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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 상 ㅣ 스티븐 킹 걸작선 2
스티븐 킹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평점 :
언제부터인가 무서운 책이나 영화를 봐도 악몽에 시달리지도, 밤에 화장실가면서 느끼던 무서움도 더이상 느끼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 책이-물론 어릴 때의 공포에 비하면 상당히 약화된 것이긴 해도-그러한 공포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어찌보면 단순한 '유령의 집(실제로는 '유령 호텔')'이야기인 듯 보이는 이 소설이 가져다주는 이런 공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나약함이 야기하는 악의 존재 때문일 것이며 그러한 악으로부터 우리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주인공 잭 토런스라는 인물의 성격 묘사는 참으로 적절하다. 그는 특별히 악한 사람이 아니지만 인간적인 약점들을 갖고 있는, 즉 의지가 약하고 따라서 알콜이나 약물에 의지하는 경향이 강하며 때때로 이성을 잃고 뒤늦게 후회하곤 하는, 그런 인물이다. 이런 정도의 약점을 갖지 않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평범한 인물이 호텔의 악령들에게 '들려 가는' 상황은 무척이나 공포스럽다.
스티븐 킹은 인간의식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공포감을 건드리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는 작가이며 그것은 이 소설도 예외가 아니다. '샤이닝'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나의 경우에는 움직이지 말아야 마땅한 것이 움직일 때였다. 특히 잭의 아들 대니가 금지된 문, 217호실 앞에서 느꼈던 공포는 내게도 그대로 전해져 와, 소화전 아닌 샤워기가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좋은 소설이 항상 그렇듯이 이 소설 역시 단순한 무서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소설 전반부에 각 인물들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상황 설정은 후반부의 광기가 단지 호텔만의 책임은 아니란 사실을 알려준다. 토런스 가족 내부에서 곪고 있던 문제들이 악령들과 만나 폭발한 듯한 느낌이다. 잭의 아버지가 잭에게 드리우는 폭력의 그림자, 잭의 아내 웬디와 그녀의 어머니와의 불편한 관계, 텔레파시 혹은 염력을 가진 그들의 아들 대니를 둘러싼 애증과 과거의 폭력, 이런 것들이 얽힌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의심과 소외가 결국 비극을 불러 오는 것이다.
이 소설의 프롤로그에서도 언급되는 에드가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The Mask of the Red Death)'은 소설 전편을 통해 오버랩되면서 파국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며 소년 대니가 무서워하면서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는 217호실 문-금지된 문의 모티브는 역시 이 작품에서 언급되는 '푸른 수염' 이야기 외에도 많은 동화와 민담에서 발견된다. 고립이 가져다주는 폭력과 공포의 분위기는 고골리의 '죽은 혼'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시 첫머리에 나오는 고야의 명문이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