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디어 신간 에세이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금수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식 알림 문자가 오면 갑자기 생기가 돈다. 바로 책을 주문하고 책이 도착할 때까지 뭔가에 들뜬 사람처럼 자질구레한 일을 해도 즐겁기만 하다. 그렇게 책이 도착하고 깊은 밤 스탠드 불빛 아래서 마주하고 있을 때면, 과장을 덧붙여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까지 하다. 이 책이 그랬다. 국내에 출간된 작품을 모두 읽고 다음 책을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최근 작품이 아닌 이미 오래전에 출간된 작품이긴 하지만 저자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환상의 빛」단편의 문체가 너무 좋아서 책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하게 전개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미 이혼하고 남남이 되어 버린 부부가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마주한 뒤 오로지 편지로만 주고받는 이야기. 그들이 편지를 주고받는 것부터가 예삿일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 펼쳐진 이야기는 더 그러했다. 얼굴을 보며 하지 못한 이야기, 할 필요가 없었기에 하지 못했던 내면 깊숙한 이야기를 편지라는 형식을 통해 낱낱이 밝혀낼 만큼 시간도 흘렀고 직접 마주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사이이기 때문이다. ‘이제와 굳이 왜?’ 하고 묻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간 살아온 세월에 대한 돌아봄 혹은 정리 같은 게 필요했던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 것이다.


  다른 여자와의 불미스런 일을 계기로 헤어진 부부가 무슨 미련이 남았을까 의문을 가졌지만 그런 남편인 아리마를 많이 사랑했음을 아내 아키의 편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리마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아키에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다른 여자와의 일, 그녀에 대한 감정, 현재의 상황까지 아주 낱낱하게 말한다. 솔직한 게 좋은지 적당히 예를 갖춰 배려를 해주는 게 좋은지 고민될 정도로 둘의 편지는 솔직하다 못해 그간의 쌓인 감정을 폭발시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결코 유쾌하진 않았다. 불륜, 불륜, 불륜. 책을 읽다 말고 이 말을 뱉을 정도로 왜 그렇게 불륜이 많은지, 내면엔 왜 그렇게 감춘 게 많은지 이해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옮긴이는 ‘아키와 아리마의 관계에 대한 환상을 잃어 가고 그들의 지리멸렬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쉽지만 그게 현실이고 사랑이다.’라고 했듯이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니 그냥 지치는 느낌이었다. 부부가 모든 걸 드러내놓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위기의 순간에 왜 서로에게 기대지 못했는지, 떠밀리듯 다시 결혼하고 똑같은 상처가 반복되어야만 했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인생이란 어쩌면 그렇게 슬픔으로 가득 찬 것일까요? (153쪽)


  아키가 두 번째 이혼을 결심하고 이제 결혼 같은 건 하지 않고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기로 다짐했을 때 오히려 내가 더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아키의 인생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라고, 모차르트 음악에 빠졌던 그때처럼 이젠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에 반해 아리마에 대한 시선은 끝까지 곱지 못했다. 아키와의 이혼 이후에 내리막을 걷던 그를 어수룩할 정도로 받아주고 챙겨주는 동거녀에게 나쁜 남자라는 인상이 남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둘의 편지의 시작은 현재를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과거를 미화할 편지가 아니었음을 짐작했기에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 것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각자의 인생을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며 이젠 마주칠 일이 없을 것 같은 그들의 모습을 나 역시 무심하게 등지고 있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와후와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비채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런 정보 없이 하루키 책을 기다리다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다면 무척 흥분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침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안자이 미즈마루> 책을 읽었고 거기에서 이 책의 삽화를 보았다. 그랬기에 1998년에 출간 된 이 책을 차분한 마음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구입하기 전 페이지를 보고 굉장히 짧은 책이라는 사실을 알고 펼쳤지만 이런 형태의 하루키 책은 처음이라 낯섦이 더 짙었던 것 같다. 하루키 에세이를 삽화와 함께 단행본으로 읽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더 많은 걸 기대했다간 배신감(?) 혹은 허무함이 지배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루키 작가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를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 암고양이에 관한 이야기고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풍경이 자연스레 그려져서 툇마루는 물론이고 햇볕 냄새까지 나는 것 같았다. 왜 그런지 곰곰 생각해 보니 저자와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어릴 적 우리집은 나무로 된 마루가 있었고 마루 아래 흙바닥에는 집에서 기르는 개와 고양이가 함께 잠을 자고 있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 이상하게 우리집 고양이와 개는 앙숙이 아니어서 함께 몸을 기대며 잠든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신기할 때가 많았다. 가끔 그 고양이는 마루에 올라와 햇볕을 쬐며 꾸벅꾸벅 졸곤 했는데 그때 웅크리고 있던 모양, 고양이 털 색깔, 가르릉 거리는 소리, 그 햇살에 나도 벌러덩 누워서 뒹굴 거렸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암고양이의 시선을 따라 혹은 상상에 따라 묘사하다 어렸을 때 길렀던 고양이의 추억을 꺼내놓는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는 저자가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된다. 어떤 사물이나 풍경을 너무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으면 종종 추상적인 생각이 지배할 때가 있는데 이 책에서 저자가 고양이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약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는 건지, 고양이를 통한 다른 세계의 이면을 보고 있는 건지 착각이 들 정도로 약간의 지루함을 가지고 잠시 그 세계를 헤맸던 것 같기도 하다.

