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살꾼! " 주인이 큰 소리로 말했다." 한데 왜 일은 안 하는 고야, 관리라면서 군무는 왜 안 해?"

"무슨 까닭에 이 몸이 근무를 하지 않느냐 하면, 형씨." 하고 마르멜라도프가 말을 받았는데,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이 휴사라스콜니코프인 것처럼 그만 쳐다보았다. 
"이 몸이 왜 근무를 하지 않느냐? 아니, 이렇게 하릴없이 빌빌대는 나는 뭐마음이 편하겠습니까? 한 달 전에 레베쟈트니코프 씨가 우리 마누라를 자기 손으로 흠씬 두들겨 패는데도 정작 이 몸은 술에 취해 뻗어 있었는데, 그때 내가 과연 괴로워하지 않았겠습니까? 실례지만, 젊은 양반, 혹시…………… 음…………… 아무런 가망도없이 남에게 돈을 꾸려고 애써 본 적이 있습니까?"

"있긴 있지만.... 가망도 없이, 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무슨 뜻이냐면, 그야말로 가망이 없다. 즉 그래 봤자 땡전한 푼 안 나올 줄 미리부터 알고 있다는 뜻이지요. 자, 가령 사람이, 건전하고 유용하기 그지없는 이 시민이 세상이 두 동강이 나도 형씨한테 돈을 꾸어 줄 리 없다는 사실을 미리 부터 확실히 알고 있다고 칩시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뭐 하러 꾸어 주겠습니까? 내가 돈을 갚지 못할 것을 뻔히 알 텐데요. 동정심이 발동해서 꾸어 준다? 하지만 새로운 사상을 추종하는 레베쟈트미코프 씨는 요전에 우리 시대에 동정심이란 과학조차 금지한 짓이라고, 정치경제학이 확립된 영국에서는 벌써 그런 추세라고 설명하더군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대체 왜 꾸어 주겠습니까? 이렇게 꾸어 주지 않을 것임을 훤히 알면서도 어쨌거나 걸음을 떼지 않을 수 없고........ " - P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