음 들은 것은 Metallica의 연주곡 ‘The Call of Ktulu(1984)’를 통해서였는데(물론 보다시피 철자는 다르다) 이 단어에서 처음 연상된 것은 마야나 잉카의 신 이름 같다는 것이었다. 결국 공포스런 존재이긴 하지만 일종의 신적 존재임에는 틀림 없으므로 내 느낌이 그다지 많이 틀리지는 않은 셈이다. 이 전집의 표지에 그려진 문어처럼 생긴 존재가 바로 크툴루이다. 심연에 가라앉아 지금은 잠들어 있지만 언젠가 다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이 존재의 문학적 근원은 성서에 등장하는 레비아탄이나 전설 속의 바다괴물인 크라켄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러브크래프트는 이처럼 인간의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심연(‘크툴루의 부름’)이나 극지의 고산(‘광기의 산맥’), 지구 바깥의 광활한 공간(‘우주에서 온 색채’), 혹은 선사시대를 거슬러올라가는 까마득한 과거(‘시간의 그림자’)로부터의 공포를 길어 올리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 이 미지의 공포는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아찔함을 선사하며 끝까지 그 확실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공포의 깊이를 배가시킨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창조물들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일인칭 화자의 시점을 택함으로써 주인공들이 진상을 깨달아가는 과정에 독자들을 참여시키지만 그 ‘앎’은 결코 완전해질 수 없기 때문에 모호함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정체를 낱낱이 드러낸 괴물보다는 안개에 싸여 반쯤 보이는 괴물이 열 배는 더 무섭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호성과 때때로 상호 모순되는 듯 보이는 사실들은 그의 작품들에 신화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니콜라스 로어리치Nicolas Roerich(1874~1947)
티벳, 히말라야 Tibet. Himalayas. 1933
캔버스에 템페라 Tempera on canvas. 74 x 117 cm.
니콜라스 로어리치 박물관, 뉴욕Nicholas Roerich Museum, New York
러브크래프트는 ‘광기의 산맥’에서 남극의 산맥에서 발견한 문명의 독특한 구조물의 형태를 설명하기 위해 로어리치의 그림들을 언급한다. 로어리치는 러시아 출신의 화가이자 작가, 과학자, 여행가로서 7000점 가량의 많은 그림들을 남겼는데 러브크래프트는 그의 환상적인 풍경화들에 감명받은 것으로 보인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이 일반적인 유령 이야기나 초자연 현상들을 다룬 공포 소설들과는 다른, 매우 이질적이고 ‘건조한’ 공포를 다루지만(이세계로부터의 공포를 탁월하게 그려낸 ‘우주에서 온 색채’ 같은 작품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모두에 말했듯이 그 공포가 온갖 자극에 노출되어 살아 온 현재의 우리들에게 크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책을 읽어가면서 나를 기묘한 느낌에 빠지게 만든 이유는 이 작품들에 묘사된 세계, 외계의 영향을 받은 선사시대의 지구라는 가정이 낯설지 않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키는 역사의 미스터리들을 설명하고자 노력하는 여러 저술가들의 주장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극대륙의 얼음 밑에 묻혀 있다는 초고대 문명의 자취(‘광기의 산맥’), 그리고 사라진 대륙-아틀란티스, 레무리아 등-에 대한 설명은 그레이엄 핸콕(‘신의 지문’의 저자) 류의 설명과 매우 비슷한 데가 있다. 많은 문명의 전설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문명 전수자들(외계에서 온 존재가 여러 지식을 전수해 준다는 이야기)’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특히 바빌로니아의 ‘오안네스’라는 물고기 형상의 존재, 그리고 원시 부족으로서는 특이하게도 천문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 서양 세계를 놀라게 한 말리의 도곤족이 그 지식을 시리우스자리로부터 온 물고기 형상의 방문객으로부터 배웠다고 주장한다는 이야기(‘옛 문명의 풀리지 않는 의문들’)는 러브크래프트의 ‘데이곤’이라는 존재(‘데이곤’, ‘인스머스의 그림자’)를 강하게 연상시키면서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물론 가설은 가설일 뿐이고 소설 역시 그러하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세계와 생명의 기원, 삶의 의미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이토록 매몰찬 해답(이해 불가의 존재들이 만들어낸 세계의 부산물에 불과하다는)을 들이민다는 것이야말로 러브크래프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충격의 근원인 듯 하다.   



H.R. 기거Giger
네크로노미콘Necronomicon

'네크로노미콘'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공의 책으로 아랍의 광인 압둘 알하즈레드가 썼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어쨌든 이 특이한 작가의 컬트적인 소설들은 그의 사후에 문화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내가 읽은 작품으로는 스티븐 킹의 단편 ‘예루살렘스 롯(1978)’,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는 뱀파이어 스토리인 ‘세일럼스 롯(1975)’이 있다. 이들 작품 중 ‘예루살렘스 롯’은 특히 러브크래프트의 분위기가 강한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공의 책 중 하나인 ‘벌레의 신비’가 등장한다. 킹은 또한 러브크래프트가 그의 고향 메사추세츠에 가공의 지역들(아컴, 인스머스, 더니치 등)을 마련해 작품의 배경으로 삼은 것처럼, 자신의 고향 메인에 예루살렘스 롯, 캐슬록, 데리 같은 가공의 지역들을 작품의 주 무대로 삼고 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도 ‘더 많은 것들이 있다(1975)’라는 제목의 단편에서 러브크래프트의 ‘금단의 저택’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를 특유의 분위기로 풀어 나간다.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알 수 없는 존재가 깃들인 집, 위험을 알면서도 이상한 힘에 의해 그 위험 속으로 뛰어들고야 마는 주인공, 끝끝내 확실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한 존재 등 러브크래프트의 요소들을 모두 갖추면서도 역시 보르헤스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Metallica의 곡 중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인스머스의 그림자’로부터 영향 받아 쓴 곡, “The Thing that Should Not Be”의 가사를 소개한다. 1986년 앨범인 [Master of Puppets]의 수록곡인데 내가 아주 좋아하는 앨범이지만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는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모를 곡이었다.

Hybrid children watch the sea 혼혈의 아이들*은 바다를 바라본다
Pray for father, roaming free 자유롭게 배회하는 아버지에게 기도하며

Fearless wretch /Insanity 겁 없는 미친 부랑자
He watches / Lurking beneath the sea / Great old one 그는 그레이트 올드원**이 바다밑에 숨어있는 것을 본다
Forbidden site / He searches 그는 금지된 지역을 탐색한다
Hunter of the shadows is rising / Immortal / In madness you dwell

그림자 사냥꾼이 떠오른다, 네가 살고 있는 광기 속에서 그는 불멸이다

---Metallica, "The Thing that Should Not Be" 중에서

* 인스머스의 ‘물고기 눈을 한’ 주민들로 내용에서 차차 밝혀 지듯이 인간과 물고기 모양을 한 바다의 존재간의 혼혈이다.

** 러브크래프트가 외계의 신적 존재들을 부르는 이름 중 하나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