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1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부터 별거 아닌 일로 남편과 다투고 말았다. 새 모자를 사고 싶다는 말에 얼마 전에 구입한 운동화 샀음 됐지 또 뭘 사려고 하냐고 대꾸하다 서로 기분이 상해 버린 것이다. 서로 말 걸지 말라고 토라져 각방으로 들어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오후 1시가 다 되어 있었다. 마음이 그렇게 많이 상한 건 아닌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조금 난감했고 먼저 사과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잠시 외출한 남편이 검은 봉투를 들고 오더니 라면을 끓이며 점심 준비를 했다.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딴 일을 하고 있었는데 슬그머니 오더니 아침엔 미안했다고 점심을 먹자고 했다. 기분이 크게 상하지 않은 터라 못 이기는 척 같이 점심을 먹으며 풀었다. 날씨가 좋아 집 근처 시장까지 다녀오고 나니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오늘 나에게 일어난 일을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 한 이유는 별거 아닌 일상의 무게들이 쌓이다 보면 그것이 부부의 정이 되고 인식하지 못한 행복이 될 수 있겠다는 의식 때문이었다. 순전히 치에코 씨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느낀 감정이었다. 책 제목처럼 소소하다 못해 세세한 치에코 씨의 부부의 일상은 간과하기 쉬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기를 쓰듯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고 이러저러하다 하루가 마무리 되었다는 식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속에 스쳐가는 감정들까지 모두 드러내고 있었다. 도시락을 혼자 먹는 할아버지를 보며 자신이 먼저 죽고 남편이 홀로 남으면 저렇게 쓸쓸하게 밥을 먹을까 이런 생각부터, 감기에 걸려서 누워 있는 남편을 보며 상상력이 과해 먼저 죽지 말라는 둥 평소의 나라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감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갈 것처럼 나란히 놓여 있는 빨래를 볼 때마다 행복이란 눈에 보이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43쪽)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나열이라 책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고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닮아있어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오히려 소소한 일상 속에서의 성찰과 돌아봄, 현재 인식의 과정에서 행복이란 게 거창하고 먼 것이 아님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치에코 씨가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언제 행복을 느낄까 생각해보니 나 역시 거창한 일들이 있어야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 오기 전에 넉넉히 시간을 가지고 저녁 준비 하는 시간, 청소기를 밀고 거실을 정리한 다음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그런 아이를 보면서 잠깐 독서 하는 시간, 남편과 아이와 함께 셋이 나란히 누워 낮잠 자는 시간들이 내가 느끼는 행복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치에코 씨의 부부의 남다른 정이 부럽기도 했다. 치에코 씨가 퇴근하면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하루 일과를 나누며 데이트 를 하고 차를 마시러 카페에 가고 좋아하는 디저트를 먹고 때로는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면서도 서로에게 소홀하지 않는 모습이 부러웠다. 결혼하고 주부로 집에 남게 되면 개인의 삶이 철저히 사라져버리는 우리네 모습과는 많이 달라 문화 차이와 인식의 차이를 느끼면서도 이질감을 떠나 나의 모습과 대조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가만히 집에만 있어도 나를 스쳐가는 수많은 생각들. 그런 생각의 바다에서 나는 무엇을 건져내고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무엇을 행동으로 이어가는가. 치에코 씨가 느끼는 행복을 지켜보는 것도 지켜보는 거지만 그런 생각의 바다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나자 덜 외로웠다.

 

  또한 나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먼, 이상형은 곧 이상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남편과 살다 보니(결혼 전과 결혼 후는 정말 천지 차이인 것 같다.^^) 치에코 씨 부부처럼 다정다감하게 지낼 수는 없더라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부부의 정을 쌓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보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결혼한 지 10년 넘어 권태기를 겪는 부부 같지만 워낙 서로 무뚝뚝하고 애교가 없어 치에코 씨 부부의 이야기가 먼 달나라 이야기 같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치에코 씨 부부가 겪는 이야기에도 공감이 가기도 하고 다른 점도 느끼지만 결국은 결혼이라는 것이 해봄직 하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힘든 것보다 행복할 때가 더 많음을 깨닫는 요즘이다. 그래,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멀리서 찾으려 할 뿐, 늘 가까이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4-01-05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화이든 모자이든...
굳이 없어도 되지만,
그런 것들 장만하러 마실을 다니는 '하루'가 중요하지요.

집안 아저씨가 그런 대목을 제대로 깨달아
'어쨌든 바깥에 바람 쐬러 나가 볼까?' 하고 말하면서
함께 '하루'를 누린다면
앞으로 즐거운 일들만 가득하리라 믿어요.

