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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하루 - <만약은 없다> 두번째 이야기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날씨가 너무 더워 사치를 좀 부려봤다. 아침 일찍부터 카페에 노트북과 책을 잔뜩 들고 들어가 샌드위치와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만끽했다. 밖은 푹푹 찌는데 나만 이렇게 시원해도 되나 싶어 괜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잠깐의 호사도 미안해지는 더위라 책을 읽는 내가 하릴없어 보였지만 이 모든 걸 잊어버리게 만들만큼 책 내용은 무거웠다. 그러다 눈물이 나고 말았고 몇 번씩 사람들 눈을 피해 눈물을 닦았다. 그렇게 울어버린 이야기들은 모두 아이들에 관한 것들이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남 일 같지 않아서, 나도 그런 상황이 되지 말란 법이 없어서 한없이 착잡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니 이것은 거듭할수록 불행에만 가까워지는 일에 다름아니다. 나는 생각한다. ‘만약’이 없을 수 있게, 도저히 생각조차 나지 않아 내가 내뱉을 말에 어떠한 가책도 느끼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일이다. (234쪽)
이런 무게와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 의사. 그런 의사의 글을 통해 민낯을 보게 되는 응급실의 상황.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이야기임에도 무언가에 이끌리듯 외면할 수가 없었다. 생명에 지장이 없는 이야기들은 묘사가 적나라해도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죽음에 임박하고, 죽을 수밖에 없고, 죽어야만 했던 사람들이 이야기는 한없이 침잠하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 인간은 고통 받으며 살아야 하는지, 그 모든 사고와 질병이 꼭 이렇게 잔인해야 하는지 애석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응급실에 밀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불행이 밀집한 곳 같았다. 타인의 이야기지만 언제라도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섬뜩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답답했다.
죽음은 그 횡포하고 잔인한 이미지와 놀라운 급작성, 현존 여부와 직결되는 슬픈 성질 때문에 유사 이래 계속 극화되고 신격화되어 왔습니다. 죽음은 처음부터 도저히 평등하다고 언급될 수 없는 성질을 가졌습니다. (156쪽)
스스로 선택한 직업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음에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럼에도 그런 무게감을 안고 일하는 그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응급실의 특수한 상황들, 응급실 외에 처리해야 하는 업무, 끊임없이 밀려드는 직업에 대한 고민과 번뇌는 한 사람의 것이라곤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사회적인 시선과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님에도 의사라는 이유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기본적인 대우조차 받지 못할 때면 나까지 속상했다. 그러고 보면 병원에 갈 때마다,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거나 뭔가 미흡해 보일 때 의료진을 의심한 적이 나도 있었다. 응급실의 의사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신뢰를 가지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심히 부끄러웠다. 이런 초라한 반성조차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것 같아, 오로지 죽는 것과 사는 것만 존재하는 것 같아 생각은 많아졌지만 잘 정리가 되질 않았다.
고민하다 심폐소생술 교육을 신청했다. 평소에 배우고 싶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어서 이번이 기회인 것 같았다. 내가 심폐소생술을 배워서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기 싫어서였다. 배워놓으면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겠지. 평등하지도 않고 확실하지 않는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우리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다. 부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진부한 말이어서 식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책에서 만난 사람들 앞에서는 이 말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알아 이런 포괄적인 바람조차 되레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