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의 아들 - 나의 선택 테드북스 TED Books 1
잭 이브라힘.제프 자일스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소설 같았다. 분명 저자의 성장과정이고 그가 모두 겪은 일인데도 이런 삶이 있을까 싶어 차라리 소설로 믿고 싶어졌다. 책의 제목처럼 그의 아버지는 저명한 랍비를 살해했고 수감 중에 1993년에 일어난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까지 모의했다. 저자가 겨우 일곱 살 때 일어난 일이었고 그런 아버지를 둔 삶은 정상적이지 못했다. 수없이 이사를 다녀야했고 가난에 시달렸으며 온갖 모욕과 추문, 학교 폭력 그리고 새아버지의 폭력까지 견뎌야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저자의 삶은 일그러져 버린 것일까? 부모의 잘못된 종교관에서 비롯된 비극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란 호칭은 따라 붙어 있고 그의 삶은 일곱 살에 상상해보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삶으로 흘러가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이 아닌 테러를 선택한 아버지 때문에 완전히 산산조각 나 버린 가정. 아버지는 그 대가로 감옥에 갇혀 있지만 정작 모든 모욕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 남겨진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반성과 후회는커녕 삐뚤어진 신념만 강해졌다. 아버지의 삶이 평생 감옥에 갇혀 끝나버린 것처럼 저자를 비롯한 남겨진 가족의 삶도 끝나 버린 것 같았다. 그나마 무역센터 테러를 모의하지 않았을 때는 면회도 가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희망을 얘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신념이 바뀌지 않는 한 잠깐의 평화도 유지될 수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변하지도 않고 곁에 있을 수 없는 아버지 대신 재혼을 했지만 모든 걸 악화시킬 뿐이었다. 새아버지의 폭력을 오랫동안 견뎌야했고 그런 삶을 영위해 간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한없이 우울해졌다.


나의 세계를 정의하는 것은 가족과 친구에 대한 사랑,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또한 다음 세대에게 더 잘해주어야 한다는 도덕적 확신, 아버지가 끼친 피해의 일부를 사소하나마 힘닿는 데까지 보상하려는 욕구다. (126~127쪽)


  그런 의미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테러 방지와 비폭력 메시지를 전하는 저자의 행동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라면 아버지를 증오하며, 주어진 불우한 환경에 대한 비난을 끊지 못한 채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데 저자는 그 모든 걸 견뎠고 이겨냈으며 이제 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그것이 타인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살리는 일이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삶의 폭풍을 견디고 헤쳐 나가는 모습에 경견해지기까지 한다.


  그 모든 걸 혼자서 할 순 없었다. 자신이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도 변함없이 곁에 있어 준 친구들이 있었고 복잡다단한 의미의 남겨진 가족이 있었다. 혼자라 느껴졌지만 혼자가 아니어서 가능했고 그런 깨달음을 얻자 자신의 고통을 뛰어넘어 타인의 고통까지 관심 갖게 되었고 어루만지게 되었다.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저자의 모습에 잠시나마 내가 가진 편견과 색안경을 내려놓게 되었다. 내 맘대로 꾸려진 나의 내면은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고 오류를 범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시선으로 타인에게 상처가 된다면 나도 정의로운 사람일 수 없다. 내 안의 평화가 유지될 때 세계의 평화를 지키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나와 내 주변인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 작은 평화를 지켜가는 일. 그것도 나만의 방식이듯이 정당한 행위에 수긍하는 것만으로 무언가가 더 오래 지켜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게 평화든 정의든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 좀 더 긍정적인 요소가 되는 거라면 무엇이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독한 하루 - <만약은 없다> 두번째 이야기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씨가 너무 더워 사치를 좀 부려봤다. 아침 일찍부터 카페에 노트북과 책을 잔뜩 들고 들어가 샌드위치와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만끽했다. 밖은 푹푹 찌는데 나만 이렇게 시원해도 되나 싶어 괜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잠깐의 호사도 미안해지는 더위라 책을 읽는 내가 하릴없어 보였지만 이 모든 걸 잊어버리게 만들만큼 책 내용은 무거웠다. 그러다 눈물이 나고 말았고 몇 번씩 사람들 눈을 피해 눈물을 닦았다. 그렇게 울어버린 이야기들은 모두 아이들에 관한 것들이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남 일 같지 않아서, 나도 그런 상황이 되지 말란 법이 없어서 한없이 착잡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니 이것은 거듭할수록 불행에만 가까워지는 일에 다름아니다. 나는 생각한다. ‘만약’이 없을 수 있게, 도저히 생각조차 나지 않아 내가 내뱉을 말에 어떠한 가책도 느끼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일이다. (234쪽)

이런 무게와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 의사. 그런 의사의 글을 통해 민낯을 보게 되는 응급실의 상황.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이야기임에도 무언가에 이끌리듯 외면할 수가 없었다. 생명에 지장이 없는 이야기들은 묘사가 적나라해도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죽음에 임박하고, 죽을 수밖에 없고, 죽어야만 했던 사람들이 이야기는 한없이 침잠하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 인간은 고통 받으며 살아야 하는지, 그 모든 사고와 질병이 꼭 이렇게 잔인해야 하는지 애석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응급실에 밀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불행이 밀집한 곳 같았다. 타인의 이야기지만 언제라도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섬뜩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답답했다.

