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상자 - 하나님의 산 역사 갈대상자
김영애 지음 / 두란노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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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달에 한 권 정도는 종교서적을 읽자고 다짐했었는데, 부끄럽게도 올해 읽은 종교 서적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년초에 행했던 다양한 읽기(내 책장에서 장르별로 골라서 읽기)가 하반기에 와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달에 한권의 종교서적 읽기는 제쳐두더라도 성경도 제대로 읽지 않기에 나의 다짐들은 늘 부끄럽기 짝이 없다. 어쩌면 종교서적을 읽으면서 성경에 대해 많은 자극을 받기에 성경보다 종교서적에 먼저 관심을 두는지도 모른다. 거기다 책 속에서 은혜스런 성경구절을 콕콕 짚어주니 손수 성경을 펼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다. 성경을 읽다가 내 마음에 와 닿는 글귀를 만나는 것이 더 짜릿하지만 나와 다른 신앙인들의 삶이 궁금했다. 결국은 그들의 삶에 주님이 가득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말이다.

 

  아직까지 안타까운 것은 다른 책은 구입을 잘하면서 종교 서적은 손수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600권에 이르는 나의 책들 중에서 종교서적이 갖는 비율을 따져보면 너무나 극소수다. 그렇다보니 나에게 들어오는 종교서적은 거의가 다 선물받은 책이다. 이 책도 교회 동생에게 선물을 받은 것인데 미루다미루다 이제서야 꺼내 보는 마음 또한 죄스럽기 한이없다(나의 책장에는 그런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거기다 이 책을 꺼내 보게 된 동기는 내 마음이 너무 어지러워서 다른 책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였다. 난처할 때만 신앙에 기대보려는 얇팍함이라도 나에게 평안을 주는 것은 사실이기에 이런 책의 부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서너권 정도는 책장에 꽃혀 있어야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간사함(성경은 늘 곁에 있음에도). 그 간사함을 넘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그득했음 한다.

 

  이 책을 보면서 읽기를 피하기도 하고 처해진 상황을 모른체 했던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느낀다. 한동대 총장의 사모님(저자)처럼 속앓이를 한 것도 아닌데, 내가 헤쳐 나가지 못했던 나약한 부분을 헤쳐 나가는 모습이나 고난을 당하는 모습들은 피하고 싶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라고 나는 그냥 독자일 뿐이라고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면서 내 마음의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동대에 처해진 상황들은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분명 하나님의 대학을 세우는 일이기에 주님께서 길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앎에도 자꾸 의심하며 고난과 맞서기가 싫었다. 고난을 통해 더 성숙된다는 것을 앎에도 인간의 마음으로 피하고만 싶었다. 김영길, 김영애 부부도 어찌 그런 마음이 없었겠는가. 한동대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적으로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었을 고난의 연속이였다. 미래와 명예가 보장되는 과학자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대학 한동대를 맡으면서 멀고 험한 길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일을 행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었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으며 그 길로의 이끄심이 있었기에 따라간 것 뿐이었다. 무모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이 말이 어떻게 실행되는지를 알아간다면 주님이 살아계심을 더욱 더 느끼게 된다.

 

  포항의 허허벌판에 대학이 세워진다는 것은 무모해 보였다. 국립대학도 아니고 후원자가 든든한 사립대학도 아닌 하나님의 대학이었다. 김영길, 김영애 부부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왔다고 해도 하나의 대학을 세우기에는 부족한 것들 투성이었다. 그 부부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온 훌륭한 교수진들은 마련했다쳐도 학생들을 받기 위한 준비가 턱 없이 모자랐다. 가장 큰 어려움은 우리가 상상도 못할 물질의 액수였다. 도저히 구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액수였고 여기 저기 시급한 곳에 먼저 붓다 보니 행정적 절차의 미숙으로 인해 김영길 총장은 감옥까지 가게 된다. 믿음으로 보지 않고 인간적인 마음으로 본다면 늘 물질에 찌들려 물질을 구하고, 구해지면 감사하고 또 구하는 과정이 은혜스럽지 않게 보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이라는 교육의 장을 열기 위해서는 엄청난 물질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준비하지 않고 무조건 뛰어든 결과였다. 그러나 계획된 일이었다해도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치 않으면 지금의 한동대를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무모했더라도 주님의 일이였기에, 주님의 자녀들이 똘똘 뭉쳤기에, 지금의 한동대를 만들어 주었다.

