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핵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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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자네들이 보다시피, 나는 그때 거기서 커츠를 뒤따라가지 않았어. 나는 죽지 않았던 거야. 나는 살아남아서 그 악몽을 끝까지 꾸었고 다시 한번 커츠에게 신의를 지켜야했네.
운명이었어. 내 운명이었단 말이네. 

인생이란 우스꽝스러운 거야. 어떤 부질없는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배열해 놓은 게 인생이니까. 우리가 인생에서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자아에 대한 약간의 앎이지. 그런데 그 앎은 너무 늦게 찾아와서 결국 지울 수 없는 회한(悔恨)이나 거둬들이게 돼. 

나는 죽음을 상대로 씨름해 왔어. 그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다툼 중에서도 가장 맥 빠지는 다툼이야. 어떤 막연한 회색 공간에서 그 다툼을 하게 되는데, 발로 딛고 설 땅이 없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며, 구경꾼도 없고, 소란도 없고, 영광도 없고, 승리를 향한 커다란 욕구도 없고, 패배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도 없으며, 미지근한 회의(懷疑)로 가득한 진저리 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도 없고 우리의 적수인 죽음에 대한 믿음은 더 더구나 없이 다투기만 하는 거야.

만약 이런 것이 궁극적 지혜의 형식이라면 인생은 우리 몇몇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풀기 어러운 수수께끼가 돼. 나는 삶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릴 마지막 기회를 간발의 차이로 놓쳤지만, 어차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 것을 알고 굴욕감을 느꼈을 뿐이야. - P162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은 능률이야. 능률에 대한 헌신이지. 그러나 이 로마인들은 참으로 변변찮은 사람들이었어. 그들은 식민지 개척자도 못 되었거든. 그들의 통치는 착취 행위에 불과할 뿐 그 이상은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정복자들이었어. 정복자가 되가 위해 필요한 것은 포악한 힘뿐인데 그런 힘을 가진 것이 자랑거리는 아니야. 
왜냐하면 누가 그런 힘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약하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우연한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야. 그들은 그저 얻을 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손에 잡히는 것을 다 움켜잡았을 뿐이야. 그것은 폭력적인 강도 행위요, 대규모로 자행되는 흉측한 살인 행위에 불과했는데,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그 행위에 덤벼들었어. 그것은 일종의 암흑 세계를 다루는 사람들에게나 아주 적합한 행위지. 이 세계의 정복이라는 것이 대부분 우리와는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 보다 코가 약간 낮은 사람들에게 자행하는 약탈 행위가 아닌가. 그러므로 그 행위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아름답지않아. 

그런 꼴사나운 행위를 대속(代)해 주는 것은 이념밖에 없어. 그 행위 이면에 숨은 이념이지. 감상적인 구실이 아니라 이념이라야 해.  그리고 그 이념에 대한 사심 없는 믿음이 있어야지. 이 이념이야말로 우리가 설정해 놓고 그 앞에서 절하며 제물(祭物)을 바칠 수 있는 무엇이거든..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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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두운 꿈만 꾸지. 더욱 어두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꿈조차 꾸지 않는단다." - P16

"왜 내가 부자들을 싫어한다고 생각해?"
그날 밤 쥐는 그렇게 물었다. 그렇게까지 이야기가 진전된 건 처음이었다.
모르겠다는 식으로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분명히 말해서 부자들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 손전등과 잣대가 없으면 자기 엉덩이도 긁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해서‘란 쥐가 걸핏하면 내뱉는 말버릇이었다.
"그래?"

"응. 녀석들은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 생각하는 시늉만 할 뿐이지⋯⋯⋯ 왜 그런 것 같아?"
"글쎄"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물론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약간의 머리가 필요하지만, 계속 부자로 있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 말하자면 인공위성에 휘발유가 필요 없는 것과 같은 논리지. 빙글빙글 같은 곳을돌기만 하면 되는 거야. 하지만 나나 너는 그렇지가 않아. 살아가기 위해서는 계속 생각해야 하거든. 내일 날씨에서 욕조의 마개 사이즈까지 말이야. 안 그래?"
- P23