죽음은 그 횡포하고 잔인한 이미지와 놀라운 급작성, 현존 여부와 직결되는 슬픈 성질 때문에 유사 이래 계속 극화되고 신격화되어 왔습니다. 죽음은 처음부터 도저히 평등하다고 언급될 수 없는 성질을 가졌습니다. (156쪽)

스스로 선택한 직업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음에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럼에도 그런 무게감을 안고 일하는 그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응급실의 특수한 상황들, 응급실 외에 처리해야 하는 업무, 끊임없이 밀려드는 직업에 대한 고민과 번뇌는 한 사람의 것이라곤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사회적인 시선과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님에도 의사라는 이유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기본적인 대우조차 받지 못할 때면 나까지 속상했다. 그러고 보면 병원에 갈 때마다,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거나 뭔가 미흡해 보일 때 의료진을 의심한 적이 나도 있었다. 응급실의 의사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신뢰를 가지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심히 부끄러웠다. 이런 초라한 반성조차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것 같아, 오로지 죽는 것과 사는 것만 존재하는 것 같아 생각은 많아졌지만 잘 정리가 되질 않았다.

고민하다 심폐소생술 교육을 신청했다. 평소에 배우고 싶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어서 이번이 기회인 것 같았다. 내가 심폐소생술을 배워서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기 싫어서였다. 배워놓으면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겠지. 평등하지도 않고 확실하지 않는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우리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다. 부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진부한 말이어서 식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책에서 만난 사람들 앞에서는 이 말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알아 이런 포괄적인 바람조차 되레 미안해진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17-07-28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서가에 응급실 의사가 쓴 책을 꽂아두고 있는데, 읽다말다 읽다말다
고통이 막 전해져서 한 자리에서 읽기가 어렵더라고요. 이책도 그런가보네요

안녕반짝 2017-08-04 23:31   좋아요 0 | URL
저도 몇 번이고 멈추고 싶었는데 읽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읽어야만 했던 책인 것 같아요.
 
지독한 하루 - <만약은 없다> 두번째 이야기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잡스>에서 말하는 거 보고 괜찮은 의사라는 생각을 했는데 책이 두 권이나 출간되어 있다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꼭 다 만나보고 싶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잡스>에서 저자가 나와 이야기 하는 걸 보고 참 괜찮은 의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이 있는 줄 몰랐는데 당장 읽어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제155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잠든 아이들을 보며 지금처럼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달라고 기도할 때면 종종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인다. 이 아이들 곁에 얼마나 있어줄 지 몰라 걱정이 두려움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뿐인 딸을 잃고 생기를 잃어버린 부부의 이야기가 첫 번째로 등장했을 때 피하고 싶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상실감을 마주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딸이 살아있었다면 성인식을 치를 나이에 부부는 과감한 결정을 한다. 딸 앞으로 온 기모노 카탈로그를 보고 딸 대신 성인식에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다보면 실현가능한 일인가 싶다가도 그렇게라도 딸의 존재를 다시 부각시키고 오랜 상실감을 걷어낼 수 있는 일이라면 대단한 용기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높은 기대감에 답답함을 느껴 집을 나간 후 16년 만에 엄마와 마주하는 딸도 있었다. 엄마의 온기를 기대하며 성장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아픈 기억과 치매를 앓는 엄마와 마주했을 때의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 매여 있는 복잡다단한 것들이 설명하기 힘든 모습으로 다가왔다고나 할까? 남편의 무관심과 시어머니의 간섭에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도피했지만 딸, 누나, 시누이라는 이름이 더해진 무게감을 절실히 느끼는 여자의 모습도 있었다. 밤마다 기묘한 메일을 받으면서 판타지적인 모습도 더해지는데 오히려 약간의 해방감이 느껴졌다.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드러내기만 했다면 내가 속한 가족 안에서의 소속감이 답답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공감은 가장 적었지만 바다를 찾아 집을 나온 초등학생과 비닐봉투를 쓴 소년과의 이야기에서도 역시 그런 해방감이 느껴졌다.

시계가 가는 시간은 하나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다른 시간이 있다는 걸 말입니다. 이야기가 좀 이상한가요.

「때가 없는 시계」중

이 소설에서 말하고 있는 가족의 모습, 그 안에 펼쳐지는 다양한 사건과 인생들이 어쩌면 한 시계공이 말한 시간과 닮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함께 살아가면서도 각자의 시간과 기억은 판이하게 달라서 삶이 이어지면 질수록 쌓여가는 주름 같은 것이 같을 수 없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분명 공통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결국은 각자의 숙제를 잘 해 나갈 때 가족이란 이름 또한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소설들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답게 느껴졌던「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거울을 보며 일을 해야 하는 이발사의 바람을 담아 바다가 가득 들어차도록 배치한 거울이 독특한 곳이었다. 아름다운 장소와 대비되는, 이발사를 통해 듣는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인생의 회한이 가득한 이야기였지만 담담하게 펼쳐내는 가운데 삶의 지혜도 가득했다. 각자의 인생에서 만들어지는 주름이 있다면 노년의 이발사는 구불구불하지만 정직하게 꽉 채운 느낌이라고나 할까? 머리카락을 자르고, 면도를 하고, 마사지를 받는 동안 다른 삶을 사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건 그의 이야기가 진솔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함께 살아가면서 보람과 기쁨도 많지만 어려움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 어려움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삶의 모양은 분명 달라진다. 개인의 행복감이 공동체의 행복감으로 넓혀갈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내가 마주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동시적인 공간과 시간 속에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한다. 그 사이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자잘함은 잠시 제쳐두고 사랑하는 마음을 최우선으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