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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의 자서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만나는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이다. 2년전에 두 편 정도 읽고 나서 많은 관심을 두지 못한 작가였는데 이 책을 선물로 받아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노통브의 책을 마주하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기대를 하며 책을 읽었다. 역시나 노통브의 언변은 식지 않았고 더 생생히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에 통달한 듯한 그녀의 언어 앞에서 나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의 글을 조금만 읽어보면 앞으로 펼쳐질 것들을 기대하지 않게 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달변에 끌려갈 수 밖에 없음을 감지할 테니까.
이 책은 아멜리 노통브의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간 것이라 했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서 여러 나라에서 성장했던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으니, 편하게 일으려면 될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성장소설임을 느끼기 전에 배고픔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앞으료 펼쳐질 이야기들이 편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된다. 배고픔이 없는 바누아투 섬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정작 그녀는 늘 배고픔에 허기져 있다. 배고픔은 바로 나다라고 정의할 정도로 그녀의 배고픔은 태곳적부터 그녀에게 배어 있는 느낌이 든다. 음식에 대한 배고픔이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배고픔이기도 하고, 욕망에 대한 배고픔이기도 하다.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다섯살 적에도 배고픔에 시달렸으니 평생이 가도 배고픔의 부재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의 어린시절 이야기는 아버지가 어느 나라의 외교관이 되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그녀가 다섯살 때는 일본에서 니쇼상이라는 보모를 통해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일본이 고향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그러나 중국으로 가서는 적응하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며, 뉴욕으로 날아가서는 환희와 쾌락에 젖기도 한다. 그녀의 나이는 어렸지만 앞에서도 언급 했듯이 모든 것을 달관한 듯한 그녀의 언변은 어린아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의 시선은 있더라도 세상을 보는 관점은 커버린 그녀의 생각이 짙었다. 어릴적부터 그녀가 그런 생각을 달고 살았다면 요즘말로 너무 성숙해서 징그러운 시선으로 쳐다봤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시선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놀라울 뿐이었다. 어디에 시선을 두고 글을 썼든지간에 걸쭉한 언변은 당할자가 없어 보였다.
그녀는 벨기에 인이지만 그녀가 가장 적응하기 힘든 나라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보통 자신의 조국에 많은 애정을 갖기 마련인데 어릴적부터 새로운 곳을 몸소 체험하고 느껴서인지 그녀에게 조국은 낯설다. 거기다 국적이며 나의 나라라는 의식은 저만치 던벼 버려도 좋을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세계를 뛰어 넘어 도약하는 과정은 어릴적에 이미 통달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적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와 외모의 다름에 깊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 너그러움은 마음에 들었지만 그녀의 정체성은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일본에서 시작해서 일본에서 끝난다. 니쇼상을 다시 찾아가면서(뉴욕의 어럴적 애첩을 찾아가는 것보다 훨씬 감동적이다.) 그녀와의 해후가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다시 돌아온 듯한 느낌. 그녀는 더이상 다섯살의 어린아이가 아니였음에도 어른이 된 그녀로 비추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돌아옴 때문이 아니였을까.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 배고픔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스스로 찾아나서면서 자유로워지는 모습. 모든 것을 통달한 언어 속에서 발견한 순수한 희망이었다.
오타발견
p. 215 나쇼상 -> 니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