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저 2만리 2 - 쥘 베른

 

 

 

 

- 1권을 재미나게 읽어서...

적립금을 조금 보태서 구입했다.

오오.. 이건 과학책이다 과학책..

쥘베른이 이렇게 박학다식 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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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조적 디자인 경영 - 이병욱

 

2. 하나님의 휴식 - 마크 부캐넌

 

 

 

- 오늘도 두권의 책이 왔습니다.

두권다 이벤트로 신청한 책들입니다.^^

창조적 디자인 경영은 메일을 잘못 보내서 힘겹게 온 책이구요..

하나님의 휴식은 종교 서적이라서 신청해 보았는데.. 책이 참 이쁜 것 같아요.. 엽서도 보내주시고..^^

아핫.. 책이 은근히 쌓여 갑니다.

부지런히 읽어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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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5
허먼 멜빌 지음, 김정우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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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이스마엘. 앞으로 나를 그렇게 불러 주길 바란다.> 모비 딕의 첫 구절인 이 문장을 두번째로 만나고 있었다. 처음은 루이스 세풀베다의 <지구 끝의 사람들>에서 였다. 그 책의 시작도 이렇게 시작되며(번역의 차이는 있지만), <지구 끝의 사람들>을 읽고 모비 딕을 읽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 전부터 많은 책들에서 언급되어 궁금했던 책이였는데 이번 계기로 다짐이 굳혀져 읽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묵은 체층이 내려가는 듯한 개운함이 느껴졌다. 그토록 궁금해하던 모비 딕을 읽었다는 후련함과 책 속에 푹 빠질 수 있었던 몰입 때문이었다.

 

  책 속에 푹 빠져 몰입을 한 날은 겨울비치고 비가 제법 오던 날이었다. 빗소리와 바람 소리를 배경으로 내가 앉아 있는 이 곳이 한 척의 배라고 생각하자 현실감은 증폭 되었다.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고 고래의 공격을 받아 침몰 됐을 때, 그들은 바다물 속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내게 들리는 소리는 비 소리 였지만 몰입 속에서 만난 비는 바다 한가운데서 만나는 고립의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아하브 선장의 모비 딕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비참한 결말을 예견하고 있었기에 공포는 내 안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단지 아하브 선장의 광기가 멈춰 주기를 바랄 뿐. 그것은 죽음인 걸 알기에 이스마엘이 펼쳐 놓는 신기한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는 이스마엘이라는 화자와 모비 딕, 그리고 흰 고래에게 다리 한 쪽을 잃고 모든 걸 내건 채 고래를 쫓는 아하브 선장을 중심인물로 볼 수 있다. 해설에서도 언급했듯이 지금까지 모비 딕의 중심인물은 아하브 선장과 이스마엘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주인공은 모비 딕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비 딕이라고 해도 이스마엘이 없었다면 이 이야기는 드러나지 않았듯이 등장인물의 연관관계를 맺으며 읽어나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더라도 아하브 선장의 모비 딕에 대한 집착은 많은 사람들을 바다 속으로 수장시켜 버리는 비극을 낳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피쿼드호는 기름과 고기를 얻기 위한 고래잡이 배가 아니라 오로지 모비 딕만 쫓는 향해를 했다.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그런 선장에게 말을 못하는 동물에게 그런 복수심을 품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과 기름과 고기를 채우고 다시 돌아가자고 하지만 어떤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하브 선장의 항해는 계속 되었다. 선장은 모비 딕으로 향하는 파멸의 감정을 되돌리기엔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느낀다. 결국 모비 딕과의 사투 속에서 고래와 함께 바다 속으로 사라지지만, 피쿼드호의 선원들까지 물고기 밥이 되어 버리는 모습은 한 사람의 광기가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결말이다. 그 속에서 이스마엘만이 살아서 믿기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으니 모비 딕에 대한 전설은 여전히 살아 있는 셈이다.