집안 아저씨가 못 알아듣더라도
'아무튼 바깥에 바람 쐬러 나가자'고 부추기면서
살가이 이끌어 보셔요.

2015-04-23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주 보기
장 자크 상뻬 글.그림, 배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쌍뻬 할아버지 신간이!!! 너무 기대돼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루에 주어진 시간이 24시간이 아닌 더 많은 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주어진 시간이 타인에게 똑같이 주어진 게 아니라 오로지 나에게만 주어진다면 평소에 못했던 것들을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해보게 된다. 학창시절 시험 기간만 되면 시간이 더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 시간에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알 수 없는 자신감. 왜 시간이 주어진다면 성적하고만 연결 짓는지 과거에 대한 연민은 늘 씁쓸하기만 하다.

 

어느 날 누군가 시간을 살 수 있다고 말해준다면 어떨까? 초등학교 5학년인 윤아는 우연히 전단지를 보고 시간을 살 수 있는 가게에 들어가 행복한 기억과 바꾸는 거래를 한다. 1등을 하고 싶었던 윤아는 행복한 기억을 떠올림과 동시에 시간이 10분씩 멈춰져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시간을 번다. 처음에 윤아는 학원에 늦을까봐 10분을 얻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잘못된 일들에 10분을 쓰고 만다. 시간을 멈춰놓고 시험 문제를 베끼고, 자신을 싫어하는 친구를 골탕 먹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끼지만 10분에 대한 효과를 보면 볼수록 아무렇지 않은 듯 행복한 기억과 10분을 교환해 버린다.

 

행복한 기억이 과거형이듯이 윤아는 과거의 일은 연연해하지 않는다. 늘 앞만 보며 공부, 공부, 공부만 외치는 엄마의 영향도 컸다. 아빠를 여의고 윤아를 제대로 키워보고자 동분서주하는 엄마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싫다고 내색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엄마에게 행복은 윤아가 1등을 하는 것이고 더 좋은 성적을 받아오는 것이기에 윤아는 잘못된 일인 걸 알면서도 부정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시간들이 처음엔 달콤하게 다가왔지만 행복한 기억이 지워지고 더이상 떠오를 기억이 없자 부작용이 일어난다. 과거의 일이 기억나지 않고 친구와의 약속도 자꾸 잊어 먹는다. 그제야 행복한 기억의 소중함을 알게 된 윤아는 시간을 샀던 가게에 가서 새로운 거래를 한다. 행복한 기억을 빼앗기지 않는 대신 윤아의 시간이 하루에 10분씩 사라졌다.

 

머리로 만들어 낸 행복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어야지. 행복은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란다. (99쪽)

윤아는 10분을 얻기 위해 ‘머리로 만들어 낸 행복’과 교환했다. 행복한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당시에는 알지 못하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닫고 결단을 내리게 된다. 행복한 기억을 간직하는 것과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 과연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을까? 윤아는 행복한 기억을 빼앗기는 대신 타인의 기억이 들어오자 그제야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조금씩 알아간다. 친한 친구와의 수다, 외할머니와의 추억, 돌아가신 아빠와의 기억들이 윤아에게 더없이 귀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윤아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현 교육 현장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공부만이 성공하는 길이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잘한 결혼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버리는 현실이 한창 뛰어놀아야 할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파고들어 버린 것이다. 부모들이 경험을 했기에 자녀들에게 그런 삶을 강요하는 것. 내 아이가 뒤처지지 않을까,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과 공교육이 받쳐주지 못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진짜 가족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윤아에게 좋은 학원을 보내주고 일일이 스케줄을 확인하며 쉴 틈 없이 몰아대고 공부만을 강요하는 윤아 엄마를 탓할 수만은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처지고 낙오자가 될 거라는 생각. 어떤 부모가 그런 불안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 또한 아이를 낳고 보니 지금은 건강하게만 자라달라는 부탁을 하지만 아이에게 교육이 필요한 시기가 되면 나의 욕망을 집어넣진 않을까 걱정 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아직 걷지도 못한 아이에게 내가 공부를 못했기에 공부를 강요하진 않을 거라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 마음 또한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일이다.