 

  그 과정은 너무나 힘겨웠다. 알았더라면 피했을 고난이었다(알고도 고난 당하신 예수님의 고통을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그러나 그런 과정이 엇었다면 오히려 더 나약해졌을 거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이끄셨기에 그런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을지라도 그런 상황이 나에게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김영길, 김영애 부부도 개인적인 갈등과 신앙의 위협을 많이 받았었다. 그러나 오로지 주님 편에 서서 기도하며 메달리며 한동대를 일으키기 위해 애를 쓴 분들이다. 똑같이 나약한 인간일지라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며 주님의 이끄심대로 가면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신앙인이라고 왜 다르겠는가. 고난 받기 싫고 편하게 살고 싶고 손가락질 받고 싶지 않은게 인간의 마음인 것을. 그러나 주님이 늘 보듬어 주시며 '잘했다 충성된 종아' 라며 칭찬하시니 크나큰 위로가 되는 것이다. 영광을 보려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주님이 뜻을 주셨기에 행한 것들리다. 그 과정속에 주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 믿음을 다질 수 있는 용기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갈대상자는 그런 과정을 기린 책이다. 지금의 한동대의 영광도 영광이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을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주님을 만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과 마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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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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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면일기>를 읽으려 했던 순간부터, 미셸 투르니에라는 작가는 처음 만나는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의 후반부에 실린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10년전에 내가 읽었던 책을 발견하게 되면서 첫 만남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제목의 오역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부분이 있었다. 미셸 투르니에의 <사상의 거울>이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101가지 개념> 이라는 어이 없는 제목으로 번역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을 때,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순진했던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상상력 자극에 도움이 되고자(무엇 때문인지 모른채) 읽은 책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 제목이 어이없는 오역의 결과물이라니.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어찌되었든 10년 전에 그의 작품을 읽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비록 큰 감흥은 없었더라도 10년의 공백이 메꿔지는 야릇한 기분이 들어 책 속으로 빠져 들어 가고 있었다.

 

  저자는 외면일기를 '잡다한 흥미거리들로 이루어진' 책이라고 말했다. 일종의 여행기 겸, 일기, 노트를 편의상 1월부터 12월까지 나눠 추리기만 했을 뿐이라고. 그렇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잔상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그가운데서도 외면적으로 관찰하거나 생각했다는 이유로 <외면일기>라는 제목을 붙인 것만 보더라도 흥미로울 것 같았다. 책의 구성은 짧은 단락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단락의 내용은 독자를 위한 것이 아닌 저자의 흔적이었기에 이해 불가능한 것들이 많았다. 처음엔 그런 내용에 당황했지만, 책의 특성을 고려하여 계속 읽다보니 이 책은 이해를 위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외면적으로 관찰하거나 생각 했다고 했으니 저자도 그 모든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 들였다는 보장도 없었다. 제 3자로써 그런 저자의 기록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다.

 

  저자는 편의상 열두달로 나눴다고 했지만 그 안에는 계절의 변화라든가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기도 했다. 마침 이 책을 읽고 있는 시점은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였기에 감회 또한 남달랐다. 저자의 한해를 다른 관점에서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기록된 것들이 한해의 묶음인지, 여러 해의 묶음인지, 언제의 기록들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저자와 함께 한 시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순간마다 갖게 되는 나의 잡다한 생각들에 자신감을 얻은 기분이랄까. 나도 내면일기가 아닌 외면일기를 써보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저자의 글들의 도움을 받자면, 완성된 글이 아닌 누구나 쉽게 알아 먹을 수 있는 흔적이 아닌 먼저는 자신의 욕구에 충족하면 되었다. 어떤 것을 메모 해놓고 익혀보고 싶다, 생각해 보고 싶다, 나누고 싶다, 기억하고 싶다 등등 온갖 잡다함이 묻어 있더라도 상관 없었다. 그런 잡다함 속에라도 자신의 취향과 스타일이 묻어 나면서 길이 만들어 지고 있었으므로.

