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이 책을 정독하게 될 줄은 몰랐다. 치킨에 관한 책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었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 보니, 한 달에 한 번은 꼭 시켜먹는 게 치킨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많은 치킨집이 있지만 늘 어떤 치킨이 맛있는지 몰라 먹어본 치킨만 먹고 있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정보습득 요량으로 정독을 하고 있었지만 어느새 치킨에 관한 추억들이 중구난방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100이 넘는 치믈리에를 배출하는 나라, 한국이 아니라면 치킨에 대한 책을 내기란 불가능했을지 모릅니다. 세계에서 가장 깊고 화려한 치킨 문화를 가진 나라, 세계 모든 맥도날드 매장 수를 합친 것보다 치킨집이 많은 나라, 공원이든 강변이든 언제 어디서나 치킨을 시켜 먹을 수 있는 나라



프롤로그의 이 글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에 이 책을 정독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치킨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궁금증! 그 궁금증을 이 책이 풀어주길 바랐다.





목차는 온라인서점에서 상세히 보길 권한다. -> 목차보기



프롤로그를 지나 목차를 살펴보면 정말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치킨을 고르는 것부터 치킨의 역사, 즐기는 방법과 음료 소개까지 정말 치킨의 모든 것에 대해 나와 있다. '치킨무 페이스 조절법' 목차를 보고 혼자 빵 터져서 가장 먼저 봤는데, 나는 늘 치킨무가 부족했는데 앞으로는 '재력가 타입'으로 치킨무를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 건 역시 '치믈리에가 뽑은 베스트 치킨 3'다.

내가 시켜먹는 치킨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1위는 BBQ 황금올리브치킨



나는 시켜먹은 적이 없는 치킨이었다. 그래서 다음에 치킨을 시켜먹으면 1순위로 시켜보자 싶었다.

념보다는 후라이드 치킨을 좋아하는 터라 정말, 정말, 정말 먹어보고 싶었다.







2위 교촌치킨 교촌허니오리지널


3위 BHC 뿌링클



드디어 내가 먹어 본 치킨이, 그것도 주구장창 시켜먹는 치킨이 나왔다. 바로 '교촌허니오리지널'이다. 뿌링클은 남편이 먹고 싶다고 해서 딱 한 번 먹어봤는데 특별한 기억은 없었다.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시켜서 음미해보마 다짐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교촌치킨을 정말 좋아한다. 조금 짤 때도 있지만(동네마다 조금 다른 것 같다.) 치킨에 대한 추억이 하나 있다. 치킨을 시켜 혼자서 먹어본 경험이 없을 정도로 넉넉하지 않게 살아서인지(어릴 적 기억이 성장해서도 치킨을 시켜 혼자 먹는 건 과분하다 여겼다. 충분히 시켜먹을 수 있는데 왜 치킨에서만큼은 그런 생각을 가졌는지 잘 모르겠다.), 치킨은 늘 누군가와 함께 먹는 음식이었다. 그러다 첫 아이를 임신해서 입덧이 너무 심해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 문득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교촌치킨 골드윙을, 그것도 점심 때 시켜서 혼자 야무지게 다 해치웠다. 입덧 중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맛있었고, 남편 몰래 먹었다는 미안함에 흔적을 다 없앴다. 그때부터 교촌치킨은 나에게 좀 특별하게 남아 있는데, 최근에 배달료가 추가되는 바람에 뭔가 서운해서 자제하고 있었다. 아마 조만간 시켜 먹지 않을까 싶지만.^^



그러다 『치슐랭 가이드』에서 치믈리에가 뽑은 1위 치킨이 너무 먹고 싶어 참지 못하고 시키고 말았다.





내가 간과했다. 아이들 앞에 치킨을 놔두고 사진을 찍는다는 게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진을 찍을 새도 없이 둘째가 닭다리를 바로 낚아챈다.




남은 닭다리 하나를 제발 들어달라고 사정해서 남편이 들고 있을 때 책과 함께 찍는데 성공했지만, 뭔가 이미 끝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ㅋ



예쁜 사진이고 뭐고, 아이들이 마구 치킨을 집어 먹는 탓에 이론으로 접한 치킨을 음미할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처음 먹어본 '황금올리브치킨'은 정말 튀김옷이 바삭했고, 남편과 나는 연신 오랜만에 후라이드 다운 치킨을 먹는다며 감탄하며 먹었다. 그만큼 맛있는 치킨을 먹고 싶은데, 정보가 없었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둘째가 치킨 맛을 알고부터 항상 한 마리 시키면 애매하게 남았던 치킨이 부족할 지경이 이르렀지만, 가끔 남은 치킨으로 응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식은 치킨도 맛있다고 하지만 튀김옷이 눅눅해진 치킨을 첫날처럼 즐겨본 적이 거의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남은 치킨으로 응용할 수 있는 요리법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도전해 보고 싶은 요리법이 몇몇 있었다. 둘째가 배가 불러 치킨이 남는다면 꼭 한 번은 만들어봐야지~^^






문득 지인들과 밥을 먹으며 메뉴를 정할 때 뭘 좋아하냐는 물음에 우스갯소리로 '닭띠라서 그런지 닭요리는 다 좋아해요.'라고 종종 말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나는 치킨, 닭볶음탕, 찜닭 등 닭이 재료가 되는 요리는 다 좋아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는 닭가슴살이다. 그래서 나와 치킨을 먹을 땐 웬만해선 부위 때문에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떠오른 추억 하나 더!