 

현재 흘러가는 공교육의 방향성과 그에 맞서며 나름대로의 대책을 세워나가는 극성 부모들을 비판하면서도 나 또한 뚜렷한 의지와 방법을 찾아내고 있지 못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윤아의 나약한 자립심과 자기주장, 공부가 아닌 다른 것을 좋아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환경이 답답했다. 또한 이 작품을 마주하고도 행복한 기억과 10분의 시간을 교환하는데서 오는 잃어버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불안했다. 오히려 시간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있다면 우르르 몰려가 행복한 기억 따윈 져버릴 사람이 더 많을 거라는 두려움. 행복한 기억의 소중함을 모른 채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런 거래를 서슴지 않을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만든 건 나이고 우리들이다. 그 안에서 병들어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럼에도 그런 아이들 하나 보듬어 줄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어떠한 책임도, 행동도 하지 않는 내가 많이 부끄럽다. 이 소설을 통해 얻게 된 교육에 대한 심각성을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내 아이가 만날 세상도 지금과 그다지 큰 변화를 보일 것 같지 않다. 그 사실이 너무 답답해 이제야 평범하고 솔직한 아이로 변모되어 가려는 윤아를 제대로 응원해 주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4-01-05 0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에 스물네 시간만 있기에
우리는 더 즐겁고 아름답게
삶을 누리지 않나 싶기도 해요.
 
플로베르의 앵무새 열린책들 세계문학 56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씩 러시아 여행을 꿈꾼다. 단연 도스또예프스끼 때문인데 그의 흔적을 느끼며 여행할 수 있다면 큰 기쁨이 될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온 몸이 떨려온다. 어쩌다보니 어렵고 힘든 작가로 인식된 도스또예프스끼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을 탐독하면서 러시아를 궁금해 하게 되었지만 실제로 내가 아는 도스또예프스끼는 작품 속에서 만나는 게 전부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면서 부수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그의 일대기나 사소한 생활들을 낱낱이 알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실 이외에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구체적인 물음이 올 때면 아는 게 없어 당황스러울 때도 많았다.

 

 

  굳이 러시아 여행을 입에 올리고 도스또예프스끼까지 엮는 이유는 이 작품속의 플로베르 때문이다.『보바리 부인』밖에 읽지 않은 나로서도 작품으로 만난 플로베르는 물론이고 부수적인 것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보바리 부인』의 몽롱한 우울함 때문에 다른 작품을 읽을 엄두를 내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이 책을 만나고 보니 플로베르란 작가에 대해 더 헷갈리고 말았다. 주인공 제프리 브레스트웨이트는 플로베르의 작품『순박한 마음』에 모델로 등장하는 박제 앵무새를 찾아가지만 두 곳의 박물관에서 서로 자기네 앵무새가 모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어떤 새가 진짜 플로베르에게 영감을 주었는지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며 시작하는 이 소설은 우리가 자주 마주했던 평범(?)한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

 

 

  주인공을 통해 앵무새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플로베르는 어떤 사람이고 그의 전반적인 작품활동과 배경에 대해 낱낱이 알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나의 이런 예상뿐만 아닌 글의 형식, 구성까지도 철저히 부숴버린다. 친절하며 질서정연하게 플로베르에 대해 알려줄 거란 예상과는 달리 온갖 정보들로 넘쳐난다. ‘이야기 대신 연보, 전기, 자서전, 동물 우화, 철학적 대화, 평론, 어록, <열차 파수꾼>의 안내, 심지어는 시험지 등 플로베르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각종 정보를 제시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옮긴이의 말처럼 플로베르와 연관되어 있지만 정작 플로베르의 이야기는 별로 없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느꼈을 혼란이 결말까지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며 끝을 맺는 가운데 이 작품을 통해 과연 내 안에 자리한 것은 무엇인지, 플로베르란 작가에 대해서 얼마큼 알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당연함이다.

 

그물을 정의할 때, 관점에 따라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중략) 논리를 크게 손상시키지 않고 이미지를 뒤집어, 어떤 익살맞은 편집자가 그랬듯이 그물을 끈으로 엮은 구멍들의 집합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전기를 쓰는 일도 그와 같다. 저인망 그물에 자료들이 가득 차면, 전기 작가는 그물을 끌어올려 포획물을 분류하여 도로 놓아 주기도 하고, 저장했다가 살을 발라내어 팔기도 한다. 그러나 그물 속에 걸리지 않는 자료들을 생각해 보라. 항상 그물에 걸려들지 않아 놓쳐 버린 자료들이 더 많다. (47쪽)

 

 

  그물에 대한 비유가 이 작품에 실린 플로베르란 인물을 색다른 방법으로 알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안내한다. 저자는 그물에 걸린 자료보다 ‘결려들지 않아 놓쳐 버린 자료’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분류하고 제시하고 있다. 전기 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파격적인 형식의 이 작품을 보면서 저자의 애정이 묻어나고 있다고 느꼈다. 플로베르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정작 플로베르에 관한 이야기는 없어도 자신의 아내를 회상하며 플로베르의 소설과 엮어 나가는 과정이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시사했다. 아무 상관없고 무의미해 보이는 그의 남다른 플로베르의 관심과 애정이 아내와의 상관관계를 통해 그가 가진 상처와 비밀을 드러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 사실조차 또렷하게 드러내지 않고 가상과 현실을 오가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그 모든 것이 이 독특한 소설에 녹아 있었다.

