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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클럽 1
매튜 펄 지음, 이미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초반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여 책을 내동댕이치고픈 충동을 여러 번 느꼈다. 남북전쟁시기 미국 뉴잉글랜드는 문학적으로 풍부한 토양을 자랑하는 곳이었던 바, 저자는 그 시기의 문학적 분위기를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느끼게 하고 싶어했던 것 같으나 내게는 몇몇을 빼고는 생소한 그 인물들의 관계를 알아나가야만 하는 첫 부분이 심히 지루했다. 더우기 단테 번역을 둘러싼 학자들과 판사의 살인사건이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엮어지지가 않아 집중이 되질 않는 것이었다. 포기할까 하다가 그래도 한 번만 꾹 참자는 생각에 책을 붙들고 있었는데, 드디어 이 책은 1권 중간 넘어서면서부터 그간의 노고에 대한 보답을 주었다.
읽어나가다보면 중세시대의 일곱 가지 대죄에 따라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 '세븐'을 연상하게 되지만 정체불명의 비오는 도시를 헤매다니는 두 형사의 숨막히도록 음울한 분위기가 우리를 짓누르는 영화와는 달리, 범죄와는 관계 없이 살아오던 작가와 출판업자들의 다소 어설프지만 도덕적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며 행하는 아마추어 탐정 역할이 어찌 보면 귀엽게도 느껴지는 그런 작품이다. 여기서는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의 형벌을 따라서 살인이 벌어지는데 미국에 단테를 처음 소개하려는 일련의 시인과 학자들이 사건에 말려들게 된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단테를 모르는 상황에서 신곡의 상황을 따라 이루어지는 범죄를 추격하는 데는 사실 이 단테 클럽 회원들만한 적임자는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범죄 스릴러와 문학사를 교묘히 엮어 실존했던 인물들을 통하여 사실과 허구를 교차하는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그런 한편 청교도적 초기 미국 사회에서 카톨릭 작가인 단테를 어떻게 경원시했는가 하는 것, 노예 해방을 목표로 내세웠으나 결국 다른 전쟁과 똑같이 추악했던 남북 전쟁의 상처 등을 보여주고 있다.
초반이 지루하다고 말했으나 뒷부분도 그다지 속도감 있게 읽히지는 않으며 반전을 내세워 깜짝 범인을 등장시키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다소 서투르게 잘못된 추리를 거듭하는 시인들과 함께 보스턴 거리를 헤매다 보면 어느새 그 시대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언제나 진짜 지옥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전으로 찢긴 조국에서 쫓겨나 신곡을 쓴 단테,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 그들은 모두 지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다.
무리 없는 사건 진행과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 적절한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지만 막판 범인의 얘기가 길게 나온 건 좀 사족이었단 생각이 든다.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번역이 좀 매끄럽지 못한 것, 오타가 적잖이 눈에 띈 것도 좀 고쳐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