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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1 ㅣ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평점 :
「넌 행복해?」
「물론이야. 자신이 가진 걸 소중히 여길 줄 알면 행복하고 자신이 갖지 않은 걸 갖고 싶어 하면 불행하지. 난 원하는 걸 다 가졌어.」1권 200쪽
길을 걷다가, 날이 더워 하늘을 쳐다보다 이 구절을 떠올렸다. 과연 나는 지금 행복한가? 그러다가 또 ‘욕망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를 계속 반복했다. 고양이들이 한 말이지만 인간인 내게는 계속 머물러 있는 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에겐 욕망과 고통, 불행이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 피타고라스처럼 행복할 수 있는 이유들이 충분한데도 나는 왜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걸까? 내가 누리고 있는 현재 환경이 모두 파괴되고 잃을 게 없어지면 비로소 그런 깨달음이 올까?
암고양이 바스테트는 ‘인간을 이해하는 고양이’며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영혼이 있으며, 영혼을 가진 것은 모두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평범하면 평범하고, 특별하다고 하면 특별할 수 있는 생각을 가진 바스테트는 머리에 USB 단자가 꽂힌 고양이 피타고라스를 만나면서 많은 발견과 함께 변화를 맞이한다. 피타고라스는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정보를 유입하고 이해할 수 있었고, 바스테트에게 하나하나 얘기 해준다. 바스테트는 피타고라스를 통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고 현재 일어난 위험의 심각성을 알게 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파리는 테러가 일상이 되고 전쟁의 기미가 엿보인다. 피타고라스를 통해 인간의 역사를 알게 된 바스테트는 집사 나탈리가 두려움에 떨며 식료품을 잔뜩 사오던 날부터 기존의 평화로운 날들이 오지 않을 것임을, 또 한 번의 멸망이 올 것임을 직감한다. 피타고라스의 집으로 옮겨간 그들은 그곳에 고립된다. 밖은 페스트가 창궐했고 갈수록 개체수가 많아지는 쥐들로 들끓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스테트가 잡아온 쥐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는데, 피타고라스의 집사가 살해당한 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
모든 폭력은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에서 나타나는 뿌리 깊은 반사적 본능으로 설명할 수 있어. 처음에는 파괴가 우리를 지켜 주고 생존을 보장해 줬지. 세상에는 늘 강자와 약자,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존재했어. 그런데 그 존재 이유가 사라진 지금, 폭력은 억눌린 본능의 분출에 다름 아니야. 1권 175쪽
철저히 고양이 시선으로 보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고양이의 키처럼 낮아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과 폭력으로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고, 멸망이 자명한 시기에 인간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고양이들이 이런 대화를 하고 깨달음을 배워가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앞으로 그들에게 엄청난 변화가 닥치겠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은 생명은 있게 마련이고 고양이들이 앞서서 앞장선다 해도 어떻게든 무사하길 바랐다. 혼돈 속에서 때론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역사와 종교, 철학이 포함되어 심오했지만 멈춰있지 않고 진보하려는 생명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졌다. 바스테트는 그 과정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고, 깨어났으며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꼈으니 어쩌면 그 모든 건 고양이의 시선에서는 주어진 운명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쥐들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인간이 필요했고 그들과 소통해야 했다. 바스테트는 USB 단자를 달고 있을 뿐, 인간과의 소통은 할 수 없었다. 늘 영혼과 소통하려 했던 바스테트는 우여곡절 끝에 특별한 인간과 소통에 성공한다. 쥐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그들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섬에 정착을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님을, 인류의 시작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직감한다. 오래 전 피타고라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바스테트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 고양이 이름이 괜히 피타고라스가 아님을 결말이 아우르고 있다. 자신에게 어떠한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고, 피타고라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고양이에 지나지 않았을 바스테트를 통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고양이들이 모든 걸 해결하고 결말을 명확히 내놓을 거라는 기대는 허무와 마주하게 된다. 더불어 가장 뛰어나다 여겼던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약한 존재인지, 현재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과오가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를 섬뜩하게 보여주는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