 

책이란 아무리 우리가 그것이 곧 삶이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삶 그 자체는 아니다. (106쪽)

 

 

이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책을 읽을 때면 그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저자의 능수능란함에 깜박 속아 이 책 속의 플로베르 이야기가 온전한 그 자체의 플로베르라고 믿을 뻔 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이기를 따지며 구분하기보다 플로베르란 인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열정적으로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계기로 타인이 내 삶 속에 들어와 또 다른 형태로 태어날 수 있는 상황. 온 몸으로 체득한 일이라면 결말이 또렷하지 않은 게 당연한건지도 모른다.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물 밖의 세상을 알았다면 그 세계에 정신이 팔리는 것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뭘 써요, 뭘 쓰라고요? - 김용택 선생님의 글쓰기 학교
김용택 지음, 엄정원 그림 / 한솔수북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일들이 처음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걸어갈 길을 스스로 내는 일, 그게 글쓰기입니다.

(책 머리글 중에서)

 

나에게 글쓰기란 책을 읽고 느낌을 남기는 게 전부였다. 그것을 과연 글쓰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늘 부끄러워 하다가 언제부턴가 그 시간이 나에게 굉장히 소중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문장력이 는다거나 어휘력이 자유스러워 지는 것이 아닌, 내 안의 감추고 싶던 상처와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용기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글쓰기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님을, 한 권의 책을 읽고 그 내용을 간추리고 정리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타인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타인을 배려하며 함께 섞여드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의식하느라 놓쳐 버린 순간과 자신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글쓰기라면 일기조차 선생님께 검사를 받아야 했던 기억 때문에 늘 내 중심이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썼던 것 같다. 그래서 무언가를 드러내는 일이 서툴렀고 그런 행위가 글쓰기의 기초적인 마음인 것을 이제야 알아가고 있었다. 이 책을 보면 타인을 신경 쓰느라 감추기에 급급했던 내 마음의 흔적이 보여 가슴 찡하면서도 애틋했다. 나도 어릴 적 내 주변에 펼쳐진 것들에 관심을 갖고 마음을 쏟으며 말을 걸고 지켜보았다면 적어도 나를 감춰왔던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을 것이다.

 

김용택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그 아이들에게서 보아온 것들을 이 책 속에 남겼다. 모두 제각각인 아이들이지만 그 안에 숨겨진 것을 끌어내는 건 비슷했다. 순수함.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그대로 쓰며 자신만의 세계를 펼치는 아이들의 글을 보고 있으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잘 써보려고 기를 썼던 순간을 떠올리면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지도 않고 관심도 가지지 않은 채 그냥 저절로 나와 주기를 기대했던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아이들의 시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쓸 수 있는 그런 글이 아니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관찰하고 보는 시각을 기르고 생각하다 보니 순수하면서도 진실한 글이 나왔던 것이다.

 

풀꽃 _나태주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정말 예쁜 시다. 광화문 교보문고 빌딩에 걸려 있었다고 하는데 삭막하고 복잡한 도시에서 과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을 시다. 이런 시선과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우면서도 부끄럽다. 나는 어떤 대상을 사랑하기 위해서 얼마나 자세히, 오래 보았는지 반성하게 만드는 시였다. 동시에 자세히, 오래 보면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처럼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얼굴을 그제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일 쳐다보면 마음속 깊이 사랑이 맺히는 것처럼 내 주변의 것들을 그렇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다.

 

이 책을 내 손에 쥘 때의 심정은 이 책으로 인해 좀 더 글을 잘 쓰는 방법을 알고 조카들에게도 읽혀보며 그대로 시켜볼 작정이었다. 마음을 담기보다 방법을 더 알고 싶어 들여다 본 책이었는데 더 큰 것을 얻은 기분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도 분명 있겠지만 그에 앞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생각을 하며 써 보는 것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때보다 더 진솔한 글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았으니 당장 시도해 보려고 한다. 맞벌이로 인해 방학임에도 텅 빈 집 대신 우리 집으로 출근하는 조카들과 함께 김용택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대로 해보려고 한다. 물론 조카에게 시키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도 시를 써보려고 한다. 조카들과 함께 낭독하며 서로의 느낌을 나누는 것.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흐뭇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