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안다는 것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내가 읽은 '나의 미카엘'과 '블랙 박스' 외에 이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절판이였다. 그런데 서점에서 이 책을 보았기에 다음에 사기로 하고 다른 책들을 열심히 읽었다. 그러다가 얼마 후 서점에 가보니 이 책이 아직도 그대로 있었다. 그때부터 조바심이 났다. 구할 수 없는 책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 그 책이 꽂혀 있는 위치등 며칠을 눈에서 아른거리는 책을 보았다.
그 달에도 너무나 많은 책을 사서 도저히 여유가 없었지만 그 아른거림과 조바심을 견디지 못해 이 책을 샀다. 아모스 오즈의 작품이 많음에도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의 미카엘'을 읽고 그냥 습관적으로 다른 작품을 찾게 되었는데 그런 열악함이 나의 호기심을 더 부추겼는지도 모르겠다.여튼 이렇게 '아모스 오즈'의 세번째 작품을 탐독하게 되었다.

  '오즈의 이 작품은 하나의 코드code이며, 그의 소설을 읽는 작업은 하나의 해독decode이다' 라는 번역가의 말이 강하게 인지 된다. 만약 '나의 미카엘'을 읽지 않고 이 작품을 먼저 대했더라면 오즈도 참 난해한 작가이며 따분하다라는 틀 속에 다둬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독서의 시기 그리고 한 작가의 작품을 대하게 되는 순서가 중요하면서도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또 들게 하는 작품이였다.

  제목을 보고 연애소설인줄 알았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서 주인공 요엘의 긴 사색뒤에 진부한, 그러면서 은근히 바라게 되는 운명이 터져 나오면서 제목에 딱 맞춰줄거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나의 생각은 빗나가기 시작했고, 중간쯤 부터는 제목을 상기하지 않게 되었다. 하나의 코드이자 해독이라는 말이 딱 맞는게 내가 읽은 세 작품에는 분명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는 여자들이 나온다. 우선 그 여자라는 존재 자체가 코드가 되겠고 그 존재의 깊이가 그리고 삶에 부여하는 공간적 의미가 가장 난해하였던게 '여자를 안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해독이라고 말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뚜렷한 언질없이 그냥 현상과 사물을 묘사하듯이 아니면 은유속에 담아버리듯이 사건과 추억을 말해가는 문체에서부터 집중력을 요하게 만든다. 잠시 딴 생각이라도 할라치면 내가 무얼 읽고 있는지 잠시 멍하게 만드는게 요엘이 과거와 현실 속에서 끈임없이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과 비슷했다.


  죽은 아내로 인해 비밀 요원직을 관두고 간질을 앓는 딸과 어머니, 그리고 아내 이브리아의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23년동안 해외를 누비며 바쁘게 지냈던 시간들을 집안일로 채운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분명 남아도는 시간이 많을 것 같은데도 늘 집안일이 끊임없어서 본문에서처럼 전기를 만드는 시간, 뿌쉬낀처럼 시를 지을 시간조차 없다는 비약으로 항상 바쁘다. 그런 나날들 속에서 늘 생각은 끊이지 않고 삶은 살아지고 있고 또 자신을 찾고 깨달아야 하기 때문에 나도 늘 복잡하고 바쁜 마음이였다. 확실하게 그리고 열정없이 살아지는 평범한 날들 속에서도내가 만족감을 느끼는 한두가지로도 존재해 갈 수 있다는게 비단 나의 삶만이 아닌것 같다는게 요엘을 통해서 느껴졌다. 오히려 그런 삶 속에서 그 이전의 삶보다 뚜렷한 규칙이 생성되고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사실도 보여줬다.. 만족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 말이다. 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 그것 또한 존재가 허무하지 않다는 걸 일깨워 주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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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모 2007-07-2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즈 작품의 번역자로서 늘 두려운 마음으로 독자들의 반응을 종종 검색합니다만
참 좋은 글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연말 쯤 오즈의 가장 최근 작품인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가 출간될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물론 역자로서 참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만,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되어 아쉬움이 큽니다.
그렇게라도 오즈의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봉사할 수 있다는 기쁨을 앗아가지는 말아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안녕반짝 2007-09-12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왜 이제서야 이 댓글을 본 것일까요. 블로그에 너무 무관심했었나 봅니다. 번역자 이렇게 댓글을 달아주시다니 무한 영광입니다. 아모스 오즈도 정말 제겐 보물같은 존재입니다. 나의 미카엘로 아모스 오즈의 존재를 알았다면 이 작품으로 인해 팬이 되어버린 결과를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지금껏 읽은 세 작품 중에서 이 책이 제일 좋았어요. 최근에 발매된 '물결을 스치며 바람을 스치며'는 구입해 놓고 아직 읽지 않았는데 신간이 나온다니 너무 너무 기쁩니다. <여자를 안다는 것> 번역 정말 좋았어요. 매끄럽고 막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어요. 신간이 나온다니 너무 기다려집니다. 그리고 <여자를 안다는 것>을 번역해 주신 최창모님이 번역한 책이라니 더더욱 기대가 됩니다. 아아.. 너무 좋아요 오즈의 책을 만난다는 것은.. 이렇게 소소한 독자의 가슴에 바람을 일으켜 주셔서 감사해요 그것도 따스하고 뿌듯한 바람을요..^^
 
