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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의 역사 - 20년차 기자가 말하는 명화 속 패션 인문학
유아정 지음 / 에이엠스토리(amStory)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청바지와 까만색 면 티, 슬립 온 신발에 천 가방을 들고 있는 내게 대학생 같다고 말해준 이가 있었다. 얼마나 대충 꿰어 입고 왔는지 스스로 알고 있기에 “제가요?” 라며 되물으며 “전 진짜 옷을 못 입어요. 그래서 이렇게 대충 입고 다녀요.” 라고 하니 이렇게 무심한 듯 입는 게 더 멋쟁이처럼 보인다나. 살면서 그런 말은 처음이라 대충 넘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새 옷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몰라 익숙한 옷만 주구장창 입어 대는 게 나의 옷차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명화 속 왕족과 귀족들이 입는 옷을 보면 뭐라 할 말이 없어진다. 대충 훑어봐도 불편한 게 훤히 보이는데, 당시에는 패션 리더였고 너도 나도 따라했다고 하니 역시나 나는 그쪽으로는 무지한 걸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유명인이나 연예인들이 입고 걸치는 것이 이슈가 되고 유행이 되는 것과 같다고 이해하면 수긍이 간다. 하지만 패션에도 얽혀 있는 수많은 이유들이 단순한 옷차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어 때론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 밑바탕에는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이유가 가장 크다고 여기면 그들이 감내한 불편함과 어마어마한 비용들이 조금은 수긍이 간다. 유명한 이가 입었다고 해서 따라해 본적이 한 번도 없는 나에겐 여전히 피부로 와 닿지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명화에서 당시 패션의 흐름과 사회적 분위기 및 역사를 알아가는 건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를 테면 루이비통의 시작이 외제니 황후의 짐 싸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루이였고, 황후의 후원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가방 가게라는 사실들이 그랬다. 여인들의 초상화에서 웃는 얼굴이 없는 것도 충치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가발의 불편함을 안고 지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심지어 가발 안에 쥐가 살았다는 이야기까지 스쳐버릴 수도 있는 그림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철저한 고증 덕분에 명화 속의 패션을 읽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미 익숙한 그림들도 새롭게 보였다. 그래서 이런 옷을 입었던 사람들, 그런 옷을 만들었던 사람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당시의 패션을 읽을 수 있도록 그림으로 남긴 화가들까지도 모두 연결된 기분이 들어 기분이 묘해졌다. 마치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처럼 그 시대가 머릿속에 생생하게 펼쳐지고, 왕족과 귀족은 아닐지라도 저런 옷을 입고 살아야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물론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옷이 예뻐도 그저 그런 외모를 가진 나를 대입해 봐도 별반 다를 게 없지만 말이다.
새로운 기술의 발달이, 다소 불편하지만 낭만적인 것들의 맥을 끊어버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150쪽
몇 년 째 옷가게에서 옷을 사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인터넷으로 입어보지도 못한 채 옷을 구매하고, 반품이 귀찮다는 이유로 맘에 들지 않거나 사이즈가 맞지 않아도 그냥 입는 나와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큰 맘 먹고 옷가게에 들어가 이것저것 입어보고 새로운 내가 되어서 밖을 나오던 순간들이 그립기도 하다. 지금도 하지 말란 법이 없지만 이미 머릿속에는 똑같은 옷이라도 온라인과 가격이 달라 선뜻 행동개시가 되질 않는다. 편리함이 낭만을 없애버린 격인데, 그래서인지 그들의 옷과 액세서리에서는 정성과 시간, 비용이 어느 정도 읽혔다. 사치와 허세와 연결되면 씁쓸해지지만 어찌되었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엉뚱하게도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더 많다고 믿고 싶어진다. 아마 나의 외모가 지금과 달리 예쁘다면 이런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갑자기 예쁜 옷을 구입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