 

  <지구 끝의 사람들>에서도 고래와 포경선이 나오기에 모비 딕에서 만나는 고래를 잡는 모습과 여러 도구들과 항해기술은 흥미로웠다. 한 세기를 넘나들며 비교할 수 있었던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고래를 통해 많은 것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즐거웠던 게 아닌가 싶다. 또한 해설을 통해서 여러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모비 딕이 어떤 고래인지부터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까지 그야말로 모비 딕의 유명세를 톡톡히 느낀 시간이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도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작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이 출간 됐을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뒤에 작품을 쓰기도 했지만 묻혀져 버렸고, 그가 사망할 당시에는 그가 작가였다는 사실도 잊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에 모비 딕에 재조명 되어 19세기 미국 고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세에 진가를 발휘하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그득하다.

 

  작가로써의 그의 생애는 아하브 선장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물질에 쪼들리고 작가였다는 사실도 잊은 채 쓸쓸히 생을 마감한 그나, 광적인 집착을 버리지 못해 파멸로 들어간 선장이나 비극적인 결말은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었다. 부디 모비 딕의 존재가 복수와 파멸로 기억되지 않길 바란다. 흰색은 행운을 불러 오기도 하니 모비 딕의 존재를 희망의 타깃으로 삶아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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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의 자서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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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랜만에 만나는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이다. 2년전에 두 편 정도 읽고 나서 많은 관심을 두지 못한 작가였는데 이 책을 선물로 받아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노통브의 책을 마주하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기대를 하며 책을 읽었다. 역시나 노통브의 언변은 식지 않았고 더 생생히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에 통달한 듯한 그녀의 언어 앞에서 나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의 글을 조금만 읽어보면 앞으로 펼쳐질 것들을 기대하지 않게 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달변에 끌려갈 수 밖에 없음을 감지할 테니까.

 

  이 책은 아멜리 노통브의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간 것이라 했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서 여러 나라에서 성장했던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으니, 편하게 일으려면 될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성장소설임을 느끼기 전에 배고픔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앞으료 펼쳐질 이야기들이 편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된다. 배고픔이 없는 바누아투 섬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정작 그녀는 늘 배고픔에 허기져 있다. 배고픔은 바로 나다라고 정의할 정도로 그녀의 배고픔은 태곳적부터 그녀에게 배어 있는 느낌이 든다. 음식에 대한 배고픔이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배고픔이기도 하고, 욕망에 대한 배고픔이기도 하다.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다섯살 적에도 배고픔에 시달렸으니 평생이 가도 배고픔의 부재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의 어린시절 이야기는 아버지가 어느 나라의 외교관이 되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그녀가 다섯살 때는 일본에서 니쇼상이라는 보모를 통해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일본이 고향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그러나 중국으로 가서는 적응하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며, 뉴욕으로 날아가서는 환희와 쾌락에 젖기도 한다. 그녀의 나이는 어렸지만 앞에서도 언급 했듯이 모든 것을 달관한 듯한 그녀의 언변은 어린아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의 시선은 있더라도 세상을 보는 관점은 커버린 그녀의 생각이 짙었다. 어릴적부터 그녀가 그런 생각을 달고 살았다면 요즘말로 너무 성숙해서 징그러운 시선으로 쳐다봤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시선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놀라울 뿐이었다. 어디에 시선을 두고 글을 썼든지간에 걸쭉한 언변은 당할자가 없어 보였다.

 

  그녀는 벨기에 인이지만 그녀가 가장 적응하기 힘든 나라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보통 자신의 조국에 많은 애정을 갖기 마련인데 어릴적부터 새로운 곳을 몸소 체험하고 느껴서인지 그녀에게 조국은 낯설다. 거기다 국적이며 나의 나라라는 의식은 저만치 던벼 버려도 좋을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세계를 뛰어 넘어 도약하는 과정은 어릴적에 이미 통달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적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와 외모의 다름에 깊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 너그러움은 마음에 들었지만 그녀의 정체성은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일본에서 시작해서 일본에서 끝난다. 니쇼상을 다시 찾아가면서(뉴욕의 어럴적 애첩을 찾아가는 것보다 훨씬 감동적이다.) 그녀와의 해후가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다시 돌아온 듯한 느낌. 그녀는 더이상 다섯살의 어린아이가 아니였음에도 어른이 된 그녀로 비추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돌아옴 때문이 아니였을까.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 배고픔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스스로 찾아나서면서 자유로워지는 모습. 모든 것을 통달한 언어 속에서 발견한 순수한 희망이었다.