모래 폭풍이 지날 때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4
캐런 헤스 지음, 부희령 옮김 / 생각과느낌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결국, 울어 버리고 말았다.

이 울음은 단순히 슬프고, 가여워서가 아닌 가슴이 저릿저릿 아파 오는 고통이 내게로 전해져 왔기에 터져 나오는 눈물이였다. 그렇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눈물은 쉽게 말라 버릴 테지만 가슴의 통증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다. 고통은 이렇듯 서서히 잠식 되는가 보다.

지나 갔을거라 생각했던 모래 폭풍이 다시 몰려 올때 처럼, 모래가 모든것을 덮어 버렸던 암담함처럼, 고통은 희망이 되었다가 슬픔이 되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모래는 내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빌리 조와 오클라호마를 떠날 수 없었던 그 모래처럼 그렇게 끈질기게 내게도 들러 붙고 있었다.

모래가 온 집안을 뒤덮는 광경과 자신의 목에도 귀에도 이불 속에서도 모래와 함께 할 수 밖에 없었던 빌리 조의 모습을 보며 모래가 내 입안에 서걱서걱 씹히는 느낌,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모래에서 도망칠 수 없는 현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은 처절한 바닥의 비극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처절함이 가슴 아픈 것이 아니라 그, 처절함을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모습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솔직하게 드러내는 빌리 조의 모습이 가슴 아팠다.

자신의 실수로 엄마와 남동생을 잃었다 생각하고, 그렇게 좋아하는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함에도 그 모든 현실을 유순하게 받아들이기에 마음의 아픔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차라리 모든 걸 포기한 채 현실을 비판했더라면 그려려니 이해했을 텐데 너무나 여리고 여린 빌리 조의 모습에 내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가 무척 힘들었을 터인데 꿋꿋이 버티어 나가는 빌리 조의 모습이 마냥 슬펐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빌리 조가 내 뱉는 불평도, 모래에서, 가난에서 벗어나겠다고 나선 가출도, 왜 그리 슬펐던 것일까. 그 울림을 받아 줄 사람이 없었기에 그랬던게 아니였을까. 그 울림의 대상이 나라고 생각했기에, 빌리 조를 다독여 줄 사람이 이젠 생겼다고 생각 했기에 그랬던게 아닐까.

그 어린 마음이 처연하고 대견스럽다.

좌절하고 우울해하고 어긋나 버려도 누구 하나 타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가 희망이 되고 정면돌파 하는 모습은 나 또한 빌리 조를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늘 모래와 가난과 외로움의 틈바구니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빌리 조였지만 결코 어린이다운 좌절을 보여 주지 않았기에 빌리 조의 이면의 슬픔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엄마와 남동생의 죽음으로 아빠가 자신을 돌보아 주지 않아도, 동네 사람들이 자신의 실수만을 언급해도, 친구들이 자신의 망가진 손을 쳐다봐도 그 아픔을 드러내되 징징거리거나 구차하게 굴지 않았다. 단지 조금 속상해 했을 뿐.

그래서 더 가슴 아픈 것이다.

