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잃어버린 건 이제 없는 거야.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다른 게 들어설 자리가 생기는 법이란다. - P43

전쟁은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 P53

집무실에 혼자 남은 히루트는 높아졌다 낮아지기를 반복하는 키다네와 아스테르의 목소리를 들으며 처음으로 깨닫는다. 

어떤 기억은 다른 기억으로 장벽을 둘러야 한다는 것을, 강한 기억으로 다른 기억을 틀어막아야 한다는 것을.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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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 느껴 본 적 없는 감정인데도 그게 무엇인지 금세 알아버렸다. 질투였다. 책에서 봤을 때는 질투가 분노처럼 뜨거운 감정일 줄 알았다. 그러나 질투는 뜨겁다기보다 메스꺼움과 절망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공허하고 자학적인 감정이었다. 심지어 이때는 아무 일도 없었는데.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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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결코 확정적이고 영속적인 형상 (고대의 현인들은 인간을서로 상이하게 해석하긴 했지만 이것만은 고대의 공통된 이상이었다)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시도요 과도(過渡)이며, 자연과 정신 사이에 놓인 좁고 위험한 다리에 지나지않는다. 인간을 정신 쪽으로, 신 쪽으로 몰아대는 것은 내면의 명령이며, 그를 자연 쪽으로, 어머니 쪽으로 돌아가도록 잡아끄는 것은 절실한 동경이다. 이 둘 사이에서 두려움에 떨며 동요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 P85

 "젊은이! 자네는 늙은 괴테를 너무 진지하게 대하고 있네. 이미 죽어버린 옛 사람들은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네. 그건 그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거라네. 우리처럼 불멸하는 사람들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법이야. 우리는 즐거움을 좋아하지. 

젊은이! 진지함이란 시간의 문제라네.

이것만큼은 자네에게 일러줘야겠네. 진지함이란 시간을 과대 평가하는 데서 생겨나는 거라네. 나도 한때는 시간의가치를 과대 평가한 적이 있었네. 그래서 백 살까지 살고 싶어 했지. 그러나 영원 속에선 , 자네도 알다시피, 시간이란 없다네! 영원은 한 순간에 불과한 것이라네. 즐거운 일을 하나쯤 할 수 있는 딱 그만한 시간이지."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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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우리가 영위하는 이 삶 속에서, 이렇게 자기 만족에 빠진, 이렇게 시민적인, 이렇게 정신을 상실한 시대 속에서, 이런 건축물과 사업과 정치와 이런 인간들 속에서 신의 자취를 발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이 세상의 목적에 공감할 수 없고, 이 세상의 어떠한 기쁨도 나와는 상관없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내가 한 마리 황야의 이리, 한 초라한 은둔자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연극이고 영화고 차마 볼 수가 없고, 신문도 좀체 읽을 수 없으며, 최신서적도 거의 읽지 않는다. 만원열차와 호텔, 자극적으로 추근대는 음악이 울리는 꽉꽉 미어지는 카페, 우아한 사치도시의 바와 버라이어티 쇼, 만국 박람회, 경마장, 교양에 목마른 자를 위한 강연회, 거대한 운동장 -- 나는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갈구하는 기쁨과 욕망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얻고자 아우성치는—원하기만 하면 나에게도 찾아올지 모르는 -- 그 모든 기쁨을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할 수도 없다. 

그러나 반대로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나에게 행복과 환희와 체험과 무아경과 승화를 주는 것들을, 세상 사람들은 기껏해야 문학에서나 찾고 이해하고 좋아할 뿐, 삶에서 그것들을 대하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세상이 옳다면, 다시말해 카페의 음악이나 대중의 향락이나 값싼 만족에 길들여진 이런 미국식 인간들이 옳다면, 내가 틀렸고, 내가 미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말 그대로 황야의 이리인 것이다. 나야말로 고향도, 공기도, 양식도 찾지 못하는짐승, 낯설고 알 수 없는 세상에 길을 잘못 들어선 짐승인것이다. - P44

 가장 위대한 일을 행하라는 소명을 받았으나 이를 저지당한 비극적인 사람들과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으나 불행한 사람들의 탁월한 발명품인 유머, 오로지 (아마도 인간의 가장 독특하고 천재적인 업적일 터인)  유머만이 이 불가능한 일을 실현할 수 있다.  유머만이 인간존재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프리즘을 통과하는 빛들과 통합시킬 수 있다. 

세상을 부정하면서 세상에 사는 것, 법을 존중하면서도 법을 넘어서는 것, 소유하지 않는 듯이 소유하는 것, 포기하지 않는 듯이 포기하는 것 자주 인용되고 즐겨 요구되는 이 모든 고귀한 삶의 지혜들을 실현시켜 주는 건 오직 유머뿐이다.

그래서 유머의 재능과 착상이 있는 황야의 이리는 시민사회라는 지옥의 후끈거리는 혼란 속에서도 유머라는 이 마법의 물약을 마시고 땀을 흘리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아직 그에겐 여러 가지가 부족하지만 가능성과 희망은 있다. 그를 좋아하고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있는 사람은 그가 이렇게 구원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면 그가 비록 영원히 시민적인 것에 머물게 되더라도, 동시에 고통을 견딜 수 있고 결실을 맺게 될 테니까. 그가 애증의 감정 속에서 시민 세계와 맺는 관계에는 감상이 사라질 것이고, 이 세계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더 이상 괴로운 치욕으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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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좋습니다. 참 좋아요. 이 구절을 한번 들어보세요. 

<고통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모든 고통은 우리의 고귀함에 대한 기억이다.>
 대단합니다. 니체보다 80년 전에이런 말을 하다니! 하지만 내가 말한 구절은 이게 아닙니다. 기다려봐요. 아, 여기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헤엄을 칠 줄 모르는 동안은 헤엄을 치려고 하지 않는 법이다.>

 위트가 있지 않습니까? 헤엄을 치려고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물이 아니라 땅에서 살도록 태어난 거지요. 사람들이 사색하려고 하지 않는 것도 당연합니다. 사람들은 생활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지, 사색하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니니까요! 그런 거지요. 사색하는 사람은, 사색을 본업으로 삼는 사람은 거기서 큰 진전을 보일지는 모르지만, 땅을 물이라고 착각하는 셈이지요. 그런 사람은 언젠가는 익사할 겁니다 - P27

"....지금은 한 세대 전체가 두 시대 사이에, 두 개의 생활 양식 사이에 끼여, 어떠한 자명한 이치도, 도덕도, 어떠한 안정감이나 순수함도 상실해 버린 시대입니다. 물론 너나할것없이 이것을 똑같은 강도로 느끼는 건 아니겠지요.
가령 니체 같은 사람은 오늘날의 고뇌를 한 세대 이상이나 앞서 체험해야 했지요. 그는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이 고뇌를 고독하게 곱씹어야 했지만, 오늘날엔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체험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수기를 읽으면서 이 말을 자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할러는 두 시대 사이에 끼여 있는 자였고, 일체의 안정감과 순수함을 상실한 자였다. 인간의 삶이 지닌 모든 문제를 자신의 개인적인 고통과 지옥으로 승화시켜 체험하는 것 이것이 그의 숙명이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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