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내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롭스, 뭉크 전이 열리고 있다(10월 22일까지). ‘Man & Woman’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판화로 제작된 두 화가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뭉크Edvard Munch(1863~1944)는 ‘절규’라는 그림으로 매우 유명하지만 롭스Felicien Rops(1833~1898)는 우리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진 화가는 아니다. 국내 전시는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안다.

뭉크의 그림들이 몽환적이고 불안정한 느낌을 주는 반면에 롭스의 작품은 풍자적이고 기괴하다. 그러나 두 작가가 여성과 남성을 바라보는 시각엔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서양에서 여성을 악의 뿌리로 보는 것은 그다지 낯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초기 기독교의 전파와도 관련되어 있다. 원시 사회의 가혹한 생존 환경에서는 살아남고, 자손을 많이 퍼뜨리는 일, 종의 번식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자손을 낳는 여성의 생산력은 그래서 무척 중요시 되었고 고대 종교들에서 여신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또한 종족보존에 꼭 필요한 성적 에너지에 대한 숭배 또한 존재했다. 그러나 기독교의 일신론은 이러한 여신들의 존재를 부정해왔다. 그리하여 기독교의 승리와 함께 고대의 강력한 여신들은 ‘바빌론의 창녀’로 전락했다. 기독교는 또한 성을 악마적 힘과 동일시하고 죄악시했다. 성모의 무염시태無染始胎 신화는 이런 생각으로부터 만들어졌고 나아가서는 성모의 어머니인 성 안나 역시 마리아를 ‘죄 없이 잉태’했다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신화들은 결국 기독교가 성행위를 죄악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남성의 시각으로 보자면 남성을 유혹하여 죄의 길로 빠뜨리는 여성이야 말로 악의 근원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팜므 파탈의 원형은 최초의 여자인 이브이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중 창세기, 타락과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원죄

Genesis, The Fall and Expulsion from Paradise - The Original Sin

프레스코Fresco, 1508-1512

시스티나 예배당, 바티칸Cappella Sistina, Vatican

 

19세기 말의 화가들이 특히 이런 시각으로 여성을 바라보았다는 것은 아마도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고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세기말의 데카당스는 여성의 성적 매력을 강조함으로써 유혹자로서의 여성의 이미지를 극대화시켰다.

펠리시앙 롭스Felicien Rops

씨뿌리는 사탄 Les Sataniques - Satan semant l'ivraie

컬러 인그레이빙 Colour engraving, 179x256 mm, 1906년

알베르 베르트랑 (Albert Bertrand, 1854-1912) 에 의한 사후 판화

 

롭스의 사탄 시리즈 중 하나인 ‘씨뿌리는 사탄’을 보자. 19세기 말의 파리는 예술의 중심지이지만 또한 타락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거대하지만 앙상한 사탄은 세느 강을 가로지르면서 악의 씨앗을 흩뿌리고 있다. 롭스가 본 악의 씨는 다름 아닌 여자들이다. 매혹적인 육체를 가진 이 여자들은 이 세계에 흩어져 유혹하고 타락시키는 악마의 하수인 역할을 할 것이다.

펠리시앙 롭스Felicien Rops

악녀들 - 스핑크스 Les Diaboliques- Le Sphinx,

수정 사진요판 Retouched heliogravure, 165x240 mm, 연도미상

 

스핑크스는 수수께끼이다. 오이디푸스 신화가 말하듯이 이 괴물은 자신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사람을 잡아먹어 버린다. 수수께끼는 또한 사람을 유혹한다. 호기심은 강력한 힘이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다. 스핑크스, 그리고 스핑크스와 아주 닮은 여인은 이 사람을 유혹하는 기술을 두고 이야기한다. 그들 위에서 연미복을 차려 입은 악마는 이 공모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 시기에 스핑크스는 팜므 파탈의 상징으로 종종 사용되었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지만 사자의 발톱과 같은 본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팜므 파탈의 대표적 여인인 살로메 또한 ‘남자를 잡아 먹는’ 그녀의 본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종종 호랑이 가죽과 함께 그려졌다(살로메와 세례 요한 1편 http://blog.daum.net/contessina/6769409참조). 이런 속성을 잘 드러내주는 그림이 프란츠 폰 슈투크의 다음 그림이다.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1863~1928)

스핑크스의 키스The Kiss of the Sphinx(1895)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Szépmüvészeti Múzeum, Budapest

 

사자의 발로 남자를 꽉 껴안은 스핑크스가 그에게 키스한다. 이 키스는 그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처럼 격렬하다. 그리고 이 키스가 끝난 다음, 아마 스핑크스는 이 남자를 잡아먹어버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흡혈귀 II Vampire II

리도그래프, 우드컷 Lithograph and Woodcut (1895/1902 )

540×380  

 

뭉크의 흡혈귀는 붉은 머리를 가진 여인이다. 중세에 붉은 머리 여자들이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기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신의 목에서 피를 빠는 이 흡혈귀로부터 벗어나려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남자는, 무기력하다. 스핑크스로부터 죽음의 키스를 받는 남자처럼, 이 희생자도 ‘숙명의 여인’ 앞에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다.