 

비가 오지 않는 땅, 농작물이 자랄 수 없는 땅에서 그 땅을 일구며 살아야 하는 빌리 조의 아빠며, 오클라호마 사람들이며, 공황에 빠져 버린 미국인들까지 온 나라는 가난과 아픔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으로 조금씩 공황을 빠져 나오지만 그 빠져나옴은 고통과 맞섰을 때라는 것을 모두들 느꼈을 것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가출을 했던 조가 다시 돌아왔던 때처럼, 결코 모래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모래 폭풍을 향해 전진할 때 비로소 폭풍을 잠잠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처럼 말이다. 그럴 때에 희망의 비는 내릴 것이고, 모래를 잠잠히 만들어 줄 것이며, 농작물의 싹을 틔워 삶에 가능성을 증가시켜 줄 것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빌리 조는 그 한가운데서 고통을 당하고 헤쳐 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과정이 너무 처연하고 가슴 아파서 작가마져 좀 더 나은 모습으로 고쳐서 쓰고 싶을 정도였다고 하니 모래 폭풍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빌리 조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을 고쳐 쓰고 싶었던 작가, 그 작가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는 나 같은 독자들의 마음 속에는 숨겨져 있는 고통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빌리 조를 보며 눈물짓고 모래 폭풍 속의 암울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 희망이 빌리 조에겐 엄마에 대한 그리움, 피아노에 대한 열망이 되어 서서히 피어 나고 있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도 힘겨운 시간이였다.

그러나 빌리 조는 모래 폭풍의 지나옴을 경험했다.

그 경험의 산물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 희망만 건져 내기로 했다.

그 희망이 내게도 닿는다면 기꺼이 품에 안으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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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랭보 - 클로드 장콜라
 
 
 
- 저번달에 이벤트 책으로 그렇게 고생을 했으면서.. 또 책을 신청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비싼 책이였고 또한 랭보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신청하고 만 것이지요..
두권에 48000원, 페이지 수는 천페이지입니다.
 
두꺼운 책만 무지 좋아하는 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신청하기 위해 리뷰를 60편이상을 올렸다죠..^^
여튼.. 책을 받고 보니 뿌듯한 건 사실입니다.
 
아아... 이젠 랭보에 빠져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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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theme 2007-05-09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으시고 좋은 리뷰 남겨주세요.

안녕반짝 2007-05-14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네.. 저도 랭보가 너무 궁금해요..^^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봄을 만끽해야 할 5월 이지만 여름을 향하고 있는 날씨에 섭섭함이 인다.

자꾸만 봄 가을이 짧아져가는 탓에 느껴지는 마음이리라.

그러나 밤이라는 시간대는 잠시 그 모든것을 잊고 서늘함에 나를 맡길 수 있는 것 같다.

바람이 시원한 요즘 같은 때는 마음이 쓸쓸하더라도 자연의 힘을 빌어 잠시나마 고독함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잠깐 나갔다 온 밖의 풍경은 바람에 의해 평안함을 안겨 주었다.

바람을 좋아하는 이유가 낯선 곳에서 머금은 향기를 내뿜는 것이 결코 낯설지 않고, 내게서 퍼져나갈 익숙함이 어떤 이에게도 낯설게만은 느껴지지 않을 것이기에 바람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봄바람은 많은 것을 안겨주며 무엇이든지 설레임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 봄날, 사랑이 다가온다면 얼마나 가슴이 벅찰까. 그래서 오늘 내가 쏘인 바람을 통해 책 속의 불가능한 사랑을 잠시 가능성으로 바꿔보는 나름대로의 상상을 해보았다.

 

이 책에서 그들의 사랑을 불가능을 꿈꾼다고 묘사되어 있었다.

단순히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랑만 생각했던 나는 저자의 상상력의 기발함에 독특함을 느꼈다.

독수리와 익투스의 사랑을 시작으로 나무와 인형의 품을 수 없는 사랑, 담쟁이 덩쿨의 꿈 등을 지나 나비, 시인, 그리고 여자,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에 이르러서는 모호함과 난해함의 극을 보여 주었지만 우리가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없는 것, 생명이라기 보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 생각할 수 없는 것들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생명력은 열정으로 그득 차 있었다.

상대방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사랑도, 아픔도, 희망도 생기지 않았을 테지만 삶 자체로 받아 들이는 모습은 그들의 전부를 토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어떠한 삶을 살아 왔든지간에 현재 나의 사랑에, 현실에, 올인하고 있는 모습은 그들의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그들이 어떻게 사랑을 하는지 어떻게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었는지를 말이다.

그건 찰나이기도 했고, 스스로 찾아나선 길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선택과 도약이 되기도 했다.

그들의 계기는 달랐지만 아픔과 희열을 맛보는 사랑을 할 때는 늘 비슷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 생명력은 독특했지만 마무리는 무언가가 부족했다.

자연스레 연결되지 못하는 드러남, 급하게 그들의 세계를 마무리지어 버리는 성급함은 현실과 환상속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이 아닌, 뚝뚝 끊어져 버리는 느낌이 단락이 끝날때마다 어긋남을 만들어 내었다.

