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5
허먼 멜빌 지음, 김정우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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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이스마엘. 앞으로 나를 그렇게 불러 주길 바란다.> 모비 딕의 첫 구절인 이 문장을 두번째로 만나고 있었다. 처음은 루이스 세풀베다의 <지구 끝의 사람들>에서 였다. 그 책의 시작도 이렇게 시작되며(번역의 차이는 있지만), <지구 끝의 사람들>을 읽고 모비 딕을 읽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 전부터 많은 책들에서 언급되어 궁금했던 책이였는데 이번 계기로 다짐이 굳혀져 읽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묵은 체층이 내려가는 듯한 개운함이 느껴졌다. 그토록 궁금해하던 모비 딕을 읽었다는 후련함과 책 속에 푹 빠질 수 있었던 몰입 때문이었다.

 

  책 속에 푹 빠져 몰입을 한 날은 겨울비치고 비가 제법 오던 날이었다. 빗소리와 바람 소리를 배경으로 내가 앉아 있는 이 곳이 한 척의 배라고 생각하자 현실감은 증폭 되었다.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고 고래의 공격을 받아 침몰 됐을 때, 그들은 바다물 속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내게 들리는 소리는 비 소리 였지만 몰입 속에서 만난 비는 바다 한가운데서 만나는 고립의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아하브 선장의 모비 딕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비참한 결말을 예견하고 있었기에 공포는 내 안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단지 아하브 선장의 광기가 멈춰 주기를 바랄 뿐. 그것은 죽음인 걸 알기에 이스마엘이 펼쳐 놓는 신기한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는 이스마엘이라는 화자와 모비 딕, 그리고 흰 고래에게 다리 한 쪽을 잃고 모든 걸 내건 채 고래를 쫓는 아하브 선장을 중심인물로 볼 수 있다. 해설에서도 언급했듯이 지금까지 모비 딕의 중심인물은 아하브 선장과 이스마엘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주인공은 모비 딕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비 딕이라고 해도 이스마엘이 없었다면 이 이야기는 드러나지 않았듯이 등장인물의 연관관계를 맺으며 읽어나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더라도 아하브 선장의 모비 딕에 대한 집착은 많은 사람들을 바다 속으로 수장시켜 버리는 비극을 낳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피쿼드호는 기름과 고기를 얻기 위한 고래잡이 배가 아니라 오로지 모비 딕만 쫓는 향해를 했다.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그런 선장에게 말을 못하는 동물에게 그런 복수심을 품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과 기름과 고기를 채우고 다시 돌아가자고 하지만 어떤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하브 선장의 항해는 계속 되었다. 선장은 모비 딕으로 향하는 파멸의 감정을 되돌리기엔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느낀다. 결국 모비 딕과의 사투 속에서 고래와 함께 바다 속으로 사라지지만, 피쿼드호의 선원들까지 물고기 밥이 되어 버리는 모습은 한 사람의 광기가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결말이다. 그 속에서 이스마엘만이 살아서 믿기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으니 모비 딕에 대한 전설은 여전히 살아 있는 셈이다.

 

  <지구 끝의 사람들>에서도 고래와 포경선이 나오기에 모비 딕에서 만나는 고래를 잡는 모습과 여러 도구들과 항해기술은 흥미로웠다. 한 세기를 넘나들며 비교할 수 있었던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고래를 통해 많은 것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즐거웠던 게 아닌가 싶다. 또한 해설을 통해서 여러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모비 딕이 어떤 고래인지부터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까지 그야말로 모비 딕의 유명세를 톡톡히 느낀 시간이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도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작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이 출간 됐을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뒤에 작품을 쓰기도 했지만 묻혀져 버렸고, 그가 사망할 당시에는 그가 작가였다는 사실도 잊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에 모비 딕에 재조명 되어 19세기 미국 고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세에 진가를 발휘하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그득하다.

 

  작가로써의 그의 생애는 아하브 선장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물질에 쪼들리고 작가였다는 사실도 잊은 채 쓸쓸히 생을 마감한 그나, 광적인 집착을 버리지 못해 파멸로 들어간 선장이나 비극적인 결말은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었다. 부디 모비 딕의 존재가 복수와 파멸로 기억되지 않길 바란다. 흰색은 행운을 불러 오기도 하니 모비 딕의 존재를 희망의 타깃으로 삶아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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