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우리가 영위하는 이 삶 속에서, 이렇게 자기 만족에 빠진, 이렇게 시민적인, 이렇게 정신을 상실한 시대 속에서, 이런 건축물과 사업과 정치와 이런 인간들 속에서 신의 자취를 발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이 세상의 목적에 공감할 수 없고, 이 세상의 어떠한 기쁨도 나와는 상관없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내가 한 마리 황야의 이리, 한 초라한 은둔자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연극이고 영화고 차마 볼 수가 없고, 신문도 좀체 읽을 수 없으며, 최신서적도 거의 읽지 않는다. 만원열차와 호텔, 자극적으로 추근대는 음악이 울리는 꽉꽉 미어지는 카페, 우아한 사치도시의 바와 버라이어티 쇼, 만국 박람회, 경마장, 교양에 목마른 자를 위한 강연회, 거대한 운동장 -- 나는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갈구하는 기쁨과 욕망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얻고자 아우성치는—원하기만 하면 나에게도 찾아올지 모르는 -- 그 모든 기쁨을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할 수도 없다. 

그러나 반대로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나에게 행복과 환희와 체험과 무아경과 승화를 주는 것들을, 세상 사람들은 기껏해야 문학에서나 찾고 이해하고 좋아할 뿐, 삶에서 그것들을 대하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세상이 옳다면, 다시말해 카페의 음악이나 대중의 향락이나 값싼 만족에 길들여진 이런 미국식 인간들이 옳다면, 내가 틀렸고, 내가 미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말 그대로 황야의 이리인 것이다. 나야말로 고향도, 공기도, 양식도 찾지 못하는짐승, 낯설고 알 수 없는 세상에 길을 잘못 들어선 짐승인것이다. - P44

 가장 위대한 일을 행하라는 소명을 받았으나 이를 저지당한 비극적인 사람들과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으나 불행한 사람들의 탁월한 발명품인 유머, 오로지 (아마도 인간의 가장 독특하고 천재적인 업적일 터인)  유머만이 이 불가능한 일을 실현할 수 있다.  유머만이 인간존재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프리즘을 통과하는 빛들과 통합시킬 수 있다. 

세상을 부정하면서 세상에 사는 것, 법을 존중하면서도 법을 넘어서는 것, 소유하지 않는 듯이 소유하는 것, 포기하지 않는 듯이 포기하는 것 자주 인용되고 즐겨 요구되는 이 모든 고귀한 삶의 지혜들을 실현시켜 주는 건 오직 유머뿐이다.

그래서 유머의 재능과 착상이 있는 황야의 이리는 시민사회라는 지옥의 후끈거리는 혼란 속에서도 유머라는 이 마법의 물약을 마시고 땀을 흘리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아직 그에겐 여러 가지가 부족하지만 가능성과 희망은 있다. 그를 좋아하고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있는 사람은 그가 이렇게 구원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면 그가 비록 영원히 시민적인 것에 머물게 되더라도, 동시에 고통을 견딜 수 있고 결실을 맺게 될 테니까. 그가 애증의 감정 속에서 시민 세계와 맺는 관계에는 감상이 사라질 것이고, 이 세계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더 이상 괴로운 치욕으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 P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