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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평점 :
가깝지만 먼 나라처럼 느껴지는 중국에 대한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다. 늘 안 좋은 뉴스들이 먼저 들려왔고 그런 자극적인 소식들만 접하다 보니 점점 더 알 수 없는 나라로 인식되었다. 중국에 대해 알고 싶은 갈증은 있었지만 워낙 거대한 나라다보니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 몰라 늘 아쉬웠다. 우리나라 저자가 중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과 에세이를 읽어 보아도 후련하게 풀어주지 못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러다 위화 작가의 이 책을 읽게 되었고 비로소 중국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열 개의 단어로 중국에 대해 말한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단어가 좀 많아 보였다. 그러나 한 단어씩 중국에 대해 풀어갈 때마다 더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갈망이 일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중국의 근현대를 모두 훑고 온 기분이라 기운을 뺏긴 감도 없진 않았지만 그만큼 통찰력 있게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좋았다. 중국을 대표하는 위화라는 작가의 삶에 녹아든 중국의 이야기와 작가로서 중국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어우러져 거대한 중국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그런 시대에는 한 개인의 운명을 결코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정치 상황의 파도에 따라 흔들렸고 자기 앞길에 행운이 기다리고 있는지 불행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124쪽)
저자의 성장과정에서 드러난 당시의 중국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지나치게 주관적인 시선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인민’과 ‘영수’에 대해 말할 때, 저자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문화대혁명)을 견뎌낸 것이 가슴 찡하면서도 우울해 그런 생각이 싹 가셨다. 우리 역사에도 그와 같은 시절이 있었지만 역시나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었기에 암울할 수밖에 없었다. 말 한마디에 반역자로 몰려 삶을 빼앗길 수도 있었고 책 한권도 맘대로 읽을 수 없는 시절에 과연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저자는 그런 시절의 기억을 세세하게 끄집어냈고 꾹꾹 눌러 기록했다. 당시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에 회오리치는 정치적 상황에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견뎌온 저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고 지난하다 불평할 수조차 없었다.
저자가 경험하고 겪어온 시절의 이야기를 모두 공감할 수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단어씩 중국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저자 또한 명확한 경계를 긋거나 확실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통해 나 같은 이국의 독자들도 당시의 배경을 그냥 바라보게 했다. 중국 태생이 아니면 절대 공감할 수 없는 ‘영수’와 ‘풀뿌리’ 같은 이야기를 피부에 와 닿게 느낄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나라의 한恨에 대해 간단히 설명할 수 없듯이 저자는 단어에 담긴 중국의 모습을 다양한 시각으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 시각에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작가로 바라 본 시각이 눅진하게 다가와 근거리에서 당시를 바라보는 착각이 일기도 했다.
그러한 시선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의 중국의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차이’를 통해 중국이 얼마나 거대하고 불균형한 발전을 이뤄왔는지를 말하고, ‘혁명’에서는 ‘정치권력의 새로운 분배’와 ‘경제권력의 재분배’로 낳은 현재의 중국을 이야기한다. ‘홀유’라는 단어로는 중국을 안 좋은 뜻인 ‘대륙’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던 사회적 현상을 들려주기도 한다.
옮긴이는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문인들이 대부분 방관자의 입장인 것에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열 단어로 중국을 충분히 안 것 같기도 하고 부족한 것 같다고 앞서 말했지만 무엇보다 저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서 중국을 드러낸 깨어있음이 좋았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글을 쓴다는 것에 굉장한 용기와 노력이 뒤 따른다는 사실을 느껴 저자를 경이롭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의 시선이라면 중국을 오해하지도 옹호하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고 싶은 작가이고 그의 문학을 섭렵하는 것은 물론 중국이란 나라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더불어 저자의 시선으로 인해 내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선까지 키워낸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