펠리시앙 롭스Felicien Rops

세상을 지배하는 매춘과 광기 La Prostitution et la folie dominant le monde,

수정 사진요판 Retouched heliogravure , 165x245 mm, 1879-1886 년

 

악마의 기술을 터득한 여자는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지배를 더 쉽게 도와주는 것은 역시 악마의 하수인인 어리석음, 혹은 광기이다. ‘매춘’을 상징하는 여자, 그리고 광기를 상징하는 어릿광대를 감싼 숄 아래로 드러난 발굽달린 발은 그들이 악마와 같은 종족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롭스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툴루즈-로트렉도 파리의 창녀들을 많이 그렸지만 그녀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전혀 달랐다.

앙리 툴루즈-로트렉Toulouse-Lautrec, Henri(1864-1901)

물랭 거리:건강 검진 Rue des Moulins: The Medical Inspection(1894)

카드보드에 유채Oil on cardboard, 82 x 59.5 cm

국립미술관, 워싱턴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로트렉이 그린 거리의 여자들은 별로 아름답지 않다. 이 담담한 표정의 여자들은 성적 매력보다는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그녀들은 전혀 악마의 하수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로트렉은 자신이 이 여자들과 많이 다르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펠리시앙 롭스Felicien Rops

창부정치가 Pornocratès,

컬러 인그레이빙 Colour engraving, e450x690 mm, 1896 년

알베르 베르트랑 (Albert Bertrand, 1854-1912)에 의한 판화

 

그에 비하면 롭스의 창부는 얼마나 다른가? 눈을 가린 그녀는 옷을 거의 벗고 있으면서도 여왕처럼 당당하다. 그녀는 돼지에 의해 인도되어 이 세상을 활보한다. 우리는 돼지를 복을 주는 동물로 생각하지만 돼지에 대한 서양의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금빛 꼬리를 한 이 돼지가 상징하는 것은 부에 대한 욕심, 무절제, 악마성과 같은 것이다. 그녀의 발밑에서 조각, 음악, 시, 그림과 같은 예술들은 패배하여 한탄하고 있다.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The Sin(1902)

리도그래프 Lithograph, 405×700

 

여기 그려진 여자는 툴라 라르센이라는, 뭉크를 사랑한 여자이다. 그녀는 결혼을 원했지만 뭉크는 거부했다. 결국 라르센은 자살 소동을 벌이고 뭉크는 이 와중에 손에 상처를 입었다. 그는 이 집요하게 사랑을 요구하는 여자에게 ‘죄’라는 제목을 붙였다. 정관사’the’로부터 알 수 있듯이 그 죄는 다름 아닌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이다. 길게 늘어뜨린 붉은 머리, 초록 눈동자를 가진 이 여자는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도 뭉크에겐 ‘죄’를 더하는 요소였는지도 모른다.

펠리시앙 롭스Felicien Rops

신과 같이 될 것이다 Eritis Similes Deo

컬러 인그레이빙 Colour engraving, 152x228 mm, 1896 년

알베르 베르트랑 (Albert Bertrand, 1854-1912) 에 의한 판화 

 

‘원죄’의 장면이 여기 있다. 뱀은 선악과를 손에 들고 이브를 유혹한다.’이걸 먹으면 신과 같이 될 것이다’라고 유혹하면서. 이브의 흡족한 표정에서, 뱀이 유혹에 성공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앞에서 본 미켈란젤로의 그림에서처럼, 전통적으로 뱀은 긴 꼬리를 가진 여자로 표현되어 왔다. 그러나 롭스는 여기서 뱀을 남자로 그렸다. 그것은 이 유혹에 성적인 면을 더해 준다.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마돈나 Madonna(1895/1902)

리도그래프 Lithograph c. 445×605 

 

뭉크의 ‘마돈나’는 보다 복합적이다. 이 꿈꾸듯 황홀한 표정의 여인은 단순한 악의 씨앗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뭉크가 이 그림에 ‘마돈나’란 제목을 붙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림의 테두리에는 정충들과 내게는 외계인처럼 보이는 태아가 그려져 있다. 뭉크는 다시 한 번, 생명을 이어져가게 만드는 여성적 힘을 찬양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유한한 생명체가 그 유한성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자손을 남기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 화가가 남긴 매우 비슷한 그림을 보자.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사춘기 Puberty(1902)

에칭 Etching 150×188

펠리시앙 롭스Felicien Rops

악녀들 - 돈 후안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 Les Diaboliques- Le Plus bel amour de Don Juan

수정 사진요판 Retouched heliogravure , 162x235 mm, 연도미상

 

두 그림은 소녀와 같은 몸매의 모델들, 그녀들의 비슷한 포즈, 그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까지 매우 닮아 있다. 두 소녀는 불안해 보이는데, ‘사춘기’에서는 그 불안감의 원인이 확실히 드러나 있지 않지만 롭스의 그림에선 검은 망토를 두른 돈 후안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 사춘기 들어서면서 겪게 되는 몸의 변화는 유혹자들을 끌어 들일 것이고, 이 소녀의 삶은 앞으로 그러한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롭스의 소녀는 이미 마수에 걸려 들었다. 결국, ‘팜므 파탈’을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전시된 작품들의 이미지는 덕수궁 미술관 홈페이지 http://www.moca.go.kr/Modern/modern1/deoksugung/index.html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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