 

 

 

오타발견

 

p. 215 나쇼상 -> 니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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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적 킬러의 고백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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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을 한권씩 모아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 작가의 책을 모두 탐독한다는 것은 여러가지의 조건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기에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루이스 세풀베다 이전에 프란츠 카프카나 도스또예프스끼 같은 작가에도 푹 빠져 보았지만, 그들의 책은 어렵거나 너무 방대해 전집을 완독하지 못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은 양도 그다지 많지 않았고 흡인력도 뛰어나 완독하기에 적절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저자의 작품을 5권째 읽다 보니 읽을 작품이 서서히 줄어드는 현상이 안타까워 조금씩 우울해지려 한다. 온라인 서점에에 절판된 책들을 구해 놓기도 했지만, 아껴 읽어야 해서인지 이래저래 마음이 가라 앉아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한권 한권 읽어 나가다 보니 저자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었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분위기에 빠졌던 것은 환경이 주제라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는데 ,장르의 변화가 다양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과 <악어>라는 단편이 들어 있었는데 <감상적 킬러의 고백>은 서술 형식부터 주제까지 지금껏 만나왔던 책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악어> 또한 환경 소설로만 치부할 수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기법이 드러나는 단편이었다. 두편 다 흑색소설로 볼 수 있는데,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면서도 그에 따른 결론은 독자에게 맡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두 편의 단편은 슬픈내용을 담고 있다. 누구나 똑같이 느끼는 동일한 슬픔이 아니라 절대 사라지지 않는 슬픔의 원천이 깃들어 있는 것 같은 슬픔이었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은 한 킬러가 등장하고 점차적으로 감정에 휩쓸리게 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 같은 건 전혀 느끼지 못한 채 내키는 대로 살고 있는 킬러. 자신이 맡은 일은 프로답게 깔끔하게 처리 하지만 새로운 표적의 사진을 보는 순간 찜찜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 때, 자신의 여자가 도착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불길함을 느낀다. 그는 프로답지 않게 표적을 놓치는 실수를 하고 그를 다시 찾아 없애지만, 그의 곁에는 뜻밖의 인물이 지키고 있었다. 바로 자신의 여자. 자신을 그렇게 혼란스럽게 했던 여자가 자신의 표적 때문에 그에게 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그녀의 왼쪽 가슴에 총알을 박는다. 냉혈안일 것 같은 그가 프로답지 못한 행동을 저질렀을 때, 그의 예감은 시작부터 뭔가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슬픔이었다. 그녀를 잃어 버린다는 슬픔. 그 슬픔을 인정하지 못했기에 킬러답지 못한 감상적인 고백들을 늘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악어>는 보험 회사 조사 요원을 통해 피혁계의 거물들이 살해되는 진실을 파헤치고 있었다. 막대한 보험금을 지불해야 하는 처지에서 조사 요원 콘트레라스는 사건의 진실을 쫓는다. 그 와중에 피혁회사의 만행과 한 여인의 복수심으로 희생된 인디오들과 그들의 황폐한 땅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인디오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악어들과 부족들을 몰살시킨 피혁회사의 거물에 대한 복수를 한다쳐도,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분노를 뱉어냈던 오르넬라는 용서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건 인디오들을 또 한번 죽이는 행위였고, 비겁했으며, 자신을 정당화 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을 위해서 자연을 파괴하고 인디오들을 몰살시킨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비단 그녀에게만 비난을 퍼부을 수 없는 것이다.

 

  두 작품 다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저자의 색다른 기법에 심취하기 보다는 마음이 무거워 힘겨웠다. 킬러의 개인적인 슬픔을 떠나 사회악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 서글펐으며, 물질을 위해 파괴와 살상을 서슴치 않는 인간들에게도 환멸이 덧입혀 졌다. 물질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다른 존재에 대한 경외심과 존중은 결코 성립되지 않았던 걸까. 씁쓸한 감정들을 곱씹은 채 루이스 세풀베다의 작품을 조용히 덮었다. 더이상 아픔을 보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 올라왔지만 다른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억누를 수 없기에 울적한 마음을 털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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