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와후와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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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정보 없이 하루키 책을 기다리다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다면 무척 흥분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침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안자이 미즈마루> 책을 읽었고 거기에서 이 책의 삽화를 보았다. 그랬기에 1998년에 출간 된 이 책을 차분한 마음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구입하기 전 페이지를 보고 굉장히 짧은 책이라는 사실을 알고 펼쳤지만 이런 형태의 하루키 책은 처음이라 낯섦이 더 짙었던 것 같다. 하루키 에세이를 삽화와 함께 단행본으로 읽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더 많은 걸 기대했다간 배신감(?) 혹은 허무함이 지배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루키 작가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를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 암고양이에 관한 이야기고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풍경이 자연스레 그려져서 툇마루는 물론이고 햇볕 냄새까지 나는 것 같았다. 왜 그런지 곰곰 생각해 보니 저자와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어릴 적 우리집은 나무로 된 마루가 있었고 마루 아래 흙바닥에는 집에서 기르는 개와 고양이가 함께 잠을 자고 있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 이상하게 우리집 고양이와 개는 앙숙이 아니어서 함께 몸을 기대며 잠든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신기할 때가 많았다. 가끔 그 고양이는 마루에 올라와 햇볕을 쬐며 꾸벅꾸벅 졸곤 했는데 그때 웅크리고 있던 모양, 고양이 털 색깔, 가르릉 거리는 소리, 그 햇살에 나도 벌러덩 누워서 뒹굴 거렸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암고양이의 시선을 따라 혹은 상상에 따라 묘사하다 어렸을 때 길렀던 고양이의 추억을 꺼내놓는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는 저자가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된다. 어떤 사물이나 풍경을 너무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으면 종종 추상적인 생각이 지배할 때가 있는데 이 책에서 저자가 고양이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약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는 건지, 고양이를 통한 다른 세계의 이면을 보고 있는 건지 착각이 들 정도로 약간의 지루함을 가지고 잠시 그 세계를 헤맸던 것 같기도 하다.

시골집, 툇마루, 고양이, 햇볕에 관련된 추억이 없었더라면 이 책을 읽고 조금 더 허무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려 주었고, 내가 길렀던 고양이를 기억하게 해주어서 그것만으로도 잠시나마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서 이 책에 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그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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