시골집, 툇마루, 고양이, 햇볕에 관련된 추억이 없었더라면 이 책을 읽고 조금 더 허무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려 주었고, 내가 길렀던 고양이를 기억하게 해주어서 그것만으로도 잠시나마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서 이 책에 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그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샬로테 - 2014 르노도 & 공쿠르 데 리세앙 수상작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샬로테란, 이름도 낯선 화가에게 무엇이 매료되었기에 저자는 이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이런 궁금증을 안고 있었다. 무언가에 매료되어 그 마음을 유지하고 결과물까지 내놓는 다는 게 쉽지 않음을 알기에 무엇이 저자의 마음을 뒤흔들었는지 명확하게 알고 싶었다. 그래서 임신 5개월의 몸으로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생을 마감한 젊은 화가인 샬로테 잘로몬의 불우한 가정사가 이어질 때도 마음에 지지 말자고 스스로를 꾹꾹 눌러 다스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고 그런 그림을 남긴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무언의 의무감 같은 게 있었다.


  산문시. 이 소설을 처음 마주하고 든 생각이었다. 뿌쉬낀의 산문시처럼 장황스럽진 않지만 한 줄로 끝나는 시 같은 문장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답답함과 궁금증이 함께 일어나 다음 이야기를 놓칠 수가 없었다. 소설이 아니라 샬로테의 내면을 고스란히 들여다보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그녀가 인식하고 있는 혹은 그녀 자신도 알 수 없는 깊숙이 자리 잡은 온갖 욕망과 생각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반면 그녀에게 말 한마디 건넬 수 없는, 철저하게 지켜볼 수 없는 위치에 있는 독자는 그 모든 일이 과거가 아닌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거라고 착각하게 된다. 현재형인 시제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그녀의 비극이, 암울한 전쟁의 상황이 고스란히 박혀버리는 것이다.


  자살한 이모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엄마가 자신에게 붙인 이름 샬로테. 정말 자살 유전자가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샬로테의 외가쪽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 암울한 시기였다는 핑계가 무색할 정도로 생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린 무의함이 샬로테를 덮칠까 두려웠다. 가스실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그녀의 이모와 엄마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진 않을지 조마조마했다. 그녀 주위에 일어나는 변화는 늘 거셌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다독이기란 여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옥죄어오는 유대인 학살은 그녀를 더 피폐하게 만들어갔다. 집착에 가까운 사랑의 대상이 새엄마에서, 새엄마의 지도 교수인 알프렛으로 바뀌어 갈 때 그 사랑이 결코 오래갈 수 없음을 짐작했다. 그 결과가 뱃속에 든 아이고 결국에는 가스실에서 생을 마감할거라 생각했지만 샬로테의 사랑은 더 질기고 더 간절했음을 나중에 드러난 그녀의 그림에서 밝혀졌다. 그녀만이라도 지옥 같은 독일에서 구하기 위해 프랑스로 보내졌지만 오히려 그녀의 죽음을 앞당기고 말았다. 그곳에서 다른 남자와 결혼했지만 알프렛을 사랑했던 것처럼 그녀의 영혼을 뒤흔드는 사랑이 아닌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고 장담할 수 없던 시기에 그녀 곁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지경이었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마지막을 예감한 듯 자신의 작품이 든 가방을 건네며 ‘이게 제 삶의 전부예요(240쪽)‘ 말할 때 알았다. 우울한 가정사를 견디고 알프렛과의 이별을 받아 들이고,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가 되어 조부모 곁에서 힘든 시간을 버텼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음을 말이다. 그녀가 남긴 그림이 정말 전부였음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선해 한동안 말을 멈추고 숨을 멈출 정도로, 최후가 되었던 가스실이 아닌 모리디스 박사의 진료실 문 앞에서 그녀와 이별을 나눈 것 같았다.


  저자가 이 소설을 써야만 했던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길이 없지만 소설을 읽고 난 뒤에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었다. 꼭 해야만 했고 했어야만 했던 일이었다는 사실도 말이다. 이국의 낯선 화가로만 치부하기엔 그녀가 살다 간 짧은 생이 너무도 강렬하고 먹먹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런 역사의 반복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래보지만 그런 굴레가 주변의 곳곳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음에 마음이 아플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와후와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비채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궁금해서 주문! 동화책 같다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