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베르의 앵무새 열린책들 세계문학 56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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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러시아 여행을 꿈꾼다. 단연 도스또예프스끼 때문인데 그의 흔적을 느끼며 여행할 수 있다면 큰 기쁨이 될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온 몸이 떨려온다. 어쩌다보니 어렵고 힘든 작가로 인식된 도스또예프스끼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을 탐독하면서 러시아를 궁금해 하게 되었지만 실제로 내가 아는 도스또예프스끼는 작품 속에서 만나는 게 전부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면서 부수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그의 일대기나 사소한 생활들을 낱낱이 알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실 이외에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구체적인 물음이 올 때면 아는 게 없어 당황스러울 때도 많았다.

 

 

  굳이 러시아 여행을 입에 올리고 도스또예프스끼까지 엮는 이유는 이 작품속의 플로베르 때문이다.『보바리 부인』밖에 읽지 않은 나로서도 작품으로 만난 플로베르는 물론이고 부수적인 것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보바리 부인』의 몽롱한 우울함 때문에 다른 작품을 읽을 엄두를 내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이 책을 만나고 보니 플로베르란 작가에 대해 더 헷갈리고 말았다. 주인공 제프리 브레스트웨이트는 플로베르의 작품『순박한 마음』에 모델로 등장하는 박제 앵무새를 찾아가지만 두 곳의 박물관에서 서로 자기네 앵무새가 모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어떤 새가 진짜 플로베르에게 영감을 주었는지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며 시작하는 이 소설은 우리가 자주 마주했던 평범(?)한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

 

 

  주인공을 통해 앵무새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플로베르는 어떤 사람이고 그의 전반적인 작품활동과 배경에 대해 낱낱이 알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나의 이런 예상뿐만 아닌 글의 형식, 구성까지도 철저히 부숴버린다. 친절하며 질서정연하게 플로베르에 대해 알려줄 거란 예상과는 달리 온갖 정보들로 넘쳐난다. ‘이야기 대신 연보, 전기, 자서전, 동물 우화, 철학적 대화, 평론, 어록, <열차 파수꾼>의 안내, 심지어는 시험지 등 플로베르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각종 정보를 제시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옮긴이의 말처럼 플로베르와 연관되어 있지만 정작 플로베르의 이야기는 별로 없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느꼈을 혼란이 결말까지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며 끝을 맺는 가운데 이 작품을 통해 과연 내 안에 자리한 것은 무엇인지, 플로베르란 작가에 대해서 얼마큼 알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당연함이다.

 

그물을 정의할 때, 관점에 따라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중략) 논리를 크게 손상시키지 않고 이미지를 뒤집어, 어떤 익살맞은 편집자가 그랬듯이 그물을 끈으로 엮은 구멍들의 집합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전기를 쓰는 일도 그와 같다. 저인망 그물에 자료들이 가득 차면, 전기 작가는 그물을 끌어올려 포획물을 분류하여 도로 놓아 주기도 하고, 저장했다가 살을 발라내어 팔기도 한다. 그러나 그물 속에 걸리지 않는 자료들을 생각해 보라. 항상 그물에 걸려들지 않아 놓쳐 버린 자료들이 더 많다. (47쪽)

 

 

  그물에 대한 비유가 이 작품에 실린 플로베르란 인물을 색다른 방법으로 알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안내한다. 저자는 그물에 걸린 자료보다 ‘결려들지 않아 놓쳐 버린 자료’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분류하고 제시하고 있다. 전기 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파격적인 형식의 이 작품을 보면서 저자의 애정이 묻어나고 있다고 느꼈다. 플로베르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정작 플로베르에 관한 이야기는 없어도 자신의 아내를 회상하며 플로베르의 소설과 엮어 나가는 과정이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시사했다. 아무 상관없고 무의미해 보이는 그의 남다른 플로베르의 관심과 애정이 아내와의 상관관계를 통해 그가 가진 상처와 비밀을 드러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 사실조차 또렷하게 드러내지 않고 가상과 현실을 오가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그 모든 것이 이 독특한 소설에 녹아 있었다.

 

책이란 아무리 우리가 그것이 곧 삶이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삶 그 자체는 아니다. (106쪽)

 

 

이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책을 읽을 때면 그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저자의 능수능란함에 깜박 속아 이 책 속의 플로베르 이야기가 온전한 그 자체의 플로베르라고 믿을 뻔 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이기를 따지며 구분하기보다 플로베르란 인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열정적으로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계기로 타인이 내 삶 속에 들어와 또 다른 형태로 태어날 수 있는 상황. 온 몸으로 체득한 일이라면 결말이 또렷하지 않은 게 당연한건지도 모른다.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물 밖의 세상을 알았다면 그 세계에 정신이 팔리는 것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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