 

  그런면에서 저자와 나 사이에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참 많았다. 내가 지나쳐 버리고 잊어 버렸던 것들, 내 의식 속에서 감히 꺼내지 못한 것들의 드러남. 광활한 바다에 듬성듬성 박혀 있는 섬들처럼 나와의 연결에는 문제가 없었다. 생뚱맞다 싶으면 생뚱맞은 대로 이해가 안되면 안되는 대로 넘어가도 찝찝함이 남아 있지 않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책을 읽으면서 짓게 되는 자연스런 미소. 너털웃음보다 깔깔거림보다 그런 미소의 여운은 오래 남는다. 깊은 밤, 스탠드 불빛 아래서 읽어 내려간 외면일기는 나에게 책을 읽는 최고의 기쁨을 선사해 준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다른 작품을 바로 읽어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를 느꼈던 부분을(작품이든 작가든) 바로 연결시키지 않으면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은 멀어져 버린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과 에세이를 같이 내는 저자의 책 중에서, 10년 전에 읽은 것도 소설이 아니고 외면일기도 소설이 아니니 당분간은 이런 종류의 책을 주로 읽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책과의 헤어짐이 싫을 때, 책을 통해 느꼈던 기분을 오래 간직하고 싶을 때처럼 아쉬운 것도 없다. 추운 겨울 밤에는 왠지 이런 느낌을 간직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낯섬과 의문들이 뒤섞이어 만들어 내는 몰입 상태. 그런 몰입이 미셸 투르니에를 통해 자주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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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화 속의 삶과 욕망 - 박희숙

 

2. 고흐를 만나다 -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

 

3. 지하실의 검은 표범 - 아모스 오즈

 

 

 

 

- 저번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슬그머니 책들이 내게로 왔다.

그것도 다 선물 받은 책들이다..ㅋㅋ

내가 그림책을 좋아하니..

지인이 그림책 두권을 주었다.(내가 조른 것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고흐 책도 있어서 더 설렐 뿐이다.

 

아모스 오즈의 '지하실의 검은 표범'은 교회 동생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거다.

생일 선물 말하라고 하길래.. 그때 읽고 싶었던 아모스 오즈의 신간을 말했었는데... 이렇게 공짜로 받다니..ㅋㅋㅋ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선물 받으니 기분이 더 좋다.

 

아. 도대체 책은 언제 읽을 셈인지...ㅠㅠ

이젠 좀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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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화 속의 삶과 욕망 - 박희숙

 

2. 고흐를 만나다 -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

 

3. 지하실의 검은 표범 - 아모스 오즈

 

 

 

 

- 저번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슬그머니 책들이 내게로 왔다.

그것도 다 선물 받은 책들이다..ㅋㅋ

내가 그림책을 좋아하니..

지인이 그림책 두권을 주었다.(내가 조른 것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고흐 책도 있어서 더 설렐 뿐이다.

 

아모스 오즈의 '지하실의 검은 표범'은 교회 동생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거다.

생일 선물 말하라고 하길래.. 그때 읽고 싶었던 아모스 오즈의 신간을 말했었는데... 이렇게 공짜로 받다니..ㅋㅋㅋ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선물 받으니 기분이 더 좋다.