지금처럼 치킨집이 많지 않았던 20대에 치킨이 먹고 싶으면 꼭 가던 곳이 있었다. 전남 지역에는 매장이 한 개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파파이스였다. 그때는 집 앞에 바로 있어서 혼자 가서 먹고 오던 날이 있었다. 그리고 매장이 사라지자 아쉬운 대로 롯데리아에 가서 항상 치킨텐더를 먹었다. 친구들과 함께 가서 치킨텐더를 주문하면 항상 시간이 좀 걸린다는 대답이 들려와도 항상 기다려서 머스터드 소스에 꼭 찍어서 먹었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치믈리에의 인터뷰를 보면서 정말 치킨을 사랑한다는 마음이 느껴져서 놀랐다. 하지만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책을 대입해보니 정말 아무렇지 않게 많은 부분이 일치했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한다는 것.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종종 세상은 살아갈 힘이 된다는 진리를 치킨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깨달을 줄은 몰랐다.






치킨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분명 있겠지만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치킨집이 많이 있는 게 아닐까?


치킨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던 이 책을 읽으면 나처럼 잊혔던 추억들이 분명 떠오르리라 생각한다.



이 책의 목적은 확실합니다.


여러분의 더 나은 치킨 생활을 돕고, 최고의 치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_ 프롤로그 중



이 책과 함께 치킨을 드셔보시길!


너무 유쾌한 경험이라 많은 분들에게 이런 책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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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길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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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덥고 밥하기가 귀찮아져 점심은 온 가족이 라면을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니 잠이 와서 한숨 자고 일어나니 좀 부은 느낌이다. 잠들기 전에 읽은 이 책을 꺼내들어 마저 읽었지만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 끼를 가볍게 때운 나와는 달리 요리사로 요식업계에 발을 디딘 주인공 모로를 보고 있으면 사람이 더 이상 먹지 않을 때까지 이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로가 오랫동안 한 식당에 머문다거나, 자신의 식당을 열어 끝까지 지킨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가 어느 날 요리의 세계에 발을 디디고, 그가 한 경험들은 정말 그가 원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모로의 목소리가 아닌 그의 변화를 지켜보는 시선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육체적인 피로와 끝을 알 수 없는 요식업의 세계가 뭔지 모를 불안감을 내밀었다.


이 직업의 가장 커다란 폭력은, 아시겠지만, 가장 커다란 폭력은 이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요리는 우리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기를, 우리 삶까지도 바치기를 원한다는 것. 74쪽

모로가 경험한 주방에서도 그런 피로를 목도했다. ‘모든 것을 희생하기를, 우리 삶까지도 바치기를 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로가 경험해 나가는 것들만 살펴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식당을 열어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그가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해 4년의 시간을 버텨냈을 때, 직업의 폭력 속으로 기꺼이 들어갔다는 사실도 말이다. 그래서 그가 식당을 처분하고 방랑자가 되어 아시아로 건너가 이런 저런 경험을 하고 다시 돌아와 여러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자신의 식당을 연다고 했을 때, 자신의 삶을 한 방향으로 두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난 삶을 원해요. 131쪽

모로의 동선만 지켜봐도 그가 얼마나 보통의 삶에서 멀어진 시간들을 견뎌왔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건 모로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정체되고 고이지 않도록 자신의 선택을 뒤집고, 뒤집어서 생기를 불어 넣었다고 여겨졌다. 그러한 과정이 있기에 모로가 앞으로의 이 길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내길 바랐다. 그가 새로 계획하고 있는 식당이 그러하듯 그가 다양한 곳에서 쌓은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 그동안 본 적 없는 창조적인 식당이 되기를 말이다.

