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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사랑을 잃을 때, 가장 많이 차지하는 감정은 슬픔인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서건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는 사실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힘들다는 한 여자의 말에 공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더 이상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던 그녀는 슬픔보다 증오심을 더 키우다 자신의 감정을 끔찍한 방법으로 분출시켜 버렸다. 그런 분출의 복선은 소설 속에 충분히 깔려 있었지만 그녀의 엽기적인 행동 앞에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그런 그녀가 증오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보다 거짓말을 하는 혀였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니 사랑한다 말했으면 끝까지 지켜야 한단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는 혀를 도려낸 후 그 혀로 최후의 만찬을 만든다. 과연 누구를 위해서 였을까?
그녀는 자신이 읽은 수 많은 책들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사랑을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사랑 이야기는 사랑이 끝나는 것으로 시작 된다며 그 끝에서부터 유쾌하지 않은 출발을 시작하고 있었다. 유쾌하지 않음에는 그녀의 사랑이 끝났다는 것보다 사랑했던 사람이 다른 여자, 주변인이라면 다 아는 그런 여자를 사랑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향하던 마음을 단절 시켜야만 했다. 일방적이라 하더라도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며 떠나는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돌아오길 기다릴께' 뿐이다. 다행인 것은 그가 기르던 개와 함께 남겨 졌다는 것이다. 그의 새로운 그녀가 개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더라도 그 개에게선 그의 향기가 남아 있고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져서 였다.
그러나 그가 남기고 간 개 폴리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자신의 주인이 보이지 않는 것과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그녀 뿐만이 아니라 폴리에게도 불안했던 것이다. 그런 폴리를 그녀가 돌보아 줄 수 없는 이유는 자신 또한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있었지만, 다시 일을 시작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won's kitchen 이라는 쿠킹 클래스를 정리하고 전에 일했던 이태리 요리 전문점 노베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전력질주를 다해 요리를 한다. 그리고 요리와 맞물리게 되는 그녀의 이야기는 독자를 헤어날 수 없게 옥죄어 온다. 그녀의 직업이 요리사라는 것을 떠나 요리와 함께 쏟아내는 이 이야기들은 흥미로우면서도 맛깔났다. 듣도 보도 못한 요리와 그에 얽힌 에피소드가 대부분이었지만 내가 미식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애통할 정도로 요리 얘기를 잔뜩 풀어놓고 있었다.
그런 요리 얘기 가운데 펼쳐 놓는 자신의 이야기는 덤덤하게 해 나가는 듯 보였지만 왠지 모를 답답함과 불안함은 늘 엄습해 있었다. 그녀가 툭툭 던져 놓듯 얘기하는 그들의(사랑하는 그와 그의 새로은 그녀) 이야기는 그녀에게 단순하게 와 닿지 않음을 앎에도 그들 때문에 그녀가 휩쓸리지 않기를 바랐다. 배신감과 사랑하는 마음이 뒤범벅이 되더라도 혼란스럽지 않길 바랐다. 차라리 지지부진한 이별 얘기라도 좋으니 그녀를 자극시키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녀의 혀로 느껴가는 맛의 세계는 무궁무진 했으며 감미로워서 그런 분위기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한때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던, 그리고 거짓말을 했던 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녀의 증오는 켜켜이 쌓여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맛의 세계에 휩싸이다 보면 그녀가 버림 받았다는 사실, 떠나버린 그를 깊이 사랑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도 한다. 바로 저자가 취하고 있는 심층적인 심리 방법 때문인데, 해설가 김화영님은 몇몇 구절을 예를 들며 지나치게 노출된 이미지 패턴과 함께 그런 부분들이 이 소설을 단조롭게 지루하게 만드는 점이라 했다. 분명 맛을 보는 혀를 통해 달콤함을 즐기다 보니 거짓말을 하는 가증스러운 혀의 부분은 잊어 버리고 있었다. 그것은 이 책은 요러의 여담에 관한 책이 아니라 이별한 요리사의 이야기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듯, 그녀의 진정한 마음 상태에서도 방심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녀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고 눈살을 찌뿌려 보지만 공허한 마음은 나 역시 채워지지 않는다.
그녀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소설 속에서 충분히 드러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과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녀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마치 자신의 삼촌과의 자리를 바꾸듯 모든 것을 놔버리는 그녀는 그 방법이 그를 찾는 거라 생각했던 것일까.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그런 행위의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그의 새로운 그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갔기에 그만큼 돌려 주고 싶었을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사랑이 헛되다 느꼈던 것일까. 그녀는 결국 눈물을 훔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최후의 만찬을 먹이며 그제서야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게 된 것 같다. 슬픔을 인정하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뒤집는 용기가 필요했다. 자신을 뒤집어야만 사랑의 변함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잃어버린게 더 많은, 이 느낌은 무엇일까. 여전히 비현실감 속에서 허우적 대고 있는 나를 잡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