 

아. 도대체 책은 언제 읽을 셈인지...ㅠㅠ

이젠 좀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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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큼의 애정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노재명 옮김 / 다산책방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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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서울에 다녀왔다. 공연도 볼겸 지인도 만날 겸 나선 길이였는데, 이동 시간이 길어 힘들었던 기억만 난다. 일부러 책 읽기 수월한 기차를 택했는데, 올라가는 길에는 한 줄도 읽지 못하고 잠만 자버렸다. 내려 오는 길도 무척 피곤 했지만 잠으로 보내기는 싫어서 억지로 책을 꺼내 들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의 보상을 받으려 펼친 책이었는데, 피곤함도 잊은 채 단숨에 읽어 버렸다. 창 밖의 풍경은 하나도 보지 못했지만 기차의 이동과 함께 책이 흘러가는 기분. 그런 기분 가운데 내 마음은 잔잔해져 갔다.

 

  처음 책 제목과 겉표지를 봤을 때, 쿨한 로멘스 소설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다시 살펴 본 겉표지는 책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내용은 잔잔하면서도 틀에 박힌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겉표지는 그렇다치고, 책을 읽는내내 독특하다 느꼈던 것은, 주인공 마사히라에게 일어난 일들은 평범한 것이 아님에도 수평선을 그리듯 써 내려간 저자의 문체였다. 페이지는 중반을 넘어가고 결말을 향해 감에도 처음과 별다를 바 없는 상황 속에서 저자는 결코 흥분하지 않았다. 독자에게는 그런 부분에서 인내가 필요할지는 몰라도 저자가 뿜어내는 독특한 잔잔함에 끌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기에 나 또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의혹도, 툭 하고 던져 버리는 결말 앞에서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사히라에게 얽힌 궁금증을 해소 시켰따는 후련함보다, 수평선처럼 일정한 문체에서 빠져 나왔다는 후련함이 더 짙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서 다른 독자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는 나이지만, 이 책은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릴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너무 허망하다는 쪽과 나처럼 저자가 끌어내는 잔잔함에 어느 정도의 매력을 느꼈을 쪽으로 나뉠 거라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의 스토리는 그럴 여지를 주기 충분했다 생각한다. 마사히라는 옛 애인 아키라의 전화를 빌미로 5년 전 자신을 떠났던 배경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간다. 그런 과정 속에서 너무나 쉽게 자신의 마음을 닫아 버렸던 자신을 돌아 보면서 소중한 것들을 잃어 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하자 아키라에게 마사히라와 헤어지길 요구했던 어머니, 그런 마사히라를 위해 기꺼이 떠났던 아키라, 자신에게 괜한 참견을 했다 생각했던 키즈 선생. 그 모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오로지 마사히라만 마음의 문을 닫은 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5년 전 아키라를 자신에게 떼어 놓게 했던 사람들을 원망해 보지만, 결국은 자신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키라를 향해 조금씩 용기를 낸다.

 

  그런 마사히라를 지켜 보면서 내 마음도 복잡해져 갔다. 좀 더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한 과거의 행동은 차치하더라도 키즈 선생을 통해 마음의 병페가 벗겨지는 부분에서 찔림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사랑을 믿지 못하고, 나의 것을 지킬 줄 모르며, 나를 다스리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비단 마사히라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든, 나에 대한 애정이든 그 가치를 따질 수 없기에 좀 더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 안에 가둬놓은 것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그 갇힘 속에서 얼마나 괴로워 하고 있었던가. 마사히라에게 아키라와 헤어진 이후의 5년이 그랬다. 아키라의 배신에 허덕였던 것보다 자신 안에 갇혀 있음을 괴로워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마사히라를 보면서 자신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한발짝 떨어져 나와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 되어가고 있는 것은 없는가, 똑바로 가고 있는가를 정검해 봐야 할 것이다. 나에게 종교가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그 안에서 내가 범하는 오류도 무척 많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더라도 무언가를 깨달았다면 그때는 더 이상 지체하면 안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면서 5년의 세월을 번민으로 보낸다는 것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사히라는 5년의 세월이 힘들었지만 자신을 위해 희생했던 한 마음을 알았기에 지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조금씩 다가가는 마사히라. 그런 깨어남이 비단 마사히라 뿐만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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