독수리와 익투스의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을때 난데없이 연인이 헤어지고, 대리석 남녀의 만남이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그들은 갑자기 무너져 버리고, 튤슈를 찾아 헤메는 노인은 튤슈에 대해 명확히 말해주지 않았다.

나비, 시인, 그리고 여자에서는 앞에 단편의 교묘한 연결을 무너뜨리는 이질감을 띄고 있었고 이 작품과 교묘하게 맞물리는 듯한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에서 모호함을 안겨 주고 있었다.

이렇듯 6편의 단편이 비슷한 분위기로 가는 듯 하다가 결국은 흩어져 버리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독수리와 익투스의 사랑, 참나무와 인형의 고통적이지만 비극적인 안타까움이 깃든 분위기로 갔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조금은 뒤죽박죽이 되는 느낌, 마무리가 늘 아쉬웠는데 마지막 두편의 단편에서 느껴졌던 혼란스러움은 그러한 분위기를 고조시켜가고 처음 느꼈던 독특함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있었다.

분명 생명의 깃듬을 여기 저기 불어 넣는 것이 숭고하다고까지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 생명이 소중하고 귀하다 생각했는데 일정한 분위기로 가지 못하는 것이 내내 아쉽다.

 

하지만 사랑은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고 그것은 자신을 변화시키며 모든걸 다 바쳐 사랑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환희를 느끼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 사랑의 대상이 누가 되었든, 그들이 생명이 있건 없건 내 멋대로 그들을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랑이 두려워서 상처 받을까봐 안하는 사람보다 상처를 받은 후라도 사랑한 사람이 낫다고 햇듯이 사랑은 분명 특별한 감정과 경험이 될 것이다.

그 사랑의 종류는 다양하고 하나하나가 진귀하기에 어떠한 것에도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면 나를 되돌아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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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사랑한 화가들 -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들
노성두.김영숙.류승희 지음 / 아트북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8월 여름휴가때 서울에 가서 이 전시회를 보았다..
항상 전시회들이 늘 그렇듯... 특별한 지식없이.. 그리고 특별한 감흥없이 보고 돌아오기가 일쑤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도 여전히 준비없이.. 그리고 기대없이 갔었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자연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림 앞에서 머물렀던 시간이 많았고 편안함을 느꼈다.. 특별한 지식없이도 감상할 수 있어서 그런 느낌이 강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느낌이 강해 휴가에서 돌아와 이 책을 구입했다..
책꽂이에 계속 꽂아 두기만 하다가 며칠전에 갑자기 끌려서 새벽녘에 읽기 시작했는데 책 속이라기 보다는 자연에.. 그리고 프랑스의 퐁텐블로 숲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에 푹 빠져버렸다...
숲이 얼마나 아름다웠기에 그 많은 화가들이 몰려들어서 그림을 그렸을까... 언뜻 비치는 사진속의 숲들이 울창하고 태곳적이라(가시덤불이 보기 싫어 임의로 만들어진 숲인데도...) 한번쯤 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숲을 거닐며 화가들의 발자취.. 생각을 좇아보고 상상해 보고 싶었다..
그 현장을 꼭 누려보고 싶었다..

3장으로 나위어진 이 책은 첫장에서는 화가 류승희님이 바르비종에 있는 퐁텐블로 숲을 둘러보고 밀레,루소 등 그들의 발자취를 좇는 내용이다.. 2장에서는 풍경화의 역사에 대해서 알려준다.. 풍경화는 왜 그리 역사가 짧은지.. 바르비종파 화가들이 어떤 기여를 했는지 말이다..
그리고 3장에서는 바르비종파 화가들의 작품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세세하게 들려준다...
세 사람의 전문분야인들이 썼기 때문에 완성도가 높고 다양함을 볼 수 있어서 유익했던 것 같다..
특히 전시회에서 본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생동감이 더했고 전시회의 작품을 떠올리며 대하다 보니 작가들... 얽힌 이야기들이 더 잘들어 왔던 것 같다...
사진으로 봤으면 그 질감이나 색감을 떠올리지 못한채 넘어가 버렸을 테지만 전시회에서 인상깊게 본 작품들의 실물 덕분에 더 진한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바르비종파에 국한된 지식이 아닌 폭 넓은 이해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들.. 그리고 그 안에서 돌아보게 되는 자연....
결국 그 자연의 위대함.. 그리고 인간 공존의 내면 현실을 화가들의 심연에서 올라오는 붓터치로 재탄생 되던 시대를 지켜보는 것 같아 편안하고 위대한 자연앞에 경이로움을 느꼈던 시간들이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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