"하지만 지난번엔 의논하려고 했쟎아?"
"그랬지. 그런데 하룻밤 생각하고 그만뒀어. 이 세상에는 어떻게 손써볼 수 없는 일도 있더라."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충치 같은 거야. 어느 날 갑자기 쑤시기 시작해. 누가 위로해줘도 통증은 멈추지를 않아. 그렇게 되면자기 자신에게 무척 화가 나기 시작하지. 그리고 그다음엔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는 녀석들한테 견딜 수 없이 화가 나기 시작하는 거야. 알겠어?"
"조금은."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봐. 조건은 모두 같아. 고장 난 비행기에 함께 탄 것처럼 말이야. 물론 운이 좋은 녀석도 있고 나쁜 녀석도 있겠지. 터프한 녀석이 있는가 하면 나약한 녀석도 있을 테고, 부자도 있고 가난뱅이도 있을 거야. 하지만 남들보다 월등히 강한 녀석은 아무 데도 없다구. 모두 같은 거야.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자는 언젠가는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겁을 집어먹고 있고,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는 영원히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게아닐까 걱정하고 있지. 모두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빨리 그걸 깨달은 사람은 아주 조금이라도 강해지려고 노력해야 해. 시늉만이라도 좋아. 안 그래? 강한 인간 따윈 어디에도 없어 강한 척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 뿐이야." - P133

"십이 년, 십삼 년 전쯤.. 아버지가 병에 걸린 해야. 그전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계속 좋지 않은 일만 일어났어. 머리 위에선 언제나 나쁜 바람이 불고 있어. "

" 바람의 방향도 때가 되면 바뀔 거야." - P159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누구나 그걸 붙잡을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 P169

한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니체의 말 인용)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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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코치 :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목사님, 제가 보기에는 국민들을 죽도록 겁에 질리게 만드는 데 ‘폭동 선동‘만 한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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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깨달았어, 소냐. 그가 황홀해하며 말을 이어갔다. ‘권력이란 오직 감행하는 자, 즉 그것에 마음을 두고 쟁취하려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여기에는 하나, 오직 하나만 있으면 돼. 오직 감행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 그때 내 평생 처음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나 이전에는 아무도 결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지! 아무도! 갑자기 내 눈앞에 태양처럼 선명하게 떠오른 생각이란, 어떻게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이 모든 터무니없는 현상을 지나칠 때 그냥 그것의 꼬리라도 붙잡아 내동댕이치지 못했을까, 어떻게 지금도 그러지 못할까, 하는 거야! 나는…………… 나는 감행하고 싶었고 그래서 죽였어…………… 그저 감행하고 싶었을 따름이야, 소냐, 바로 이게 이유의 전부야!".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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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꾼! " 주인이 큰 소리로 말했다." 한데 왜 일은 안 하는 고야, 관리라면서 군무는 왜 안 해?"

"무슨 까닭에 이 몸이 근무를 하지 않느냐 하면, 형씨." 하고 마르멜라도프가 말을 받았는데,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이 휴사라스콜니코프인 것처럼 그만 쳐다보았다. 
"이 몸이 왜 근무를 하지 않느냐? 아니, 이렇게 하릴없이 빌빌대는 나는 뭐마음이 편하겠습니까? 한 달 전에 레베쟈트니코프 씨가 우리 마누라를 자기 손으로 흠씬 두들겨 패는데도 정작 이 몸은 술에 취해 뻗어 있었는데, 그때 내가 과연 괴로워하지 않았겠습니까? 실례지만, 젊은 양반, 혹시…………… 음…………… 아무런 가망도없이 남에게 돈을 꾸려고 애써 본 적이 있습니까?"

"있긴 있지만.... 가망도 없이, 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무슨 뜻이냐면, 그야말로 가망이 없다. 즉 그래 봤자 땡전한 푼 안 나올 줄 미리부터 알고 있다는 뜻이지요. 자, 가령 사람이, 건전하고 유용하기 그지없는 이 시민이 세상이 두 동강이 나도 형씨한테 돈을 꾸어 줄 리 없다는 사실을 미리 부터 확실히 알고 있다고 칩시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뭐 하러 꾸어 주겠습니까? 내가 돈을 갚지 못할 것을 뻔히 알 텐데요. 동정심이 발동해서 꾸어 준다? 하지만 새로운 사상을 추종하는 레베쟈트미코프 씨는 요전에 우리 시대에 동정심이란 과학조차 금지한 짓이라고, 정치경제학이 확립된 영국에서는 벌써 그런 추세라고 설명하더군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대체 왜 꾸어 주겠습니까? 이렇게 꾸어 주지 않을 것임을 훤히 알면서도 어쨌거나 걸음을 떼지 않을 수 없고........ "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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