그래서 모로의 이야기를 다 읽었음에도 끝을 보지 못한 기분이 든 것이다. 내가 점심을 먹고 배가 불러 잠이 든 후에 또 저녁거리를 걱정하듯, 우리의 삶도, 그 안에 내려야 하는 수많은 선택도, 끝이 없는 반복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 반복을 지루하지 않게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모로처럼 홀가분하게 떠나고 되돌아오고 경험을 쌓을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종종 되돌아보고 작은 변화를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반복에서 오는 안락함을 경험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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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케이크 비룡소의 그림동화 149
티지아나 로마냉 그림, 디디에 레비 글, 홍경기 옮김 / 비룡소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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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음식 프로그램에서 한 배우가 엄마 손맛이 느껴지는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흘린 것을 보았다. 만든 이도, 그 음식을 먹는 이도 부모님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더 눈물을 자아냈다. 문득, 나도 엄마 음식을 더 이상 먹게 되지 못하면 어떨지 아찔한 생각을 하자 마음이 울컥해졌다. 음식 하나로 몸속에 숨겨져 있던 추억과 맛에 대한 느낌이 살아난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감격스러웠다. 내가 엄마 음식을 기억하는 것처럼, 내 아이들도 나중에 내가 해주는 음식을 그렇게 기억해주면 참 좋겠다는 욕심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모나가 만든 케이크로 전쟁을 끝난 이야기는 좀 남다르게 다가왔다. 약혼자 파올로가 전쟁터에 나가서 너무 슬픈 나머지 울고 있던 모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아마 나였다면 매일매일 울면서 보내다 지쳐버렸을 것 같은데 모나는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파올로가 돌아오고, 전쟁을 멈추게 할 케이크 만드는 방법을 찾아낸다. 그리고 마지막 재료를 구하러 적군의 지역까지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부모를 잃은 네 명의 아이들을 만난다. 말도 통하지 않는 그 아이들을 차마 놔두고 올 수 없어서 모나는 집으로 데려온다.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를 잃은 네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온 모나가 참 대단하다 여겼다. 전쟁 중이라 모든 게 풍족하지도 않고, 삭막해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케이크를 만드는 모습을 보며 부디 저 케이크가 전쟁을 멈출 수 있게 하길 바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들과 함께 만든 케이크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저 까만 덩어리에 불과한 모습에 실망했는데, 그날 밤 그 덩어리가 케이크로 변해 있었다. 겉모습은 실패한 것 같았지만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케이크는 점점 커지고 있어서 모나는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케이크를 수레에 실어 전쟁터로 향한다. 모나와 아이들이 옮겨 놓은 케이크에서 너무 달콤한 향기가 나서 서로 싸우던 병사들은 참지 못하고 케이크를 맛본다. 그리고 이내 행복해졌다. 싸우고 있는 이유조차 몰랐던 그들은 그동안 화나고 서로를 미워했던 마음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모나의 간절한 바람대로 전쟁은 끝이 났다. 한참 전쟁을 벌였던 두 나라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파올로도 무사히 모나 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파올로와 모나와 네 명의 아이들은 한 가족이 되었다.

전쟁으로 잃은 것이 많았지만 모나와 아이들이 만든 케이크 덕분에 더 소중한 것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전쟁의 참혹함, 이유도 알 수 없는 미움이 모든 것을 삭막하게 만든다는 사실과 부모를 잃은 적군의 아이들과 가족이 될 수 있는 사랑의 힘을 알게 되었다. 정말 ‘마법의 케이크’라고 인정할 정도로 케이크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모든 게 전쟁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지만, 모나가 파올로를 생각하는 간절함이 없었다면, 아이들과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케이크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 케이크가 지치고 힘든 병사들의 마음을 녹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간절함과 사랑은 때론 마법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사실을 깊이 경험한 이야기였다. 내 마음에도 그런 사랑이 넘쳐나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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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다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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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나도 정신이상이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무심코 책을 펼쳤을 뿐인데 도무지 멈출 수 없었고, 소설 속 주인공 캐시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상한 일은 계속 일어나고, 전혀 기억을 못하는 캐시를 지켜보다 보니 내 의식도 흐려지는 듯했다.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면서 혼잣말로 ‘이상해, 이상해’를 반복했다. 약 400쪽의 소설이 절반을 훌쩍 넘어서도 계속 그런 상태라 정신이상을 호소하는 게 어쩜 당연해 보였다. 능숙한 독자라면 캐시가 겪는 일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겠지만 나는 너무 깊이 몰입한 나머지 그저 과정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드디어 긴 터널을 지나 캐시가 모든 일을 알아채는 계기가 되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서서히 진실이 밝혀지려 할 때부터 책장이 더 정신없이 넘어갔다.

 

정말 다행이에요. 제가 잘못 기억했던 거면 친구분이 절 가만두지 않았을 거예요. 276쪽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누군가 자신을 궁지로 몰아 비정상적인 상태로 몰아간다면 캐시처럼 되지 말란 법도 없을 것 같다. 그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내적인 소모가 큰데 그녀는 이 모든 걸 어떻게 견뎠을까? 그녀가 단서를 발견하기 전까지 답답하고,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 지쳐가고 짜증이 났는데 지나고 보니 그녀는 오히려 굉장히 잘 견디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누군가 악의적으로 주변의 환경이 그렇게 만든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쳐지나갔던 자동차 속의 여자. 캐시는 그녀를 도와주려 했지만 여러 이유로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그녀는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녀를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아는 사람이었다는 충격과 공포감이 그녀를 점점 궁지로 몰고 갔다. 매일 걸려오는 말 없는 전화를 급기야 살인자라고 생각하고, 결국엔 교사 일을 쉬어야 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직전까지 간다. 남편과 친구 레이철이 보살펴주지만 점점 그들도 지쳐가는 기색이 보인다. 나 같아도 배우자나 친구가 이런 증상을 계속 호소한다면 결국엔 지쳐버렸을 것이다. 그나마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구원이 되었다.

캐시는 잃어가는 기억 속에서 혼자 싸우고 있었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정신을 완전히 놓지 않고 종종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 숲에서 살해된 제인의 남편을 찾아가 그날 그녀를 돕지 못했다고 고백하면서 남편에게도 하지 못한 고백들을 쏟아놓는다.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의견을 말해주고 결국엔 어느 정도 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추적하고, 완벽한 증거가 손에 들어온 순간부터 사건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져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는 지혜를 발휘한다.

사건의 진실은 추악했지만 이유를 듣고 자신이 좀 더 배려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제인이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가정 앞에는 마음이 찡해졌다. 사람을 한 순간 미쳐가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릇된 욕망이 불러일으키는 범죄와 상처가 너무 깊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씁쓸함은 여전했다.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추악한 면이 언제든지 드러날 수 있다는 두려움, 그렇기에 이성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밖에 할 수 없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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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민, 어디로 가니?
김병종 글.그림 / 열림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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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풍성하고 힘이 넘칠 때 우리는 너나없이 생명과 사랑의 가치를 간과한다.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한 다음에라야 못내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우연히 찾아 온 강아지 자스민을 16년 간 키우고, 떠나보낸 뒤 어떤 형태의 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다짐한 저자. 그는 예기치 않게 찾아 온 자스민을 통해 가장 먼저 사랑을 배우고 느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이 아닌, 동물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사랑과 함께 한 시간 속에 스며드는 깊고 깊은 정이 오롯이 녹아 있는 책이다. 어렸을 때 개와 고양이를 키웠던 기억이 있지만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희미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예뻐했던 개는 기억이 남고, 그 개가 나를 학교까지 따라왔을 때의 든든함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 일상에서 사라져 버렸을 때의 허탈감도 말이다.

그래서 저자가 16년이나 함께 했던 자스민 이야기를 할 때 그 마음이 감히 짐작되지 않았다. 함께 했을 때의 기쁨과 즐거움, 자스민에게 배우는 사랑, 그리고 마음 아픈 이별까지. 솔직히 애완동물에 대한 격한 사랑을 쏟는 것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나였는데, 저자의 글을 읽고 말을 못하는 동물일 뿐이지 사람보다 더 많을 것을 주고받고 배울 수 있다는 것에 숙연해졌다. 아들만 둘 키우고 있는 가정은 언뜻 생각하면 삭막하고 심심할 것 같은데, 그 안에 자스민이 파고들면서 사랑이 넘쳐나는 가정이 되었다. 특히 둘째가 자스민을 너무 좋아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들을 때면, 사랑하는 대상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물이라고 해서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라고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참혹한 일이다. 그것은 먼저 온갖 종류의 외로움을 견뎌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별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도 어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늦은 밤 우연히 강아지와 얘기를 나누는 것을 들을 때면 장차 어떻게 헤어지려고……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건 그때 문제라고 밀쳐두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이미 자스민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군대에 갈 나이가 되어서도 함께 한 자스민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가장 가슴 아팠고 눈물이 났던 장면도 역시 헤어짐의 순간이었다. 군대에 간 둘째의 방문을 바라보며 죽어가던 자스민. 끝까지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예뻐했던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당사자가 봤다면 얼마나 슬펐을까. 어쩌면 인간인 우리보다 사랑을 더 깊고 오랫동안 간직할 줄 아는 자스민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도 자스민처럼 맘껏 사랑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그렇다. 정말 아름다울 때, 당사자는 모른다. 지나고 보니 그때가 좋았구나, 예뻤구나, 행복했구나를 깨닫는다. 과거를 미화시키더라도 그 순간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도 ‘네가 지금 얼마나 예쁜지 모르지?’ 하고 물으면 알 수 없는 웃음만 돌아올 뿐이다. 그래서 현재에 더 충실해야 한다고 믿고 싶다.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에 충실할 때 사랑도 느낄 수 있고 사랑도 베풀 수 있다고 말이다. 이 모든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한껏 사랑을 베풀고 간 자스민을 통해 나 역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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